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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자유] 정보통신 제한에 관한 법적 평가와 대응방안 – 김종서

By 2000/05/03 10월 25th, 2016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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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제한에 관한 법적 평가와 대응방안

http://chunma.yeungnam.ac.kr/~j5340238/관련논문1.html

김종서(배재대학교 법학과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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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나우누리의 한국통신노조 CUG 폐쇄사건이나 한총련 CUG 폐쇄사건, 인터넷상의 북한사이트 접속 차단 등은 그 적법성 여부에 관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이러한 행위 자체는 위헌적인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화시대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앞의 현실임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좋은 계기가 된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뒤이어 국민들의 관심을 끈 것은 내무부가 발표한 전자주민카드제도의 도입방침이었는데, 이는 카드 하나로 개인정보와 관련된 여러개의 사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데 대한 놀라움과 아울러 개인정보의 유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정보화시대의 도래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보화시대에 적절하게 대비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이르면 일단 막막한 기분이 든다. "정보통신관련법의 문제점과 개정방향"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해 줄 것을 지식인연대로부터 부탁받은 나 자신도 도대체 정보통신관련법이 어떤 것이 있는지, 그것이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전혀 문외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정보화시대는 도래해 있고 이와 관련된 갖가지 문제들이 표출되기 시작한 이상 법학, 특히 헌법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를 피해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위에서 열거한 몇가지 사례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와 관련하여 중대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CUG 폐쇄사건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통신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전자주민카드의 도입은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에 대한 침해가능성을 한껏 높이고 있는 등 정보화시대의 도래는 과학기술이 가져올 테크노피아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기본적 인권의 침해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현행법 중 정보화시대의 도래와 관련된 것들, 이른바 정보통신관련법들을 개관하여 그 체계를 이해하고, 이와 같은 법체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기본권의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검토하고 개정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대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필자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기에 향후의 과제로 남기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최근에 일어난 CUG 폐쇄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한 법적 평가를 해 보기로 한다. 즉 컴퓨터통신에 대한 정부의 제한조치에 관하여 그 법적 근거가 있다면 그것을 밝히고 문제점을 검토한 연후에 최근의 사태를 어떻게 법률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와 관련하여 첫번째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21조의 규정이다.

2. 헌법상 언론 출판의 자유

헌법 제21조는 "①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 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언론 출판의 자유라 함은 사상 또는 의견을 담은 언어 문자 등으로 불특정다수인에게 발표하는 자유를 말한다. 언론은 담화 토론 연설 방송 등 구두에 의한 사상 또는 의견의 발표를 뜻하고, 출판은 문서 도화 사진 조각 등 문자와 형상에 의한 사상 또는 의견의 발표를 뜻한다.

언론 출판의 자유는 (1)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이루는데 불가결하고, (2) 민주시민으로서 국정에 참여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3) 특히 민주정치체제는 사상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에 의하여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정치적 법적 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근본적인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인정되어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권리이다. 그러나 언론 출판의 자유에는 한계가 존재하여 (1)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2)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거나, (3) 공중도덕 또는 사회윤리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그 내재적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헌법 제21조 제4항).

한편 언론 출판의 자유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제한이 가능한데, 언론 출판에 대한 제한은 사전제한과 사후통제로 나누어진다. 이 중 사전제한은 상대방에게 사상이나 의견이 도달되기도 전에 표현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 권리까지도 침해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국민이 무엇을 읽고 무엇을 볼 것인가를 당국이 자의적으로 선별하고 결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후통제보다 한층 더 유해하다. 사전통제의 전형적인 예는 검열인데, 이에 따라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제나 검열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검열이라 함은 사상이나 의견이 발표되기 이전에 국가기관이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일정한 사상이나 의견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전검열과는 달리 사후통제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언론 출판의 자유는 경제적 기본권에 비하여 우얼성을 가지므로 그 제한과 규제에 대해서는 경제적 기본권의 규제입법에 관한 합헌성판단의 기준보다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언론규제입법의 합헌성 판단기준으로 거론되는 원칙들로는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법익형량이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등이 있다.

첫째,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령의 규정은 명확하여야 한다. 불확정개념이나 막연한 용어를 사용하여 그 의미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위헌무효가 된다. 막연하므로 무효(void for vagueness)가 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하면 법치주의에서 요구되는 명확성의 원칙은 입법자의 입법의도가 건전한 일반상식을 가진 자에 의하여 일의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정도의 것을 의미하며, 이로써 법률규정의 구성요건적 내용에 따라 국민이 자신의 행위를 결정지을 수 있도록 명확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표현행위 규제입법에는 최상의 입법기술이 요청된다고 할 것이고 자그만치라도 명확히 할 여지를 남기는 한 위헌무효라고 하여야 한다(명확성의 원칙).

둘째, 위법한 표현행위를 규제하기에 충분한, 보다 완곡한 제재방법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제재를 과하는 입법은 자유로운 표현을 질식시키는 사회적 효과(chilling effect)를 가져오기 때문에 위헌이다. 이것은 자유의 제한은 필요최소한이어야 한다는 과잉금지의 원칙 또는 덜 제한적인 대체조치(less restrictive alternative)의 원칙을 표현의 자유에 적용한 것이다(과잉금지의 원칙).

