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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오늘날 노동계급의 투쟁 /노급의 컴퓨터

By 2000/04/2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진보평론 2호 http://www.jinbo.net/~jbreview/%c0%e2%c1%f6/jb99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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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오늘날 노동계급의 투쟁

-노동계급의 컴퓨터네트워크의 이용을 중심으로-

이상락(경북대학교 강사, 경제학)

신자유주의 자본전략

신자유주의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의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역사적 산물이다. 신자유주의는 이전의 자본주의 운영원리였던 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와 대비되는 오늘날 자본주의 운영원리이다. 자유주의란 자본주의 성립 이후 한동안 자본주의 체제의 운영원리로 행세해 왔었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운영과 축적을 시장에 맡기자는 원리이다. 자유주의가 마치 계급투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그 밑에는 계급투쟁에서 승리하려는 자본의 의도가 숨어있다. 만약 자본의 확대재생산 과정에서의 모든 시장과 생산과정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자본주의 사회관계에 위기가 발생한다면, 생산물 가격이나 생산요소의 상대가격의 변화로 노동계급의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임금인상이나 노동시간단축을 가져온다면 한편으로는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상대적으로 비싼 노동 대신에 상대적으로 싼 자본을 더 생산에 많이 사용함으로써 실업을 야기하여 임금인하의 요인으로 작용케 하여 노동계급의 투쟁을 저지한다. 다른 한편 임금인상에 따른 이윤 폭의 감소로 생산을 줄여서 생산물의 가격을 올림으로써 이를 구입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노동계급의 투쟁을 약화시킨다. 이로써 이윤수준은 회복되고 투자는 활발해져 자본주의 사회관계(노동계급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보다 많은 일을 강요하는 사회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시대 동안 자본주의 발전은 시장메커니즘의 작동으로 노동과 자본의 밀고 당기는 투쟁으로 경기순환의 형태를 띄며 발전하였다.

경기순환의 형태를 지닌 자유주의시대의 자본주의 발전과정에 종말을 고한 것은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시장을 통한 노동통제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숙련노동자들의 주체성을 파괴하기 위한 테일러와 포드의 노력의 결과 노동자들은 상당히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대중화된 노동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운동, 대규모 대중노동운동의 형태로 나타났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노동자들의 투쟁과 세력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성장을 보여 상당한 정도로 임금의 실질 하락도 막았고 집합적인 자본가로서의 국가에 대해 취업이나 사회복지에 대한 요구를 증대시킴으로써 시장을 통한 노동계급의 통제가 어렵게 되었다. 계급간의 세력관계와 기본적인 사회구조가 실업증대와 임금인하라는 고전적인 경기순환 정책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에 대해 기존의 시장메커니즘을 이용하는 자유방임주의가 위기에 도래하자 케인즈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계획가들은 광범위한 사회공학을 통해 사회전체를 재구성하려 했다. 케인즈주의는 노동계급의 힘을 인정하고 이를 회유하는 방식을 취한다. 임금인상에 대한 요구를 생산성의 향상과 연결하여 노동자들의 불만을 자본의 발전과 연결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임금투쟁에 재갈을 물리려는 전략이다. 또한 자유주의시대의 공장에서의 독재와 사회에서의 무정부 상태의 모순에서 이제는 국가의 계획에 의해 사회 전체를 착취하는 조직으로 자본의 독재를 사회적으로 조직하게 되었다. 사회는 하나의 공장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사회라는 공장에서 비임금 노동자에 대한 여러 가지 지출은 자본 전체의 생산성에 기여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공공교육에 대한 지출은 자본에게 더 많은 생산성을 줄 수 있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목표로 하며, 저소득자에 대한 지출은 노동력을 쇠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 지출은 또한 자본을 위한 소비로서 역할을 한다. 재정금융정책을 통해서 국가가 직접 자본의 위험성을 줄이는 역할도 한다. 결론적으로 케인즈주의란 노동계급의 불만을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이 불만을 자본의 발전의 축으로 이용하고 사회를 하나의 공장형태로 전환하려는 자본전략인 것이다.

