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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칼럼] 네트의 기생수, 날강도 그리고 반칙왕을 조심하라!

By 2001/04/0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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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의 기생수, 날강도, 그리고 반칙왕을 조심하라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미국의 좌파 지리학자인 데이빗 하비는 몇 년전 한 알튀세리앙의 잡지에 실은 그의 글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미래상을 점검하면서 자본주의를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기차"와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는 인간 삶과 의식의 미시적인 결 하나 하나에까지 자본의 거대한 기차가 무참하게 휩쓸고 지나감을 의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브레이크 없이 휘몰아가는 현대 자본주의의 의식적 체제 ‘동원'(mobilization)의 속도전을 연상시킨다. 이는 물질과 의식 모든 영역에서 질곡을 만들어가는 자본주의 미래의 우울한 비전이다. 미래에 대한 암울한 비전은 희망의 가능성을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출발하지는 않는다. 항상 그 둘의 긴장 관계를 놓치지 않는다. 예컨대, 인터넷이란 새로운 매개체를 통해 우리는 억압과 희망의 꿈을 동시에 꾼다. 마찬가지로 이 꿈은 분명 미래에 대한 전혀 근거없는 상상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즉 현실에 근거한 꿈이고 그래야만 한다. 미래의 감지는 그래서 냉혹하다.

1. 산소같은 기생수(寄生獸)

현재 남한 국민 3명 중 1명이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 추세대로 가면 내년 상반기에 인터넷 인구가 2500만명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이 작은 나라에서 인터넷은 우리의 미래의 사활이다. 광고, 쇼, 퀴즈, 뉴스 할 것 없이 인터넷에 광분하고 있다. 코스닥이 생기고, 수많은 벤처에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N세대가 격상되고, 젊은 벤처사장이 잡지의 표지 모델을 장식한다. ‘정보사회’론도 이제 한물간 논의가 되어버렸다. 요즘은 노골적으로 ‘신경제’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앞세워, 경제 논리를 그 중심에 세워버렸다. 미국 다음의 인터넷 강국이란 수식어도 나온다. 이제 386세대의 귀하신 몸들은 운동의 전망을 벤처에서 구상한다. ‘정보’, ‘신(新)’, ‘지식’ 등의 수사는 대학의 학과 명칭, 학제 등 온갖 곳에 달라붙는다. 이 수사 없이는 우리는 미래에 숨도 쉴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마치 MIT 컴퓨터사이언스 랩의 마이클 더투조스가 미래 컴퓨터가 사물 속에 이동하고 감춰지는 미래를 예측하며 내놓은 ‘산소 프로젝트’처럼, 이 정보의 수사들은 우리 인간의 ‘산소’ 역할을 자임한다.

그 기술적 미래의 판단을 유보하더라도, 앞서 열거한 남한 현실의 ‘산소 프로젝트’들은 ‘동원’의 체제 논리이다. 어디서든 발견하고 유포되는 ‘산소’라고 주장하는 것들. 정보의 수사는 산소와 같이 육신의 영위를 조율하는 자원이 아니다. 마치 이와아키 히토시가 그린 ‘기생수’에 가깝다. 현재의 과도한 수사들은 외계생물로 인간의 몸에 기생하여 인간을 장악하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괴물과 같은 ‘기생수’다. 그들에 의해 자율 신경이 장악당한 인간처럼, 정보의 수사는 그렇게 유포된다. 인터넷을 둘러싼 논의는 계속적으로 기생수들의 장악 과정에 처할 것이다. 사방팔방 매체들을 점거한 기생수들의 프로파겐더는 그들이 단지 인간들에게 산소같은 존재임을 설득하는 장미빛 메시지로 가득찰 것이다.

2. 코드를 휘두르는 날강도

이제 인터넷에서 장사하던 닷컴들의 사망 신고가 줄줄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슈퍼닷컴’들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얘기다. 현실 자본의 규모 논리가 닷컴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소리다. 인터넷이 희망과 경쟁의 프런티어인 시대가 진정 몇 년이던가. 자본주의의 산업혁명 시기 이후 자본의 역사를 상기만 해봐도 이렇게 독점의 구도가 철저하고 빠르게 엮어지진 않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오히려 이 새로운 디지털 경제의 시대에 독점을 뒤엎는 기회가 더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근거는 기술적 ‘코드’에 있다. "삼성의 기술이 만들면 ‘표준’이 됩니다"라는 광고의 사기성 발언은 사실 이에 근거한다. 독점이 기술적 코드를 장악하면, 이를 뒤집는 작업은 극히 힘들어진다. 이런걸 가지고 신경제 이론하는 자들은 ‘록인'(lock-in)이라 부른다. 안에서 걸어 잠근다는 얘기다.

최근 신경제와 관련한 재밌는 글을 서술한 하버드대학의 로렌스 레씩 또한 ‘코드’의 논리가 신경제 논리의 핵심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자본 독점체가 장악한 기술적 코드는 표준이 된다. 주먹과 힘의 현실 논리가 닷컴들에 누적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삼성이 ‘국내’에서 표준을 호언장담하는 카피 문구는 공식 협박이기도 하다. 날고 기어봐야 사실상 삼성의 손바닥에 있다는 얘기다. 로베르토 디 코스모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는 ‘날’로 먹는 ‘강도’의 논리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더욱 찾기 힘들어진 자본주의의 미래는 이렇게 또 다시 기술적 코드로 힘을 배가한 디지털 ‘날강도’들의 자본 증식과정의 연장일 수 있다.

3. 포크를 휘젓는 반칙왕

인생살이의 쓴맛처럼, 외연상 인간에게 미래의 억압과 희망의 가능성, 즉 ‘양날의 칼’로 보이던 것들이억압의 식칼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버팅기는 다수의 자율적 힘에도 불구하고, 삶의 모순이 착착 쌓여 고스란히 네트에 실려 우리의 등짝을 억누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링 위에서 페어플레이를 순진하게 요구하다 ‘반칙왕’의 흉기에 무참히 마빡이 깨지듯, 장미빛 가능성을 포함한 미래 예측의 순진한 구도는 링 안과 밖에서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자본의 반칙을 충분히 전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각자의 마빡이 터지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칙왕’이 휘젓는 포크를 조심해야, 이 괴물을 때려눕힐 수 있다.

2001-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