셋째, 기본권의 제한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거하여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 등 공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지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함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법익보다 더 큰 공익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라야 한다. 이는 구체적 사안의 평가에 있어서는 당해 규제입법이 그와 같은 중대한 공익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는 입증책임이 규제당국에게 전가된다는 입증책임의 전환 문제가 된다(법익형량의 이론).

넷째, 언론 출판의 자유를 규제하는 입법의 합헌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원칙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은 표현행위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표현이 법률상 금지된 해악을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여야 한다는 이론이지만, 위험발생 여부에 대한 사실인정의 기준이 되는 일종의 기술적인 증거법칙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여기서 명백이라 함은 표현과 해악의 발생 사이에 밀접한 인과관계가 존재함을 말하고, 현존이라 함은 해악의 발생이 시간적으로 근접하고 있는 경우를 말하며, 위험이라 함은 공공의 이익에 대한 해악의 발생개연성을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표현행위가 그와 같은 위험을 갖추었을 때에는 곧 이것을 규제 처벌의 대상으로 할 수 있게 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의 우월적 지위를 제약하는 방향으로 작용될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여기에서 비교형량의 관점을 접목시켜 명백 현존의 위험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명백성, 현존성, 특히 위험성의 범위와 정도에 따라 표현의 사회적 가치가 그 위험성보다 우월할 때에는 당해 표현은 법적으로 시인될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3. 컴퓨터 통신에 대한 법적 규제의 태양과 문제점

위에서 서술한 바에 따르면 컴퓨터 통신을 통하여 표현되는 각종의 게시물 등은 헌법 제21조에서 말하는 "언론 출판"의 개념에 포함된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언론 출판의 자유에 관련된 내용들은 컴퓨터 통신에도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 당연히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컴퓨터 통신의 검열 및 CUG 폐쇄 등 규제와 관련될 때에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규제입법의 한계나 합헌성판단기준에 부합되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까지 컴퓨터 통신에 대하여 국가권력이 행사한 규제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첫째, 각종 게시물의 내용을 문제삼아 실정법 위반 등으로 처벌하는 것, 둘째, 특정 단체의 CUG 폐쇄, 셋째, 컴퓨터 통신에 대한 검열, 넷째, 인터넷상의 북한관련 사이트(site) 차단 등이다.

1. 게시물의 내용을 이유로 한 형사처벌 : 국가보안법 적용의 문제

(1) 문제의 소재

컴퓨터 통신망의 게시판 등에 게재한 게시물의 내용 때문에 형사처벌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1993년 현대철학동호회 김형렬씨가 천리안 게시판에 사노맹 중앙재건위의 입장을 게시한 혐의로 구속되어 1, 2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을 비롯하여 사회비평모임 희망터 회원 이창렬씨가 오봉옥의 시 [붉은산 검은피]의 전문, [1994년 김일성 신년사]와 [현 정세의 민족민주운동의 조직 과제] 등을 천리안에 게재한 혐의로 구속되는 등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컴퓨터 통신망의 게시판 등에 게재되는 내용들은 그 수신자가 특정되어 있지 않고 누구나 그 내용을 조회하거나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마치 서점에서 판매되는 책과 마찬가지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러한 게시물은 통신망에 올려지는 것인데다가 비록 그 조회건수도 대부분은 매우 적은데 그치고 있다 하더라도, 성격상으로 보면 일반적인 책이나 연설, 유인물 등과 마찬가지로 불특정다수인들에게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전파하기 위하여 행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통신망의 게시물에 대한 형사처벌은 그 자체가 언론 출판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위에서 언급한 합헌성의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러한 게시물들은 불특정다수인에게 공개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또 그렇게 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이유로 한 형사적 제재가 통신의 비밀 침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즉 이와 같은 사안은 어디까지나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제한에만 관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들을 제한하는 법령 자체가 헌법에 합치되는 것인지, 헌법에 합치된다면 이러한 게시물에 사용된 표현의 내용이 그러한 법령에 위배되는지가 논의의 중심이 된다. 그런데 통신망에 올려진 표현물의 내용을 이유로 한 형사적 제재는 주로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위의 사례들과 관련해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은 언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 제7조가 위헌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와 국가보안법 제7조가 위헌이 아니라면 문제되는 사안이 과연 동조 소정의 이른바 "이적표현"에 해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국가보안법 제7조의 위헌성은 누차에 걸쳐서 제기되어 왔지만 1990년 헌법재판소는 한정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고, 이 결정에 따라 개정된 국가보안법 제7조 역시 금년에 다시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한정합헌의 판단을 받았다. 따라서 적어도 현실적으로는 국가보안법 제7조의 위헌성을 다시 문제삼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표현물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느냐 하는 그 적용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2) 국가보안법 적용의 원리

