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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칼럼] 쌓이는 스팸, 이유가 있다 – 인터넷 산업의 이해에 이용자 프라이버시권 침해

By 2002/02/14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쌓이는 스팸, 이유가 있다
"인터넷 산업의 이해에 이용자 프라이버시권 침해"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실장 | della@jinbo.net)

스팸메일에 따른 인터넷 이용자의 불편이 급증하고 있다. 쌓여 가는 스팸메일
때문에 필요한 메일을 오히려 골라 내 읽어야 할 형편이다. 당국도 사안의 심각성을
의식한 듯 스팸메일에 ‘광고’ 표시를 의무화하거나 음란 스팸메일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이용자의 눈에 스팸은 도무지 줄어드는
기색이 없으며 오히려 그 수법만 나날이 악랄해져 가고 있다. 최근 들어 스팸메일이
극성인 까닭은 무엇일까.

원치않는 광고 메일, 즉 스팸메일이 근래 들어 급증한 일차적인 원인은 법률에
있다.
2001년 7월 1일 발효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망법’)에서는 "누구든지 수신자의 명시적인 수신거부의사에 반하는 영리목적의
광고성 정보를 전송하여서는 아니된다"(제50조 1항)고 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
스팸메일은 법률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 법률이
발효한 시점부터 목적, 연락처, 수신거부 방법 등 몇가지 사항만 명시하면(제50조
2항) 스팸메일이 폭넓게 허용된 것이다. 법률 개정 전과 비교하면 이 점이
뚜렷하다. 지난 법률에서는 "수신자의 의사에 반하여 영리목적의 광고성정보를
전송하여서는 아니된다"(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제19조 2항)고 되어
있었다. "수신자의 의사"가 "명시적인 수신거부의사"로 바뀐 것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이는 "명시적인 수신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은 이용자의
의사를 어떻게 간주할 것이냐는 해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명시적인 수신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은 이용자가 스팸메일을 승인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옵트 아웃(opt out)’ 방식이다. 반면 ‘명시적인 수신의사’를 밝힌
이용자에게만 스팸 전송을 허용하는 것은 ‘옵트인(opt in)’ 방식이다. 옵트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던 개정 전 법률은 지난해 4월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한 회원이
삼보의 광고 메일에 대하여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삼보는 그야말로 이용자가 원치않는 메일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때는 이용자가
광고 메일을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를 파악할 책임이 광고주에게 있었다. 그러나
이런 판결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 명시적인 수신거부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이용자는 스팸메일 수신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광고 메일을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를 이제는 이용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것은 인터넷 산업의 이해 관계에 따른 것이다. 지난 7월 1일 개정된 망법은
인터넷내용등급제 관련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신질서확립법’이라
불리면서 대대적인 반대 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인터넷내용등급제
이외에도 이용자의 권리를 축소하는 다른 많은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2000년 9월
시민사회단체들이 국회에 배포한 의견(http://freeonline.or.kr/congress.hwp)에
따르면 이 법의 개인정보 관련 조항들은 사업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개악된 측면이
많다. 영업을 양도, 인수, 합병할 경우 통지만으로 개인정보가 이용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이전될 수 있도록 하고, 내용 규제 부분에서는 청소년 보호를
강조하면서도 사업상의 목적으로 청소년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에는 유독
만14세까지만 보호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조항 등이 그러하다. 스팸메일 관련
조항도 당시 방식으로는 인터넷을 통한 광고가 불가능하다는 업계의 엄살에 ‘밀려’
옵트아웃 방식을 채택하였다.

옵트아웃 방식에서는 이용자가 수신거부의사를 밝히기 위해 적어도 한번은 원치
않더라도 광고 메일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사업자는 적어도 한번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사용하여 이용자가 원하건 원치 않건 광고 메일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이용자에게 불공평한 상황이다. 사업자들이 한푼도
들이지 않고 매일 같이 이용자의 집주소 앞으로 우편함이 미어지도록 광고전단을
쑤셔넣고 있는데 이를 거부해야 할 책임은 이용자에게 있는 셈이다. 모바일 인터넷
등 시간당 접속료를 지불해야 하는 이메일의 경우에는 스팸 메일을 지우는 비용도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스팸메일은 전적으로 이용자의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문제이다. 이것은
기업들이 이메일과 이름은 물론이고 취미나 구매성향 등 민감할 수도 있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수집하고 사용하는지에 관한 문제이며 이것이
사생활을 어떻게 침해하느냐에 관한 문제이다. 이것은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이며
어떠한 기업의 이해관계도 이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광고 메일은 받기를 ‘명시적으로’ 원하는 이용자에게만 보내져야 한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00년 제정된 세이프하버(Safe Harbor) 규약에서 인터넷
기업이 옵트인 방식을 채택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 망법도 이와 같은 수준으로
즉각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태의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가 프라이버시권에 대해서
아무런 원칙과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한 데 있다.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가 망법의
일부분에서 부수적으로 다루어지는 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개인정보를 왜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총론이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터넷 산업의
이해에 따라 이용자의 권리가 계속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대로 통합적인 프라이버시 보호 법률이 한시바삐 제정되어야
한다. 프라이버시권은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정되고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끝>

200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