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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정보통신과 표현의 자유 (김기중)

By 2002/05/1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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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민주사회를위한변론] 2000년 1/2월호(통권 제34호)에 게재되었던 것입니다.

정보통신과 표현의 자유

김기중 (변호사)

인터넷이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백욱인, "인터네트와 미국의 정보고속도로", 정보고속도로와 정보기술산업,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37쪽
}}

1. 서론
그 자체가 거대한 주제인 ‘정보통신’과 ‘표현의 자유’를 무모하게 제목으로 사용한 이유는 무모한 제목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이 글의 목적이 거대한 주제를 분석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론적 문제제기에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법적인 측면에서 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은 "뉴미디어와 표현의 자유 및 그 한계" 또는 "정보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와 같은 것이 될 것이나 이 글은 이를 학술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위와 같은 제목 또한 적절하지 않는 듯하다. 이 글은 먼저 정보통신과 정보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정보사회가 결국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그 연장에 불과하며 과거 또는 현실공간(가상공간에 대비하여)의 권력관계를 대체로 반영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렇다면 결국 현실공간에서 표현의 자유 수준이 정보통신매체를 이용한 표현의 자유의 수준을 결정짓는다는 측면에서 현실공간에서 표현의 자유의 상황이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후에 정보사회 내지 정보지배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떤 특수한 측면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대략 그 지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 정보통신? 정보사회? 정보지배사회?

가. 개념
최근의 상황은 개념법학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법률가들을 크게 당혹시키고 있다. 정보통신이나 정보사회 내지 정보지배사회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사회적 특성에 따른 법률문제가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과 특히 개념을 설정할 수 없다는 점때문이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개념을 설정하지 못하면 더 이상 법률적 작업을 진전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이나 정보사회의 외연은 물론이고 그 내연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의 변화는 빠르고 강력하여, 많은 사람들이 개념을 설정해 보고자 하나 제대로 된 개념설정에 실패하고 있어 말하는 사람의 수만큼의 개념이 만들어지고 있다. 변화의 속도에 관하여 하나의 예를 들면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중요한 뉴미디어, 또는 중요한 정보사회의 징표는 컴퓨터통신(PC통신)이었기 때문에 컴퓨터통신의 개념, 특성,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과거 표현의 자유 이론에 따라 그 허용범위와 한계를 논하였으나, 컴퓨터통신이 ‘인터넷’으로 통합됨으로써 이 논의는 이제 거의 무의미하게 되었다. ‘정보통신’이라는 용어의 경우에도, 정보통신기술, 정보통신매체, 정보통신산업, 정보통신교육, 정보통신기업, 정보통신주, 정보통신전문변호사 등의 사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변화를 가장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기는 할 것이나, 어느 범위까지를 포괄하는지 알 수는 없다.
한편 정보통신기술이 가져다 주는 새로운 사회를 희망적으로 보는 측은 새로운 사회를 ‘정보사회’라는 용어로 표현하며, 정보통신기술이 자본의 강화를 가져와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며 권력의 정보독점현상도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측은 ‘정보지배사회’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위와 같은 구분조차도 무의미하게 할 정도로 ‘인터넷’을 통해 모든 현상이 종합되고 있어, 결국 인터넷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모든 길은 인터넷으로 통한다.
