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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칼럼] 새로운 인터넷을 꿈꾼다 – 그누텔라와 프리넷

By 2001/04/0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새로운 인터넷을 꿈꾼다 – 그누텔라와 프리넷

노경윤 (진보네트워크)

인터넷을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network of networks)’라고 할 때, 전자의 ‘네트워크들’은 인터넷이라고 하는 (가상의) 거대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지역 수준의 중소규모 네트워크들을 지칭한다. 전세계의 인터넷이용자들은 이 지역 네트워크들에 개별적으로 연결할 뿐이고, 다시 이들의 연결망으로 이루어진–그러므로 그것들 전체를 포괄하는– 또다른 (가상의) 네트워크를 우리는 인터넷이라고 부른다. 인터넷의 물질적 기초가 되는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이와 같은 개념은 앞으로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인터넷을 서로 이질적인 네트워크들이 함께 통신할 수 있는 TCP/IP라고 불리우는 공통의 규약(프로토콜)으로 설명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의 교환방식에 주목한다. HTTP, Mail, Usenet, FTP, TELNET 등이 현재 많이 쓰이고 있는, TCP/IP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프로토콜들이다. ‘클라이언트/서버(Client/Server)’ 모델이라고 불리우는 이 프로토콜들의 특징은 정보의 교환을 일종의 역할배분으로 정의한다. 즉 발신자와 수신자의 역할이 나뉘어져 있고, 이 사이에 오가는 모든 비트는 자신이 (서버에 보내는) 요청(Request) 정보인지 (클라이언트에 보내는) 응답(Reply) 정보인지에 대한 꼬리표들을 각각 달고 있다. 모르긴 해도 가까운 미래에 이 개념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처음 이 변화의 물꼬를 튼 것은 션 패닝(Shawn Fanning)이라는 대학생이 만든 냅스터(Napster)라고 하는 음악화일 전송 프로그램이었다. 개인 이용자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있는 자료들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이 프로그램은 서버에 과중한 트래픽 부담을 주지도 않으며, 이용자들에게 정보의 제공자 역할과 더불어 트래픽 부담까지 모두 전가시킬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고안했다. 냅스터의 중앙 서버에 접속한 순간, 이용자들은 자신이 공개하고 싶은 화일들의 목록을 등록하고, 다른 사람들의 목록을 검색할 수 있다. 화일의 실제 전송은 이용자들간에 직접 일대일로(peer to peer) 이루어진다. 물론 이러한 정보교환 모델이 투자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사업모델이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반대편에서 이것은 안 그래도 디지털 저작물들의 불법 유통 문제로 심사가 어지로운 레코드 업계를 분노시키기에 충분했다. 냅스터가 저작권법 위반을 부추긴다는 혐의로 미국음반산업협회(RIAA)는 사이트 폐쇄 요청 소송을 냈으며, 메탈리카(Metallica)와 닥터드레(Dr.Dre)는 이러한 불법을 방치한 3개 대학교와 냅스터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냅스터가 직면한 법적 재제 위협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수많은 냅스터 클론(clon)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랩스터(Wrapster), 아이메쉬(iMesh), 스핀프렌지(SpinFrenzy), 그놋(Gnot), 그누텔라 등 냅스터의 아류들은 정보교환 방식에 있어 냅스터가 제시한 혁명적인 발상을 보다 극대화하는 방식을 통해 역으로 저작권법의 위협을 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냅스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법적 위협의 근거는 중앙의 서버가 이용자들의 화일 목록에 대한 검색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저작권법을 우회하는 위반행위를 촉진시킬 수 있는 장치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업의 주체가 분명하기 때문에 법적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다는 점이었다.