최근에 들어와서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사례는 군사독재시절보다도 더욱더 많아지고 있다. 특히 컴퓨터 통신에서 문제되는 바와 같이 제7조의 이적표현이 문제되는 경우가 부쩍 잦아지고 있다. 이 때 경찰이나 검찰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논리를 보면, 문제되는 표현물의 내용에 대한 실질적 평가나 그 본래의 선의적 의미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거기에 사용된 문언을 형식적으로 아니 도식적으로 북한의 주장, 또는 논리반사적으로 북한에 이롭게 될 가능성을 갖는 정부비판적 주장과 직결시키고 있다. 이는 결국 어떤 행위 또는 어떤 집단이든 검찰의 표적이 되기만 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될 수 있다는,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한 극단적인 자의성과 형식논리가 지배하는 법적용 실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잘못된 국가보안법 운용 실태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구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해서 양심의 자유 침해 가능성, 편의적 자의적 법운용 허용의 문제, 헌법의 평화통일 원칙 위배 등 법치주의와 죄형법정주의 위반의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하면서 엄격한 해석을 전제로 하는 한정합헌결정을 선고한 것이나, 이에 따라 1991년 5월 31일 개정된 법률의 제7조 제1항에서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행위의 구성요건을 부가한 것이 가지는 헌법적 의미를 몰이해한 소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국가보안법의 존재의의가 있다면, 국가보안법의 운용은 보다 헌법에 적합하게, 그리고 보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 평등의 기본원칙"(헌법재판소 결정요지 제5문)을 우리 현실에 구현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나 위 개정법률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여기에는 분단된 우리사회에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헌법의 원칙을 구현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적극적인 국민의 사상과 양심, 그리고 노력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목적이 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나아가 설사 표현물의 내용이 비록 외형상으로는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게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과연 반국가단체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볼 때 국가보안법의 적용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물론 대법원은 아직도 "우리 정부가 북한당국자의 명칭을 사용하고, 남북동포간에 자유로운 왕래와 상호교류를 제의하였으며, 남북국회회담 등과 같은 회담을 병행하고, 나아가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였다거나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하였다는 등의 사유가 있다 하여 북한이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앞의 결정의 다수의견에서 대법원과 같은 입장을 이미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면에서 이데올로기적 대결의 종식으로 동서간에 화해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그 동안 북한의 배후지원국으로 우리의 적대국이었던 러시아와 중국과도 국교관계가 정상화되고 국내정치면에서도 남북한 통일이 조속히 성취되어야 할 민족적 과업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는 현실과 관련하여,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는 대한민국"이라거나 "휴전선 이북지역은 인민공화국이 불법으로 점령한 미수복지역"이라는 대한민국의 영역에 대한 종래의 해석논리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바로 이들 논리에 기초하여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 역시 이제 공개적으로 그 타당성을 검증받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입장은 이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비록 소수의견에서이긴 하지만 명확히 개진된 바 있다. 앞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소수의견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해석하는 것은 헌법의 평화통일 조항과 상충된다고 하면서, "남북한의 주민이 서로 상대방의 실정을 정확히 알고서 형성된 여론의 바탕에서 통일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어디까지나 북한이 불법집단 내지 반국가단체로서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라는 근거를 제시한 바 있다. 이는 소수의견으로 전개된 것에 불과하지만, 대립적인 구도에서 화해와 협동 그리고 동포애를 기초로 하는 민족대단결의 사회분위기가 보다 진전되고 있는 추세로 보나 헌법의 평화통일 지향의 이념으로 보나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견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아직도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북한이 여전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양립하기 어려운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견해의 타당 여부를 쉽게 논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로 그와 같은 견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 게다가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에서 공식적으로 개진되었다는 사실은 한가지 분명한 사실을 이야기해 준다. 즉 "북한은 반국가단체"라는 명제를 근본적인 존립기반으로 삼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적용은, 그 명제 자체의 타당 여부에 대한 논의가 공식화된 이상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말해 준다.

