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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사이버스페이스–무엇인가? 어디에 있는가? 언제 찾아갈 수 있는가?

By 2000/05/0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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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스페이스–무엇인가? 어디에 있는가? 언제 찾아갈 수 있는가?

필립 엘머-드위트

위대한 기술들이 종종 공상과학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하듯이,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개념 역시 윌리엄 깁슨이라는 젊은 미국 작가에 의해 시작되었다.

깁슨은 현재 본국을 떠나 캐나다에 살고 있다. 1980년대 초, 깁슨은 뱅쿠버 시내 그랜빌 가의 비디오 상가를 거닐고 있었다. 그 때, 번쩍이는 화면 앞에서 오락에 열중하고 있던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게 임에 몰입해 있던 그들의 모습에서 깁슨은 야릇한 감정을 느꼈다. "그들의 긴장된 자세에서 그 애들이 얼마만큼 게임에 빠져 있는지를 알 수 있었지요. 화면에서 나온 광자들이 아이들의 눈으 로 들어가고 뉴론이 몸을 타고 흐르며 전자들이 비디오 게임을 통해 움직이는 듯한, 말하자면 마 치 피드백 폐쇄회로 같았어요. 그 애들은 분명히 게임이 투영되는 공간의 사실성을 믿고 있었습 니다."

그 이미지는 깁슨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오락이나 컴퓨터에 있어서 문외한에 가까왔 다–그의 첫 히트작인 Neuromancer (1984)는 구형 수동 타자기로 쓰여졌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기계들과 친숙한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화면 속의 가상 세계의 현실성을 믿는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들은 화면 너머에 실제 세계가 현존한다고 믿습니다.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다고 믿어지는 세계 말입니다."

깁슨은 그 가상의 세계를 "사이버스페이스"라고 명명하였다. 바로 이 세계가 그의 초기 장편 과 단편들의 배경이 되었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사이버스페이스란 컴퓨터가 만들어낸 세계다. 그리고 인물들은 두뇌 안에 이식된 소켓에 전극을 꽂는 등의 방법을 통해 그 세계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인간이 만든 모든 컴퓨터–거대한 정보의 보고–에 내장되어 있는 정보들이 3차원으 로 재현되어 있다. Neuromancer에서 깁슨은 그 세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마음 속의 공 간 아닌 공간에 쫙 배열된 빛의 행렬, 별무리처럼 펼쳐져 있는 정보들이 도심의 가로등 불빛처럼 멀어져 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복잡한 세계"

깁슨의 최초의 명명 이후로, 다른 많은 이름들이 컴퓨터 정보들이 살고 있는 그 유령의 세계 에 붙여졌다: 네트, 웹, 클라우드, 매트릭스, 메타버스, 데이타스피어, 전자 전선, 정보 고속도로 등 등. 그러나 아마도 깁슨이 지은 이름이 가장 오래갈 것이다. 1989년, 온라인 이용자들은 공상과 학 소설의 환상이 아니라 오늘날의 급증하는 컴퓨터 연결 체제, 특히 인터넷에 연결된 수백만의 컴퓨터를 일컫는 말로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오늘날 상상의 세계를 일컫는 깁슨의 그 용어는 매일같이 신문 기사나 정치 연설, 기업의 기자 회견서 등에 등장하고 있다. 헐 리우드의 대형 영화사들에서부터 종교 단체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전자 메일 주소들이 우후죽 순처럼 등록되고 있다. 빌리 그라함 목사는 컴퓨터를 통해 목회활동을 펴고 엘 고어 부통령도 컴퓨터에 등장했다. 또한 지난 1월에는 수천만명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설날’에 모여 함께 축 하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밝아오는 새해를 맞이하였다.

