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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인터넷 내용등급제와 표현의 자유 (박성호)

By 2002/05/1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민주사회와변론 2001년 1/2월호 통권 43호

인터넷 내용등급제와 표현의 자유

박 성 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세진종합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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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리말

정보통신부가 2000년 7월 공청회에 제시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의 개정안은 한마디로 위헌적 요소가 많은 문제투성이의 법안이었다. 우선 이 법안의 문제는 개인정보의 보호, 도메인이름의 관리, 음란물을 비롯한 각종 ‘불법정보’의 규제, 인터넷 내용등급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책임 등 실로 다양한 분야의 여러 현안들을 세계 각국의 여러 법제를 이리저리 ‘요령껏’ 참조하여 ‘적당히’ 꿰어 맞춘 데에 있었다. 게다가 분야마다 분쟁조정이란 명목으로 준사법적 기능을 갖춘 각종 위원회를 정통부 산하에 설치하고, 정통부장관에게는 온갖 규제·명령권을 부여하고 있었다. 정통부가 위 개정안의 내용을 수정하여 같은 해 9월 입법 예고하였던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안)’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이 남아있었다. 특히 양 법안에서 모두 문제가 되었던 핵심 쟁점은 정통부가 도입하고자 시도한 ‘인터넷 내용등급제’이었다.
인터넷 환경 아래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는 기본권 중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것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하게 대두되는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다.{{) 강경근,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기본권",「한국헌법학회 제12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11∼22쪽; 성낙인, "인터넷과 헌법상의 과제",「법제연구」, 통권 제18권, 한국법제연구원, 2000, 17∼20쪽 각 참조.
}}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도입 문제와 관련하여 시민단체 등이 강력하게 반대한 이유 중의 하나도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인터넷상의 사전검열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표현매체의 등장과 함께 제기된 ‘골치 아픈’ 문제, 즉 인터넷 내용등급제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등급제 아래에서 표현의 자유는 과연 보장될 수 있는 것인지를 고민해 보고자 한다.

II 인터넷 내용등급제란 무엇인가?

1. 출몰하는 쟁점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의 개정 법률안인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2001년 1월 16일 공포되었지만 작년 하반기 시민사회로부터 ‘인터넷상의 검열’이라 하여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던 문제의 조항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보통신부가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란 이름으로 도입하고자 시도하였던 ‘인터넷 내용등급제’이다. 들리는 바로는 진보네트워크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문제제기를 수용하여 법안의 국회 심의과정에서 관련 조항들이 삭제되었다는 것이지만, 이른바 ‘자살 사이트’와 ‘폭탄제조 사이트’ 등 인터넷 환경의 ‘불온성’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이고 보면 ‘인터넷 내용등급제’ 문제는 빠른 시일 내에 재론될 것으로 보인다.

2.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개념과 유형

가. 개념

현재 우리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인터넷 내용등급제(internet rating system)라는 용어의 개념은 "인터넷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내용에 대하여 누드, 성행위, 폭력, 언어 등의 일정한 범주별로 그 등급을 매기는 하나의 기술적 체계"로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인터넷 내용규제를 위한 여러 가지 방식들 중에서 기술적 규제이자 자율적 규제에 해당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황성기, "인터넷 내용등급제와 우리나라에서의 적용가능성",「법과 사회」, 통권 제19호,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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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규제에는 종래 널리 알려진 것으로 차단목록 방식(blacklisting)과 허용목록 방식(whitelisting)이 있는데, 이와 같이 O,X식으로 이루어지는 일괄 차단 내지 허용 방식은 해당 목록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가치관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차단목록 방식(blacklisting)의 경우 사이트 주소를 이용한 차단방식을 취하면 해당 사이트의 모든 정보를 차단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정보까지 차단할 수 있고, 또한 포괄적 기준 설정으로 인한 무차별 차단이 가능하므로 차단목록 제공자에 의한 실질적인 검열권 행사의 우려가 있다. 한편 허용목록 방식(whitelisting)의 경우에는 유해정보에 노출될 위험은 거의 없으나 접근할 수 있는 사이트가 극히 제한적인 것이 단점이다. 또한 학교나 도서관 등의 환경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나 계속해서 해당 정보를 찾아 데이터베이스화하여야 하는 것이 어렵다(황철증, "통신망을 통한 음란물 규제",「인터넷과 법률」, 현암사, 2000, 198∼199쪽).
}} 이에 반하여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정보마다 등급을 매겨 그 등급에 따라 접속 가능하게 만드는 내용등급에 의한 선별방법(rating)을 취하고 있어서 중립적 방식으로 불린다. 즉, 이러한 등급제 방식은 인터넷 정보에 유해 정도를 나타내는 등급값을 삽입하여, 웹브라우저나 차단 소프트웨어에서 인터넷 정보에 삽입되어 있는 등급값이 부모가 미리 해당 청소년에게 설정해 놓은 허용된 값보다 크지 않을 때만 작동되는 방법이다.{{) 황철증, 위의 논문,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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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미리 설정된 등급을 바탕으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인터넷 내용선별·차단 소프트웨어(filtering or blocking software){{) 안동근, "인터넷 정보내용규제",「정보법학」, 제2호, 1998, 99쪽, 107쪽.
}}가 작동됨으로써 성인의 볼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청소년에게 해로운 정보를 규제할 수 있는 중립적인 기술적 규제 방식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 유형