(3) 컴퓨터 통신 사례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의 문제점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어떤 표현물이 이적표현물이라고 하여 국가보안법 제7조를 적용, 처벌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대법원 1992. 3. 31 선고, 90도2033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우선 객관적인 요건으로서 표현물의 내용이 단순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비판하거나 북한의 사회 내지 그 통치권자를 찬양하고 북한집단의 주장과 일치되는 사상을 담고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나아가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사회 건설을 주장하거나 북한의 통일 전선전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전복시킬 주장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기초위에서 사회제도의 개선을 통하여 개혁을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그 방식이 폭력과 혁명을 주장하는 등 폭력 기타 비합법적 방법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존립과 헌법질서를 폐지, 전복하는 것을 선동하는 취지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나타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표현물을 제작, 반포, 판매할 경우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이 인정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제7조는 이와 같은 객관적 요건 이외에도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고 하여 주관적 요건으로서 "이적목적"을 또한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이적목적은 고의와는 별도로 요구되는 ‘초과주관적’ 구성요소로서 행위 객체인 표현물이 이적성을 담고 있다는 인식 이외에 반국가 단체 등의 이익이 되게 할 이적행위를 함에 대한 의욕 내지는 인식까지도 요구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요건에 비추어 볼 때 컴퓨터 통신에서 문제된 사례들은 국가보안법 제7조를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우선 객관적 요건에 관해서는 컴퓨터 통신과 일반 서적을 구분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최근에 나오고 있는 전자도서의 예를 보더라도 이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컴퓨터 통신에 오려진 게시물은 근본적으로 도서와 같은 표현물임은 확실하다. 따라서 객관적 요건의 판단에서는 일반적인 국가보안법 적용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컴퓨터 통신의 경우 이용자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여 데이터를 취할 수 있으므로 차이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반박할 수 있으나 이것은 일반 도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으므로 합리적인 반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컴퓨터 통신에 올려진 표현물의 조회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공산당선언의 경우 47회에 그쳤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실질적 위해의 명백한 위험성은 표현물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의하여 판단되는 것이므로 이런 주장도 객관적 요건의 판단에 별 영향을 줄 수는 없다. 이는 어떤 도서가 서점에서 100권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이적성이 부인되는 것은 아님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조회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면, 즉 소수 이용자에게만 개방되는 곳에 등록되었다는 사정이 있다면, 그 전파가능성이 적은 만큼 객관적 위험성이 없음을 인정하는데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 통신망에 올려지는 표현 역시 내용에 따라서는 이적성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반면에 공산당선언 사례처럼 법원에 의하여 이적성 자체가 부인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주관적 요건의 판단에 관련해서는 컴퓨터 통신과 일반 도서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선 일반 도서는 본질적으로 한 사람의 사상과 주장을 표현하고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반면, 컴퓨터 통신의 게시물, 특히 공개 게시판에 올려지는 표현의 경우에는 그 표현과 전달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올려진 사안에 대한 토론을 기본적 목적으로 삼고 있다. 즉 컴퓨터 통신은 일방적인 주장이나 선전의 공간이 아니라 토론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토론을 목적으로 올리는 표현물을 두고 그 송신자에게 이적행위를 할 의욕 내지는 인식이 있다고 하기는 매우 어렵게 된다. 또한 컴퓨터 통신의 특성상 게시된 표현물에 대해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반론의 공간이 늘 주어져 있다는 점도 일반 도서와는 구분되는 점이다. 물론 토론의 공간 자체를 선전 선동의 장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통신망에서는 일반 도서와는 달리 다양한 반론이 행해지고 그 반론의 내용을 즉시 확인할 수 있으므로 선전 선동의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음을 고려한다면, 이적목적을 인정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한편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컴퓨터 통신상의 표현물의 경우 이러한 이적목적의 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는가 하는 전파가능성이다. 즉 공산당선언의 판결에서 법원은 "현대철학동호회에는 20만명에 달하는 천리안 일반 가입자가 누구라도 접속할 수 있는 ‘비회원도 다같이’란이 있음에도 피고인이 [공산당선언]을 게재한 곳은 당시 47명의 회원만이 접속할 수 있는 공개자료실의 문서자료실이었던 점"을 이적목적이 없다고 인정하는 근거의 하나로 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동일한 내용의 표현이라 하더라도 소수에게만 개방되는 곳에 등록하면 이적목적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와 같은 경우라면 이적목적이 없을 뿐 아니라 객관적 위험의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2. CUG 폐쇄

컴퓨터 통신과 관련하여 문제되고 있는 또하나의 사례는 CUG의 폐쇄문제이다. 이는 국가기관에 의하여 강제로 폐쇄되는 경우와 통신망 개설회사측에 의하여 폐쇄되는 두가지 경우를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강제폐쇄의 경우는 한총련 CUG의 경우와 같이 법원이 발부한 압수 수색영장에 의하여 폐쇄하는 경우와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3항에 의한 정보통신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통신회사가 폐쇄하는 경우를 들 수 있고, 회사측에 의한 경우는 한국통신노동조합 CUG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1) 국가기관에 의한 강제폐쇄

① 사례 -한총련

서울경찰청은 1996. 8. 30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향후 활동계획을 알리고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을 퍼뜨리고 있는 것과 관련,한총련 전용정보통신방(CUG)을 폐쇄했다.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나우누리의 한총련 전용정보통신방에 정명기의장(23.전남대 총학생회장)등 한총련 간부 4명의 이름으로 게재된 통신물 일체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이날 오전 10시30분께부터 한시간여동안 서울 서초구 방배본동 852의 22 단우빌딩 내에 있는 ㈜나우콤의 PC통신망 `나우누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은 통신문 내용 검토결과 한총련이 김일성.김정일부자를 찬양하고 북한의 통일이념을 그대로 전파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으나 증거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압수수색에서 정의장(ID: 한총련Ⅰ), 유병문조국통일위원장(24.동국대. 한총련Ⅱ), 김정호학원자주화투쟁위원장(22. 동아대. 한총련Ⅲ), 박병언서총련의장(23.연세대.서총련)등 한총련 간부 4명의 신상명세와 게시물 제목을 복사했으며 이 전용통신방을 폐쇄조치했다.

한편 이같은 조치에 대해 나우콤 관계자는 "사법 및 행정당국의 별도 명령 또는 지침없이 법원의 압수수색영장만으로 ‘PC통신의 전용공간 강제폐쇄’가 명령 집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당초 압수수색 결과 통신문 등의 이적성이 확인되면 정보통신부 등 관계당국에 이 통신망의 폐쇄를 요청키로 했었다.

경찰의 이런 조치에 대해, 수배중인 한총련 대변인 겸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의장 박병언씨(22.연세대 총학생회장)는 3일 박씨가 ‘서총련’이란 ID로 사용중인 PC통신 ‘나우누리’의 전용정보통신망(CUG)에 대해 법원이 지난달29일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의 취소를 청구하는 준항고를 서울지방법원에 냈다.

