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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칼럼] 아시아 인터넷 권리 국제회의를 마치고

By 2002/01/12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인터넷 통제에 반대하는 아시아 지역 네트워크의 출발
-아시아 인터넷 권리 국제회의를 마치고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 antiropy@www.jinbo.net

지난 11월 8일에서 10일까지, 중앙대학교 학생회관 루이스홀에서 아시아 인터넷권리 국제 회의가 개최되었다. 일본, 홍콩,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몽고, 필리핀 등 아시아 10여개국, 20여명의 활동가들과 국제진보통신연합 APC의 활동가 등 약 40여 명의 정보통신운동 활동가들이 모인 가운데,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지적재산권 문제와 정보공유 등 인터넷 권리에 관련된 제반 이슈에 대해서 폭넓게 자국의 상황을 공유하고, 문제점에 대한 토론을 전개하였다.

각 국의 사회운동 네트워크의 협의체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는 인터넷 권리운동에 집중하고 있는 국제진보통신연합 APC(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tions, http://www.apc.org)는 유럽,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 각 대륙에 인터넷 권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올해 10월 APC의 회원 네트워크로 가입되었다.)인터넷 권리 프로젝트는 인터넷 권리에 관한 각 국 상황에 대한 조사, 이에 대응한 정책의 마련, 긴급 미러링(Morroring : 정부의 탄압 등 특정 홈페이지의 존립을 위협하는 긴급상황시, 다른 나라의 서버로 홈페이지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 시스템의 구축 등 인터넷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공동 활동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 아시아 인터넷 권리 국제회의는 아시아 지역의 인터넷 권리 프로젝트의 첫 단계인 셈이다.

이미 서로 연대 관계를 맺고 있던 활동가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활동가들이 처음 만나게 된 회의라는 점에서, 그리고 아시아 인터넷 권리 프로젝트의 첫 단계라는 점에서 이번 회의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주어졌다. 첫째는 각 이슈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보다는, 우선 인터넷 권리와 관련된 아시아 각 국의 상황 및 이슈들을 취합하는 것이다.

3일 동안의 회의 기간 동안, 내용규제와 표현의 자유, 감시와 프라이버시, 지적재산권과 정보공유, 인터넷 거버넌스, 정보격차와 보편적 접근, 사회운동과 인터넷 등 다양한 주제들이 폭넓게 다뤄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또한, 같은 이유에서 회의의 준비 과정에서, 가능한 한 많은 나라의 활동가들을 초청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회의의 모든 자료는 인터넷 상에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될 예정이다.(http://asia-ir.jinbo.net) 둘째는 활동가들의 만남 자체가 주는 연대감이다. 국내적인 여러 연대활동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국제적인 관계에서 직접적인 만남은 향후 연대활동을 할 수 있는 신뢰감의 기반이 된다.

따라서, 아시아 이터넷 권리 회의는 이번 단 한번의 이벤트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회의 마지막날 참가자들은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첫째는 메일링리스트를 통하여 아시아 지역 활동가들의 일상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갈 것이다. 둘째는 홈페이지의 자료를 보강하여, 국별, 이슈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것이며, 가능한 한 각 국의 언어로 번역을 할 예정이다. 셋째는 내년도에 차기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차기 회의는 동남아 지역이 될 전망이다.

첫 회의가 한국에서 개최가 되었고, 또한 인터넷 인프라의 상대적인 풍부함, 이에 따른 인터넷 이슈의 풍부함(?)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활동가들은 향후에 아시아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어떤 이슈가 있을 때, 이슈를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의 국제연대를 탈피하여, 이제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사업을 기획하고, 주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회의 다음날인 11월 11일, 일요일 오전에는 이 회의 참가자들이 인터넷 내용규제에 항의하며 60일 릴레이 단식 농성을 전개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지지 방문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인터넷 통제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 성명서는 9.11 테러 사태이후, 국가에 의한 인터넷의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에 반대하는 한편, 특히 한국에서 도입되려고 하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에 대해서 반대하며, 이에 대한 투쟁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인터넷 권리를 위한 네트워크의 구축은 이제 시작이다. 특히, 아시아 각 국의 정치적 불안정, 언어적 다양성, 경제적 빈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의한 억압 등 다양한 난관으로 인해 아시아 지역의 연대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비록 미세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처음 만나는 활동가들과 얘기하면서, 의외로 공통의 문제의식을 이미 공유하고 있음을 알고 놀라게 될 때, 연대 투쟁의 기반이 될 신뢰감은 이미 형성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 아시아 인터넷권리 국제회의 참석자들은 11월 11일 11시에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래와 같은 선언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추구는 인터넷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 2001년 아시아 인터넷권리 국제회의 참석자 선언

1.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몽골, 네팔, 필리핀, 스리랑카, 타이, 호주, 영국, 스웨덴, 미국, 한국 등에서 2001년 8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된 아시아 인터넷권리 국제회의에 참석한 우리는 각국의 인터넷 권리의 현황과 이를 증진하기 위한 과제를 논의하였다. 우리는 아시아 각국이 처해 있는 상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회의를 통해 인터넷 권리의 가치와 아시아 민중의 연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발표와 토론을 통해서 세계화가 아시아 민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아시아 민중들은 서로 협력하여 이 거대한 공격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고 인터넷은 이를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가능성 만큼 극복해야 할 과제가 더 많은 듯 하다. 좀더 많은 아시아 민중들이 보편적인 인터넷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적재산권이 아시아 민중들이 스스로, 그리고 세계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권리와 저렴한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를 제약하는 것은 매우 통탄할 만한 일이다.
국제적인 인터넷 거버넌스의 정책 결정에는 아시아 민중들의 입장이 반영되어야 한다.
또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은 보장되어야만 한다.

2.
지난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는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테러로 희생된 민간인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러나 연이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보복 공격으로 고통받는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삶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무엇보다 테러 방지의 명목으로 각국 정부가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감시를 강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무척 우려스러운 일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 추구하고 있는 정의롭고 인류애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의 기초인 시민권을 확보하는데 있어 커뮤니케이션의 권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3.
아시아 인터넷권리 국제회의에 참석한 우리는 최근 한국 정부가 시작한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해 반대한다. 정부의 검열은 인터넷의 불쾌한 내용들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과 청소년을 보호할 수 없다. 여성과 청소년, 그리고 모든 소수자들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이고 문화적으로 인터넷과 다른 전자 매체의 바람직한 사용을 지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길이다. 특히 차단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인터넷 접근의 차단은 매우 문제가 있으며 위험한 일이다. 한국 민중의 표현의 자유와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침해할 수 있는 정책은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믿는다. 이에 대한 추구는 인터넷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2001년 11월 11일
아시아 인터넷권리 국제회의 참가자 일동

200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