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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의견]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

By 2000/12/0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

제출일자 : 2000. 12. 5

현재 국회 과기정통위에서 심의 중인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은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기술 개발 및 공정한 이용을 심각하게 저해할
위험이 있어 아래와 같이 의견을 개진합니다.

1. 컴퓨터 프로그램보호법의 목적은 프로그램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프로그램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여 프로그램 관련 산업과 기술을 진흥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법 제1조). 그런데, 개정안은
프로그램 저작자의 권리 보호에만 편중되어 있고, 프로그램의 공정한 이용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보호법에 의해 부여될 수 있는 것
이상의 권리를 프로그램 저작자에게 부여함으로써 법 목적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현행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올해 1월 28일 개정되어 7월 29일 시행된
것인데, 현행법의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과 몇 달만에
개정하려는 것은 이 법안의 개정이 얼마나 일관성없이 추진되고 있는가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그 제안이유에서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하고 있으나, 실상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에 불과합니다. (9. 29일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개정 공청회’에서 발표된
‘지식정보화사회와 지적재산권보호정책’을 보면, 개정 사유로 ‘미국은 개정법의
일부 내용에 관한 이견을 제시하여, 6. 28일 제네바 WTO TRIPs 회의에서 미측
의견의 일부를 수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국내적으로는
충분한 연구 검토가, 그리고 국외적으로는 외교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사안이,
외국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개정안의 내용은 지난
96년 WIPO 저작권 협약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아직 국제적으로도 일반적으로
채택되지 않은 조항들입니다. 조약에 의해서 강제되지도 않는 조항을, 우리나라
실정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성급하게 도입할 이유는 없습니다.

2. 이번 개정안에서 우려스러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프로그램코드 역분석 (‘제2조제10호 프로그램코드역분석(逆分析)에 대한
정의’, 제12조6호 및 ‘제12조의 2 프로그램코드 역분석’ 제12조 제6호)

1-1) ‘프로그램코드의 역분석'(reverse engineering)이라 함은 이미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부터 그 해법이나 기타 특정요소를 연구, 분석, 교육을 위해 거꾸로
뽑아내는 작업으로, 컴퓨터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공학의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방법입니다. 이는 기존의 성과를 분석함으로써, 더 진보적이고, 창조적인
산물의 생산을 가능하게 합니다. 역분석을 금지한다면, 특정 기술의 선발주자에게
계속적인 우위를 보장하게 됨으로써, 경쟁의 활성화와 후발업체의 성장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개발 역시 가로막게 됩니다.

프로그램 코드의 역분석(reverse engineering) 문제는 목적 코드(object code)를
소스 코드(source code)로 역변환(decompile)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제·번역·개작을 허용할 것인가에 있고, 역분석 과정을 통해 새롭게 제작된
프로그램이 프로그램 저작권을 침해하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분석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나 기본 원리를 이용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 그 프로그램이 원저작물과 동일성의 범위에 해당하여 프로그램
저작권을 침해한다면 이것은 역분석의 허용 범위와는 별도로 침해 여부를
판단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역분석의 허용 문제는 프로그램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 측면보다는 프로그램의 공정 이용 측면에서 검토하여야 합니다. 즉, 비슷한
생산물을 생산,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면, 역분석을 이용하여 아이디어를 얻고
다른 생산물이나 더 나은 생산물을 개발, 창조하는 것은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합니다.

1-2) 현행 프로그램보호법은 제12조(프로그램저작권의 제한)의 6호에서
공정이용으로서의 역분석을 규정하고 있고, 시행령에서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제2조의 10호에서 역분석을 정의하고 있고,
제12조의 2 (프로그램코드역분석)를 신설하였는데, 그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현행 시행령의 역분석 정의와 개정안의 역분석 정의가 같지
않아서, 해석에 있어서 혼동을 야기할 우려가 있습니다.

1-3) 만일 제12조의 6호가 공정이용으로서의 역분석을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이고, 이와 별개로 제2조의 10호와 제12조의 2가 영리적 이용에서의 역분석을
규정한 것이라고 하면, 즉 제12조의 2에 의해서 제12 6항이 제한되지 않는다면,
이 조항에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제12조의 2에 의해서, 응용 프로그램이 아닌 운영체제 프로그램에 역분석을
적용하는 것은 차단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와 별개로 프로그램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공정 이용에 대한 일반 조항을
두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1-4) 만일 제12조의 2가 역분석에 대한 포괄적 규정이라면, 공정 이용을 막고
프로그램 개발을 저해할 수 있는 큰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프로그램코드의 역분석’을 ‘호환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라고 좁게
정의(제2조제10호)하고 있고, 제12조의 2에서는 ‘정당한 권원이 있는 자가
프로그램 호환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는’ 경우로 역분석이 가능한
범위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또한, 역분석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개발, 제작’하는
행위까지 저작권 침해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정 내용은 1) 연구, 교육
목적을 위한 역분석 행위까지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12조의 규정과 저작권법에
규정된 공정 이용의 범위와 형평에 맞지 않으며, 2) 원래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것 이상의 권리를 프로그램 저작권자에게 부여할 수 있는 위험한 제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역분석을 개정안과 같이 프로그램 호환의 경우로만 제한하면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 아이디어와 원리에 대해 저작권자가 실질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어 경쟁 질서를 저해하며 프로그램의 공정한 사용을
방해하고,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기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역분석
행위가 타인의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등의 위법성이 없는 경우 산업분야에서
일반적으로 허용되고 있는데, 유독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역분석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프로그램의 특수성에도 맞지 않습니다. 또한, 운영체제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역분석이 완전히 차단되어, 프로그램 저작자의
불공정경쟁행위를 조장할 수 있습니다.

3) 제30조(기술적보호조치의 침해등의 금지)의 ②
개정안은 제30조의 ②를 ‘주로'(개정 이전은 ‘오로지’) 기술적보호조치를
무력화하는 기기,장치, 부품으로 개정함으로써, 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을
확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로’라는 애매한 용어로 그 범위를 확대한다면,
기술적보호조치의 무력화 외의 다른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기기 등까지
제약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저작권의 보호를 위해 다른 정당한 사용을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주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확정하기
곤란하므로, 이는 죄형법정주의가 요구하는 명확성의 원칙에도 반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제30조는 제46조에서 규정하는 형사처벌의 대상입니다.)

또한, 이러한 기기, 장치, 부품 등을 공중에 ‘양도, 대여, 유통’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에서, ‘제조, 수입’하는 행위까지 금지행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 수입은 다양한 목적(예를 들어, 공정이용이라 할 수 있는 연구,
개발, 혹은 개인적 이용)을 위해 행해질 수 있으며, 이 자체가 저작권의 침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개정안은 ‘기술을 제공’하는 것까지 금지함으로써, 기술적 보호조치의
무력화에 관련된 거의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폭넓은 규정은
애초 목적인 저작권의 보호를 넘어, 정당한 이용권리마저 침해할 뿐 아니라,
연구, 개발, 교육 등 이용자의 다양한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기술 개발 마저
저해할 위험이 있습니다.

3. 이 개정안은 아직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므로,
통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국내 실정에 대한 조사,
연구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다시 입안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위에 지적된
조항은 개정되지 않아야(혹은 신설되지 않아야) 함을 제안합니다.

남희섭 (변리사)
우지숙 (서울여대 교수)
공유적지적재산권모임 IP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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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