지난 1. 27.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업체가 주요기업 최고경영자 10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0%가 인터넷은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빈부격차를 확대시킬 것이라고 답변하였다고 하며, 미국 상무부가 1999년 7월에 낸 ‘넷의 실패’라는 보고서도 디지털격차가 우려된다는 전망을 냈다고 한다{{) 한겨레신문, 2000. 1, 28.자 (천리안 입력기준)
}}. 하지만 인터넷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은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미디어 독점의 해체에 두고, 민주주의의 마지막 희망이 인터넷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거의 미디어는 일정한 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했으나 인터넷은 모든 개인이 세계인을 상대로 정보발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사실이기는 하다. 인터넷은 독자를 구하는 데 물리적인 제한은 거의 없다. 다만, 내용상의 제한이 있을 따름이다. 내용의 질이나 독자에 대한 영향력을 논외로 하면 적어도 독자의 수에 있어서 조선일보와 대표적인 인터넷 패러디신문인 딴지일보는 큰 차이가 없다. 수백만의 독자를 확보하는데 딴지일보가 들인 돈과 인력은 거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나. 연속론과 단절론
하지만 과연 인터넷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가, 또는 매체환경을 근본적 변화시키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그렇게 쉽게 답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정보사회 일반론에 관하여 보면, 정보기술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 모두 동의하면서도 그 변화가 과연 자본주의 경제질서와 다른 것인지에 관하여 크게 단절론과 연속론이 대립하고 있으며, 미디어로서의 인터넷에 관하여도 같은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다니엘 벨이나 앨빈 토플러에 의해 대표되는 단절론이란 자본주의와 산업주의의 문제점들이 결국 정보기술과 정보화로 약화되거나 소멸될 것이라는 주장이며, 연속론은 정보혁명의 이면에 작용하는 추동력은 여전히 자본주의적 경제질서의 토대인 개인의 사적 소유와 이윤동기이므로, 자본주의와 산업주의의 문제점들은 형태를 달리하여 지속적으로 생기거나 오히려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보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은 홍성태, 정보화경쟁의 이데올로기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학위논문, 1999와 김원동 "정보사회:이론적 전망", 정보사회의 이해, 나남출판, 1998을 참조
}}.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특히 인터넷이 매체의 구조, 언론환경, 표현행위의 의미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나, 그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보사회 일반에 대한 위와 같은 논의와 동일한 분석이 가능하다. 즉 인터넷이 매체의 독점을 해소하고 기존의 미디어구조와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미디어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따라서 ‘사상의 자유시장론’이 제대로 관철되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어 민주주의의 마지막 희망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긍정론과 부정론이 대두되고 있다.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주장에서 보듯이 인터넷을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다수이기는 하다. 그러나 2000년 벽두에 발표된 타임워너와 아메리카온라인의 합병소식은 인터넷 등 정보통신매체도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매체의 최대 성공작으로 꼽히는 딴지일보는 아무리 성장해도 조선일보와 같은 영향력있는 매체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기존 매스미디어의 인터넷 진입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고, 기존 매스미디어가 보유하고 있는 이른바 ‘콘텐츠’는 ‘부실한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 쉽게 진입하여 다수의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과 매스미디어는 인터넷에 쉽게 진입하여 기존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나, 그 반대편이 인터넷에 진입하여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일은 아주 드물게만 발생할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보사회와 인터넷은 과거와 구분되는 특징이 있기는 하나 본질적으로는, 그리고 큰 틀에 있어서는 자본주의적 질서와 고도의 국가권력에 의한 질서유지체계에는 변함이 없는 과거의 연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실공간에서 표현의 자유가 처한 상황은 거의 그대도 새로운 매체에 적용된다.