일반적으로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유형은 인터넷 컨텐츠에 대한 등급판정의 행사주체에 따라 ‘자율등급시스템’과 ‘제3자 등급시스템’으로 크게 구분된다.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인터넷 내용규제 방법 중 자율규제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양 유형만을 포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직접 관여하는 등급제를 인터넷상에 운영하는 국가도 존재하기 때문에 전술한 양 유형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에 대한 분석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황성기, 위의 논문,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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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국가 주도의 인터넷 내용등급제

국가가 주도하는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로는 싱가포르와 호주가 대표적이다. 싱가포르는 행정기구인 방송청(Singapore Broad- casting Authority)이 제시한 차단목록 고시에 따라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 등에게 사회질서 및 국가안보, 종교 및 민족간의 조화, 공중도덕 등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컨텐츠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거나 그러한 내용의 컨텐츠를 삭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안동근, 위의 논문, 105쪽; 황성기, 위의 논문, 96∼97쪽.
}} 싱가포르가 행정적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반하여 호주는 입법에 의하여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실시를 강제하고 있다.{{) 박선영, "한국의 인터넷 관련 법적 규제와 한계―인터넷 내용등급제를 중심으로",「세계언론 법제동향」, 한국언론재단, 2000. 하, 50쪽.
}} 즉, 호주의 1999년 개정 방송법(온라인서비스법){{) 정식명칭은 "Broadcasting Services Amendment(Online Services) Act 1999"이다.
}}은 호주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인터넷 컨텐츠에 대해서 등급을 표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등급분류상 RC(Refused Classification)나 X등급의 컨텐츠는 유통이 금지되고 R등급의 컨텐츠는 방송청으로부터 성인임을 확인을 받은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다. 요컨대 청소년 유해정보(R등급의 정보)는 방송청이 인정하는 접근통제시스템(Restricted Access System)을 통하여 성인만이 접근할 수 있다.{{) 황성기, 위의 눈문, 97∼98쪽; 황승흠, "건전한 정보통신윤리 확립 관련 개정사항",「’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을 위한 공청회」자료집, 2000년 7월 20일, 37쪽 (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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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은, 첫째 국가의 관할권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매체인 인터넷에서는 적절치 못하다는 점, 둘째 국가가 직접적으로 나서서 인터넷상의 모든 컨텐츠에 대해서 등급을 판정하고 차단한다는 것은 비용, 현실성, 기술적 한계 등의 문제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 황성기, 위의 논문, 96쪽.
}} 셋째 국가에 의한 검열의 위험성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반대의 여론이 높고, 위헌적인 소지를 안게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박선영, 위의 논문, 51쪽; 황성기, 위의 논문,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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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자율적인 인터넷 내용등급제