냅스터와 비슷한 기능을 가지면서도 법적 책임의 소재를 간단히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이 사업에 오픈소스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다. MP3 플레이어 방면의 카테고리 킬러인 윈앰프(Winamp)로 유명한 널소프트(Nullsoft)가 최초의 베타버젼을 공개한 이래, 오픈소스 형식으로 계속 새로운 버젼이 나오고 있는 그누텔라(Gnutella)는 냅스터 클론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들에 대한 광범위한 지원을 위해 설립된 슬래쉬돗(SlashDot)에 이 소식이 전해진 뒤 널소프트사의 웹싸이트는 시험버젼을 다운받으려는 오픈소스 매니아들로 넘쳐났다. 널소프트와 워너뮤직(Warner Music)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아메리카온라인(AOL) 경영진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문제의 화일은 재빨리 철수시켰으나 때는 이미 오픈소스 진영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MP3 재생 분야를 선도하는 기술력과 함께 샤우트캐스트(ShoutCast)와 같은 실험적인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발전시켜 온 널소프트 연구진들임을 감안할 때 혹시나 슬래시돗과 모종의 사전협약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미완성의 시험버젼이 정확히 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돌아갔다는 점이다.

그누텔라는 중앙에 서버를 두지 않는 대신 이용자들 스스로 직접 상호관계를 맺어야만 참여가 가능한, 완전한 이용자 중심의 네트워크를 표방한다. 관리자나 운영주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냅스터가 MP3 화일만을 대상으로 했던 것에 비해 그누텔라는 화일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너의 친구는 곧 나의 친구’라는 말이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누텔라 네트워크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에 이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 한 대의 인터넷 주소(IP)만 알면 그가 속한 네트워크 전체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누텔라 소프트웨어를 통해 연결된 네트워크에는 어떠한 중심도 위계도 없기 때문에 이용자의 입장에서 감수해야 할 불편이 많다. 무엇보다도 냅스터에 비해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서버에 접속하여 화일 목록을 등록하고 서버를 통해 화일에 관한 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냅스터에 비해, 그누텔라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서버–법적 위협의 불씨가 되기도 하는–가 없기 때문에 한번 자료를 검색할 때마다 이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컴퓨터들을 일일이 뒤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네트워크는 검색질의를 위한 패킷이나 프로그램이 실행되었을 때 네트워크에 진입했음을 통보하는 작은 패킷들로 넘쳐난다. 중력 이탈로 생긴 이같은 데이터 유영이 전체 네트워크 트래픽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행만 시켜놓고 아무일도 하지 않는데도 나와는 관계없는 패킷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내 네트워크를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자원의 손실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조건없는 개방을 이념으로 하는 그누텔라 네트워크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누텔라의 이념은 참여자의 네트워크 손실을 통해 유지될 수 있으며 이용자가 늘수록 불가피하게 더 많은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체 네트워크와는 무관한 폐쇄된 소규모 네트워크를 통해 불가피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상호신뢰로 형성된 커뮤니티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앞서 말한 네트워크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원하는 상대의 IP 주소를 알아야 하므로 모뎀 접속자들 같은 동적 IP만으로 연결된 이용자들간에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고정 IP를 가지고 있으면 이를 기반으로 얼마든지 소그룹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물론 이중에 한 명이라도 다른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다면 이 두 네트워크는 하나로 합쳐진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누텔라 네트워크란 그누텔라를 기반으로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새로운 네트워크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실상 ‘그누텔라들의 네트워크들’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이 네트워크는 ‘클라이언트/서버’ 모델이라는 고전적인 모델을 탈피하고, 모든 네트워크 참여자들간에 구분없이 자유로운 정보교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일정한 네트워크 손실을 감수해야 참여할 수 있는 이 네트워크에서는 모두가 정보의 주인이고 또 고객인 셈이다.

한편 그누텔라가 화일전송 부분에서 일으키고자 한 혁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아예 인터넷 자체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름 그대로 자유로운 인터넷을 꿈꾸는 영국의 프리넷(Freenet)은 도메인 네임시스템(DNS)이나 인터넷 주소 체계(IP)와 같은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이 필요없는 새로운 모델을 실험 중에 있다. 호주 정부의 정보 검열법 도입에 격분한 아일랜드 출신의 프로그래머 이안 클라크(Ian Clarke)를 위시한 일단의 프로그래머들은 네트워크상에서 이용자 추적이 불가능한, 높은 수준의 암호화를 기반으로 완전한 익명성을 보장하는 네트워크의 개발에 착수하여 현재 서버용 시험 버젼을 발표한 상태다.

