외부자료표현의자유

[논문] 표현의 자유와 검열 – 90년대 상황을 중심으로 (김기중)

By 2002/05/1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법과사회 이론연구회, 법과 사회 16,17 합본호(1999년 하반기), 동성출판사
표현의 자유와 검열
– 90년대 상황을 중심으로
1998. 9. 25.
변호사 김기중

1. 현재 상황의 평가와 분석대상

90년대에 들어 두 번에 걸쳐 대통령이 바뀌었고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준법서약서’라는 변종된 형태의 억압 때문에 여전히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19세기적 주장을 하고 있는 때이기는 하나, 1993년 김영삼정부가 들어 선 이후 사회의 민주화는 진전되었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탄압은 거의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신 새로운 법규범을 생산하고 그것을 형식적으로 적용하는 간접적이고 합법적인 형태의 통제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통제를 대신하고 있고, 수사기관이나 법원을 포함한 국가기관의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법적용을 통한 통제는 더욱 완고하게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96년 이래 두드러진 소설, 만화, 영화, 연극 등에 대한 일련의 제재조치는 언론자유수호운동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80년대와 구분되는 90년대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 시기에 집중된 문화탄압에 대하여 강내희교수는 기성질 서를 유지하려는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의 통제전략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하였다{{) 강내희, "표현의 자유 탄압과 신자유주의", [우리사회 표현의 자유는 있는가?] 토론회 자료집, 1997. 9. 10.
}}.
어쨋든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국가에 의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탄압이 줄어 들었으나, 유연한 방식의 통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은 무력하여 소설가들의 구속 및 유죄판결이나 표현매체 전반에 대한 제한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보호법 등의 제정이 깊은 논의나 별다른 저항없이 쉽게 이루어졌다. 이 점은 표현의 자유가 단순히 개인적 기본권에 그치지 않고 여론형성과 민주적 제 원칙의 원활한 운용에 필수적인 제도라는 무게에 값하는 정도의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사실 표현의 자유에 국한된 것은 아니나 그동안 독재권력에 의한 직접적인 기본권 침해현상에 대하여는 물리적인 대응과 반대로 족하였으나 이후에 이루어진 좀 더 부드럽고 간접적인 통제방식에 대하여는 대응방식과 논리의 부족으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에 1990년대 상황을 중심으로 신문, 방송 등의 매스미디어, 영화.연극.음악.문학 등의 예술매체, 정치적 표현영역에 대한 변화를 살펴보고 문제점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제도의 점진적 개선과 여전한 문제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좀 더 완화된 형태의 제한규정을 둔 방송법과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이하 정간법)이 제정(1987년)되고, 공연법 시행령의 개정이라는 궁색한 형식으로 연극.음악.무용공연의 각본검열이 폐지된 것(1988년)이 불과 10여전의 일이다. 법률적 근거는 없어도 법률이상의 힘으로 작용했던 금서, 금지가요, 보도지침 등의 사례도 그즈음부터 완화되었다{{) 하지만 노태우정부 초기 문화부(구 문화공보부)는 금서를 없애겠다고 하면서 대신 도서내용의 위법성여부를 사법부의 판단에 따른다는 명분아래 이른바 [사법심사의뢰도서]라고 하여 376종에 이르는 책을 분류하여 사실상 ‘신고’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북한관련도서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일반 도서조차 ‘이념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이유로 자유롭게 소지하거나 유통할 수 없으므로 금서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서 사회의 관심은 국가에 의한 언론통제의 문제에서 급격하게 멀어져 갔다. 90년대의 매스미디어에 대한 주요 관심사는 ‘뉴미디어’였다. 종합유선방송이 실시되고 방송위성을 쏘아 올렸으며 근거법률인 종합유선방송법이 제정되었다. 상업화되어 가는 매스미디어의 선정적 보도에 의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의제기가 많아져 정간법의 정정보도청구 및 민법상의 손해배상청구가 일반화되었다. 이에 따라 정간법중 정정보도청구권부분을 개정하게 되었다{{) 그 주요내용은 정정보도청구권을 그 실질적인 내용에 맞게 반론보도청구권으로 변경하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재정결정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제도의 변화는 영화법,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법)의 개정을 통한 사전심의의 완화 또는 폐지이다. 먼저 정태춘, 박은옥씨의 노력에 의하여 1995년 11월 27일 음비법이 개정되어 1996년 6월부터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는 폐지되었다{{) 그 이전인 1994년 5월 10일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정태춘, 박은옥씨의 위헌심판제청신청을 받아 들였고(94초1385), 헌법재판소는 법원의 위헌심판제청을 받아 들여 영화 사전심의 조항에 대한 위헌판결이후인 1996. 10. 31. 음비법 제16조 제1항중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 부분이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94헌가6).