이것은 인터넷상의 모든 컨텐츠에 대해서 정보제공자가 자신이 통일적이고도 객관적인 등급기준에 따라 등급을 표시하고, 인터넷 이용자는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기준에 따라 컨텐츠에 대한 접근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 시스템은 현재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성기, 위의 논문,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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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민간 주도의 자율 규제라는 기본 방침에 따라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기술적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 내용선별을 위한 기술표준(Platform for Internet Content Selection : PICS){{) PICS는 미국의 시민단체, 인터넷 및 컴퓨터 관련 기업들이 참여한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움(World Wide Web Consortium : W3C)이 개발한 것으로서 웹사이트 운영자나 제3자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사이트에 등급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웹 프로토콜의 하나이다.
}}’을 바탕으로 RSACi(Recreational Software Advisory Council on the Internet)나 SafeSurf와 같은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개발하였고,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인터넷 내용선별 소프트웨어를 개발·보급하고 있는데,{{) 안동근, 위의 논문, 101쪽.
}} 미국에서는 주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중심이 되어 인터넷 내용등급협회(Internet Content Rating Association : ICRA)를 구성하고 등급기준을 만들어 배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선영, 위의 논문, 47쪽.
}} 이와 같이 미국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등 컴퓨터 관련업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등급표시방법을 표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율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PICS 작업에 참여하지 아니한 회사의 제품 또는 차단소프트웨어나 웹브라우저에서 등급시스템을 지원하지 않거나 등급표시가 안된 사이트에서는 이용자가 내용등급에 의한 선별방법을 전혀 적용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서는 웹사이트의 99% 이상이 등급표시가 없이 유통되고 있어서,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박선영, 위의 논문, 47∼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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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99년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인터넷 컨텐트 정상회의(Internet Content Summit)에서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관한 전반적이고 체계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로 2000년 초 베텔스만 재단(Bertelsmann Foundation)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박선영, 위의 논문, 44∼45쪽 및 45쪽의 (주32).
}} 이 보고서는 인터넷 컨텐츠업체와 인터넷 서비스업체가 사회적 책임감을 지닐 수 있도록 행동강령을 채택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행동강령에 따라 각 업체는 불법적인 내용물이 있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즉각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는 자율규제 시스템 및 인터넷 이용자에 대한 건의안의 핵심사항으로 ‘자율’이 바로 인터넷 컨텐츠의 등급 및 선별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용자가 자율등급제(self-rating)와 여과장치(filtering system) 중에서 자신들이 그 모델을 직접 선별할 수 있도록 전세계 컨텐츠업체들은 자신들의 컨텐츠에 라벨을 붙여 분류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박선영, 위의 논문, 49∼50쪽.
}} 이러한 인터넷 내용의 자율규제 모델은 유럽 각국의 기본적인 규제 방안으로서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③ 제3자에 의한 인터넷 내용등급제

이 방식은 인터넷상의 컨텐츠에 대해서 정보제공자가 아닌 그 외의 개인이나 단체인 제3자가 등급을 판정하고 등급정보에 관한 테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등급서비스 중에서 인터넷 이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가치관이나 기준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하게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황성기, 위의 논문, 102쪽.
}} 제3자에 의한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관해서는 여러 장단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자율적인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완전히 정착되기 위한 과정에 있어서 자율적인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보완할 수 있는 보조적 장치로서 필요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황성기, 위의 논문, 103쪽.
}} EU의 ‘안전한 인터넷의 이용증진을 위한 실행계획(Action Plan on Promoting Safe Use of the Internet)’에 의하여 설립된 ‘유럽 인터넷 내용등급'(Internet Content Rating for Europe : INCORE) 협회의 보고서도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황성기, 위의 논문, 103쪽의 (주4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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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보통신부가 추진한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의 내용과 그 경과

