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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칼럼] 핸드폰과 복제사이트

By 2002/03/2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핸드폰과 복제사이트

김진균 (서울대 교수, 진보네트워크센터 전대표, 현회원 | bulnabia@jinbo.net)

2002년 3월 8일 오늘로써 열흘째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발전(發電)노동조합과 관련하여 두 가지 점이 주목된다. 첫째는 핸드폰이 파업투쟁에 있어서 갖는 효능이고, 둘째는 홈페이지의 그 효능이다. 발전노조 조합원 노동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이번 파업에서 핸드폰의 위상은 상당히 진전되고 있고, 한편으로 홈페이지도 독특한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발전노조가 파업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노조지도부와 조합원간의 신뢰가 굳은데 바탕을 두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어느 파업이든지 그것이 굳게 단결해 수행하자면 노동자들의 상호 신뢰가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요소일 것이다. 전국에서 모인 발전노조 조합원 노동자들은 처음에 서울에 있는 어떤 대학에 들어가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며칠 지나자 노사간의 교섭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사용자와 국가는 파업을 깨기 위하여 탄압과 분리전략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자 파업이 오래 갈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 장소에서 옥쇄작전을 할 것인가, 혹은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누어 산개해서 투쟁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지도부도 조합원도 그 어느 것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지도부는 옥쇄냐 혹은 산개냐를 조합원들이 분임토의를 통해서 결정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농성조합원들이 끼리끼리 모여 분임토의한 결과, 산개작적을 택하게 되었다. 열 명이 넘지 않게 조를 짜고 조장을 선임하였다.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조합원들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조장에게 맡기고 조장만이 핸드폰을 휴대하기로 하였다. 이 조장의 핸드폰으로 파업지도부와 상황실에 연락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왜 파업조합원들은 핸드폰을 갖지 않게 결정했는가? 이 점이 핸드폰 효능에 관한 엄밀한 판단이 요구되는 문제였다.

핸드폰은 어느 시간이나, 어떤 장소에서도 쉽게 통화되고 접속된다. 여러분은 핸드폰을 가지고 아주 자주 그리고 쉽게 누군가와 접속하고 통화할 것이다. 가족이 전화를 하게 되어 안부를 묻고 걱정을 하게 되고 어린 자식이 보고 싶다고 하소연을 하게 될 것이다. 파업노동자는 가족과의 통화가 자주 되면 될수록 파업장소를 떠나서 가족을 만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파업현장을 이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사용자측, 즉 회사측이나 경찰이 그 핸드폰으로 회유도 할 것이고 위협도 줄 것이다. 가족을 시켜서 돌아오라고 하소연도 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공세를 미리 차단하기 위하여 스스로 파업노동자들은 핸드폰을 자진 휴대하지 않는다고 결의한 것이다.
한편 발전노조는 홈페이지를 통해 모든 사항을 조합원에게 알리는 것이다. 신문이나 라디오, 텔레비전을 통해 나가는 어떤 소식도 신뢰하지 말고 오직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는 소식, 지시나 방침만을 신뢰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되자 서울 넓은 지역에 산개한 파업노동자- 그들은 옷도 말끔히 바꾸어 입었다. 일상복을 착용토록 한 것이다.- 이들은 오로지 핸드폰으로 상황을 보고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모든 소식을 알도록 된 것이므로 파업에 관한 어떤 불안도 씻어가면서 대오를 이탈하지 않고 파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총리의 입을 통해 파업노동자를 ‘배신자’로 매도하고 경찰과 검찰을 파업지도부를 검거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사용자측은 고발과 해고를 서슴없이 진행하였다. 그런데 저 홈페이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냥 가서 그 홈페이지를 깨부수고 싶었을까? 그래서였는지 경찰은 정보통신부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발전노조 홈페이지를 폐쇄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되었다. 그 발전노조홈페이지는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참세상에 호스팅서비스를 받고 있다. 경찰이 여기에 어떻게 가서 폐쇄를 시킬 것인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선 폐쇄요청을 해도 진보넷은 그것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더 곤란한 점은 진보넷에 압수영장을 가지고 가서 발전노조 홈페이지가 들어 있는 서버의 하드디스크를 확인하고 압수해 간다고 하더라도 그 하드디스크에는 발전노조 홈페이지 하나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운동단체의 것도 들어 있으니 하나만 분리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 개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을 압수하면 다른 단체에 대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주저할 수밖에 없다.
더욱 난감하게 하는 것은 설령 진보넷에 있는 발전노조 홈페이지를 폐쇄한다고 한들 그 홈페이지가 사이버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즉 다른 곳 홈페이지나 다른 서버 공간에 발전노조 홈페이지를 ‘복제’해서 설정하고 운용할 수 있을 만큼 기술과 연대의 폭이 넓어졌다는 사실이다. 먼저 민주노총에서 복제사이트를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면 경찰이 민주노총 홈페이지를 무슨 수로 폐쇄한단 말인가? 설령 무모하게 그 곳을 폐쇄하더라도 이 소식을 이미 듣고 알고 있는 국내의 여러 곳에서, 그리고 국경을 넘어 세계 20여개 나라의 정보운동단체가 복제사이트를 설치해서 운용해 주겠다고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스물 나라라!! 자진해서 만들어 운용해 주겠다는 데야, 무슨 수로 발전노조 홈페이지를 없앨 수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PC방이 무수하게 장사를 하고 있다. 몇 푼 되지 않는 돈으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산개투쟁을 하고 있는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게임방에 가서 홈페이지를 통해 사태의 진전과 방침을 알 수 있고 건의를 할 수도 있다. 동영상 기술은 홈페이지를 통해 건강하고 굳센 지도부의 얼굴과 그들이 전하는 육성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 여러 운동단체의 지지와 연대를 동영상을 통해서 보고 파업노동자들이 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가족들이 모여서, 아내와 아이들이 서울에 올라와 함께 싸우고 있음도 동영상 방송을 통해 보고 얼마나 감격하는 것인가!