케인즈주의 자본전략도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성공을 거둘 수가 없었다. 공장 안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할 때 가차없이 노동조합에 대응하고 자발적으로 보다 많은 보수와 보다 적은 일을 요구하여 이것이 상당히 성공을 거두었다. 투쟁의 평등주의(생산성과 관계없이 평등한 임금요구)는 임금과 일과의 관계를 붕괴시켰으며 공장에서의 수직적인 노동분할을 붕괴하였다. 노동계급의 투쟁은 이제는 사회라는 공장으로 확대되었다. 1960년대의 사회라는 공장에서 학생, 여성, 농민 등은 인종차별, 학원통제, 소외, 착취, 제국주의, 비인간화, 여성차별, 소비자주의, 환경파괴 등에 항거하고 또한 노동, 보건, 사회복지, 연금, 주택보급 등에 대한 지출을 확대하는 투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국가재정의 위기로 국가를 이용한 케인즈주의 자본전략의 붕괴를 가져왔다.

국가를 이용하여 노동계급의 주체성을 말살하여 계급투쟁에서 승리를 하려는 케인즈의 전략은 노동계급이 도리어 국가를 이용하여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넘어서려고 하자 한계에 부닥쳤다. 자본은 노동계급의 국가의 이용을 막을 필요성이 시급했다. 이에 나타난 자본전략이 통화주의, 공급중시 경제학, 레이거노믹스, 데쳐리즘 등이다. 이름과 내용은 약간 다르지만 이들 전략의 기본성격은 시장원리로 사회체제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시장원리에 기반을 둔 19세기 자본주의 운영원리였던 자유주의의 현대적 부활이라는 의미에서 오늘날 자본주의 운영원리를 신자유주의라 부른다. 신자유주의 자본전략의 많은 부분이 국가에 대한 전략이다. 이들의 국가에 대한 전략은 정부지출의 감소, 공공부문의 민영화, 규제완화라는 방법으로 시장원리를 부활하여 노동계급간, 기업간, 그리고 국가(지역)간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략 뒷면에는 이전의 자본주의 운영원리와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의 주체성을 와해하려는 음모가 숨어있다.

노동계급에 대한 정부지출의 감소는 직접적으로 비임금 노동계급의 소득을 감소하여 노동계급이 착취에 저항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없에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킨다. 다시 말해 노동계급에 빈곤을 유발하여 자본은 노동계급에게 보다 쉽게 일을 부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비임금 노동자들에 지출되던 공공지출의 축소는 임금노동자와 비임금노동자 사이에 소득의 격차를 넓혀 공장에서의 임금노동자의 투쟁을 위축시킨다. 공공지출의 감축은 역시 공공부문의 대량실업을 낳게 하여 노동자로 하여금 실업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결국 노동계급에 대한 정부지출의 감소는 기존의 힘이 있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유연화하여 값싼 것으로 만들어 자본이 전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정부지출의 감소로 정부는 얼마 남지 않는 공공지출도 노동계급의 통제에 유용하게 사용한다. 일의 부과를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좀더 많은 보상(복지지출)을 지불하고 일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보상을 없애거나 줄임으로써 노동계급에 대한 정부지출을 선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업자들이 국가로부터 실업급여금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고용노동과 유사한 업무들(work-like activities)’에 종사하는 것을 급여금 수령의 요건으로 요구받고 있다. 실업자들은 임금이 낮고 고용계약 기간은 임시로 일하는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받고 있다. 또한 공식적으로 실업자로 등록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훈련이 의무화되고 있는데, 이 훈련노동은 노동자에게 회사 규율에 대한 복종심을 강요하거나, 임금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기대하는 임금의 수준을 낮추도록 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이 같은 훈련노동을 거부하거나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거부하는 사람에 대해서 정부는 소득보조금(실업급여금)지급을 철회한다. 복지제도로 노동을 강요한다.

