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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자유/칼럼] 정부의 검열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을까?

By 2002/01/17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부의 검열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을까?
* (사)참여사회연구소 24회 정책포럼 발표문 (2001.12.15)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실장)

1. 들어가며

지난해 12월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소위 ‘자살 사이트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올 2월에는 전남 목포와 충북 청주에서 평소 자살 사이트를 자주 접속했던 것으로 알려진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또 대구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폭탄제조법을 배운 고교생이 시민운동장 주변에 놓아둔 사제폭발물이 폭발하는 바람에 시민 2명이 다쳤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인터넷 게임에 심취한 중학생이 초등학생 동생을 살해한 사건이다. 그는 경찰에 "살인을 하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동생을 살해 대상 1호로 지목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참으로 우리 청소년들은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받은 충격은 마땅하게도 진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무엇이 그들을 위험에 처하게 했는가. 그리고 대책은 무엇인가.
그러나 여기서,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비약이 일어났다. 이 모든 사건들의 원인으로 인터넷이 지목된 것이다. 즉,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청소년들을 자살하고, 폭력을 쓰고, 자기 동생을 죽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비약은 문제의 해법에 대한 비약으로까지 이어진다.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와 경찰이 인터넷을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문제의 사이트들을 모두 폐쇄하였다.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자살 사이트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파괴하는 반사회적 범법행위’라며 정보통신부, 법무부, 검·경 등 관련 기관에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형사처벌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며,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는 자살 사이트 등 각종 ‘반사회적’ 사이트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자살 사이트 등 ‘반사회적’ 사이트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며 컴퓨터 범죄를 전담하는 인터넷범죄수사센터를 본격 출범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정부는 11월 1일부터 인터넷상의 청소년유해매체물을 PC방, 학교, 도서관 등에서 차단 소프트웨어로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시작하였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위험한 인터넷을 청소년들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청소년은 보호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 모든 분주함은 정말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우리는 자살 사이트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인 질문들을 잊지 말아야만 한다. 청소년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인터넷인가, 아니면 사회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청소년 보호인가? 그리고, 정부의 인터넷 차단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 정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생각하는 ‘청소년 보호’의 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지난 6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학교를 자퇴한 청소년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아이노스쿨](http://www.inoschool.net)에 대하여 폐쇄 조치를 내렸다. 이 사이트가 ‘학교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커뮤니티의 운영자는 15살이고 스스로가 학교를 자퇴한 청소년이기도 하다. 그는 ‘학교밖의 길을걷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하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폐쇄조치가 이들을 소외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지난 7월, [아이노스쿨]은 새로운 서버를 구해 운영을 재개하면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자퇴·가출의 유도 및 그 부정적 파급효과는 여전히 우려된다"는 이유에서 이의신청마저 기각한다. 여기서 다시 묻는다. 청소년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인터넷인가, 아니면 사회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청소년 보호인가? 그리고, 정부의 인터넷 차단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2. 청소년과 인터넷