이미 정보의 네트는 기술적으로 국경을 초월한지 오래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 정보운동과 노동운동 관련 단체들은 서로 연대망을 구축해 온지 오래 되었다. 서로 정보를 소통하면서 서로의 고통과 소망을 이야기 해 왔고 가끔 모여서 감성도 나누어 왔다. 이로써 서로 신뢰감을 쌓아 온 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 들불처럼 치솟은 한국의 민주노동운동은 오랫동안 자본의 체제에 흡입되어 있던 자본주의 선진국 노동조합의 노동자들을 노동자로서 다시 일깨워 온 것이고 세계 각국의 노동자들이 한국의 민주노동운동의 역동성을 보아 온지 오래되었다. 노동운동과 정보운동이 결합하는 국제회의가 자주 개최되어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는 속도와 범위가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이 복제사이트 설정의 의지를 발생하게 하는 것이다. 복제사이트가 사회운동에서 발휘하는 효능이 이제 실증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복제사이트가 연대를 넓고 빠르게 형성하는 힘은 불과 몇 십년 사이에 전화, 복사기, CUG시대의 효능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망은 그 망을 구성해 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감성과 지성, 그리고 도덕성이 깊은 자기 문화에 기초를 두면서도 더 개방적이고 관용적으로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발전노조의 파업이 어떻게 귀결될지 모른다. 그리고 이번 파업이 민주노동운동에 미칠 영향도 당장은 가늠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업은 모든 국가적 사안을 사유화 혹은 사적 이윤추구의 장르로 내몰고자 하고 있는 자본의 야만적인 공세와 이를 매개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국가-정권의 행태를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터전과 공동체라는 차원에서 정확하게 인식케 할 것이다. 그리고 저항의 지점이 어딘가를 알게 할 것이다. 신뢰와 연대가 단위노조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그리고 국경을 넘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할 것이다. 그리고 신뢰와 연대를 구성하는데 소통의 발전된 기술적 수단의 효능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00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