워싱톤 정가에서도 사이버스페이스는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였다. 1992년 대선 때 빌 클링턴 현 대통령과 엘 고어 부통령이 내세웠던 주요 공약 중 하나는 전국적인 정보 고속도로망을 구축 하여 모든 유권자의 집은 아니더라도 모든 지역들을 연결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클링턴 정부는, 인터넷 상에서의 개인의 자유와 공권력의 통제를 둘러싼 열띤 논란 속에서 강제적 통제 를 편드는 결정을 내린 바람에, 사이버스페이스 내에서 우위를 상실했다. 정부가 인가한 클리퍼 칩이라는 안보 장치는 미정보부에서 주창한 방안이었다. 야당인 공화당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재 빨리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신임 하원의원장 뉴트 깅그리치는 취임 직후에 새로운 의회의 컴퓨 터 체계를 공개하는 대대적인 기자 회견을 열었다. "가상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라는 주제의 워싱 톤 간담회 때, 깅그리치는 그의 지기인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하이디 토플러를 동반한 자리에서 세계의 컴퓨터망 구축에 대한 광범위한 연설을 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지식의 땅이 다. 그리고 그 땅의 개척이야말로 문명화된 사회의 가장 절실하고 진실한 사명이다"라는 그의 말은 정보 시대의 마그나 카르타의 선언이었다.

새로운 광맥을 발견한 기업체들이 사이버스페이스 내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 다. 모든 컴퓨터 회사들, 거의 모든 출판사들, 모든 통신사들, 은행들, 보험회사들, 수백개의 통신 판매 소매업자들이 인터넷에 등록하고 있으며 월드 와이드 웹에 전용 사이트도 개설하고 있다. 그들은 사이버스페이스가 21세기 경제 성장의 주된, 아니면 적어도 주요한 추진력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신문은 이 모든 현상을 숨가쁘게 보도한다. 신문은 이제 지독히 따분한 기사 에도 흥미를 가미해 줄 수 있는 마법의 용어, 사이버스페이스를 어디에나 끼워넣기에 바쁘다. 사 이버스페이스의 입문생에 지나지 않는 많은 신문기자들은 매일같이 사이버를 들먹이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신조어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사이버도취증, 사이버공포증, 사이버섹스, 사이버매춘 부 등등. 신문, 잡지, 텔레비젼 대본에 대한 넥시스사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1월 한 달 간 사이 버라는 용어는 1205회나 사용되었다. 참고로 1994년 같은 기간에는 그 횟수가 464회였으며 1993 년에는 167회에 지나지 않았다.

이같은 조사에서 얻게 되는 한 가지 뚜렷한 결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경험해본 적도 없 고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800 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타임/씨엔엔의 지난 정월 여론 조사는 57%가 사이버스페이스의 의미 를 모르고 있는데도 85%가 정보 기술이 자신들의 삶을 향상시켰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들은 사이버스페이스에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면서도 그 가상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어 안 달이 나 있다. 사이버스페이스 문화 혁명의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사이버스페이스의 맛을 보고 그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개종한 종교인만큼이나 열띈 신심을 보인다.

IBM의 텔레비젼 광고는 이러한 감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광고에 등장하는 체코의 수녀 들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최신 운영 시스템에 대해 귀엣말을 주고받는다. 수녀원 안을 종종걸음 쳐가며 한 젊은 신참 수녀가 와프라 불리는 IBM사의 경쟁 상품에 대해 이야기한다–"<와이어 드>에서 막 읽었다구요. 진짜 작업 다중처리 기능에다가…..인터넷에 연결되기도 쉽대요." 옆에 선 고참 수녀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화면의 촛점은 수도원장으로 옮겨가고, 나이가 지 긋한 그녀는 열망하는 어조로 중얼거린다–"난 네트를 탐험하고 싶어 죽겠어." 광고는 그녀의 수녀복 밑에 숨겨진 삐삐가 울리는 것으로 끝난다. 굉장한 사이버수녀들이다.