가. 2000년 7월 20일 공청회에 제시한 개정안

당초 정통부가 마련하여 2000년 7월 20일 공청회에서 제시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안(이하, ‘공청회 개정안’으로 줄임)은 불법정보 개념을 도입하여 청소년유해정보와 구분하고 별도의 취급을 하고 있다. 즉, 불법정보를 "범죄행위를 목적으로 하거나 범죄행위를 교사 또는 선동하는 내용의 정보 및 기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이 금지하는 내용의 정보를 말한다{{) 공청회 개정안 제2조 제6호.
}}"고, 청소년유해정보를 "청소년보호법 제10조 제1항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정보를 말한다{{) 공청회 개정안 제2조 제7호.
}}"고 구별하여 정의한다.{{) 공청회 개정안의 취지는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를 구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금지하였던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1항의 ‘불온통신’ 개념에 대한 위헌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황승흠, 위의 개정사항, 31∼32쪽), 공청회 개정안의 불법정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 개념이 포괄적이고 애매모호하여 자의적으로 적용될 여지가 매우 많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구나 공청회 개정안에 따르면 누구든지 불법정보의 유통 및 매개행위를 인지한 경우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신고할 수 있으며(공청회 개정안 제27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불법정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이를 고지하여야 하고(공청회 개정안 제28조), 정보통신부장관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불법정보의 취급거부를 명령할 수 있다(공청회 개정안 제29조)고 하면서 이를 불이행한 경우에는 1억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공청회 개정안 제79조)고 규정한다. 또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타인이 제공하거나 유통시킨 정보에 대하여 "당해 정보의 내용을 인지한 경우"에 "당해 정보의 제공 또는 유통을 방지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그것이 기대가능한 경우"에는 법적 책임을 진다고 하면서(공청회 개정안 제36조 제2항) 제28조에 의한 고지를 받은 경우에는 당해 정보의 내용을 인지한 것으로 본다(공청회 개정안 제36조 제3항)고 규정한다. 결국 이에 따르면 행정부서의 일개 산하기관에 불과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사이버 공간상에서 불법정보라는 ‘라벨’을 부착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라벨’이 부착된 정보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해당 정보를 삭제하는 등 ‘스스로 알아서 기어야 하는’ 교묘한 ‘정보의 통제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 불법정보에 대해서는 제작·유통 또는 매개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공청회 개정안 제26조.
}} 청소년 유해정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정보내용등급표시제의 적용을 전제로 하여, 정보등급의 기준, 표시방법 등에 대해서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공청회 개정안 제30조.
}} 다만 이러한 등급표시의무를 지는 자는 "정보통신서비스를 이용하여 영리목적으로 청소년유해정보를 제공하려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 국한된다.{{) 공청회 개정안 제31조.
}} 그리고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사전에 등급분류서비스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제공하도록 하고 있고,{{) 공청회 개정안 제32조.
}} 또한 "적정하지 않는 등급이 표시되어 유통되는 정보라고 판단하는 경우" 등급조정의 주체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 하고 있다.{{) 공청회 개정안 제33조.
}} 나아가 학교, 도서관, 청소년 이용시설에서는 정보내용등급표시제를 이용하여 특정 정보에 대한 접속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선별소프트웨어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공청회 개정안 제3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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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 개정안 전반에 대해서는 학계와 시민단체로부터 여러 가지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자율규제가 기반이 되어야 할 인터넷 내용규제시스템에 국가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등급기준, 표시방법, 등급조정 등의 권한을 행사하고 등급을 부여할 수 없는 불법정보에 대해서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고지하여 이를 삭제하게 만드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결국 정부에 의한 인터넷상의 검열을 가능하게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다시 말해 본래 인터넷 내용등급제란 자율규제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이용자의 자율적인 기준설정과 선택권을 필수적 요소로 하는 것인데, 공청회 개정안은 이러한 자율성을 배제한 채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을 강요한다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정통부 홈페이지에 공청회 개정안을 반대하는 온라인 시위가 벌어지는 등 정부당국은 시민단체와 네티즌들로부터 연일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나. 2000년 9월 23일 입법예고된 개정안