아직 클라이언트 버젼이 발표되지 않았으므로 어떤 식으로 이 네트워크가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미리 얘기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정보교환 모델에 관한 기본적인 아이디어에 있어 프리넷의 방향은 그누텔라와 대단히 유사하다. 다분히 소모적인 방식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겠지만, 단일한 중심에 근거하지 않고 참여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유지되는 네트워크라는 점에서 특히 권력의 개입을 원치 않는, 정보보호가 관건으로 하는 소그룹 네트워크에 탁월한 유용성을 가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누텔라나 프리넷 같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참여자 중심의 네트워크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명한다. 전자개척자재단(EFF)의 알렉스 파울러(Alex Fowler)는 와이어드뉴스(Wired News)와의 인터뷰에서 검열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큼이나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낸다"며 "싱가폴이나 중국과 같은 네트를 검열하고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나라들에나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Media Lab)의 음악기술연구원인 에릭 샤이러(Eric Scheirer) 역시 "흥미로운 실험"이긴 하지만 "(저작권법 위반과 같은) 약탈짓이나 광적인 프라이버시 옹호자들의 소규모 커뮤니티에서나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들에 대해 프리넷의 개발자인 이안 클라크는 씨넷(C|NET)과 가진 인터뷰에서 "프리넷은 정보의 가치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는다"며 "네트워크는 대중성에 기초하여 정보를 판단한다. 만일 인간 본성이 포르노그래피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면, 포르노그래피는 프리넷의 매우 큰 부분이 될 것이다"고 일축한다. 이안 클라크가 열렬한 아나키스트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만일 그의 실험이 제대로 성공한다면 아나키의 전당에 모셔도 좋을 것 같다.

그누텔라와 프리넷 모두 기존의 통신모델을 파괴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새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그누텔라가 부분적으로 화일전송 프로토콜(FTP)에 대한 대체물이라면 프리넷은 인터넷과 대등한, 그러므로 인터넷 자체에 대한 대체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매체를 갖는 사회를 꿈꾸었던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이상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네트워크상에 자신의 노드(node)를 갖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이와 같은 도구들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노드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아직 네트워크 인프라는 충분히 민주화되었다고 보기 힘들지만 적어도 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활동들에 있어 그누텔라나 프리넷이 의도하고 있는 변화의 폭과 깊이는 일반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가 우리에게 보여준 해방적 가능성의 하나는 작고 연약해보이는 것들도 모이면 엄청난 힘이 된다는 것, 그리고 이 힘에 대한 접근이 한결 쉬워졌다는 점이다. 내가 가진 약간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방대한 정보시스템에 대한 이용권한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매력 포인트다. 그런 의미에서 흔히들 인터넷을 분산 네트워크라고 말하지만 실상 인터넷의 폭발적인 확산을 가능케 한 것은 사방에서 넘쳐나는 탈중심들을 관리하는 집권화된 중심의 소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소수의 관리자들에 의한 감시와 검열, 통제가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애초에 중심을 가정하지 않는, 그래서 통제의 손길을 무력화시키는 시스템을 구상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인터넷이 연구자들의 소규모 그룹 네트워크에서 급격한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오프라인에서의 독점세력과 정부권력에 의한 정보 통제에 대한 불안이 점증하고 있고 일부는 이미 현실로써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ICANN을 중심으로 인터넷 가버넌스(Internet Governan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때, 직접 인터넷의 내부에서 검열과 통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독자적인 네트워크에 대한 대안을 갖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그러므로 의견수렴과 더불어 많은 토론과 합의의 여지를 가진, 그누텔라와 프리넷이 성취할 해방적 가능성에 주목해보길 바란다.

Gnutella – http://gnutella.wego.com/
Freenet – http://freenet.sourceforge.net/

2001-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