사이버스페이스란 무엇인가? 록큰롤의 시인이자 컴퓨터 운동가인 존 페리 발로는 "가장 간단 한 비유를 들자면 전화를 할 때 머무는 공간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비유는 적절하다. 무엇보다 도 전화 체계는 전 지구적인 광대한 컴퓨터망이며 그 특유의 음성의 세계로 존재한다. 발로우의 정의에 의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사이버스페이스를 경험한 것이 된다. 수화기 건너편의 상대방은 마치 "한 방에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통화자들은 보통 때는 상대방과 의 먼 거리를 느끼지 못하다가 연결이 잘못되거나 해외 통화시에 잡음에 시달릴 때에야 그 거리 감을 인식한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마치 소리를 지르면 사이버스페이스의 잡음을 몰아낼 수라 도 있다는 듯 한껏 목청을 높인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물론 전화 통화보다 훨씬 더 광대한 세계이다. 이것은 상용 온라인 서비스 에 전화선으로 연결된 수백만 대의 개인 컴퓨터, 지역 네트워크, 사무실 전자 우편 시스템, 인터 넷 등에 고속 접속되어 있는 수백만대의 컴퓨터를 포괄한다. 급속히 팽창하는 무선 서비스, 막대 한 수의 휴대폰과 정보의 수송을 담당하는 마이크로웨이브 탑들, 지구정지궤도에 구슬띠처럼 늘 어서 있는 통신 위성들이 모두 사이버스페이스에 포함된다. 또한 전선으로 연결할 수 없는 외지 에 살고 있는 지구촌 식구들을 위해 곧 저공 비행 위성들이 지구 주위를 성난 벌떼처럼 맴돌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텔레비젼도 사이버스페이스의 일부가 될 지도 모른다. 타임 와너(<타임> 사와 <와너 브러더즈>사가 합병 탄생시킨 대형 언론방송사)를 비롯한 몇몇 유선 방송사들은 구 케이블선에 더하여 광섬유와 고속 스위치를 이용한 대화형 방송 ‘텔리퓨터’를 건설 중이다.

그러나 이 전선들과 케이블, 마이크로웨이브가 사이버스페이스의 전부는 아니다. 이것들은 단 지 정보를 수송하는 고속도로일 뿐 그 길 끝의 불이 환하게 켜진 도시는 아니다. ‘한 방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이버스페이스는 개개인의 경험이지 전선시스템이 아니다. 사람들은 태고 적 부터 여러가지 수단으로 상호 간의 의사소통을 해 왔다. 사이버스페이스란 이 인류 본래의 기능 에 이용되는 새로운 기술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연인 간에 교환되는 전자 메일 안에 있고, 메일 리스트와 메시지 게시판에서 오가는 끝없는 논쟁 안에도 있으며, 전자 채팅 룸과 뉴스그룹의 단골 방문객들을 이어주는 연계이기도 하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플라톤의 이상 상태처럼 형이상학적인 공간, 즉 가상 현실이다.

하지만 가상 현실이라 해서 현실성이 덜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보 시대, 즉 MIT대 미디어 실험실장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지적한 대로 기본 입자가 분자가 아닌 비트(두자리 숫자; 정 보 단위는 이진법으로 표기되므로)인 시대에 살고 있다. 분자인 잡지나 신문을 통해서도 정보는 전달되지만, 실제 가치는 그 내용, 비트에 있다.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분자인 현금으로 지불 하지만, 하루 수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를 넘나드는 유동 자본은 전자 입출금, 즉 비트로 처리된다.