사실 자살 사이트 소동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 문제에 대처하는 데 매우 무능하다는 사실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자살 사이트 사건 이후 언론과 경찰은 자살, 폭탄, 음란, 언어 습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남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인터넷에서 찾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살 문제는 자살 사이트 사건 이전에 이미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었다. IMF 이후 경제난과 실업으로 자살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 원인으로 입시 부담 외에 왕따, 학교 폭력 문제가 지목되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자살이 사회적 문제라면 자살 문제에 대한 접근 역시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 사이트 사건 이후 기존의 이런 모든 진지한 접근은 주변화되었다. 자살한 사람이 자살 사이트에 접속한 것이 밝혀지기만 하면 모든 자살의 원인은 자살 사이트로 환원되었다. 하긴, 가정이나 사회가 문제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자살 사이트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훨씬 간편하다(?). 문제의 원인 만큼이나 문제의 해법도 간단하게 등장했다. 차단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해답이 될 수는 있어도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해법이다. 아니,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은폐한다.
청소년의 폭력과 자살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에 대한 해석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것은 청소년 보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로 청소년 보호가 주관심이라면 최소한 인터넷과 ‘더불어’ 무엇이 청소년들을 괴롭히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해볼 일이다. 또한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는지 처절하게 되물어볼 일이다. 그들의 진정한 관심은 인터넷의 정치에 있다. 인터넷의 통제권을 누가 쥘 것이냐를 둘러싼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정부와 경찰은 극단적인 사례들을 이용한다. 극단적인 사건들 만큼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을 극단적인 고통에 대해서는 토론조차 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오로지 인터넷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권을 정당화시키는 데만 연연하였다.
물어보자. 인터넷의 ‘나쁜 것들’은 인터넷이 창조해낸 것일까? 아니라면, 어째서 인터넷의 그 나쁜 것들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가? 그 나쁜 것들이 인터넷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초점은 그 나쁜 것들 자체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게 문제 해결의 수순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나쁜 것들을 없애는 문제보다는, 그 나쁜 것들을 실어나르는 미디어 – 즉 인터넷의 통제에 보다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못보게 함으로써 상상력을 제약하면서 일탈 행위의 확률을 줄이던 시대는 지났다. 인터넷 때문만은 아니며 이미 정보가 넘쳐나고 있는 시대 양식 때문이다. 결국 남는 문제는 고전적인 사상과 표현의 통제, 그리고 미디어 통제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근대사회 이후 인류는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합의해 왔다. 그런데 인터넷의 등장 이후 표현의 자유가 가장 논쟁적인 주제로 재등장한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무엇이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여전히 고전적인 것들이다. 제 몫을 놓치지 않으려는 국가 권력과 자본의 기득권은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마저 거슬러 자신들이 희구하는 대로 인터넷 구조를 재편하고자 한다. 청소년 보호 논리는 철저하게 이러한 맥락 안에서만 이야기될 뿐이다.
물론 지금 인터넷에는 여성에 대한 사이버 성폭력이나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우리 사회에 여성과 청소년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 많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 존재한다. 즉 그것은 현실 사회의 문제이며 인터넷이나 매체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 사회의 법과 제도가 여성과 청소년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 대한 성착취와 노동착취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청소년 보호가 ‘애들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지정해주는 것으로 그치면 된다는 매체 규제 위주의 발상은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이다. 청소년에게 신체가 노출되거나 성행위가 담긴 표현물을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어린 청소년들의 낙태와 미혼모 양산의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19세 미만까지의 원조교제는 엄단하는 시늉을 하면서 20세 이후의 매매춘은 솜방망이로 처벌하는 현행 법과 제도 하에서 인터넷만 규제한다고 과연 원조교제가 사라질 것인가? 의무교육 이후 방치된 청소년과 공교육이 책임지지 못한 자퇴, 가출 청소년들이 일찌기 노동시장에 뛰어들고 있는데 사회성이 있는 서적들을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하여 접촉을 금지하는 것이 청소년을 보호하는 방법인가? 문제 해결의 방법은 인터넷의 규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 사회의 법과 제도를 정말로 엄격하게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맞추어 검토하고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인터넷의 정치