박씨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안상운 변호사 등을 통해 낸 청구서에서 "통신망은 현행법상 압수가 가능한 물건이 아니다. 통신망을 통한 게시물을 복사 등을 통해 압수할 수 있는데도 통신망 자체를 폐쇄토록 한 것은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는 위법행위"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또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자리잡은 통신망에 대한 접근 자체를 압수영장으로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이는 전화를 범죄에 사용했다는 이유로 전화선을 끊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② 한총련 전용통신방 폐쇄의 법적 평가

위의 사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박병언씨의 준항고에서 적절하게 제기되고 있듯이 통신망이 압수의 대상이 되는 물건에 해당하는가 하는 문제와 설사 압수의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게시물 내용의 이적성을 이유로 하여 통신수단 자체를 폐쇄하는 것은 헌법의 한계를 넘어선 과도한 제한이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먼저 전용통신방이 압수의 대상이 되는 물건인지를 본다. 형사소송법 제106조는 "법원은 필요한 때에는 증거물 또는 몰수할 것으로 사료하는 물건을 압수할 수 있다. 단 법률에 다른 규정이 있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고 하여 압수 수색의 대상을 "증거물" 또는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규정은 형소법 제219조에 의하여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압수, 수색(제215조)에도 준용된다. 이 규정에서 말하는 "증거물" 또는 "물건"의 개념은 이 규정으로 보아 반드시 유체물에 한정되지는 않으며 가장 넓은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규정만으로 전용통신방이 압수의 대상이 되는 증거물 또는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성격상 압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즉 일반적인 물건의 압수나 수색으로 이룰 수 있는 효과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형태에 관계없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용통신방 역시 폐쇄라는 형식으로 물건을 압수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므로 그 자체는 압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증거물 또는 물건의 개념에 전용통신방이 포함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자체는 그다지 큰 중요성은 없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압수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에 의한 압수는 당해 물건의 압수가 범죄사실의 입증에 필요한 경우에 국한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 점은 형사소송법 제114조와 형사소송규칙 제58조와 제107, 108조의 규정에서 잘 드러난다. 즉 형소법 제114조 제1항은 압수 수색영장에는 "피고인의 성명, 죄명, 압수할 물건, 수색할 장소, 신체, 물건, 발부년월일, 유효기간과 그 기간을 경과하면 집행에 착수하지 못하며 영장을 반환하여야 한다는 취지 기타 대법원규칙으로 정한 사항"을 기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규칙 제58조는 "압수수색영장에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압수수색의 사유를 기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압수수색의 사유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필요 이상의 물건을 압수수색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 과도한 인권제한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형사소송규칙 제108조는 형사소송법 제215조에 의하여 검사가 압수 수색영장의 발부를 청구할 때에는 "피의자에게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료와 압수 수색 의 필요를 인정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압수 수색영장의 청구는 그것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할 수 있는 것임을 규정하고 있다. 압수 수색 등에 반드시 적법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하고 있는 헌법 제12조 제3항의 규정태도에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은 "압수 수색의 필요"는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즉 그것은 압수 수색의 일반적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체적 물건에 대한 압수 수색이 필요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총련 사건에서 압수 수색영장에 의한 전용통신방의 폐쇄는 그 필요성이 인정되기 힘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수사기관의 전용통신방 폐쇄는, 거기에 게시된 각종의 표현물이 이적성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하에 이를 확보함으로써 한총련의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전용통신방의 폐쇄와 범죄사실의 입증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이 분명하다. 한총련이 전용통신방에 게시한 표현들이 이적표현이라면, 이적성을 가진 당해 표현물들을 압수하면 그것만으로 범죄의 입증이라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는 별도로 전용통신망 자체를 폐쇄하는 것은 처음부터 범죄사실의 입증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수사기관이 전용통신방을 폐쇄한 것은 또다른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즉 통신공간인 전용통신방을 이적표현물 게재를 이유로 폐쇄함으로써 수사기관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체제비판적이라고 인정되는 모든 게시물과 그 게시장소인 전용통신방을 철저히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사실상 모든 통신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위축시키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와 같은 조치는 통신망 운영회사로 하여금 자체검열을 강화하여 국가가 개입하기 이전 단계에서 이적표현 등의 문제표현이 들어 설 여지를 없앰으로써 통신공간상의 토론문화를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다양한 사상과 정보가 제한없이 유통되고 이들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짐으로써 결국 국민의 선택에 의하여 우월성이 인정된 사상과 의견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정치라고 이해한다면, 전용통신방 폐쇄에서 볼 수 있는 수사기관의 이같은 의도는 그 자체가 민주사회의 기본틀인 토론문화를 파괴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한편 전용통신방의 폐쇄는 이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절차적으로도 위법한 것으로 보인다. 즉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나우누리의 한총련 전용정보통신방에 정명기의장(23.전남대 총학생회장)등 한총련 간부 4명의 이름으로 게재된 "통신물 일체"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것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용통신망 자체는 이와 같은 압수의 대상인 "통신물 일체"에는 처음부터 해당되지도 않는 것이다. 전용통신망의 성격상 그것은 수색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 처음부터 압수물의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압수의 명목으로 폐쇄한 것은 영장의 기재사항 자체를 넘어선 위법한 영장집행으로 보인다.