정부지출의 감소에는 기업에 대한 지원감소도 포함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지원감소는 부실기업에 한정하여 이들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전략이다. 부실기업이란 계급적 의미에서는 노동계급을 통제하지 못하는 기업을 말한다.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감소는 기업간에 경쟁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과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까지도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단순히 자본간의 경쟁의 결과로만 보고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발전과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고 있다. 그러나 자본간의 경쟁은 누가 노동에 대해 더 큰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경쟁이기 때문에 자본간의 경쟁의 순 효과는 자본가계급으로 하여금 노동계급에 좀더 공격적인 ‘대자적 자본계급(capitalist class-for-itself)’이 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관점에서 볼 때(그들이 인식하느냐 안느냐와는 관계없이) 자본가 사이의 경쟁이란 그들 사이의 단순한 격투가 아니라 계급투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주1)

이를 좀더 상세히 살펴보자. 자본가간의 경쟁은 그들 사이에 누가 더 노동자를 잘 규제하느냐를 포함한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기업간의 가격경쟁은 누가 비용을 절감하는데 달려있으며 비용의 주요 부분은 노동자에 지불하는 임금과 혜택이다. 경쟁시장에서 이들 비용을 가장 잘 절감하는 자본가가 가장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고 그들의 상대적인 지위를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를 가진다. 최근에는 기업간의 경쟁이 제품차별이나 기술혁신에도 일어나게 됨에 따라 노동자들의 상상력이나 창의성을 가장 잘 이용하는 자본가가 다른 자본가에 비해 경쟁적 이점을 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자본가간의 경쟁은 노동계급과는 상관이 없는 그들간의 골육상쟁이 아니라 개별 자본가가 노동에 대한 통제를 최대한 하도록 하면서 결국 전체 자본의 노동에 대한 통제력을 증대시키는 과정이다. 기업 서로간의 경쟁을 통한 자본의 힘의 증대는 노동자들 사이의 혹은 노동자와 자본가사이의 관계구조의 변화를 통해서 얻어지기 때문에, 이 변화는 계급간의 힘의 양적인 재분배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힘을 와해하는 것까지 포괄한다.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자본계급의 힘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민영화는 노동계급의 투쟁의 승리로 얻어진 정부의 각종 사회프로그램을 파괴하여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민영화의 근본목적은 자본의 축적에 대한 노동계급의 집단적인 위협을 제거하고, 이전에는 자본의 영역이 아니었던 보건, 보험, 치안, 연금, 교육, 운송, 에너지, 교도소 등과 같은 것들에 자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차 사회적 문제들을 사적으로 해결해야만 되어 노동계급의 비용을 증대시켜 실질임금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이는 대중운동의 무력화라는 목표를 지향하며, 노동계급을 자본의 요구에 취약하게 만든다. 민영화는 또한 공공부문을 기업의 이윤과 손실의 기준에 종속시킨다. 시장원리라는 기준을 내세워 핵심적인 서비스, 예를 들어 교육 같은 것을 민영화(그리하여 상업화)함으로써 교육의 원래 목적은 사적 이윤의 기준에 지배를 받게 된다.(주2) 그래서 공공부문의 민영화는 삶의 많은 영역에 시장적 가치(교환가치)를 강요한다. 자연과 공해, 인간의 복지, 교육 등 모든 사회적 행위들은 단지 광적인 자본가의 히스테리 아래 이들이 이익 산출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라서만 평가받는다. 이렇게 해서 교환가치가 만연하게 되고, 마침내 문화적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일반대중의 삶에서 교환가치가 실질내용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는 자본가 계급이 인간존재와 사회적 존재의 모든 측면에 대해 자본주의적 가치의 헤게모니를 강요하고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주3)

규제철폐는 기업에게 비용을 상승시켜 이윤을 감소시키는 각종 규제조치를 제거함으로써 자본의 활동을 더욱 더 자유롭게 하는 전략이다.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는 산업 자체가 해왔다기 보다는 대부분 노동계급의 요구에 의해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규제철폐는 자본이 계급투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려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파괴, 비창의적 노동자의 위험한 작업환경과 소외감, 소비자의 위험 등에 대한 고려 없이 규제철폐로 자본은 그들의 이윤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그들이 말하는 규제의 철폐는 국가로부터의 자본의 해방까지 포함한다. 국가간의 자본이동에 제한을 두는 모든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자본이 전지구적으로 해방운동을 한다. 이는 자본의 세계화로 말할 수 있다. 세계화의 뒷면에도 국가간에 경쟁을 유발하여 노동계급을 해체하려는 자본의 의도가 숨어 있다. 자본의 이동에 대한 규제철폐로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와 짐에 따라 싸고 말 잘 듣는 노동자가 있는 곳으로, 환경에 대한 규제가 적은 곳으로, 노동에 대해 좀더 강압적인 국가로 자본이 이동된다. 임금이 높은 상태에서 고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산업은 제3세계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그리하여 중남미나 동아시아 등에 나사를 돌리는 조립공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런 재배치는 한 나라 안에서도 노동계급의 힘이 강한 지역에서 약한 지역으로 공장입지를 이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나타난 저비용 노동경쟁과 생산이전에 대한 위협은 안전하고 적절한 임금수준을 보장하는 일자리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제3세계에서는 임금이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고, 업무상 건강이나 안전조건들이 열악하며, 성적차별이나 장시간 노동이 만연된 상태이다. 선진국에서는 직장을 잡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자본이 자금을 다른 장소로 쉽게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지역이나 중앙정부가 기업에 대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예를 들면 "1970년대 프랑코 독재를 청산하고 포르투갈의 사회당 정부가 들어섰을 때 외국인 투자의 철수로 인한 국가의 지불불능상태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진보적인 정책을 포기해야만 했다. 똑같은 일이 1980년대 초 자메이카의 국민당과 1980년대 말 프랑스의 사회당에서도 벌어졌다."(주4)