3. 표현의 자유와 현재의 상황

가. 국가안보
국가안보문제는 성표현부분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넘어야 할 양대 산맥이다. 대법원은 여전히 이적성을 인정하는 기준에 관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라는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기준, 즉 ‘실질적 해악을 미칠 명백한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 이적성이 인정된다는 기준보다 현저히 넓은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위험’이라는 일정한 결과발생을 요구하고 있으나 대법원은 문언 자체의 의미내용 또는 단체의 주장 자체의 내용만으로 표현행위나 결사를 금지하고 있어, 명백히 헌법과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기속의무를 부과한 헌법재판소법을 위반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개폐작업은 보수세력의 완강한 반대에 거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다, 개정의 방향도 이적표현물에 관한 제7조에 한정되고 있어 설사 국가보안법이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큰 차이가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의 사건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신학철의 대형걸개그림 ‘모내기’에 관한 것이다. 대법원은 1998년 3월 13일 제2회 통일전(1987년 8월)에 출품된 대형걸개그림 ‘모내기’가 농민으로 상징되는 민중 등 피지배계급이 매판세력을 써래질하듯이 몰아내면 38선을 삽으로 걷듯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된다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였고{{) 대법원 1998. 3. 13.선고 95도117판결
}}, 파기환송후 원심도 ‘모내기’그림의 이적성에 대해서 감정한 감정인이 남파간첩으로 전향한 사람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판시취지대로 유죄를 선고하였고, 환송후 대법원도 아무런 이유설시없이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확정하였다{{) 대법원 1999. 11. 26.선고 99도3839판결
}}. 대법원의 이같은 완고한 입장은 다음의 성표현물에 대한 것처럼 조만간 바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전사 – 성표현물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인 90년대 초반부터 성표현물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은 격화되어 왔고 법원의 판례도 여러 건이 선고되었다. 90년대 이전에는 형법상 참고할만한 판례는 고작 소설 반노에 대한 무죄판결{{) 대법원 1975. 12. 9.선고 74도976판결
}}이나 명화 나체의 마야사건{{) 대법원 1970. 10. 30.선고 70도1879판결
}} 정도였다. 90년대에 들어 이른바 ‘사방지판결’을 시작으로 무수한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이는 법원의 공로라기 보다는 사회의 도덕질서를 유지하려는 검찰의 공로라 하겠다. ‘사방지판결'{{) 대법원 1990. 10. 16.선고 90도1485판결
}}은 영화포스터에 대한 것인데 포스터의 모습이 성교장면을 ‘연상’하게 하거나 상반신을 드러낸 여자’들’이 서로 애무하는 모습에 관한 것을 이유로 음화라고 하였다. 1991. 9. 10.선고된 ‘월간 부부라이프’사건{{) 대법원 91도1550판결
}}은 성관계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하여 유죄판결을 하였고, 급기야 ‘마광수교수사건’에서 대법원은 소설의 주 내용이 다양한 섹스를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성표현이 양적, 질적으로 소설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과 인간의 자아확립’이라는 주제를 고려하더라도 유죄판결을 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1995년 6월 16일에 선고된 대법원 94도1758판결에서는 일본의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 사진집 ‘산타페’와 유연실의 누드사진집 ‘이브의 초상’에 관하여는 음화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유연함을 보였으나{{) 같은 판결에서 다루어진 에이스라는 제목의 사진집에 대하여는 외국의 유명 여배우들이 옷을 입거나 벗은 상태에서 각종 선정적 모습을 하고 있는 장면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여 음화라고 판단하였다.
}}, 1996년 6월 11일의 96도980판결에서는 연극 미란다의 음란성을 인정하였고 심지어 1997년 8월 22일의 97도937판결(이른바 오렌지걸 사건)에서는 "남녀간의 정교장면에 관한 사진이나 여자의 국부가 완전히 노출된 사진이 수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들 사진들은 모델의 의상 상태, 자세, 촬영 배경과 기법이나 예술성 등에 의하여 성적 자극을 완화시키는 요소는 발견할 수 없고, 오히려 사진 전체로 보아 선정적 측면을 강조하여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구는 것으로서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것이라면 음화"라고 판결함으로써 대법원 판사들이 우리 사회에 청교도적 순결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었다. 소설가 장정일사건에서 서울지방법원 형사 제6단독판사(김형진)는 1997년 5월 30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소설에 대하여 "음란성 여부는 일반인의 성적 정서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 소설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변태적이고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고 하며 피고인을 법정구속하였다. 항소심법원도 유죄를 선고한 장정일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나, 앞에서 본 대법원의 태도에 비추어 보건대 무죄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서울고등법원은 한국계로 미국에서 누드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승희의 전면 나체사진에 대해서도 음란물이라고 판정하면서, 이승희홈페이지를 만든 사람을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 2{{)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음란한 부호, 문언, 음향 또는 영상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자는 1년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1996. 12. 30. 신설)
}}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였다{{) 1999. 7. 21.선고 98노10222판결
}}. 성표현물에 대한 법원의 완고한 태도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대한 완고한 태도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법원이 성표현물을 극단적으로 억압하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는 자유로운 성표현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1997. 중반의 ‘빨간 마후라’ 비디오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하였고, 최근에는 ‘O양의 비디오’는 의도하지 않게 인터넷 이용율을 대폭 상승시킴과 함께 일반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성표현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영화 ‘거짓말’을 만든 영화감독 장선우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영화사의 상업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성표현의 한계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데 기여하였다. 연예인 등이 자신의 성체험을 고백하는 책을 출판하였고 인터넷이나 컴퓨터통신의 성표현 수준은 이미 법률로 규율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제도권은 청소년보호위원회를 중심으로 해서 ‘인터넷 국경설립안’을 제기하게 되었다(이 부분은 다음 항에서 기술).