여기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에 대한 ‘해석’ 싸움이 발생한다. 기술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표현의 수단이다. 누구나 비용이나 공간의 물리적인 한계 없이 자유로이 표현하고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편집자의 개입은 최소화되었다. 그 전파 속도와 범위는 어떤 매체보다 신속하고 넓다. 인터넷으로 인하여 우리는 뚜렷히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표현의 자유는 선언 뿐이었던 것이다. 선언과는 별개로, 표현의 물적 수단은 줄곧 언론과 권력의 것이었다. 이 권력의 불균형은 인터넷의 발명 이후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과거에는 편집자에 의해 선택되는 엄격한 사실 정보와 투철한 예술혼만이 ‘표현’으로 인정되었지만, 인터넷의 등장 이후 아래로부터 직접 생산되는 표현들 – 그래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고 가볍고 거친 표현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을 만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모든 종류의 표현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했을 때 규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누구에 의해? 어떤 기준으로?
여기서 국가 권력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자신들이 규제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의 강력한 저항이 이에 맞서고 있다.
이것은 자유권을 둘러싼 싸움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 간 인터넷의 내용규제를 둘러싸고 정보통신부와 사회단체 간에 일어난 갈등은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의 내용규제 모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이다. 인터넷의 등장 이전까지 대표적인 내용규제 모델은 공중파방송의 내용규제모델과 서적의 내용규제모델이었다. 공중파방송은 침투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가족이 함께 시청한다는 이유로 규제 기준이 엄격하다. 또한 전파가 희소하다는 의미에서 규제의 주체로서 정부의 행정적 권한을 폭넓게 인정해 왔다. 반면 서적에 대한 내용규제 모델은 문자해독력과 내용의 해석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수용자의 판단 권한을 존중해 왔고, 최소한의 규제 기준을 적용해 왔다. 즉 ‘불법’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출판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처럼 인터넷에서 ‘불법’을 넘어서 ‘불온’과 ‘유해’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내용규제 모델은 기존에 공중파방송에 적용되어 온 규제 모델이다. 정부는 인터넷에 공중파방송의 규제 모델을 적용하여 정부의 행정적인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전적이면서도 무난한 ‘청소년 보호’의 명분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당연히 방송과 다르다. 인터넷은 방송처럼 채널을 틀면 내용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책처럼, 이용자가 노력을 들여야 내용에 대한 접근이 가능한 매체이다. 인터넷이 방송처럼 엄격한 기준으로 내용을 규제당해야 하고, 또 방송처럼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비약이다. 인터넷의 내용규제는 사회적 토론과 합의 속에 형성된, 매체 특성에 맞는 합리적 규제 모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일련의 자살 사이트·폭탄사이트 등과 같은 ‘인터넷의 위험성’에 대한 센세이셔널리즘이 인터넷 내용규제 모델에 대한 사회적 토론조차 가로막아 왔다는 것이다.
청소년 보호는 정말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신자유주의적인 탈규제화가 방치하기 시작한 공적 영역에 대한 사적 통제의 수단으로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즉 과거의 통제가 직접적이고 공적이고 정치윤리적인 것이었다면, 지금의 통제는 시장에서 사적인 방식으로 사회윤리적인 가치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보호 논리는 이를 위해 동원된 명분이다. 정말로 청소년을 보호하고 싶다면,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의 노동 착취와 성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어느 정도로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봐야 한다.