}}. 같은 달에 헌법재판소는 구 영화법의 사전심의 규정이 위헌이라는 역사적인 결정을 하였다{{) 헌법재판소 1996. 10. 4.선고 93헌가13, 91헌바10결정
}}.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영화를 이용한 표현행위뿐만 아니라 우리 전반에 걸쳐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획을 긋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대하여 중앙일보는 ‘문화혁명’이라 표현하였고(1996. 10. 5.자), 조선일보는 ‘혁명적 변화 예고’라고 표현(같은 날자)하며 호들갑을 부렸다.
}}. 정부와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1997년 4월 10일 영화진흥법을 개정하였으나 검열의 요소를 그대로 존치하여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전혀 실현하지 못하였다. 개정 영화진흥법은 모든 영화는 공윤 대신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이하 공진협)의 ‘등급’심의를 받도록 하되 심의를 받지 않고 영화를 상영하면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였으나, 등급을 부여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영화에 대하여 3개월에서 6개월의 기간동안 등급부여를 보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비록 일정기간동안이지만 헌법재판소가 절대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 영화의 공개 자체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이후 각계의 상이한 입장은 국회문화체육공보위원회가 1997. 3. 11.에 주최한 [영화진흥법개정관련공청회] 자료집에 나타나 있다(발표자는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김지미, 영화감독 정지영, 극작가 신봉승, 변호사 김기중, 상명대 영화학과 교수 조희문, 동국대 영화학과 교수 민병록이다).
}}.
표현의 자유의 일 내용인 알권리와 관련하여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1996년 12월 31일 제정되어 1년 후인 199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다만 비공개대상정보의 범위가 너무 넓은데다 규정 자체가 포괄적이고 애매하여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법 제정이전부터 법원의 판례에 의하여 정보공개청구권이 인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몇가지 제도적 변화는 있었으나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발행에 등록을 요구하고 신문 등의 경우에는 일정한 시설기준을 두고 있으며, 국가보안법위반죄 등을 범하여 금고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은 자 등은 정기간행물의 발행인이나 편집인이 될 수 없도록 한 것, 요건에 맞지 않거나 등록된 발행목적이나 내용을 현저하게 반복하여 위반한 때 등의 사유가 발생하면 등록을 거부하거나 발행정지를 명할 수 있는 문제조항은 여전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989. 1. 정간법상의 등록제는 신고제로 전환해야 하고, 발행인.편집인의 결격사유부분과 발행정지명령부분의 전면삭제를 제안한 바 있다(민변, 반민주악법 개폐에 관한 의견서).
}}. 최근 대법원은 전교조신문사건(정기간행물등록신청거부처분취소)에서 정간법이 발행주체인 단체의 합법성을 등록요건으로 정하고 있지 아니함에도 등록관청이 발행주체인 단체의 합법성을 심사하여 등록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헌법상 금지된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제, 검열제로 남용될 여지가 있다고 하며 원고승소판결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1998. 4. 24.선고 96누13286판결
}}. 대법원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등록관청은 정간법령에 따라 등록신청한 정기간행물의 제호나 발행주체가 다른 법령에 위배되거나 사회질서를 해칠 우려가 명백한 경우에는 그 등록을 거부할 수 있으므로, 전교조는 관계법령에 위배된 불법단체이어서 노동조합설립신고조차 할 수 없는 단체라면 발행주체의 불법성과 노조법 제7조 제2항에 따른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의 사용금지 등을 이유로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의 이같은 판단은 등록관청에게 등록신청단체에 대한 실질적인 심사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를 인정하는 꼴이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판결이다.

