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자료프라이버시

[프라이버시] 정보의 자기결정권과 암호 – 박민성

By 2000/05/0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요 약

암호는 군이나 정보기관과 같은 특수한 영역에서만 사용되던 것이었으나,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도구가 되었다. 이처럼 암호사용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정보기관을 포함한 국가기관, 새롭게 암호를 사용하게 된 일반 시민 그리고 암호제품을 개발·판매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기업간의 이익 대립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국내 암호정책에 대해 이 삼자 모두가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글은 정보적 자기결정권의 입장에서 이 세 이익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다.

정보적 자기결정권은 독일 인구조사법에 대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구체화되었다. 정보적 자기결정권을 간략히 요약하면, 자신의 정보가 타인에 의해 침해되는 것으로부터 방어할 소극적 방어권, 타인이 소유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적극적 참여권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정보가 잘못된 경우 이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결과제거청구권을 포함하는 정보사회의 기본적 인권이다. 그리고 정보적 자기결정권은 헌법 제38조 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서 비례성 원칙에 따라 법률로써만 제한될 수 있으나, 그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

여기서 비례성원칙이 정보적 자기결정권의 보장과 제한의 양자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례성원칙은 적합성원칙·필요성원칙·균형성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암호 사용자에게 복구정보를 제공하도록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는 강제적 키복구 제도는 정보적 자기결정권을 반비례적으로 침해하는 제도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강제적 키복구제도를 회피할 기술적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즉 범죄자가 키복구기반에 참여하지 않고 암호를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탐지할 기술적 수단이 현재 상태로서는 없다는 점이다. 둘째, 강제적 키복구제도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세계 각국도 강제적 키복구제도를 도입해야만 하는데, 선진국의 추세는 자발적 키복구제도를 채택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법집행력 확보라는 목적을 위해 강제적 키복구제도는 그 적합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셋째, 강제적 키복구제도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철저한 보안이 필수적인데 이를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또한 강제적 키복구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법경제학적으로 의문시된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이와 아울러 보안과 비용은 반비례관계에 있으므로, 철저한 보안과 저렴한 비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 또한 어렵다. 결국 균형성 원칙에 반할 위험이 크다.

이처럼 강제적 키복구제도가 기술적으로도 그리고 법적 측면에서도 도입될 수 없다면, 자발적 키복구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자발적 키복구 제도를 취하게 되면, 국가안보와 법집행력의 확보문제가 남는다. 여기서 우리는 선진 각국의 입장을 참고할 수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바세나르 협정에 따라 적성국에의 암호수출을 통제하는 정책을 고수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의 법집행력 확보는 시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조건이므로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암호해독능력 역시 결코 포기될 수 없다. 따라서 법집행력의 확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첫째,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암호업계와 국가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민간에서의 암호기술의 발전에 따라 국가의 복호능력 역시 이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국가의 복호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방안은 적법한 목적의 복호의 지원을 위한 전문기구의 설립이다. 이 역시 미국과 영국 등에서 설립을 천명하고 나서고 있다. 셋째, 현행 형사소송법에 대한 개정과 가칭 암호법의 제정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어느 정도 새로운 법적 문제점 등에 대해 대비하여 제정되었음에 반해, 형사소송법은 산업사회의 종이문화에 바탕을 두고 제정되었기 때문에 정보사회의 새로운 법적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이 전자문서 전반에 대한 규정을 두어야 한다면, 암호법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전자문서와 통신을 대상으로 한 암호의 문제를 규정해야 한다.

2000-05-04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