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정보문화향유권

[정보공유/칼럼] ‘디콘법’의 진정한 수혜자는 누구인가

By 2002/01/17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디콘법’의 진정한 수혜자는 누구인가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 | rayhope@chollian.net)

지적재산권의 사회적 타당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가장 큰 논란은 노바티스라는 초국적 제약회사가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에 관한 것이다. 생명을 구할 것인가, 이윤을 보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의 상식은 당연히 생명을 구하라고 답한다. 그러나 현재의 지적재산권은 불행하게도 ‘이윤의 보장’을 앞세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인가?
‘글리벡’처럼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또 다른 논란은 얼마전에 새천년민주당의 정동영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발전법안'(이하 ‘디콘법’으로 씀)에 관한 것이다. 이 법의 목적은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기르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이 법은 인터넷을 통해 유통될 수 있는 모든 디지털 정보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고자 한다.
강제적 규범으로서 법은 사회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세계 초유의 ‘디콘법’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이른바 ‘온라인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일부 업체들은 큰 혜택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창작성이 있는 지적 생산물에 대해서만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우리의 헌법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가장 큰 영향은 인터넷의 이용방식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을 이용할 때마다 혹시라도 이 법에 의해 범죄자가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될 것이다. 사실 업자들끼리도 적지 않은 갈등이 빚어질 것이다. 후발업체에게는 이 법이 막강한 진입장벽으로 구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디콘법’은 현재의 일부 ‘온라인디지털콘텐츠’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그러나 이들만이 ‘디콘법’의 수혜자는 아닐 것이다. 사실 WTO가 규율하는 자본주의의 지구화o 속에서 기업들은 혹독한 경쟁을 이겨내야 비로소 실익을 챙길 수 있다. 이 점에서 기업과는 달리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실익을 챙길 것이 분명한 쪽은 따로 있다. 이 법안을 실제로 만든 정보통신부와 대표발의한 새천년민주당의 정동영 의원이 바로 그런 쪽이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는 디지털 콘텐츠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그리고 이제 ‘디콘법’ 제정됨으로써, 이 경쟁은 결국 정보통신부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정보통신부로서는 올해가 정말로 기념할만한 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 손에는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에는 다시 ‘디콘법’을 말아쥐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관할권을 확고히 다진 해이기 때문이다.
새천년민주당의 정동영 의원은 이 법을 통해 자신이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보호자라고 자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산업이 정보사회의 새로운 핵심기간산업이라는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바탕으로, 정동영 의원은 자신이 정보사회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선구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동영 의원에게 ‘디콘법’은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할 아름다운 법인 셈이다.
그러나 헌법에 규정된 저작권과의 관계가 불분명하고, 인터넷의 이용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디콘법’은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일부 업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법인지 모르겠지만, 더 큰 공익이라는 관점에서는 전혀 불필요한 법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부와 정동영 의원은 시민사회가 ‘디콘법’의 대차대조표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잘못은 빨리 고칠수록 좋다. ‘디콘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2-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