출판사와 인쇄소를 등록하게 하고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한 경우에 등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출판사 및 인쇄소의 등록에 관한 법률(이하 출판사등록법)은 자구만 수정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는 출판사등록법 제5조의 2 등록취소 사유중 제5호의 ‘저속한 간행물’부분이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 방송법중 극영화와 만화영화, 외국수입 방송물, 광고물에 대한 사전심의조항도 그대로이며, 음비법중 비디오물에 대한 사전심의 의무조항도 공진협의 일부 삭제권 및 위반시 형사처벌조항과 함께 여전히 개정되지 않고 남아 있다. 물론 국가보안법, 보호관찰법 등 사회보안관련 법률은 여전히 시퍼런 날이 전혀 무뎌지지 않았다.

한편 김대중정부가 들어선 이후 새정치 국민회의는 1998월 7월 14일 대통령의 공약사항 이행을 위한 영상관계법 개정방향을 발표하였고{{) 새정치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영상산업 진흥을 위한 영상관계법 개정방향 공청회 자료집, 1998. 7. 14.
}}, 여당의 방송법 개정안도 최근 확정되었다. 국민회의는 영상관계법 전반의 구조를 바꾸기 위하여 영화진흥법, 음비법, 공연법을 모두 손질하였는데, 우선 영화진흥법 개정안에서 영화진흥공사를 영화진흥위원회로 변경하고 영화진흥기금을 확충하며 특히 영화제작업자의 등록의무를 아예 없애 영화업을 전면 자유화하는 획기적인 규제완화조치를 마련하였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전심의부분에 관하여는 등급부여보류제도를 없애는 대신 ‘등급외 등급’을 신설하고 ‘등급외 등급’을 부여받은 영화는 ‘등급외 영화관’에서만 상영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등급외 영화’에 대하여는 광고를 금지하고 ‘등급외 영화관’을 허가제로 운용하도록 하고 있어 ‘등급외 등급’을 피하기 위한 영화사들의 자기 검열이 우려되기는 하나,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검열의 위험성을 현저히 줄이는 제도로 보인다. 음비법 개정안은 게임물을 법의 규율대상에 포함시키고 음반, 비디오물과 게임물에 대하여 완전등급분류를 하되 등급외 등급을 받은 비디오물 등은 판매와 대여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른바 ‘독립영화단체'(대부분 비디오로 제작활동을 하고 있음)와 비디오영화 제작기술의 발전을 고려하지 않은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비디오물제작업자에 대한 시설기준을 삭제하는 대신, 영화진흥법 개정안과는 달리 제작업자 등록의무규정과 의무위반시 형사처벌하는 규정은 그대로 두었다. 또한 국민회의는 공연법 개정안에서 공연자등록제도를 폐지하도록 하고 공연장의 설치허가도 등록제로 전환하며, 영화를 제외한 공연신고제 폐지, 각본심사제 전면 폐지 등 전향적인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다. 여당이 확정한 통합방송법안에서도 극영화, 만화영화, 외국수입프로그램, 광고 등에 대한 방송위원회의 사전심의 조항이 삭제되고 다만 광고물의 경우에만 방송여부에 대한 사전심의가 가능하나 그 결정권을 민간기구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였다(통합방송법안 제81조).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이 시기에 이루어진 또 하나의 중대한 변화는 청소년보호법의 제정, 시행이다. 청소년보호법은 1997년 3월 7일 제정되어 같은 해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유해약물, 청소년유해업소를 모두 규제하고 있으나, 최초의 법률안이 ‘청소년보호를 위한 유해매체물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이었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애초의 입법목적은 이른바 ‘유해매체’를 총괄적으로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다. 청소년보호법의 시행으로 1급 별정직 공무원을 위원장으로 하고, 영화, 연극, 음악, 무용, 음반, 비디오, 전자오락, 방송, 종합유선방송, 신문, 만화, 전자출판물, 광고물 등 우리 사회에 유통되고 있는 모든 매체물을 규제대상으로 하는 강력한 규제기구가 탄생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화체육부의 청소년보호위원회에 대한 안내자료, [선진형 청소년 보호체제, 청소년보호법], 1997. 6. 참조
}}. 각 심의기관과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각 매체물을 심의하여 그 유해성 여부를 결정하고, 심의결과에 따라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으로 판정된 매체물들은 판매, 대여, 방송, 배포 등 모든 유통행위에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되며 그에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이 법의 입법취지를 부인할 수는 없겠으나, 이 법은 제정단계에서부터 청소년보호라는 명분에 경도되어 지나치게 광범위한 매체물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즉 건전한 사회환경과 교육풍토의 조성이라는 문제는 도외시한 채 청소년 문제의 해결책을 매체물의 규제에서 찾고자 하는 본말이 전도된 입법이라 할 수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1997년도 인권보고서, [표현의 자유]부분(간행예정) ;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이형근, "표현의 자유와 매체물 규제", 이달의 민변 1996. 12.호 참조
}}.