4. 신종 검열, 기술 검열, 인터넷내용등급제

인터넷내용등급제란, 인터넷 홈페이지에 픽스(PICS)라는 전자적인 부호를 표시하도록 하고, PC방, 학교, 도서관 등 국민의 인터넷 접속점에는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차단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여 인터넷 접속을 선별, 차단하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김대중 정부는 11월부터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개의 카테고리 : 청소년유해매체 / 2개의 등급 : 여(y=1)·부(y=0)) 정부는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청소년유해매체물에만 적용될 것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하여 우리가 첫 번째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는 여기서 ‘청소년유해매체물’을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이겠다. 현행법대로라면 청소년유해매체물이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즉 정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을 의미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의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면 대한민국 국민은 – 특히 도서관, 학교 등의 공적인 청소년 출입장소는 – 청소년들의 접근을 차단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 이는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의 검열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성격에 대한 해석 문제이다. 사회단체들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성격을 일종의 행정행위를 하는 행정위원회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하여 모든 위원이 민간인이며 형사처벌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민간위원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모든 ‘민간인’ 위원은 정보통신부 장관에 의해 위촉되고 장관이 위원장을 승인한다. 또 모든 업무를 장관에게 보고한다. 물론 직접적인 형사처벌 권한은 없지만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16조의4에 따르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권고를 거부했을 경우 정보통신부 장관에 의해 서비스가 취급거부, 즉 폐쇄될 수 있다. 이 정보통신부 장관의 취급거부명령권은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가 1999년 위헌소송에 계류되도록 한 이유이기도 하다. 법학자들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말뿐인 민간위원회로서, 사실상 행정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해 왔으며, 이는 결국 사실상 정부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앞세워 검열 행위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해 왔다. 음반, 비디오, 영화, 단행본, 만화 등 다른 매체의 심의 기구들(간행물윤리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방송위원회 등)이 여러 사회운동진영의 노력으로 행정적 성격이 제거되고 위원의 선정 과정이 상당히 민주화된 것과 매우 대비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현재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판단 기준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청소년유해매체물은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소년을 소외시키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앞서 언급한 [아이노스쿨] 이외에도 몇가지 사례가 더 있다. 지난해에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팬클럽 사이트의 회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하여 올린 창작물, 소위 ‘팬픽’을 음란하고 동성애적이라 하여 일제히 단속하고 폐쇄시켰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오히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자신들의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강력하고 조직적인 항의 활동을 전재하였다. 청소년들의 항의 글이 쇄도한 정보통신부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 불능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정보통신부 관리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이들이 ‘훌리건’이며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논평하였다.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것이다. 현행 청소년보호법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시정조치들은 동성애를 변태성행위로서 그 내용의 음란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규정해 왔다.