③ 관련문제 – 정보통신부 장관의 직권폐쇄

한편 이 사안과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3항은 "정보통신부장관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한 통신(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에 대하여는 전기통신사업자로 하여금 그 취급을 거부 정지 또는 제한하도록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통신망에 올려지는 게시물의 삭제나, 게시물이 올려지는 게시판의 직권폐쇄 등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리고 동법 제71조 제5호는 이에 제53조 제3항에 의한 정보통신부장관의 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또 이 명령 위반은 법 제15조 제1항 제6호에 따라 허가취소 또는 1년 이내의 사업정지처분의 근거가 된다. 한편 전기통신사업법시행령 제16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전기통신을 "1. 범죄행위를 목적으로 하거나 범죄행위를 교사하는 내용의 전기통신, 2. 반국가적 행위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 3.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해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도 원래는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한총련의 CUG 폐쇄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법령상 이 명령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들 규정에 따르면 결국 정보통신부 장관의 명령을 받은 전기통신사업자는 형벌 또는 허가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피하기 위하여 그 명령을 이행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 결과 특정 게시물이 삭제되거나 그 게시물이 올려진 게시판 자체가 폐쇄되거나 CUG의 폐쇄조치 등이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이와 같은 정보통신부 장관의 명령은 엄연한 행정처분에 해당되므로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만 전기통신사업의 운영에 관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보통신부 장관의 명령에 대하여 일개 전기통신사업자가 그 위법 부당성을 문제삼아 법적 절차를 밟는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설사 그와 같은 절차를 밟는다 하더라도 당해 명령의 불이행으로 인한 형사처벌을 당연히 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전기통신사업자가 정보통신부 장관의 명령을 이행하여 그러한 통신의 취급을 거부 정지 또는 제한하게 되면 최대의 피해자는 그러한 게시물을 올린 자와 이러한 게시물을 열람할 권리가 있는 일반 정보통신이용자들이다. 정보통신부 장관의 명령이 그러한 통신의 취급 거부에 국한되는 경우에는 해당 게시물이 삭제될 것이기 때문에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 될 것이고, 해당 게시판이나 CUG 자체가 폐쇄된다거나 특정 이용자의 의견 게시 자체가 거부된다면 게시판의 이용자들이나 특정 이용자는 통신수단 자체를 부인당하므로 결국 헌법상 통신의 자유를 침해당하게 된다.우선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3항에 의한 정보통신부장관의 명령 자체가 가지는 문제점부터 살펴 보자. 정보통신부장관의 명령은 통신의 내용을 직접적인 이유로 하여 행해진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에 해당함이 명백하다. 따라서 이러한 명령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 규제입법의 합헌성 판단기준에 따른 엄격한 평가가 수반되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이와 같은 제한이 적용되는 대상, 즉 공공의 안녕질서와 미풍양속을 해하는 통신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전기통신사업법시행령 제16조를 본다. "1. 범죄행위를 목적으로 하거나 범죄행위를 교사하는 내용의 전기통신, 2. 반국가적 행위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 3.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해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유는 제1호를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막연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으로서는 명확성의 원칙에 비추어 당연히 위헌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런데 특정한 통신이 이와 같은 사유에 해당하는가 여부는 전기통신사업법의 규정들에 비추어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법 제53조의 2는 "제53조의 규정에 의한 불온통신을 억제하고 건전한 정보문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고 규정하는 한편(제1항), 그 업무의 하나로서 "2.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유통되는 정보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시행령 제16조의 4는 "위원회가 법 제53조의2 제4항 제2호의 규정에 의하여 유통정보에 대한 심의 및 시정요구를 한 때에는 위원장은 그 결과를 심의 또는 시정요구를 한 날부터 20일 이내에 정보통신부장관에게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 제53조 제3항에 의한 정보통신부장관의 명령은 전체적인 법체계상으로는 정보윤리위원회의 심의 또는 시정요구에 바탕을 두고 행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심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제정한 정보통신윤리심의규정에 의거하여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심의규정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에는 지나치게 막연한 규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대표적인 예로 심의규정 제17조 하나만을 본다. 제17조는 "누구든지 국가이념과 국가의 존엄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나 반국가적인 행위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의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이념"은 그 자체가 극도로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불확정개념인데다가, "국가의 존엄성"이란 이 규정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의 어떤 법령에서도 볼 수 없는 용어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있어도 국가의 존엄성이란 말은 없다. 게다가 이를 침해한 내용의 통신도 아니고 훼손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 정당화된다는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다음으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와 시행령 제16조의 규정에 따라 구체적인 심의를 위하여 만들어진 이 규정이 "반국가적인 행위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내용"이라는 구절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은 결국 "반국가적 행위"는 객관적으로 특정할 수 없는 것임을 규정 자체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특정할 수 없는 요건을 가지고 표현을 규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는 그 심의에 따른 동위원회의 시정요구 자체가 별다른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원회의 규정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령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위원회의 시정요구에 불응하더라도 곧바로 그것이 정보통신부 장관의 명령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통신부장관의 명령을 직접 문제삼기 위해서는 법 제53조와 시행령 제16조의 규정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법 제53조에 규정된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이나 시행령 제16조 제2호 소정의 "반국가적 행위", 제3호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는 모두가 불확정개념으로서 이를 근거로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 등에 반하는 것이어서 위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설사 법 제53조와 시행령 제16조 소정의 사유가 나름의 객관성을 갖추고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당해 통신내용의 삭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CUG 폐쇄, 당해 이용자의 이용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명령을 내릴 경우에는 그 원인과 결과의 비례성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된다. 즉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그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그 필요성을 넘어서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원칙과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CUG 폐쇄나 이용금지 등의 명령은 당해 이용자의 게시물, 또는 당해 CUG에 올려진 어떤 게시물이 법 제53조 제2항과 시행령 제16조의 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이른바 법 제53조에서 말하는 ‘불온통신’의 예방, 근절은 당해 게시물의 삭제만으로도 그 목적이 달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명령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당해 CUG 자체가 법령 소정의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목적으로 개설되었다거나 아니면 그 CUG에 게시되는 게시물들이 전부 또는 거의 대부분이 법령 위반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거나 혹은 그 이용자가 게시하는 내용들의 거의 대부분이 법령 위반으로 인정된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보통신부 장관의 명령은 필요 이상의 규제로서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게 된다.