이 법의 입법당시 규제대상이 광범위하고 게다가 심의기준이 모호하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고{{) 조선일보, "청소년보호법, 실효성 논란", 1997. 6. 23.자 ; 한국일보, 1997. 9. 3.자 사설 ; 전자신문, "영상매체 유통 변수로", 1997. 3. 14.자 등 ; 특히 만화계의 우려와 반발은 무척 컸다. 만화학회 등은 시위를 벌이고 토론회(1996. 12. 20., 출판문화회관 강당)를 개최하는 등 조직적으로 반발하였으나,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 실제로 이 법이 시행된 지 보름만에 1,605종, 약5,100,000여권의 만화에 대하여 전격적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함으로써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또한 1997. 8. 19.에는 재야단체인 서울민주청년단체협의회의 계간 회원지인 ‘서울청년’ 8호에 대하여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에 저해’된다는 것을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을 내려{{) 한겨레신문 1997. 9. 11.자, 청소년위원회에 유해매체판정을 건의한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위 계간지가 미군철수 주장을 담고 있다는 점, 대선자금의 공개와 김영삼 정부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 이 법이 그 제정취지와는 무관하게 진보적인 사회단체나 반정부 단체의 주장을 실질적으로 검열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청소년보호법 시행 1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보면 처음의 우려처럼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권한이 남용되거나 실질적인 검열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법률 자체가 객관적으로 검열의 요소를 갖추고 있는 이상{{) 청소년보호법이 실질적인 검열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위 이형근, "표현의 자유와 매체물의 규제"를 참조
}} 적절한 개정이 필요할 것이다. 반면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하에 허용되는 표현의 수준을 성인이 아닌 청소년으로 낮추려는 제한행위, 특히 성적인 표현물에 대한 제한으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대개의 성적인 표현물 규제는 청소년보호, 즉 청소년들이 성적인 표현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집중되어 있으므로 성인에게 적용되는 음란물 개념은 좁게 인정하고 청소년에게 적용되는 개념(음란이 아니라 ‘유해’의 개념으로)은 넓게 인정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황승흠, "인터넷 음란물 규제와 표현의 자유", http://myhome.netsgo.com/shwang/
}}. 아직 우리 사회, 특히 법원은 음란물 개념을 청소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넓게 보고 있는데{{}}{{) 이승희의 누드사진을 인터넷의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다 하여 불구속기소된 사건에서, 이승희의 누드사진은 음란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피고인에게 담당판사가 ‘그럼 이 사진을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로, 음란물 문제는 청소년문제로 치환되어 있다.
}}, 청소년 보호법은 법원이나 사회 보수층의 입장을 비판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3. 법원 등의 태도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인 권리가 아닌 이상 일정한 제한은 불가피하나 그 제한원리가 추상적이므로 그것을 구체화하는 기관의 태도는 경우에 따라서 형식적인 제도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부분이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가고 있는 것과 달리 검찰이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최종 보루인 법원의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원리인 타인의 권리침해(명예훼손, 프라이버시 등), 사회윤리 및 공중도덕, 국가안전보장 등에 관하여 나타난 판례의 태도를 순서대로 살펴 본다.