공청회안이 사실상 국가에 의한 인터넷 검열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이후 같은 해 9월 23일자로 입법예고된 개정안을 보면, 우선 법안의 명칭이 개인정보 보호 제도를 대폭 도입함에 따라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로 변경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내용 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입수한 상이한 내용의 일부 법안을 보건대, ‘공청회 개정안’과 ‘입법예고 개정안’ 사이에도 정통부에 의하여 몇 번의 개정 작업이 더 이루어졌던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지만, 역시 중요 개정안은 ‘공청회 개정안’과 ‘입법예고 개정안’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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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입법예고 개정안에서는 공청회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불법정보와 청소년유해정보의 구별을 전제로 한 정의 규정이 삭제되었고, 이에 따라 불법정보 규제시스템과 관련된 모든 조항도 삭제되었다.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와 관련해서도 공청회 개정안과는 달리 "정보통신부장관이 정보통신사업자 등 정보제공자로 하여금 일정한 기준 및 표시방법에 따라 정보내용에 대하여 등급을 부여하고 이를 표시하도록 권장할 수 있다"고만 규정함으로써{{) 입법예고 개정안 제43조 제1항.
}} 등급부여 및 표시의 의무화에서 권장으로 수정한 것이다. 또한 등급의 기준과 표시방법도 청소년보호단체, 이용자단체, 정보통신관련단체 등의 의견을 들어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정하도록 함으로써{{) 입법예고 개정안 제43조 제2항.
}}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일방적으로 등급기준을 정하여 공표하는 것으로부터 관련단체의 사전 의견청취를 한 후 정하는 쪽으로 다소간의 방향 수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등급표시의무자에 대해서도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확인되어 고시된 정보를 제공하려는 자"로 규정하여{{) 입법예고 개정안 제45조 제1항.
}} 공청회 개정안과 비교할 때 그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또한 내용선별소프트웨어에 대해서도 공청회 개정안과는 달리 설치를 권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있다.{{) 입법예고 개정안 제46조 제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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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보자면 입법예고 개정안은 공청회 개정안과 비교할 때 시민단체 등의 비판 내용을 수용하여 개선하려고 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법안의 규정 내용이 ‘의무 부여’에서 ‘권장’이나 ‘의견 청취’ 쪽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실질적인 의무 부여를 강제하는 우리의 행정 현실을 되돌아보거나, 정보통신 기반과 관련하여 지시·감독 내지 후견·조정자로서의 지위에 있는 정통부 또는 그 산하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권한에 비추어 보건대, 위와 같은 법안의 수정은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여론무마를 위한 ‘레토릭’ 차원의 ‘수위 조절’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본질적인 문제는, 법규범과 법현실의 괴리가 남다른 우리의 상황 아래에서는 입법예고 개정안의 ‘불완전한'(?) 근거 규정만을 가지고도 정통부 산하의 법정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자율규제’라는 이름을 내걸고 얼마든지 ‘검열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극악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입법예고 개정안대로라면 "사이버 세계의 최고 권력자일 수도 있는 윤리위원회의 ‘권고’가 과연 ‘권고’로만 그칠지 의문"이며, 따라서 "어느 범위까지 영리인지, 청소년 유해정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정보제공자들은 ‘미리’ 윤리위원회에 내용을 보여주고 책임을 면하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에 결국 "이는 무늬만 자율인 ‘교묘한’ 사전 검열"이 되는 것이다(김기중, "정보통신질서확립법 : 도무지 예의라곤 모르는 인터넷 아이들아, 정부가 질서확립이닷!",「구운몽」, 창간호, 안그라픽스, 2000, 125∼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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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2001년 1월 16일 공포된 개정 법률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의 개정 법률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2001년 1월 16일 법률 제6360호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개정 법률’로 줄임)로 공포되어 2001년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개정 법률에는 지금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 즉 인터넷 내용등급제와 관련된 조항과 문구가 모두 빠져 있다. 입법예고 개정안에 대해서도 전술한 바와 같은 비판이 제기되자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개정 법률 제40조 제1항 제1호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유통되는 음란·폭력정보 등의 유해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통부장관은 내용선별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야말로 2000년 하반기부터 불거졌던 정부 주도의 인터넷 내용등급제 도입 논란의 시간적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즉, ‘공청회 개정안’의 내용선별소프트웨어의 설치의무 규정이 ‘입법예고 개정안’에서는 설치권장 규정으로 바뀌었다가, 개정 법률에는 그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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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법률에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확인되어 고시된 음성정보·영상정보 및 문자정보에 관하여 "전기통신사업자의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일반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 청소년유해매체물 표시의무를 부과한 점이다.{{) 개정 법률 제42조.
}} 또한 개정 법률은 이러한 "청소년유해매체물을 이용자의 컴퓨터에 저장 또는 기록되지 아니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을 영업으로 하는 정보제공자"에게 당해 정보의 보관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개정 법률 제43조.
}} 그리고 청소년유해매체물 표시의무를 위반하여 영리를 목적으로 정보를 제공한 자는 형사 처벌하도록,{{) 개정 법률 제64조.
}} 정보보관의무를 위반한 자는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각 규정하고 있다.{{) 개정 법률 제67조 제1항 제12호.
}} 이러한 표시의무와 보관의무 및 그에 관한 벌칙규정들은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유해표시의무 관련규정{{) 청소년보호법 제14조, 제51조 제1호.
}} 내지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을 유통하는 자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보고 및 자료제출의무 관련규정{{) 청소년보호법 제34조, 제56조 제2항 제2호.
}}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보호법은 인터넷상의 컨텐츠에 대해서도 규제대상이 되는 매체물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으므로,{{) 청소년보호법 제7조 제4호는 "전기통신사업법 및 전기통신기본법의 규정에 의한 전기통신을 통한 음성정보·영상정보 및 문자정보"를 청소년유해매체물의 범위에 포함시킨다.
}} 개정 법률의 내용들은 일종의 주의적 규정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별도의 새로운 규제를 부과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또한 벌칙규정과 관련해서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범죄의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청소년보호법상의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 청소년보호법 제10조.
}} 등이 개정 법률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함으로써 오프라인에서 나타난 청소년보호법의 적용상 문제점이 온라인에서는 더욱더 증폭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우려되는 것은 개정 법률과 청소년보호법상의 일부 조항들이 결합하여 운영되게 되면 사실상 국가 주도의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실시될 개연성도 있다는 점이다. 즉,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보호위원회 등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심의·결정하지 않은 매체물에 대하여 당해 매체물의 특성 등을 감안하여 매체물의 등급을 구분할 수 있고 등급구분의 대상·종류·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청소년보호법 제9조), 전기통신을 통한 음향정보·영상정보 및 문자정보도 유통규제 대상이 되는 매체물의 범위에 포함된다고(청소년보호법 제7조 제4호) 각 규정하고 있으므로,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인터넷 컨텐츠가 청소년보호법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과 그밖에 등급구분된 매체물 등으로 세분화되어 유통될 수도 있는 것이다.
}}
한편 개정 법률은 부칙{{) 개정 법률 부칙 제5조 제1항.
}}에서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 2를 삭제하는 대신에, 이 규정의 문구를 조금 손질하여{{)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 2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 음란한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반포·판매 또는 대여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개정 법률은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하여"를 "정보통신망을 통하여"로, "반포"를 "배포"로, "대여"를 "임대"로 바꿨고, 여기에 새로이 화상(graphic) 개념을 추가하고 있다.
}} 개정 법률의 벌칙조항 중에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한 자"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개정 법률 제65조 제1항 제2호.
}} 종래 전기통신사업법 제48조의 2에 관해서는 그 규정 내용이 모호하여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여지가 많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는데,{{)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 2는 "주요 선진국의 어떠한 나라의 입법과 비교해 보아도 유례가 없는 포괄적이고 강력한 인터넷 매체에 대한 규제법"으로서 "핵심적인 인터넷의 통제수단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비판적 고찰로는, 황승흠, "사이버 포르노그라피에 관한 법적 통제의 문제점―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 2 ‘전기통신역무이용 음란죄’를 중심으로",「정보와 법 연구」, 창간호, 길안사, 1999, 127∼168쪽.
}} 개정 법률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고 하겠다.