(2) 회사측에 의한 폐쇄

① 사례 – 한국통신 노동조합

이와는 달리 통신회사가 일방적으로 이를 폐쇄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이텔이 한국통신 노동조합의 전용통신방을 폐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한국피시통신은 1995. 6. 6 자사의 컴퓨터 통신망인 하이텔에서 한국통신 노동조합이 사용하고 있는 `KTTU’ 대화방을 일방적으로 폐쇄했다. 한국피시통신은 이날 정부가 경찰력을 투입해 조계사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이던 노조 집행간부를 연행한 뒤 오전 11시께부터 갑자기 한국통신 노조의 ‘KTTU’ 대화방을 완전히 폐쇄했다.한국피시통신은 "공공안녕질서를 해치거나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통신행위 때 사용자 동의없이 대화방을 폐쇄할 수 있다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및 동법 시행령 제16조에 따라 노조 대화방을 잠정 폐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시통신 노조는 "그동안 정부와 한국통신쪽이 유덕상 노조위원장의 메시지가 전달돼온 대화방을 폐쇄해줄 것을 요청해왔다"고 주장하며 "회사쪽이 이에 굴복한 것은 통신 사용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② 한국통신 노동조합 대화방 폐쇄의 법적 평가

한국피시통신 측은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및 동법시행령 제16조에 따라 폐쇄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법 제53조와 시행령 제16조는 불온통신의 정의와 정보통신부장관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불온통신의 취급을 거부 정지 또는 제한하도록 명령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전기통신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대화방 등을 폐쇄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근거규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 이러한 폐쇄조치는 정보통신부장관의 폐쇄명령도 없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통신망인 하이텔 이용약관에 의거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통신망의 이용약관들을 보면 거의가 이와 같은 일방적 폐쇄 등의 권한을 인정하고 있는 규정들을 두고 있다.

이와 같이 통신망 운영회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CUG 등을 폐쇄하는 경우 이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특히 통신망 이용약관은 이용자들이 이용신청을 할 때 이를 읽고 하도록 운영되고 있으므로 약관에 해당하는 사유로 인하여 폐쇄조치가 행해졌을 경우 이는 사인간의 계약에 의한 것으로 이를 들어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이 문제된다.

헌법상의 기본권은 국가권력에 대해서 효력을 갖는 것, 즉 국가에 의하여 기본권이 침해될 때에 미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인의 행위에 의하여 침해될 경우에도 사법상의 일반조항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적용된다. 혹은 사법상의 일반조항이 없는 경우에는 기본권이 가지는 객관적 가치질서로서의 성격을 근거로 하여 사인간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따라서 이 사안과 같이 사인간의 계약에 의하여 계약내용의 하나인 약관을 근거로 기본권의 침해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그 계약내용 자체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그런데 이용약관에 규정된 사유 중 게시물의 내용과 관련하여 이용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를 규정한 것으로는 대체로 다음의 몇가지 사항을 들 수 있다(하이텔 제16조 및 제20조, 천리안 제34조, 나우누리 제23조). (1)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반하는 경우, (2) 타인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한 경우, (3) 범죄적 행위와 관련되는 경우, (4)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되는 경우 등이다.

이들 사유는 어느 것이나 특정 게시물의 내용이 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란 결코 쉽지 않고 여기에는 사법적 판단이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곧바로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므로 그 판단은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1)의 경우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은 회사측의 일방적 판단에 의하여 그 범위가 결정되므로 이용자로서는 어느 정도의 표현이 이에 반하는지를 예측할 수가 없다. (2)의 경우 헌법 제21조 제4항에 의하여 그 정당성이 뒷받침될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엄격한 사법적 판단에 의하여 결정될 사안이지 약관으로 정하여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3)의 경우에도 직접 폭력 등을 선동하는 것이라고 쉽게 인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4) 역시 관계법령에 위반되는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는 확정될 수가 없는 개념이다. 아마 여기에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나 시행령 제16조도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을텐데 거기서 말하는 불온통신의 개념조차도 확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판단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유에 의거하여 CUG 폐쇄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명백히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법한 침해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유에 의하여 일정한 제한조치를 취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그 요건으로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의 통신이 과거에 적법절차에 따른 형사적, 행정적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거나, 그 위법성에 대하여 일정한 사법적 판단이 이미 이루어졌다거나, 법령에 따른 관계기관의 명령이 있었다거나 하는 등의 객관적인 사정이 인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은 오히려 통신사업자의 의무를 위반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계약상의 의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일정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건대 한국피시통신이 한국통신 노조의 대화방을 일방적으로 폐쇄한 것은 관계법령의 위반 등을 이유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덕상 노조위원장이 대화방을 통하여 노조의 행동방침 등을 전달한 것 등은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서 말하는 불온통신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한국피시통신의 이 조치 이전에 정부에서 조치를 요청해 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을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요청(법 제53조 제3항에 의한 정보통신부장관의 명령)이라고 볼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상 회사가 이를 근거로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3. 검열