이적표현물에 관하여 헌법재판소가 비록 부족하지만 ‘위험’이라는 결과를 요구하는 전향적인 판결을 선고하였듯이, 성표현물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출판사등록취소의 하나로 규정한 출판사등록법 제5조의 2 제5호의 "음란 또는 저속한 간행물을 발행할 때"의 규정중 "저속한 간행물"부분을 위헌이라고 판시하면서, ‘음란’에 관하여 "음란이란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뿐 전체적으로 보아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이라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헌법재판소 1998. 4. 30.선고 95헌가16결정
}}.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기준은 정확한 것이라 생각하며 요즘 유행하는 국제표준(GLOBAL STANDARD)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어떤 성표현물이 표현의 자유의 헌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존엄 또는 인간성을 왜곡’한다는 점을 근거로 하는 것이지 성적 흥분을 야기한다는 점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 성표현의 한계와 표현의 자유의 확장
우리 사회 일각에는 다른 표현행위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성표현영역에 대해서는 금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란 본질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용’이므로 성표현의 확장없이 표현의 자유가 확장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조용환이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을 인용하여 지적했듯이 "표현의 자유는 국가 또는 구성원의 일정 부분을 공격하거나 충격을 주거나 혹은 평온을 저해하는 것도 적용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인) 다원성, 관용, 그리고 넓은 마음의 요청"인 것이다{{) 조용환, "인권, 민주주의, 국가 : 국제인권기준에 비추어 본 한국의 상황과 과제", 서울대 민교협 주최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학술 심포지엄 자료집, 69쪽, 주28.
}}. 가장 견해차이가 크며 참기 어려운 부분이 성표현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외설’인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단지 ‘사실주의’일 뿐이며 한 독자의 눈에는 음란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단지 ‘현란한’것일 뿐이고, 한 부모에게는 ‘쌍스러운’ 것이 다른 부모에게는 ‘교훈적’인 것"{{) 헨리 J. 에이브러햄, 윤후정 옮김, 기본적 인권과 재판,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2, 238쪽.
