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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자유/칼럼]10대 문화는 <통신질서확립법>의 알리바이가 되어야 하나

By 2001/06/14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10대 문화는 <통신질서확립법>의 알리바이가 되어야 하나

전효관 (서울시 haja센터 부소장)

1. 또다시 쟁점이 된 ‘청소년 보호’라는 알리바이

정보통신부에서 <통신질서확립법>을 제정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보통신부 게시판이 이에 항의하는 10대들의 글로 그야말로 쑥밭(?)이 되고 있다. 정부가 청소년 보호를 위해 등급제를 도입하고 음란 사이트 차단 소프트웨어 설치를 검토한다고 알려지면서 10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부 게시판에는 <팬클럽이 단결하여 질서확립법 끝장내자>, <누가 우리를 보호합니까>, <청소년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어른들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까>, <너희들은 권력, 명예, 돈 이런 쓰레기들만 가져도 되지 않나> 등의 힐난과 주장이 숱하게 올라오고 있다. 검열 반대와 표현의 자유를 기치로 내건 10대의 ‘정치적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통신질서확립법>의 제안 취지에 보면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한지를 선별하여 여과할 수 있는 장치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또 다시 규제와 통제의 알리바이로 청소년 문화가 논란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 문화에 대한 형사정책적 접근이 이른바 건전한 청소년 문화 육성과 보호를 이유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으로 온라인 상의 법적 검열과 통제가 정당화되고 있는 셈이다.

2. 10대의 성장에 역행하는 통제의 논리

하지만 이제 통제를 위한 정당화 논리는 예전처럼 작동할 수가 없다. 10대들의 항의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동원체제와 도덕주의적 문화 통제의 허구성을 깨닫고 있는 10대의 존재다. 10대가 ‘보호’를 통해서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보호’ 논리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자율성을 얻는 현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건전한 사회 윤리 확립을 위해 온라인 상의 표현을 규제한다는 발상이 가지는 허구성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일상의 말과 표현은 사회 생활의 반영일 수밖에 없으며, ‘거칠고’ ‘저속한’ 언어는 거칠고 저속한 사회 논리의 반영이라는 점. 따라서 저속한 사회 논리에 메스가 가해지지 않고서는 언어는 ‘정화’ 될 수 없다는 점. 건전한 사회 윤리에 대한 강조는 구조의 문제를 도덕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며, ‘일상 언어’에 대한 통제는 일상에 대한 정치적 통제에 다름 아니라는 점 등.

10대가 사회적 주체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국면에서 정보 검열의 논리는 충돌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최근 <청소년보호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보호’라는 컨셉은 ‘미성숙’한 주체를 전제하고, 그 결과 10대의 자율적 성찰 능력의 향상에 반작용한다. 나아가 검열과 통제라는 사회적 장치는 ‘마음의 검열’을 일반화시켜 사회적 소통 능력을 황폐화시킨다. 등급제와 차단 장치가 청소년의 접근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 결과는 스스로의 검열 장치를 가동시켜 사회 전체의 의사소통 능력을 제한하게 될 것이다.

10대의 문화가 몇 가지 사회적 소동을 일으켰던 사건 수준으로 과잉일반화되는 것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우리가 채택해야 할 입장으로서도 적절하지 않다. 미디어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특징지워지는 정보화와 전지구화의 과정은 10대 문화를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경계 내에 더 이상 존재하도록 하지 않는다. 아직도 가두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나이브하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있으며 서로 관계를 맺고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러한 10대 문화의 성장 과정은 사회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과 소화 능력을 신장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핵심적인 문제는 이러한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에 있지, 어떤 획일적인 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10대는 이미 단일한 정체성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획일적인 기준에 의한 판단이 어떤 10대에게는 부당할 수 있으며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만일 사회적으로 10대를 보호하려면 좀더 적극적인 의미의 환경 개선과 사회적 질의 성숙을 통한 설득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3. 혼란과 갈등은 사회적 가능성일 수 있다

10대문화의 성장은 근대화/탈근대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제 3세계의 특수성과 전통의 존재가 10대 문화의 성장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10대 문화의 자립화 경향성을 제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세대 갈등은 불가피하고 전면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세대 사이의 갈등은 어느 한 세대의 기준이 강압적으로 제시되는 한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다.

<통신질서확립법>에 대한 10대의 항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10대가 문제를 보는 방식을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정도의 사회적 역량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10대의 언어, 10대의 성 정체성의 문제가 논점을 형성하고 있고, 이에 대한 개인적 판단은 서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사법적 처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것은 국가적 질서 유지의 기능의 적정성 문제이며 그 방식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의 문제다.

문제는 어떤 입장에 서는지 혹은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10대 문화에서 나타나는 ‘우려할 만한 징후’에서 법과 형사정책적 접근을 택하느냐, 아니면 10대 문화가 보이는 일반적 경향의 차이를 사회적 가능성으로 보는 관점을 채택할 것인가는 21세기를 설계하는 우리 사회에서 비켜갈 수 없는 정치적 문제인 셈이다. 서로 다른 차이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을 디자인하지 못하는 한 청소년 문제는 계속 ‘문제’로만 생산될 것이며, 그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가능성은 획일주의 앞에서 질식할 것이다. 따라서 혼란과 갈등이 사회적 가능성일 수 있다는 적극적 인식 전환이 선결되지 않고서는 어떤 비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통신질서확립법>의 발상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001-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