(엑스죤, 이반시티닷컴 등) 그러나 지난 6월 참세상 방송국과 인터뷰한 청소년 동성애 사이트의 운영자인 한 청소년은 "청소년 동성애 사이트가 생기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청소년 동성애자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우리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지금 행복한데 왜 이걸 깨뜨리려고 하는가? 우리가 우리를 표현할 수 없고 모일 수 없게 만들어버리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무너진다"라고 주장을 하였다. 경철할 대목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도 동성애 등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분명한 인권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담론은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가?
인터넷내용등급제의 두 번째 문제는 기술등급제라는 것이다. 세계최초의 시도로서, 정부는 형사처벌을 배경으로 이 기술등급제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등급제가 명분대로 청소년을 보호할수 있을지, 국민의 정보접근권과 알권리에 미칠 사회적인 영향 평가는 이루어진 바 없으며 사회적 토론조차 가져본바 없다. 차단 소프트웨어를 국가인프라에 설치하는 위험천만한 일이 ‘청소년보호’라는 미명하에 어영부영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일괄적인 방식의 기술 등급제는 PC방, 학교, 도서관 등의 인터넷 접속점에서 예기치 않은 효과들을 낳을 것이다. 일단 동성애 사이트는 무조건 청소년유해매체물이기 때문에 차단될 것이다. 그밖의 짐작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청소년 뿐 아니라 광범위한 국민의 인터넷 접근이 제한될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해외의 수많은 인터넷 내용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여부를 판단하고 픽스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많은 해외 인터넷들도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인터넷내용등급제의 핵심적인 문제는 ‘등급을 다는 것’보다 ‘차단 소프트웨어’를 까는 것이라 하겠다. 등급을 달아도 특정한 차단 소프트웨어를 통하지 않으면 등급의 효과가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는 그들의 차단 소프트웨어 보급에 상당히 신경을 Tm고 있다. 이 차단 소프트웨어는 PC방, 학교, 도서관에 널리 보급될 예정이다. 특히 지난 9월부터 음란물차단 소프트웨어를 깔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로를 물게 된 PC방의 경우 유료의 차단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권위를 가지고 무료로 배포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차단 소프트웨어를 대부분 채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정보통신부 장관고시가 시행된 11월 1일부터 지금까지 배포하고 있는 차단 소프트웨어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등급을 달지 않으면 차단하는 것을 기본(default)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본설정을 변경할 수 있는 설명이나 readme 파일은 제공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모든 홈페이지 운영자는 실수로, 혹은 의도적으로 미등급사이트를 차단하고 있는 차단소프트웨어를 비켜가기 위하여 자신의 홈페이지에 ‘청소년에게 유해함’ 혹은 ‘청소년에게 유해하지 않음’이라는 표식 중 하나를 선택하여 달아야만 한다. 자신의 홈페이지가 성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치적으로 청소년에게 유해한지 아닌지에 대하여 정부의 기준과 늘 비교해야만 하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지금까지 사용해온 ‘인터넷내용등급제’라는 개념은 현재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인터넷내용등급서비스(http://www.safenet.ne.kr)와는 다른 것이다.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인터넷내용등급서비스를 인터넷내용등급제의 대표형으로 제시하고 ‘인터넷내용등급제는 본래 자율적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내용등급서비스가 인터넷내용등급제의 한가지는 될 수 있겠지만, 현재 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인터넷내용등급서비스가 아니라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전자적 등급 표시에 대한 것이다. 굳이 부연하자면 이 등급서비스는 강제적인 등급제라 할 수 있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전자적 등급 표시와 동전의 양면이다. 일단 시행 기관이 같고 기술적 기반이 같으며, 하나의 차단소프트웨어(아직 배포되고 있지 않음)에 의해 차단된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인터넷에서 청소년유해매체를 선정하고 차단하는 등 실제적인 행정 행위를 하면서도, ‘내용등급서비스는 자율 규제’라는 말로써 등급제는 검열이 아니고 자신들은 검열기관이 아니라고 발뺌하고자 하는 것이다.