III 인터넷 내용등급제 아래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장될 수 있는가?

1. 충돌하는 쟁점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성인의 볼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청소년에게 해로운 정보를 규제할 수 있는 중립적인 기술적 규제 방식이라고 정의된다. 따라서 이른바 성인정보(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해서 성인층의 접근을 보장하면서 청소년의 접근은 차단하고자 하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근본취지는 환영받을 만하다. 문제는 이른바 성인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본래 목적과는 별개로 등급제가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양상이다. 정통부가 추진한 국가 주도의 인터넷 내용등급제가 시민단체 등의 강력한 반대를 받았던 이유도 국가가 이것을 주도하게 되면 인터넷상의 검열을 가능하게 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어떤 측면이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검열에 해당하게 되는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

2.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현행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 [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명문으로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와 검열을 금지하고 있다.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와 검열이란 ‘사전 제한’을 말하는 것으로서,{{) 김철수,「헌법학개론(제12전정신판)」, 박영사, 2000, 624∼625쪽; 권영성,「헌법학원론(보정판)」, 법문사, 2000, 480쪽 각 참조. 김철수 교수는 "허가제·검열제는 사전적 제약방법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고, 권영성 교수는 검열이란 "사상·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국가기관이 내용을 심사·선별하여 일정한 사상이나 의견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하는 제도"라고 설명한다.
}} 이러한 사전제한금지의 원칙은 영미법상 일찍이 1695년 영국에서 사전검열과 허가제를 규정한 법률이 폐지되면서 확립되었고, 그후 1791년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의 언론·출판의 자유에 관한 규정의 채택으로 성문화되었으며, 유명한 Near{{) Near v. Minnesota, 283 U.S. 697 (1931).
}}판결 이래로 미 연방대법원의 확고한 판례법으로 자리 잡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양건, "표현의 자유",「헌법연구」, 법문사, 1995, 83∼85쪽; 안경환, "표현의 자유와 사전 제한",「인권과 정의」, 대한변호사협회, 1989, 5, 19쪽.
}} 우리 헌법재판소도 구 영화법 제12조 등에 대한 위헌제청 사건에서 "검열은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서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즉 허가받지 아니한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제도"라고 결정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1996. 10. 4. 선고 93헌가13, 91헌바10(병합) 결정.
}} 그런데 헌재는 위 결정에서 "검열금지의 원칙은 모든 형태의 사전적인 규제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의사표현의 발표 여부가 오로지 행정권의 허가에 달려있는 사전심사만을 금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검열은 일반적으로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절차, 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현의 금지 및 심사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고 하여 사전검열의 요건을 제시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사전검열 요건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양건, "헌법상 검열금지 규정의 해석―헌법재판소의 영화 사전심의의 위헌결정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새로운 해석의 제시",「금랑 김철수 교수 정년기념논문집」, 박영사, 1998, 546∼567쪽.
}}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이러한 검열의 개념을 전제로 할 때, ‘사전’과 ‘사후’라는 시간적 관련성을 비롯한 그밖의 요건과 관련하여 국가 주도의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사전검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우선 국가 주도이든 자율적이든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미국자유인권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 ACLU)과 같은 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차단(blocking) 내지 내용선별(filtering) 기술은 정부에 의한 검열을 더욱 용이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즉, ACLU는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등장과 관련하여 ① 내지 ⑥과 같은 일련의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① PICS의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컨텐츠 등급판정을 위한 통일된 방법이 제시된다. ② 한 두 개의 등급시스템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면서, 사실상 인터넷상에서의 표준이 된다. ③ PICS와 시장지배적 등급시스템이 인터넷 소프트웨어의 자동적 초기값(automatic default)으로 설정되게 된다. ④ 등급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표현들은 이러한 자동적 초기값의 설정으로 인해 효과적으로 차단된다. 즉, 등급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표현들은 그 내용에 상관없이 차단된다. ⑤ 검색엔진들(search engines)도 등급이 표시되어 있지 않거나 부적절하게 표시된 사이트들이나 정보들을 검색결과로서 제시하지 않게 된다. ⑥ 정부가 자율등급을 입법으로 강제하거나 부적절하게 등급을 표시하는 것을 형사벌로 처벌하게 된다.{{) 황성기, 위의 논문, 103∼105쪽.