비트는 분자와 다르며 다른 법칙을 따른다. 비트는 무게가 없다. 비트는 쉽사리 감쪽같이 재 생산될 수 있으며 공급은 무한하다. 비트는 광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되기 때문에 비트를 유 통시키는 사업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장벽이 사라진다. 출판업자를 비롯한 정보 제공자들은 사이 버스페이스를 통해 배포비용을 제로로 감소시킬 수 있다. 구매자들과 판매자들은 판촉 선전(따 라서 해당비용도) 없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사업가들이 사이버스 페이스를 경제 성장의 강력한 엔진으로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사이버스페이스는 상업보다는 공동체를 의미해 왔다. 이 새로운 과학기술은 일대일의 직접적인 교류의 붐을 일으켰다. 다수대 다수의 모델을 취하고 있는 사이 버스페이스는 일대 다수이던 종래 미디어들의 수직 구조에 대한 대체 방안을 제공한다. 미래 통 신 상의 혁명적인 변화는 이러한 모델을 취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빈자 대 부자, 생산자 대 소 비자라는 내적 분열에 빠져있는 세계에서, 사이버스페이스는 거의 완전한 평등을 보장하는 최선 의 공간이다.

인터넷을 예로 들어보자. 인터넷보다 나은 대체 방안이 나올 때까지는 인터넷이 사이버스페 이스다. 깁슨이 상상했던 대로 모든 컴퓨터가 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인터넷의 연결망은 거의 그 수준에 달해 있다. 인터넷에 오랜 시간 접속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터넷 이 그 천재 작가의 공상보다도 더 신기하다고 입을 모을 것이다.

20년 전 국방부 실험용으로 시작된 인터넷은 1984년 국방성 영역을 벗어나 개인용 컴퓨터의 붐을 타고 칡넝쿨처럼 퍼져 나갔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인터넷의 크기는 매년 배로 증가해 갔다. 오늘날 160개국 이상의 3천만에서 4천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전자 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다. 일본, 뉴질랜드,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네트 상용자 수는 지난 3년간 1000% 증가했다.

인터넷의 놀라운 성장을 부추기는 하나의 요소는 민간인을 기초로 하는 구조이다. 대부분의 재래식 컴퓨터 시스템들은 계급적이고 독점적이었다. 그 때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소프트웨어 운영 프로그램의 피라미드식 구조 때문에 체계가 상하 수직적으로 돌아갔다. 반대로 인터넷은 개방적이고 점점 더 민주화되어 가고 있다. 아무도 인터넷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어떤 일 개 조직도 이를 통제할 수 없다. 인터넷은 호스트라 불리는 4800만의 독립적인 구성원들로 이루 어진 공동사회다. 인터넷은 국경을 넘나들며 어떤 권위에도 복종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법지대인 것이다.

그래픽이나 사진, 비디오 등이 사이버스페이스에 등장했다고는 하나, 사이버스페이스는 인터넷 에서 보듯이 주로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화면에 타이프되어 나타나는 말을 통해 서로 교류를 나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홍보용 우편 목록–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자 메 일 리스트–에서 약칭 로코코 머드, 즉 멀티 유저 던젼(Multi-User Dungeons)에 이르기까지 놀 라울 정도로 광범위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머드: 가상의 만남의 장소. 사용자는 한 번에 한 방 만 개설할 수 있다) 이 모든 가상의 공간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이용자들 간의 ‘평등’을 철칙으로 삼는다: 필요한 설비와 접속선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나 다 사이버스페이 스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는 모든 이들이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이처럼 철저한 평등의 원칙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모두가 존중받는다는 인터넷에서 실상은 아무도 존중받지 못한다. 인터넷의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사람들은 부와 권력, 미모, 사회적 지위 등을 떠나 그들 의 창의적인 생각과 그 생각을 짧고 생생한 문장으로 전달하는 능력으로만 평가받는다. ‘뉴욕커’ 의 유명한 한 만화에 따르면, 인터넷 상에서는 ‘아무도 당신이 멍멍씨인지 모른다’.

유즈넷만큼 평준화 효과가 뚜렷한 곳은 없다. 뉴스 그룹이라 불리는 만 개 이상의 토론 그룹 으로 구성된 거대한 유즈넷은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으며, 러시 림바우에서 분자 물리학, 고리 꼬 리를 가진 여우 원숭이의 야행습관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제를 다룬다. 뉴스그룹은 기사를 읽는 이용자들에 맞추어 그들만의 독특한 역동성을 발전시킨다. 따라서, 흥미 유발에는 빠르되 해결 방안에 있어서는 느리다.