전세계적인 규모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종종 민족주의적 반응을 재강화시켰다. 많은 미국 노동자들의 자동차에 장식했던 "미국 물건을 사자"는 범퍼 스티커에서 보다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세계화’라고 불리는 이러한 조류는 사실상 점진적으로 분절된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미국 노동자와 한국 노동자들을 경쟁 속으로 몰아넣어 자본에 대한 적대감을 노동자 사이의 적대감으로 전환시킨다. 오늘날 국가간 지역간의 경쟁은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대중언론들은 이를 계급간의 갈등으로 보기보다는 국가간 혹은 지역간의 갈등으로 초점을 맞춘다. 이들 갈등 뒤에는 한 국가 내에서 그리고 전세계에 걸쳐 계급간의 갈등이 작용하고 있다.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간의 경쟁은 각 지역과 각 국가들로 하여금 계급간의 힘과 환경에 따라 노동자로 하여금 일하도록 부추기고 혹은 탄압하도록 압력을 가하거나 자본에 유리한 정책을 실시할 것을 강요한다.(주5) 국가간의 경쟁은 저임금과 노동강도에 의해 초국적기업들에게 더 많은 이윤을 보증하는 경쟁으로 나아간다. 국가는 초국적기업들에 우호적인 금융조건과 사회간접자본의 이용, 값싼 노동력의 저수지를 보장하는 경쟁으로 발전한다.

한편으로는 규제철폐를 부르짖지만 신자유주의는 끊임 없이 규제적인 정부당국의 필요성을 주창한다. 자본의 활동에 비규제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노동에 대한 규제를 주장하는 것은 자본의 통제력을 강화하는데 주요한 수단이 된다.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모든 투쟁형태, 즉 대규모 시위, 직접적인 전용, 난동 등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범죄시하고 이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하자는 것이다.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가의 노동계급에 대한 폭력은 오늘날도 자본주의적 생산의 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노동조건을 개악시키는 나쁜 경향들은 법령에 의해 한층 더 강화시키려 하고있다. 특히 생산에 지식의 비중이 큰 오늘날 지적재산권에 대한 엄격한 국가의 규제는 일반적인 사유재산의 보호 이상이다.

이상의 신자유주의 전략을 살펴 볼 때, 신자유주의란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본질은 보유한 채 새로운 노동계급의 구성에 대응하는 이 전과는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발전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의 발전형태는 틀리나 자본주의의 내용은 그대로 아니 더 확대되었다. 시장을 강조한 신자유주의라 해서 케인즈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사회라는 공장을 유지한 채 시장원리로 이중적으로 노동계급을 와해하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는 우리들의 삶까지도 자본의 착취의 대상으로 하는 좀더 확대되고 유기적인 자본주의 운영원리이다.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지만 그 내용은 작은 정부가 아니다. 즉 작은 정부라 해서 노동계급에 힘이 약한 정부를 의미하지 않는다.(주6) 국가의 경제에 간섭을 축소한다는 것은 단지 국가가 노동계급에 의해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이 국가를 노동계급에 유리하도록 이용한 적이 많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국가의 역할 축소란 노동계급의 국가의 이용을 막아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전략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오늘날 노동계급의 투쟁(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한 투쟁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자본전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급투쟁에서 자본이 일방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계급투쟁은 계속되어 나가고 있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은 아무런 저항이나 자신들의 의사를 주장하지 못하는 수동적 집단이 아니라 끊임 없이 노동계급을 규제하고 통제하려는 자본에 항거하고 나아가 노동계급의 주체성을 자본에 부과하는 능동적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철폐하기 위한 오늘날 노동계급의 투쟁 영역은 공장이나 사회라는 공장에서 뿐 아니라 우리들의 삶까지 확대되었다.