5. 나가며

"인터넷 규제 정책에 사회운동진영이 적극 개입하자"
"정부의 일방적인 인터넷 규제를 저지하자"
"대안적인 인터넷 규제 모델을 모색하자"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단적으로 ‘검열’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묘한 저항들이 존재한다. 특히 ‘자율적’인 기술의 명분이 그러하다. 인터넷내용등급제는 기존의 권위적인 검열과 달리, 시장에서, 기술적으로 이루어지는 내용 규제이다. 정부는 기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자율적이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규제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에도 ‘청소년들에게 유해하지 않은 홈페이지만 유통하라’는 노골적인 문구는 없다. 그러나 이 자율적 규제는 뉴미디어의 특성상 어찌할 수 없는 필연에 의하여 등장한 신종 검열이다. 공권력이 국경도 없는 인터넷의 수많은 컨텐츠를 과거와 같이 ‘사전에’ 빠짐없이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율적 규제’를 발명해 낸 것이다. 여기서 자율은 사적인 방식, 그리고 시장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장의 뒤에는 ‘청소년 보호’에 대한 형사 책임 – 철권을 숨긴 정부가 숨어 있다. 이것은 과거보다 더욱 교묘하고 강력한 검열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시장과 국가 권력이 자율이라는 이름 하에 결탁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검열조차 ‘자율’의 이름이라는 이름 속에 철권을 숨기고 민영화시켰다. 지금 인터넷의 검열이 가고 있는 방향은 인터넷만큼 진보한 ‘검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도전받고 있는 것은 ‘검열’은 곧 ‘사전 검열’이라는 견고한 해석이다. 국경도 없는 인터넷의 수많은 컨텐츠를 ‘사전에’ 빠짐없이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검열 방식이 등장했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무엇이 검열인가"의 해석도 달라져야 한다. 사전/사후의 시점보다는 그 ‘효과적’ 측면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처음의 질문에 답을 해 보자. 무엇이 청소년 보호인가? 청소년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인터넷인가 사회인가? 그리고, 정부의 인터넷 차단이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청소년은 인터넷 때문에 자퇴하거나, 가출하거나, 자살하거나, 살인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은 미디어이다. 이 미디어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자퇴와, 가출과, 자살과, 살인에 대한 책임은 우리 사회에 있다. 우리가 지금 그 책임을 인터넷에 돌린다면 그것은 책임 회피일 뿐이다. 물론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효과는 언제나 강력하다. 그러나 이 미디어의 사회적 효과를 통제하기 위하여 지금 정부가 동원하고 있는 ‘청소년 유해론’은 인터넷을 기존의 공중파 방송과 같은 매체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통제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다.
둘째, 문제의 해결은, 고전적일 지라도, 멀리 보고 길게 가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미디어 오용에 대한 문제는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학습과 해석 능력(literacy)을 통해 접근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미디어 환경 자체를 공적인 영역과 사회적 토론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 컴퓨터 교육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경쟁력 강화의 수단으로만 배치되어 기능적인 교육에 치우쳐 있다. 학교 인터넷은 과거 공기업이었던, 지금은 민영화된 한국통신에 학생들의 개인정보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보급되었다. 학생들이 처음 접하는 인터넷은 이미 시장인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학교교과과정에서는 논술 등을 통해 창의력과 사회비판능력을 신장시키겠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노스쿨]처럼 청소년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토론하고, 학교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는 사이트는 폐쇄시켰다. 공교육체계를 무너뜨리면서 학교로부터 청소년을 몰아낸 정권은 그들이 거리로 내몰아낸 청소년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노력조차 짓밟으면서 이를 청소년 보호라 강변하고 있다.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그들의 이중적인 청소년 보호 논리의 허구를 보여주고 있다.
현실의 법과 제도는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과 만날 때 많은 모순을 일으킨다.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때 일어나는 이러한 혼란에 적극 대응하여 그 사회적 의미와 올바른 해법에 대해 밝혀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혼란의 틈새를 비집고 정부의 규제 권한을 확대하고 있다. 인터넷 규제의 핵심은 규제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과, 규제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인터넷 규제의 주체가 정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규제의 기준으로는, ‘불법’ 이상의 ‘불온’, ‘반사회적’, ‘불건전’, ‘유해’와 같은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 반사회적이거나 유해한지와는 무관하며, 인터넷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인 해석과 개입의 여지를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이미 정부의 규제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해가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온라인 시위가 불법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 서버의 안정적 운영을 방해할 목적으로 대량의 신호 또는 데이터를 보낸 경우 징역 5년 이하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정보통신기반보호시설로 지정된 공공기관의 서버에 같은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징역 10년 이하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정보통신기반보호법)의 형사처벌에 처해진다.
인터넷은 어떻게 규제되어야 하는가? 인터넷에서 청소년과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는 어떻게 보호되고 그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가? 정답은 없다. 사회적 합의 이전에 이에 대한 사회적 토론조차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진영은 지금이라도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의 규제 정책에 대한 개입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일련의 자살사이트·폭탄사이트 등의 센세이셔널리즘은 인터넷 내용규제 모델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모호한 ‘청소년 보호’의 명분에 의해 중단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는 인터넷의 ‘포괄적인 위험’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포괄적인 규제’ 권한을 확대하고 있다. 인터넷내용등급제는 그 결정판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지금의 인터넷내용규제 모델은 청소년 보호의 대의와는 동떨어져 있다. 지금 청소년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시장의 위협이다. 사업의 자유를 위하여 지난 7월부터 청소년의 인터넷 서비스 가입 연령은 만14세 미만으로 조정되었다. 지난해부터 초·중·고등학교의 인터넷은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대가로 깔렸다. 또한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위협에 처해 있다. 특히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이것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의 청소년유해성에 대한 기준은 매우 자의적이며 자신들의 조수적인 혐오감 이외에는 자신들의 논리를 설명할 만한 관련 전문성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마땅히 해체시키고 민간자율적인 인터넷 내용규제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

<참고 자료>
방석호(2000), "’통신질서확립법안’에 대한 비판적 검토",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 개정에 대한 시민공청회}(2000.9.5 / YMCA 등 공동주최).
정영화(2001), "표현의 자유의 규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토론회 {김대중 정권 하에서 과연 ‘표현의 자유’는 존재하는가?}(2001.7.20 / 민족자주. 민주주의. 민중생존권쟁취 전국민중연대 주최).
황성기(2000), "사이버스페이스와 불온통신규제", {헌법학연구}(2000.11 / 한국헌법학회 제6권제3호)
Lawrence Lessig(1997), "Tyranny in the Infrastructure", WIRED 5.07(Jul 1997).