가. 타인의 권리침해를 이유로 한 언론보도의 한계

시사저널은 "청와대, 북한에 밀가루제공"이라는 제목아래 청와대가 1996년 4월께 월드컵 유치도움을 받기 위해 성의표시로 북한에 밀가루 백만달러어치를 극비리에 제공하였다는 취지의 기사를 특종보도하려 하였다. 시사저널은 이 기사를 1996년 11월 28일자 시사저널에 게재하여 서울지역 가판대 등에 배포하였으나 청와대측의 항의를 받고 배포중이던 잡지를 전량회수한 후, 기사삭제 및 잡지회수경위를 밝힌 보도자료를 내면서 기사내용을 일부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비서실장 김광일의 고소를 접수받은지 나흘만에 검찰은 기사를 쓴 이교관기자에 대하여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다행히 법원(담당판사 홍기종)은 "공공의 진지한 관심이 있는 내용이라면 이를 처벌하려는 공권력의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고 하며 영장을 기각하기는 하였으나, 언론보도에 대한 검찰의 입장이 여전함을 알 수 있게 해 준 사건이었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한겨레신문을 상대로 제기한 2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도 권력기관에 대한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물론 이즈음은 이미 권력기관에 의한 언론침해의 정도나 빈도에 비하여 권력기관이 된 언론기관에 의한 권한남용의 정도나 빈도가 심해져 가는 시기였으므로{{) 5공 초기의 언론통폐합 이후 상업적인 측면에서 과도하게 성장한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조선일보를 정점으로 하는 보수언론들의 대통령만들기는 이미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고, 권력부분에 대한 이같은 언론의 편향성 외에도 언론기관의 인권에 대한 미미한 관심, 사건보도에서 나타나는 선정적 보도, 취재과정에서의 무단침입. 절취. 몰래카메라의 일상적 사용, 개인의 프라이버시권. 초상권 침해는 일상적이 되었으나 이를 비판적으로 견제할 시민사회의 역량은 미미한 상태였다.
}}, 권력기관화된 언론에 의한 침해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지도적인 사례가 먼저 제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중요 공직자 또는 권력자에 대한 언론보도가 어느 범위까지 허용되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였다. 하지만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정은환 부장판사)는 미국의 셜리번 케이스를 제시하며 중요 공직자 또는 권력자에 대한 언론보도의 범위는 확대되어야 한다는 한겨레신문사측의 주장을 배척하고 한겨레신문사측에 위자료 4억원, 1면의 정정보도와 강제집행을 명하는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하였다{{)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1996. 1. 26.선고 94가합5021판결, 법원은 이 사건에서 새롭게 보아야 할 여러 가지 쟁점, 특히 공직자 내지 권력기관에 대한 보도에서 언론기관의 면책범위와 면책요건 등에 관한 쟁점은 전혀 판단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기존의 판례가 제시하고 있는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만을 하면서, "원고가 거액의 착수금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해 볼 여지는 있으나, 원고에게 이 돈이 전달되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으므로 피고의 보도처럼 원고가 지용규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는 없고 … 원고에 의하여 보복수사를 당하여 구속되었다고 믿고 있는 정재중의 출감시 인터뷰만을 기초로 하여 기사를 작성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보도가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도 없다"고 판시하였다.
}}.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한겨레신문사측의 강제집행정지신청이 받아들여지고 김현철씨의 위법행위가 차츰 밝혀지는 정치적 상황의 변화로 상급법원의 판단을 받지 못한 채 1997년 2월경 소취하로 종결되었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 제10민사부(재판장 박인호 부장판사)는 1997년 12월 5일 김현철사건의 결론과는 반대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미국 국적의 언론인 문명자씨는 자신이 김일성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애도를 표하고 눈물까지 흘렸다고 보도한 월간조선 발행인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1심에서 승소하였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 기사를 취재한 기자의 취재원에 대한 신뢰정도, 평소 원고가 가진 북한에 대한 편향적인 시각과 행태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으며, 기사 작성에 있어 취재원이 제공한 정보의 진실 여부를 원고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같다"고 하며 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패소판결을 선고하였다{{) 서울고등법원 1997. 12. 5.선고 96나39389판결
}}. 그러나 취재원에 대한 기자의 신뢰라든가 당사자의 평소 성향이라는 대단히 주관적인 판단을 근거로 일간지나 방송과는 달리 월간지로서 상대적으로 충분한 사실확인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월간조선의 사실확인 의무 해태에 대한 평가를 무시하는 법원의 태도는 거대 언론에 의한 개인의 권리 침해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위 1997년도 인권보고서, [표현의 자유]부분
}}. 즉, 권력에 대한 언론보도의 면책범위는 넓히면서 반대로 권력기관화한 언론의 책임은 강화해야 하는 기본적 원칙이 거꾸로 적용되고 있어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나. 사회윤리와 공중도덕

