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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부 직원이 사법경찰권을 가져야 하는가.

By 2003/10/05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정책제언

원희룡

컴퓨터프로그램의 불법복제는 특성상 우리나라 내부의 문제로 국한시킬 수가 없다. 대부분의 컴퓨터프로그램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컴퓨터 강대국에서 수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미간 통상현안으로 컴퓨터프로그램의 불법복제율을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한·미 통상현안 정례점검회의시 소프트웨에불법복제 상시단속반에 사법경찰권을 부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이후 3차(‘02.8.) 및 4차(‘02.11.)회의에서도 지속적으로 사법경찰권 부여에 관한 입법동향 등의 이행상황 설명을 요청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2002년 3월 단속체제를 검찰 특별단속에서 정통부의 상시단속으로 전환한 바 있고, 법무부는 "사법경찰관리의직무를행할자와그직무범위에관한법률" 개정안을 정부안으로 확정하여 국회에 제출(02.11.5.)하였으며, 현재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중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 문제에 대한 쟁점사항은 비교적 간단하다.
정부측에서 소프트웨어불법복제 상시단속반(정보통신부 직원)에 사법경찰권이 필요한 사유로 주장하는 것은,
① 컴퓨터프로그램 저작권의 침해 여부는 해당분야의 전문지식이나 실무경험이 축적되어야만 판단할 수 있는 전문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검찰의 특별단속시에도 정보통신부 관련 공무원을 대거 지원한 바 있고, 정보통신부 상시단속반은 그 동안 소프트웨어불법 복제 단속업무를 수행하여 전문적 지식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②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제34조에 의한 불법복제단속(부정복제물의 수거, 삭제, 폐기 등)을 수행함에 있어 사법적인 권한이 부여됨으로써 단속대상기관으로부터 출입거부와 같은 공무집행에 대한 저항이 줄어들게 되어 단속의 효율성이 제고된다는 것, 그리고
③ 매년 분기별로 개최되는 한·미 통상현안 점검회의 과정에서 지적재산권의 보호와 관련하여 상시단속반에 사법경찰권의 부여 요구 등 소프트웨어불법복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하여 상시단속반에 사법경찰권 부여는 매우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저작권이용자들은 사법경찰권 부여에 따른 인권침해 가능성과 친고죄인 저작권침해사범에 대해 고소없이 우선 단속하는 것이 법리상 맞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즉, 사법경찰권 확대 자체에 대한 문제와 지적재산권의 한계 및 과잉수사문제, 정통부의 산업육성기능과의 배치 등의 이유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법경찰권의 전문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타당성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의 주된 내용이 단속이 아니고, 실제로 단속과정에서도 고도의 기술적 전문성이 요구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친고죄를 비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로 전환하라는 통상압력을 받고있는 것이 현실이라도 우리나라가 이러한 불합리한 요청을 들어주서는 안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느 입장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

법안은 그것이 개정이든 제정이든 국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법안을 심사할 때는 스스로 신중해 지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중에서도 산업계와 소비자의 이익이 충돌하거나 국가적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충돌될 경우, 국민들 사이에 의견이 충돌되는 경우에는 판단이 쉽지 않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문제나 이라크전 파병문제, 호주제 폐지문제 등이 그렇고, 정보통신부 직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이 법안도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상충하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어느 쪽이 법리적·논리적 타당성을 가지는가와 법안의 통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주요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

먼저 법리적인 면에서 컴퓨터프로그램은 해석상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는 예외적인 수사권부여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컴퓨터프로그램 저작권 침해행위는 지역적으로 사법경찰관리의 수사가 미치기 어려운 지역이 아니고,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장비를 필요로 하는 사무로도 보기가 어렵다. 아울러 음식물 단속, 문화재관리, 산림보호와 같이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행정부의 인원을 동원하더라도 범죄의 수사를 해야만 하는 경우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행위는 친고죄이고 민사적 성격이 강하다는 측면이다. 이러한 경우에까지 공무원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과도한 인권침해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이 법안이 통과되었을 경우의 효과와 부작용 측면이다.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행위의 수사는 프로그램의 유사성 판단과 저작권의 자유로운 사용에 대한 범위판단과 같은 고도의 법률적 판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보통신부 직원들이 단속과정에서 이러한 법률적 판단을 하는 것은 쉽지 않고, 아울러 정통부는 산업의 진흥을 주업무로 하는 부처이므로 프로그램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도모는 몰각되는 편파적인 수사의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미국 무역대표부의 통상압력을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 이다. 그러나 통상압력의 목적이 컴퓨터프로그램의 불법복제율을 낮추는 것으로 볼 때, 우리나라를 제외한 외국에도 유사한 입법례가 있는지와 정보통신부 직원이 사법경찰권을 가진다고 해서 컴퓨터프로그램의 불법복제율이 그들이 원하는 정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본인이 파악하기로는 컴퓨터프로그램의 불법복제를 단속하기 위해 행정공무원이 사법경찰권을 가지고 단속하는 국가는 없다. 따라서 이 법안이 통과되었을 경우 불법복제율이 어느 정도로 감소할 것인가에 대한 통계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무역대표부의 통상압력으로 법률까지 개정해야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법안은 논리적·법리적 타당성보다는 미국의 통상압력과 그동안 단속과정에서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민의 편의와 이익과는 무관하게 개정이 추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아울러 저작권자와 저작권이용자의 권리를 균형있게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선행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인은 "사법경찰관리의직무를행할자와그직무범위에관한법률안"의 개정안 통과는 보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