}}
ACLU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제시하면서 정부에 의한 검열가능성을 강조하지만, 과연 시간적 관련성의 측면에서 ‘사전 검열’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인쇄매체에 비한다면 인터넷에서 ‘사전’과 ‘사후’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은 한번의 클릭만으로 전세계의 이용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인터넷에서 사전에 표현행위를 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헌법이 규정한 사전제한금지의 원칙의 의의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자는 것이고, 인터넷에서 사전·사후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할 것이므로,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삭제나 수정은 사전제한금지의 정신에 따라 비록 형식적 의미에서는 ‘사후’라 할지라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황승흠, 위의 논문, 133∼134면.
}}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ACLU의 주장처럼 내용선별·차단 소프트웨어에 따라 등급이 표시되지 않은 표현들이 그 내용에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선별 내지 차단되도록 하는 것은 시간적 관련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사전제한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의 개념에서 보듯이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에 비추어 침해의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한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검열의 형식적 주체와 의미에 착안하여 표현의 자유의 침해 여부를 판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에서 보면,{{) 방석호, "인터넷 내용규제 관련 현행 법제의 비교분석",「언론중재」, 언론중재위원회, 1999년 봄호, 56쪽.
}}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도입으로 사전검열이 용이하게 된다는 ACLU의 지적은 특히 공감되는 바가 많다.
그런데 더군다나 당초 정통부가 도입하고자 시도한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 주도의 등급제로서, 공청회 개정안이나 입법예고 개정안은 모두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등급제 운영의 중심에 놓고 있어서 행정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하나의 절차로서 형성해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청회 개정안이나 입법예고 개정안을 보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정보등급의 기준, 표시방법에 주도권을 행사하고, 등급표시에 의무를 부여하거나 사실상 의무부여와 마찬가지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원칙적으로는 사후심의의 기능만을 수행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성인정보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정보제공업자(IP)들은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나 PC통신사업자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을 것을 계약조건으로 요구하여 왔기 때문에, 정보제공자(IP)들은 사전 심의를 거친 다음 성인정보제공사업을 해 왔다. 이러한 ‘관례’에 따라 지금까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사실상 사전 심의를 수행하여 왔던 것이다.
}} 전기통신사업법{{)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의 2 제4항.
}}에 따라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유통되는 정보를 ‘심의’하고 ‘시정요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행사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따른 사이버공간상의 이른바 불온통신 규제의 헌법상 문제점에 대한 고찰로는, 황성기 "사이버스페이스와 불온통신 규제",「한국헌법학회 제12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2000. 5. 27., 155∼209쪽.
}} 그러므로 ‘정보유통의 쌍방향성에 따른 인터넷 이용자간의 의견교환기능의 강화’ 라고 하는 인터넷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인터넷 내용등급제 아래에서 유통되는 이른바 성인정보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내용규제를 받지 않고는 정보의 유통이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전술한 것처럼 인터넷상에서는 사전·사후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결국 이는 정보 유통의 ‘사전 제한’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 것은 연방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 : CDA)이 위헌이라고 선고한 1996년 6월 12일 미국 연방지방법원 판결{{) ACLU v. Reno, 929 F. Supp. 824 (E.D.Pa. 1996).
}}에서도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규제시스템으로서 인터넷상에서의 내용규제시스템으로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시하였다는 점이다.{{) 황성기, 위의 논문(주2), 93쪽.
}} 즉, 위 판결은 그 사실인정에서 CDA{{) CDA §223(e)(5)(A)(B)
}}가 형사적 제재가 적용되지 않는 선의의 항변(Good Faith Defense) 사유로서 규정하고 있던 신용카드, 성인증명번호, 등급표시제(tagging) 등을 통한 미성년자의 접근을 제한하는 수단이 경제적 이유라든지 기술적 이유를 근거로 적절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판시하였다. 그 다음해 연방대법원은 CDA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위헌 판결을 선고하였는데,{{) Reno v. ACLU 521 U.S. 844 (1977).
}} 연방대법원도 "표현에 대한 규제는 최소한이지 않으면 위헌으로 무효가 되는 바, 항변 규정은 그러한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하여 연방지법의 사실인정을 지지하였다.