하지만 유즈넷의 상용자들은 그들의 창조물에 대해 더없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유즈넷은 대량 항의문의 전송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검열을 피한 생생한 소식을 세계에 전파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유즈넷족들은 규칙을 잘 몰라 실수하는 신참들에게는 냉소 를 던지는 한편, 고의로 반칙을 한 자들에 있어서는 가혹하다. 네티즌들은 부정적인 언론의 보도 (예를 들어 인터넷 해커와 소아이상성욕자들에 대한 다년간의 보도들)가 단지 그들의 권력을 위 협하려는 기성 매체들의 음모의 일부라고 확신한다.

유즈넷의 뉴스그룹들은 나름대로 현대 대중매체의 완벽한 해독제다. 뉴욕과 아틀란타, 헐리우 드에서 소수의 몇 명에 의해 제작되고 미국 중심부의 대중들에게 방송되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 는 프로그램 대신에, 뉴스그룹들은 보통 사람들에게서 캐낸 뉴스나 논평, 유머 등을 제공한다. 그들은 극단적인 유선방송의 대표적 사례이며 소비자들이 소비자들을 위해 만드는 뉴스를 내보낸 다. 유선방송국의 중역들이 여전히 수백 개의 채널을 꿈꾸고 있는 와중에, 유즈넷은 이미 수천 개의 채널을 확보하고 있다. 사실상 사이버넷은 너무나 파편화되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궁극 적으로는 네트가 이미 인종과 정치와 성적 편견으로 분열된 사회를 더 깊이 분열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사람들 간의 보다 나은 의사소통을 위해 설립된 네트는 운명 의 장난에 걸려드는 셈이 된다. 인터넷은 절대로 완벽하지 않다. 대체로 편집을 거치지 않은 네트의 내용들은 종종 무미건조 하고 어리석기도 하며 재미도 없고 완전히 틀릴 때도 있다. 네트는 중독성이 있으며 솔직히 말 해 심각한 시간의 낭비이기도 하다. 넷스케이프나 모자이크와 같은 새로운 간편한 소프트웨어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네트를 항해하기란 너무 어렵다. 또한 컴퓨터와 고속 통신 연결선을 둘 다 갖춰야 하므로, 너무 가난하거나 대형 컴퓨터와의 접속 거리를 벗어나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이용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트는 경이롭다. 특히 현재의 네트 체계가 냉전 이후 군대의 지휘 전달 시스템 일환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더욱 그러하다. 공상과학 작가이자 사이버스 페이스의 제왕 중 한 명인 브루스 스털링은 "인터넷은 놀랍고도 즐거운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음 울한 방사능 낙진 대피소가 활짝 열리고 사육제 마지막 날의 퍼레이드가 행진해 나온 것 같다. 나는 네트를 너무나 즐기고 있기 때문에 회의적인 시선을 취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가 언제나 오늘날과 같은 상태로 남아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 다. 인터넷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의 개발 노력–대부분 언론들에 의한–에 의해 제 멋대로인 유즈넷의 뉴스그룹들은 월드 와이드 웹의 보다 수동적이고 소비자 위주의 홈페이지들로 변화했다. (월드 와이드 웹: 인터넷의 무수한 정보 탐색 작업을 단순화시켜주는 연결 체계) 초 기 인터넷광들은 이제 인터넷이 쇼핑센타로 전락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네트의 상용가치가 분명 히 반증되지 않는 한, 지금의 상업화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네트 상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단숨에 먼 거리를 구를 수 있는 광섬유의 거대한 나무 수레 바퀴에 달려 있다. 즉, 매체의 정보 유통량–보통 초당 몇 비트로 계산됨–이 그 관건이다. 구 리 전선이 머리카락 굵기의 광섬유 가닥으로 교체됨에 따라, 차후 십 년간, 세계의 장거리 통신 체계는 밑바닥부터 재건축될 것이다. 지푸라기처럼 가느다란 구리 전화선은 필요한 정보량을 모 두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용량이 부족하다. 반대로 광섬유 가닥은 구리선보다 가늘면서도 그 용 량으로 따지면 거대한 굵은 파이프와 같다. 광섬유는 구리선의 수만배나 되는 비트를 전달할 수 있다.