사회상황이 변화되어 가고 있고 성풍속이나 성에 대한 접촉빈도, 대응양식 등은 더욱 급격하게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나 검찰의 음란성 기준도 명예훼손법리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완고하고 오히려 강화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90년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음란부분에 관한 판례가 만들어졌다. 그 이전에는 ‘음란’에 관하여 참고할만한 판례는 고작 소설 반노에 대한 무죄판결{{) 대법원 1975. 12. 9.선고 74도976판결
}}이나 명화 나체의 마야사건{{) 대법원 1970. 10. 30.선고 70도1879판결
}} 정도가 전부였다. 90년대에 들어 이른바 ‘사방지판결’을 시작으로 무수한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이는 법원의 공로라기 보다는 사회의 도덕질서를 유지하려는 검찰의 공로라 하겠다. ‘사방지판결'{{) 대법원 1990. 10. 16.선고 90도1485판결
}}은 영화포스터에 대한 것인데 포스터의 모습이 성교장면을 ‘연상’하게 하거나 상반신을 드러낸 여자’들’이 서로 애무하는 모습에 관한 것을 이유로 음화라고 하였다. 1991. 9. 10.선고된 ‘월간 부부라이프’사건{{) 대법원 91도1550판결
}}은 성관계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하여 유죄판결을 하였고, 급기야 ‘마광수교수사건’에서 대법원은 소설의 주 내용이 다양한 섹스를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성표현이 양적, 질적으로 소설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주제를 고려하더라도 유죄판결을 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1995년 6월 16일에 선고된 대법원 94도1758판결에서는 일본의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 사진집 ‘산타페’와 유연실의 누드사진집 ‘이브의 초상’에 관하여는 음화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유연함을 보였으나{{) 같은 판결에서 다루어진 에이스라는 제목의 사진집에 대하여는 외국의 유명 여배우들이 옷을 입거나 벗은 상태에서 각종 선정적 모습을 하고 있는 장면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여 음화라고 판단하였다.
}}, 1996년 6월 11일의 96도980판결에서는 연극 미란다의 음란성을 인정하였고 심지어 1997년 8월 22일의 97도937판결(이른바 오렌지걸 사건)에서는 "남녀간의 정교장면에 관한 사진이나 여자의 국부가 완전히 노출된 사진이 수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들 사진들은 모델의 의상 상태, 자세, 촬영 배경과 기법이나 예술성 등에 의하여 성적 자극을 완화시키는 요소는 발견할 수 없고, 오히려 사진 전체로 보아 선정적 측면을 강조하여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르 돋구는 것으로서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것이라면 음화"라고 판결함으로써 대법원 판사들이 우리 사회에 청교도적 순결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었다. 소설가 장정일사건에서 서울지방법원 형사 제6단독판사(김형진)는 1997년 5월 30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소설에 대하여 "음란성 여부는 일반인의 성적 정서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 소설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변태적이고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고 하며 피고인을 법정구속하였다. 항소심법원도 유죄를 선고한 장정일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나, 앞에서 본 대법원의 태도에 비추어 보건대 무죄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헌법재판소는 출판사등록취소의 하나로 규정한 출판사등록법 제5조의 2 제5호의 "음란 또는 저속한 간행물을 발행할 때"의 규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하면서(같은 호에 규정되어 있는 "저속한 간행물"부분은 위헌이라고 판시함) "등록취소로 합헌적인 간행물의 출판과 유통에까지 위축적인 효과가 초래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나 등록취소로 인한 기본권적 이익의 실질적 침해는 그다지 크지 않는 반면 음란출판의 금지 및 유통억제의 필요성과 공익은 현저히 크다"고 하였다{{) 헌법재판소 1998. 4. 30.선고 95헌가16결정
}}. 하지만 출판사의 등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커다란 제한요소인데, 그 등록을 취소함으로써 출판 자체를 금지하는 과도한 제재수단을 침해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음란’의 개념에 관하여 대법원보다는 좀 더 좁은 개념을 제시하였는 바, "음란이란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뿐 전체적으로 보아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사실 ‘음란’이란 단순한 성적 흥분이나 성적 자극을 유발하였다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보다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법원의 보수적인 판례 경향과 함께 언급해야 할 특징적인 사건은 [빨간 마후라]로 대표되는 청소년들의 성문제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면서 시작된 스포츠신문의 간부들과 만화가들에 대한 사법처리사건이다. 서울지방검찰청은 1997년 9월 23일 인기만화가 이현세씨의 <천국의 신화>를 수간, 혼음 등을 묘사하며 지나치게 폭력적이어서 청소년의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현세씨를 소환 조사하였으며, 8월 2일에는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등 주요 스포츠 신문의 편집국장 3명과 이들 신문에 만화를 연재한 강철수씨 등 만화가 8명을 미성년자보호법 위반{{) 1979. 12. 28. 신설된 미성년자보호법 제2조의 2(불량만화 등의 판매금지)는 다음과 같다. 제1호 미성년자에게 음란성 또는 잔인성을 조장할 우려가 있거나 기타 미성년자로 하여금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게 하는 만화를 미성년자에게 반포. 판매. 증여. 대여하거나 관람시키는 행위, 제2호 미성년자에게 음란한 문서. 도화. 음반 또는 비디오물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증여. 대여하거나, 관람시키는 행위. 영리를 목적으로 제2조의 2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였을 때 2년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제6조의 2).
}}으로 불구속기소하거나 벌금 500 내지 300만원의 약식기소하였다. 검찰의 행위에 대하여 만화계 등은 거센 반발을 하였으나, 스포츠신문 연재만화의 지나친 상업성과 선정성을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선정적인 만화를 신문에 연재하는 것은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쟁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시사했다{{) 위 1997년도 인권보고서, [표현의 자유]부분
}}.