}}이라는 점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다른 영역의 표현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쉬울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용되는 성표현의 범위가 확장되는 그 만큼의 범위에서 다른 표현행위도 인용될 수 있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성표현이 인정되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정치.사회적 표현행위도 넓어졌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즉, 성표현 영역에서의 ‘관용’은 곧 다른 표현영역에서의 관용정도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라. 타인의 권리침해(명예훼손,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또 다른 한 축은 개인의 권리침해이다. 이는 과두화한 매스미디어에 대한 중요한 제어장치이기로 권장되어야 하나, 최근 만민중앙교회 등의 종교단체를 고발하는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반론보도청구가 일부 인용된 것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듯{{) 한겨레신문, 2000. 1. 11.자(천리안 입력기준)
}} 그 성격이 이중적이기 때문에 쉽게 단정을 지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더욱이 최근의 하급심판결은 이 부분에 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조선일보 이한우기자에 대한 기사를 게재한 월간 [말]와 월간 [인물과 사상]에 대하여 평가의 전제되는 사실이 허위이므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며 원고승소판결을 선고하였으며{{)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1999. 11. 19.선고 99가합1154판결
}}, 서울지방법원은 검찰의 도청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사설에 대하여 역시 전제되는 사실이 허위라는 이유로 원고승소판결을, 문화방송 뉴스앵커였던 백지연의 인터뷰기사를 게재한 스포츠투데이에 대해서는 프라이버시침해를 이유로 원고승소판결을 각 선고하였다{{) 한겨레신문, 2000. 2. 2.자(천리안 입력기준)
}}. 백지연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은 모두 비평 또는 평가의 전제되는 사실관계가 진실에 부합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는 대법원 1999. 2. 9.선고 98다31356판결을 확대적용한 것으로 이러한 판례가 일반화될 경우 언론기관에 의한 표현행위는 물론이고 개인이나 취재능력이 없는 단체 등에 의한 문제제기가 주를 이루는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에 의한 표현행위를 크게 제한하는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4.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표현수단(컴퓨터통신, 인터넷)의 확장과 표현의 자유

가 .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표현행위에 대한 법적용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현상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법적용의 문제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인터넷 매체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원칙적으로 기존 명예훼손법리를 그대로 적용하였으며{{) 자세한 사항은 이재진,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현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미국의 경우를 중심으로", 언론중재 1998. 봄을 참조
}}, 1996년 통신법에 삽입된 이른바 ‘통신품위법'(CDA)에 대한 미국연방법원의 위헌판결도 인터넷이 방송모델보다는 출판모델에 가깝다는 것을 이유{{) "인터넷상의 커뮤니케이션은 개인의 가정에 ‘침입하지도’ 않으며 또는 컴퓨터의 화면에 불청객처럼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이용자가 콘텐츠를 ‘우연히’ 조우하게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신문을 대상으로 한 신문품위법, 우편을 대상으로 한 우편품위법은 의심할 여지없이 위헌이다. 인터넷은 신문,우편보다도 훨씬 많은 언론을 보장하는 미디어이다"는 등의 표현에 이같은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침입과 우연한 조우 등은 방송의 핵심적 특징으로 방송에 대한 허가제 등 각종 제한을 지지하는 근거이다).
}}로 하고 있듯이{{) 미국연방법원의 통신품위법에 대한 위헌결정과정과 내용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조규범,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박사학위논문, 1998과 황성기,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 : 내용적 규제의 정당성문제를 중심으로",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제3호, 1998을 참조
}} 우리 법원도 원칙적으로 기존의 법리를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표현행위에 거의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대법원은 한국전기통신공사노동조합이 한국피씨통신주식회사를 상대로 게시물삭제와 전용게시판폐쇄조치가 위법하다며 제기한 손해배송청구소송에서 게시물의 내용이 약관상 금지되는 게시물이라는 이유로 원고패소판결을 선고하였으며, 위에서 지적한대로 재미 누드모델 이승희의 전면나체사진을 인터넷에 게재한 행위를 음화반포죄와 동일한 내용의 전기통신기본법위반행위로 처벌하였고, 1996년 4.11. 총선 직전에 국회의원 후보자들중 일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그들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컴퓨터통신인 ‘천리안’에 게재하여 구속기소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하기는 하였으나 그 이유로 컴퓨터통신의 특수성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게시문이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니거나 피고인에게 후보자를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이 없었다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으므로{{) 대법원 1997. 4. 25.선고 96도2910판결
}}, 이 판결도 컴퓨터통신의 게시물에 대해 기존의 법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입장이라 하겠으며, 1993년의 ‘천리안’ 현대철학동호회장과 회원에 대한 이적표현물 배포죄 적용사건, 1996년 9월 북한잠수함의 동해안 좌초로 상륙한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무장공비일까"라는 제목의 글을 천리안에 게재한 윤석진 구속사건{{) "그들이 무장공비일까"라는 게시물의 이적표현물배포죄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피고인이 자택에서 소유하고 있다 체포과정에서 압수당한 레닌저작선 등에 대해서는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다(대법원 1999. 4. 29.선고 98도2798판결).