앞에서 언급했듯이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을 금지하고 있다. 검열이란 사상이나 의견이 발표되기 이전에 국가기관이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일정한 사상이나 의견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검열의 대상은 출판물, 영화 등 객체화된 표현물이다.

그런데 컴퓨터 통신의 경우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범주에 속하는 검열이란 개념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컴퓨터 통신상의 검열반대운동은 통신상의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그 내용을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등을 검열의 사례로 들고 있다. 또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의 2 규정에 의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 역시 검열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검열의 개념에 포함되는지에는 의문이 있다.

우선 검열이란 "국가기관에 의하여" 언론 출판에 대한 사전제한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즉 행위 주체가 국가기관인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통신상의 게시물 삭제나 내용을 이유로 한 제한조치가 정보통신부 장관의 명령 등 국가에 의하여 이루어질 경우는 몰라도 한국통신 노조의 경우처럼 사인인 기업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이것을 검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지는 심의의 경우 그 자체가 행정관청과 같은 국가기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검열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위원회의 구성방식(정보통신부 장관의 위촉), 직무의 성격(특히 불건전정보유통의 단속과 관련하여 정보통신부장관이 위임하는 사항이 업무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이나 정보통신부장관에 대한 보고의무 등을 고려할 때, 정보통신부장관에 소속되어 있는 일종의 행정위원회로서 국가기관의 일부로 볼 수 있고 그것이 수행하는 심의 등은 적어도 주체의 측면에서는 국가검열의 예에 속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검열이란 사상이나 의견이 "외부에 공표되기 이전에"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그 공표를 억제하는 제도, 즉 사전제한제도를 말한다. 그런데 게시물의 삭제, 내용을 이유로 한 대화방 폐쇄 등은 이미 통신상에 공표된 다음에 이루어지는 조치이기 때문에 이를 사전제한인 검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통신이용자가 어떤 사상을 통신상에서 진술하고 그것이 통신망에 등록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개재되지만, 등록되기 이전에 심사가 되어 등록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라면 몰라도 등록된 게시물의 경우에는 그 내용을 이유로 하여 어떤 제한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를 검열이라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통신망 운영회사측에서는 게시물의 등록 자체를 거부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에는 회사에 의한 검열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적어도 통신상에서 국가기관에 의한 검열이 이루어진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는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우누리에 ‘섹스강국론’ ‘무장공비사건 조작가능성 높다’ 등의 글을 올린 김모씨에 대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1년간 이용금지 조치를 나우에 요청한 경우와 같이, 이미 공표된 게시물의 내용을 이유로 그 게시자의 게시물 등록을 거부하도록 요청(명령)하는 등의 조치는 검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등록 거부 자체는 회사에 의하여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행정기관의 거부할 수 없는 요청(명령)에 의한 것이므로 사실상 국가기관에 의한 검열이라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와 같은 경우를 제외한다면 통신망에서 본래적 의미의 검열, 즉 국가기관에 의한 사전검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인가? 반드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일반적으로 통신상의 검열은 통신회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만, 통신회사의 자체 검열은 국가기관의 판단에 매우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신망에 게시되는 표현물에 대한 국가기관의 개입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게 되면, 그런 상황에서 국가기관이 제시하는 논리는 사후로도 통신회사에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게시물의 내용이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아 형사처벌되는 일이 계속되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반국가적 행위", "미풍양속을 해함" 등의 이유로 게시물 등록자의 이용금지를 요청해 오는 일이 이어지게 되면, 통신회사는 그런 사안에서 국가기관이 내린 판단을 내면화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통신회사의 존립 자체가 국가기관의 판단에 좌우되는 현실(허가취소, 형사처벌 등)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이것은 통신회사에서 채택하고 있는 이용약관의 내용이, 그 합리성과 정당성이 의심되고 있는 법령의 내용과 거의 동일함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국가기관의 판단기준이 통신 회사의 판단기준으로 내면화되면 이미 회사의 검열과 국가기관의 검열을 구분하는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즉 외형상으로는 회사의 등록 거부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국가기관의 검열에 의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컴퓨터 통신의 내용을 이유로 하여 이루어지는 등록 거부는 그것이 국가에 의한 것이든, 회사에 의한 것이든 헌법상 금지되는 검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즉 회사는 이미 등록되어 이용자들이 열람, 조회하고 있는 게시물을 그 내용을 이유로 객관적인 요건에 의해 사후적으로 삭제할 수는 있지만, 게시물의 등록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으며 등록 거부 자체만으로 이미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아야 한다.

2000-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