다. 국가안보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문제에 관한 한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대변인이다. 여전히 이적성을 인정하는 기준에 관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라는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기준, 즉 ‘실질적 해악을 미칠 명백한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 이적성이 인정된다는 기준보다 현저히 넓은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위험’이라는 일정한 결과발생을 요구하고 있으나 대법원은 문언 자체의 의미내용 또는 단체의 주장 자체의 내용만으로 표현행위나 결사를 금지하고 있어, 명백히 헌법과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기속의무를 부과한 헌법재판소법을 위반하고 있다.

대법원의 태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최근의 사건은 신학철의 모내기 그림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판결에 대한 것이다. 대법원은 1998년 3월 13일 모내기 그림이 농민으로 상징되는 민중 등 피지배계급이 매판세력들을 써래질하듯이 몰아내면 38선을 삽으로 걷듯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된다는 내용을 그린 것이라는 이유로 1987년 8월 <제2회 통일전>에 출품된 대형걸개그림 모내기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대법원 1998. 3. 13. 선고 95도117판결 ; 원심 법원은 이적표현물의 기준에 대하여 헌재가 제시한 ‘위험’개념을 채용했었다. ; 이 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뜻으로 19명의 작가들이 1998. 4. 25.부터 5. 5.까지 <모내기 사건 풍자전 – 불온한 상상력>전을 열었다.
}}. 이외에도 대법원은 조선명곡선집 등 북한원전에 대하여 사유재산폐지 등의 주장이 없으므로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원심을 뒤집었으며{{) 대법원 1998. 5. 22.선고 95도1152판결
}}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대표 이창복에 대하여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헌재의 기준을 근거로 국가보안법부분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법원을 파기하였다{{) 대법원, 1996.12.23. 95도1035 판결.
}}. 제5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법원 1998. 5. 15.선고 98도495판결
}}이나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법원 1997. 7. 25.선고 97도2386판결
}}는 이적단체이며, 창작과 비평에 게재된 황석영의 북한방문기도 이적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이적목적을 부인하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대법원, 1995. 5. 23.선고 93도599판결
}}. 심지어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라는 초과주관적구성요건에 관하여 미필적 인식만으로도 족하며 미필적 인식조차도 표현물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보아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선전, 선동 등의 활동에 동조하는 등의 이적성을 담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추정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1992. 3. 31.선고 90도2033판결
}}고 하는 희한한 논리를 동원하여 법문을 무력화하기까지 하였다. 그 이외에 사건적 성격을 띄고 있는 다양한 국가보안법 위반문제에 관하여는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90년대 초반의 서울대사회과학연구소 사건을 비롯하여 90년대 중반의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이름의 교양강좌 교재사건, 최근에 제주4.3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멘타리 [레드헌트]를 상영하였다고 하여 구속, 기소된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서준식사건, 이장희교수의 ‘나는야 통일 1세대’사건, 박지동교수의 ‘진실인식과 논술방법’사건 등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한 표현의 자유 침해사건을 끊임없이 발생하였고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에 의한 표현의 자유의 제한이 워낙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정보와 사상이 국제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지금에도 표현의 자유의 신장을 위한 핵심적인 관건은 역시 국가보안법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4. 새로운 상황