<자료> 가상시나리오 :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시작된 이후 일어날 일

1. 2002년 진보여고 양호교사인 김인교 교사는 개인적으로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과 피임 교육 사이트를 개설한 뒤 이를 운영하였다. 청소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자세한 설명과 그림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개설 직후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2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지 않기 위하여 "청소년에게 유해함"이라는 표식을 달아야만 했다. 그런데 등급을 달고서부터 이 사이트의 교육대상인 청소년들의 접근이 차단되었을 뿐 아니라 PC방과 학교, 도서관에 광범위하게 보급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차단소프트웨어로 인하여 일반인들조차 접속할 수 없었다. 이에 자세한 소명서를 덧붙여 절차에 따른 이의를 제기해 보았지만 과거 아이노스쿨이나 엑스존의 경우처럼 애초 유해 판정을 내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의신청 역시 기각하였다.

2. 인권대자보(가칭)라는 청소년동성애인권운동단체는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홈페이지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었다. 이에 이 단체는 즉각 항의를 하는 한편 청소년이 이 홈페이지의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해외 단체의 도움을 받아 홈페이지를 해외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몇달 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해외 인터넷도 차단하는 차단소프트웨어들이 확산되자 국내의 어떤 PC방, 학교, 도서관에서도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3. 새민주노동연대(가칭)라는 사회단체는 홈페이지에 접속이 잘 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접수하였다. 때마침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와 선전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홈페이지 운영이 중단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실태파악에 나선 이 단체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소프트웨어가 깔린 많은 PC방, 학교, 도서관에서 이 단체의 홈페이지는 "등급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접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차단소프트웨어에 등급을 달지 않는 홈페이지도 차단할 수 있는 옵션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강력하게 항의하였지만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등급을 달지 않은 홈페이지도 청소년유해 사이트와 마찬가지로 차단할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이용자 선택의 문제"라며 발뺌할 뿐이었다.

4. 유명 커뮤니티 포탈 사이트인 다음세이(가칭)에서는 개별 웹페이지 뿐 아니라 사이트 전체에 대하여 "청소년에게 유해하지 않음"이라는 PICS 부호를 달았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등급 기준을 충실히 따라 행여 일부 PC방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차단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뿐 아니라 이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이트 내용 중 일부라도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등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 자체적인 규제기준을 강화하고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게시물은 삭제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동아리는 모두 폐쇄하여 인터넷 ‘청정구역’을 유지하고 있다. 얼마전 피임과 낙태에 대한 자료가 올라오던 산부인과 간호사 모임을 폐쇄한 이후 네티즌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쳤지만 다른 커뮤니티 포탈 사이트들도 비슷한 정책을 취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기로 하였다.

5. 공공도서관의 사서인 도리씨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차단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이후 검색이 잘 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곧잘 접한다. 청소년석과 일반석을 분명히 구분한 후 소프트웨어의 옵션을 조정했을 뿐인데도 소프트웨어가 깔리지 않는 상태보다 접속이 잘되지 않는 사이트들이 많이 생긴 것이다. 이때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때로는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다거나 때로는 해외 인터넷을 관리하는 DB에 문제가 있었다는 소극적 답변만이 돌아올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현행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단소프트웨어를 깔아야만 하는 입장에서 도리씨는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취지가 오히려 정보 접근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끝>

2001-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