}}, 인천지검 홍모검사가 편파수사를 했고 고소인을 감금했다는 주장의 글을 청와대 등이 개설한 컴퓨터통신민원실에 여러 차례에 걸쳐 게재하였다 1999. 4. 2. 구속기소된 후 인천지방법원에서 무고 및 명예훼손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강미영사건{{) 한겨레신문, 1999. 8. 23.자(천리안 입력기준)
}} 등등이 모두 표현행위에 대한 기존의 법리를 정보통신매체를 이용한 표현행위에 적용한 사례들이다.

나. 새로운 환경과 특별취급의 문제
이른바 통신인 또는 네티즌은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에 의한 표현행위는 다른 표현행위, 특히 언론기관에 의한 표현행위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 통신상의 글이 일반 표현행위가 다른 특성으로 즉시성, 단문성, 한시성, 대화성, 유희성, 불완전성, 가상성, 익명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97 정보통신검열백서, 33쪽).
}}에 기존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이른바 ‘통신권’의 침해이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학자들의 경우 인터넷이 다른 미디어와 구별되는 특징에 관하여 보통 상호작용성 또는 쌍방향성, 비동시성(asynchronity), 다차원 커뮤니케이션(일대일, 일대다, 다대다)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특징 외에 인터넷이 표현매체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하며 시간적 압박이 없는 문자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지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특성을 있다고 하거나{{) 윤영민, 전자정보공간론, 1996, 전예원
}}, 다중의 송신자와 다중의 수신자가 함께 구성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성’을 갖고 있다{{) 성동규, "인터넷 포르노그라피 규제방안", 한국언론연구원, 언론연구, 96-Ⅱ(제6호), 1996
}}고 평가하기도 한다. 학자들의 평가에 대체적으로 동의하지만 하나 추가할 점은 컴퓨터통신과 인터넷이 기존 미디어와 달리 ‘보도’ 또는 ‘논평’에 비전문가인 일반 대중이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자신의 견해를 즉각 표현할 수 있고 그러한 표현행위에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제되지 않은 정보 또는 표현이 컴퓨터통신과 인터넷에 넘쳐나게 되고, 이것 이 각국에서 컴퓨터통신과 인터넷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 고민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같은 차이가 법적용의 차이를 가져올만큼 본질적인 차이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표현행위가 책임있는 기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든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든 그것이 대외적으로 공표된 이상 표현의 주체는 주어진 범위내에서 최선의 정보를 제공하고 그 정보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책임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인터넷이 다른 매체와 다르다는 주장은 표현행위에 대한 권력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정보통신부장관의 명령에 의한 게시물삭제 및 취급금지명령제도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는 불온통신의 단속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전기통신을 이용하는 자는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통신의 대상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③정보통신부장관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한 통신에 대하여는 전기통신사업자로 하여금 그 취급을 거부, 정지 또는 제한하도록 명할 수 있다. 사업법 시행령 제16조는 사업법 제53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전기통신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하여 ①범죄행위를 목적으로 하거나 범죄행위를 교사하는 내용의 전기통신, ②반국가적 행위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 ③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해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이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수사기관은 정보통신부장관에게 요청하는 형식으로 한총련의 게시판을 폐쇄하고 한총련 관련자의 컴퓨터통신이용을 금지함과 동시에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위 규정은 추상적이고 포괄적이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점, 행정기관에 의한 자의적인 집행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는 점 외에도 게시물이 신문 등 정기간행물에 게재되었을 때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장관(또는 국정홍보처장관)이 그 삭제를 명령하는 것은 물론 권유와 같은 우회적인 조치도 할 수 없듯이, 신문 등의 간행물과 유사한 표현매체의 하나인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의 게시물을 행정기관인 정보통신부장관이 일방적인 판단에 의거하여 그 삭제를 명령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위헌이라고 보아야 한다. 결국 컴퓨터통신과 인터넷의 특수성을 주장하기보다는 신문이나 인쇄출판물과 동일한 보호를 주장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신문 등의 정기간행물을 발행하거나 동영상을 중심으로 하는 방송을 내 보낼 때 방송법이나 정기간행물등록등에관한법률을 적용하도록 해야 하는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나, 방송법이나 정간법이 온라인미디어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견해를 찾을 수 없으므로,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 정보통신매체와 표현의 자유