가. 컴퓨터통신과 인터넷의 확산

컴퓨터통신과 인터넷의 확산은 표현의 자유분야에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뚜렷한 징표이다.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MC)이라는 일반 개념을 만들어 낸 컴퓨터통신과 인터넷은 지금까지 권력에 의해 제약당하고 매스미디어에 의해 무시되고 소외되었던 개인이나 집단들도 매스미디어를 소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장호순, "정보화사회에서의 자유와 평등 : 컴퓨터통신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정보접근권", 반년간지 [한국사회와 언론], 1997년 제8호.
}}. 미국의 통신품위법(The Communications Decency Act, CDA)중 일부 조항에 대하여 위헌판결을 한 미연방항소법원 제3순회재판소는 인터넷에 대하여 "독특하고 완전히 새로운 전 세계에 걸친 인간 소통의 새로운 매체이다"라고 하였다{{) 황승흠, 위의 글
}}. 컴퓨터통신, 특히 인터넷의 영향력은 워낙 막강하여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는 하나, 이미 매스미디어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이 분야에 대하여 어떻게 법적 규율을 할 것인가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기는 하나, 논의가 충분히 성숙하기도 전에 기존 매체에 대한 제한수단과 동일한 내용과 방법의 제한이 먼저 이루어지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먼저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71조는 전기통신을 이용하는 자는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불온통신을 하여서는 아니되며, 불온통신에 대하여는 정보통신부장관이 그 취급을 거부, 정지 도는 제한할 수 있도록 사업자에게 명령할 수 있고, 통신사업자가 이 명령에 위반한 경우에 형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법 시행령 제16조는 불온통신을 "범죄행위를 하거나 범죄행위를 교사하는 내용의 전기통신, 반국가적 행위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해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을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근거로 한국PC통신은 온라인통신망인 ‘하이텔’에 개설되어 있는 한국전기통신공사노동조합의 CUG를 폐쇄하였으며, 1997년에는 경찰의 요청에 받은 정보통신부장관은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참세상 등의 이용자들에 대한 사용중지명령과 게시물삭제명령을 통신사업자에게 내린 바 있다.

한편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압수,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압수, 수색영장을 근거로 나우누리에 개설된 한총련의 CUG를 폐쇄하였다. 이에 대하여 한총련 CUG운영자들이 압수, 수색영장을 취소해 달라는 준항고를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은 압수, 수색영장에 대하여는 준항고를 할 수 없다는 형식적인 판단을 하며 각하하였다.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의 게시물에 대하여도 국가보안법이나 형법상 음란물배포죄가 다른 매체와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CUG를 폐쇄하거나 이용자들의 이용권한 자체를 박탈하는 문제는 기존 매체의 경우로 보면 출판등록을 취소하거나 정지시키는 것과 동일한데 그에 상응하는 절차적 제한이나 요건은 정비되어 있지 않아, 적어도 기존 매체에 대한 제한수단과 수준, 절차에 상응하는 정도의 제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나. 성적 표현물 문제의 전면등장과 청소년 문제

이미 앞에서 제시한 사례에서 충분히 분석되었듯이 현재 표현의 자유문제를 논할 때 성표현물 문제는 국가보안법 문제와 함께 표현의 자유의 범위와 한계에 관한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였다. 과거에 국가안보를 주 이유로 하여 이루어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이제 주로 도덕과 사회윤리를 이유로, 특히 청소년문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이유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직 성표현물에 대한 논의는 미약한 수준에 불과하고, 청소년문제는 오로지 보호의 차원이나 ‘우리의 아이들’에 관한 감정적인 차원에서 접근될 뿐이다. 청소년문제는 본질적으로 유통경로의 문제이지 음란물의 문제는 아니나 양자가 혼재되어 어느 쪽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5. 마치며

몇 가지 사례에서 보았듯이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는 이제 선언하고 반대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 과거에 일어났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문제는 워낙 거친 것이어서 선언과 반대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표현의 자유’에 관한 헌법규정을 되새김질만 하여도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서 발생한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고 자율적으로 규제되어야 하나 불가피한 경우에 법원의 판단에 의한 최종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조광희, "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대응과 전망",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는 있는가?] 토론회 자료집, 1997. 9. 10.
}}는 원칙은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왜 90년대에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회문화적 분석을 전제로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세분석의 관점에서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한 것이 좋은 사례이다{{) 강내희, 위의 글
}}. 나아가 표현의 자유의 내용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표현의 자유를 정치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도덕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로 나누고, 양자는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사회적인 중요성, 원리 그리고 전파되는 메카니즘이 상이하므로 규제의 범위도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 수 있다{{) 조광희, 위의 글
}}. 물론 이러한 구분에 대하여는 정치영역과 도덕영역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오히려 도덕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할 수 있는 논리로 사용될 수 있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될 수는 있으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의 성질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단 유의미한 분류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의 구체적인 내용을 매체와 주제별로 구체화해야만 규제의 논리는 물론이고 보장의 논리도 풍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적 표현물의 내용과 한계에 대한 본격적인 헌법적 연구가 필요한 때이다. 정치. 사회적 권위주의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즐거운 사라’나 ‘내게 거짓말을 해봐’와 같은 소설들이 ‘음란’한 것으로 평가된다면 표현의 자유에 관한 헌법의 원칙은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2-05-14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