보다 넓은, 즉 보다 큰 용량의 전선을 시급히 요청하고 있는 사람들은 인터넷 이용자들뿐만이 아니다.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영화와 텔레비젼 쇼를 개별적으로 방영하는 헐리우드, 어린이들에 게 최신 인기 게임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는 비디오 게임 제작사, 차세대 비디오폰을 개발 중인 통 신사 등은 모두 보다 고성능의 전송 시스템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은, 클링턴 행정부가 정보 고속도로에 붙인 명칭인 ‘전국 정보 하부구조'(내셔널 인포메이션 인프라스트럭쳐)가–적어도 이론 상으로는– 이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만큼 개량된 네트워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새로운 네트워크가 어떻게 구축되고 배치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일례로, 유선 방송이나 전화 회사들의 최신 서비스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부유한 지역에만 제공된다. 이같은 현상은 정보 시대의 선민과 빈민–최신 고급 정보를 이용하는 정보시대 선민들과 텔레비젼외에 특별한 정보망을 갖추고 있지 않은 빈민 들 간의 격차를 더욱 더 벌려놓게 될 것이다.

보다 어려운 문제는 네트 상의 소위 ‘상류 능력(upstream capability)’에 대한 것이다. 누구나 다 새로운 정보 상품과 서비스를 가정집으로 전송할 수 있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놓고 싶어 한 다. 그렇다면, 가정집에서 네트로 보내는 정보에 허락되는 용량은 얼마인가? 일부 구상에 따르 면, 매우 적다. 채널을 바꾸거나 지르코늄 링을 주문할 수 있는 정도의 비트밖에 전달할 수 없는 정도다. 네트 운동가들은 언젠가는 소비자들이 수신선만큼 용량이 큰 송신선을 필요로 할 것이 라고 주장한다. 그같이 형평이 맞는 상태 하에서만, 보통 사람들도 매체의 소비자 겸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즉, 누구나 원하는 대로 자신의 캠코더를 네트에 연결시켜 창작물을 세상에 방영할 수 있다.

이같은 설계의 구상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사이버스페이스의 모습은 달 라질 것이다. 과연 인터넷처럼 하의상달식이 될 것인가, 아니면 텔레비젼처럼 상의하달식이 될 것인가? 존 페리 발로우와 전자변경협회(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를 공동 창립한 미치 케 이포는 최선의 경우 집단적 차원에서 새로운 오락 매체가 발명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오락 매체를 통해 우리는 야밤의 저술가들과 캠코더 비디오 예술가들의 쏟아져 나오는 창조력을 접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최악의 경우에는 새로운 세대의 컴퓨터 중독자들을 양산하는 네트워 크만이 남게 될 것이다.

가상 시나리오를 종말론적 언어로 쓰고 있는 사람은 케이포뿐만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이버스페이스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시킨다. 신문이나 방송들은 이에 대한 기사들로 그득하며 그 내용은 과장과 낭만주의에서 공포와 혐오라는 양극단을 오락가락한다. 가까운 미래 에 대한 사이버스페이스의 영향력이 과대평가되고 있다 해서 실제적인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기술 혁신의 결과는 언제나 다가올 변화를 예고하 는 초기의 선구자들보다 한 발 늦게 결실을 맺는 법이다. 하지만 정작 변화가 일어나는 때가 다 가오면, 그 파장은 그 누구도, 심지어는 공상과학자들조차도 예기치 못했을 정도로 엄청나다.

200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