IV 맺음말

{{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도입과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생각된다. ACLU의 주장처럼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고,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도입을 전제로 하되 자율성이 담보되는 형태의 등급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 시민사회의 형성 정도에 비추어 볼 때 자율규제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가 하고 회의하는 쪽도 있을 것이다. 그밖에 여러 절충적 견해들도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방향을 달리해서 살펴보면 이러한 다양한 입장들간의 차이는 인터넷이란 새로운 표현매체를 어떻게 파악하고 이해하는가 하는 표현매체의 성격 규명에 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되는 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해 인터넷이란 표현매체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견해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구성하는 자유와 책임의 ‘성분비율’이 달리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불거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병리적 현상은, 인터넷에서의 개인에 의한 표현의 자유의 남용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보고 표현매체로서의 자유보다는 규제적인 측면을 강조해온 일군의 학자들 쪽에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해주고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법과 제도를 통한 규제가 환경 정비라는 면에서 효과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최초의 쌍방향성 표현매체로서 이제 막 기능하기 시작한 인터넷상의 정보유통과 관련하여 그 내용규제를 섣불리 제도화하는 것의 역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그것이 자유와 관련된 규제인 경우에는 "빨리 빨리 하자"는 행정적 요구 못지 않게 "천천히 하자"는 사법적 고려도 중요하다고 본다. 오히려 사법적 고려야말로 최우선적 과제라고 할 것이고 그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헌법적 검토이다. 우리가 인터넷 내용등급제의 도입과 관련하여 표현의 자유 문제를 따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0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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