컴퓨터통신과 인터넷이 대중화되어 일반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대외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주류적 의견은 여전히 매스미디어와 매스미디어나 자본에 의해 장악된 정보통신매체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정보통신매체가 기존의 매스미디어에 비해 ‘독점’의 폐해가 적고 자본의 통제가 약하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 신장에 기여할 것으로 보이나, 오히려 반대로 보면 다수의 개인이 분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권력과 자본의 통제에 쉽게 휘둘릴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하버마스는 "공론의 장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라도 유사한 적합성을 갖는 주제에 관하여 동시에 말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구조가 있어야 한다. 인터넷의 확산은 모든 것을 분산시킨다. 이 결과 지구적 의사소통의 공동체가 서로에게서 고립된 채 어지럽게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김원동, "정보사회 : 이론적 전망", 정보사회의 이해, 정보사회학회편, 나남출판, 1998, 32쪽에서 재인용
}}고 지적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등 정보통신매체가 ‘민주주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식의 주장은 물론이고 정보통신매체는 기존의 매스미디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매체이므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본다. 더욱이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인터넷을 특별하게 취급하려는 주장은 기존 매체에 대해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표현의 자유 제한을 무시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기존 매체에 대한 표현의 자유 제한은 결국 정보통신매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양자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주체사상에 관한 출판물이 이적표현물이라면 법규율의 형식을 어떻게 하든 그 출판물의 내용을 인터넷에 게시하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아가 이적표현물을 처벌하는 것이 옳다면 이적표현물의 국내유입을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사실 그렇게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금지되는 성표현물의 국내유입을 금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1999년 8월 "사이버공간에 국경을 세운다"고 하며, 안방까지 침입한 외국의 포르노사이트를 막기 위해서는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업자(ISP)에게 정부가 지정한 외국 포르노사이트의 국내유통을 차단하는 기술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의무지우는 방안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http://www.youth.go.kr/data_room/990825.htm
}}. 물론 이 방안의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나, 반대의견 못지않게 찬성의견도 팽팽하게 개진되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반대론자들의 반대근거중에는 인터넷에 국경을 세우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적인 어려움은 극복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매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허용되는 성표현물의 수준을 상향조정한 이후에야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성표현 영역의 확대없이 표현의 자유의 확대를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5. 마치며
미국의 연방지방법원이 CDA법에 대한 위헌판결을 하면서 지적했듯이 인터넷은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므로 최대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는가.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국제적인 네트워크인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기본적인 법률로 기능하고 있으므로,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논한다면 당연히 국가보안법의 폐지라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성표현물의 허용수준을 세계적 기준인 ‘인간성 침해’를 기준으로 설정해야 한다. 즉 우린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대로 ‘음란’이란 ‘인간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을 말하는 것으로 변경되어야 한다. ‘호색적 흥미를 자극하는 표현물’을 음란물로 보는 현재의 법원 기준으로는 결코 인터넷을 규율할 수 없을뿐더러 음란죄를 인정하는 목적인 사회의 도덕질서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아가 정보통신부의 이용중지명령권을 폐지하고 개인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조화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병행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위한 일반적인 논의가 진전되는 바탕위에서만 정보통신매체에 의한 표현의 자유도 함께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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