노동계급에 대한 공공지출의 감소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계급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무료급식의 확대, 빈민을 위한 의료혜택의 확대, 실직자에 대한 지출증대, 저소득자에 대한 조세감면, 장애자 보조금, 아동보호기금, 주택자금 보조 등을 요구하는 투쟁이 이에 속한다. 이를 위해 아동단체, 학생 및 교육단체, 장애자 단체 등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의 공공부문을 민영화하려는 신자유주의 전략도 노동계급의 투쟁에 의해서 공격을 받는다. 볼티모어와 하트포드의 선생님들의 노동조합은 공립학교의 민영화에 반대했으며 불란서에서는 1995년 쥐페의 민영화 조치에 항의하여 대규모 투쟁이 일어났다. 정부의 기업활동을 위한 각종 규제조치의 완화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노동자들의 작업장에서의 안정을 해치고, 소비자에게 위험이 가해지는 것에 대항하여 노동계급은 인간과 자연 모두에 해를 끼치는 것을 제한할 것을 국가에 강요한다. 환경단체들은 단순히 기업의 이윤을 위한 무절제한 경제성장의 프로그램에 반대한다. 유해물질의 배출 및 소각, 자연을 약탈하고 공해를 배출하는 산업이나 공장에 대한 반대투쟁은 자본이 힘을 행사하는데 큰 도전이 된다.

노동조직들은 작업장에서의 안전장치를 좀더 엄격한 법을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소비자 단체들은 구입한 제품들의 안전성을 제고하여 고객들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국가에 보다 엄격한 소비자 보호기준을 요구하며, 어린이를 위한 단체들은 보다 안전한 장난감을 생산할 것을 요구하고, 시민단체들은 개인의 정보가 자본의 이윤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의 정보를 엄격하게 보호하도록 각종 입법을 할 것을 요구한다. 노동계급은 노동계급에 유해한 것에 대해서는 이상과 같이 정부로 하여금 규제를 강화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한편, 각종 노동계급을 억압하는 법률이나 지적소유권과 같이 자본이 독점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규제를 풀도록 요구한다.

전 사회(전지구)를 그리고 노동계급의 매일 매일의 삶을 자본의 영역내에 두려는 신자유주의 전략에 저항하고 또는 이를 넘어서기 위한 노동계급의 투쟁의 대상과 방법은 다양하다. 오늘날도 전통적인 투쟁방법인 대규모 시위, 봉쇄, 행진, 모임, 데모 등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 투쟁방법은 여전히 유용한 투쟁방법이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한 투쟁이 많아지고 있는 형편이며 또한 그 유용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한 노동계급의 투쟁을 설명하지 않고는 오늘날 노동계급의 투쟁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할 수 없다. 노동계급이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어떻게 자본에 대항하고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려고 하는지를 살펴보자.(주7)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노동계급은 투쟁을 고립시키려는 자본과 국가의 노력을 파괴하였다. 고립될 뻔한 투쟁이 네트워크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사례는 많다. 멕시코 정부는 무력으로 그리고 언론의 통제로 치아빠스 농민반란을 멕시코 남쪽 지방의 정글에 한정하려 했다. 그러나 사빠띠스따 반군들은 처음에는 팩스나 전자메일을 이용하여 성명서나 개인적인 인터뷰를 전세계에 보냈다. 이에 동조한 멕시코 국내외에 있는 옹호자나 후원자들은 이를 컴퓨터네트워크로 다시 전세계에 보냈다. 네트워크를 이용함으로써 사빠띠스따는 멕시코와 전세계에 그들의 혁명을 수행하는 새로운 전자투쟁망을 엮었다.(주8) 1997년 영국 리버풀에 있는 머지항만회사(Mersey Docks and Harbour Company)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노동자들은 인터넷 웹사이트를 이용하여 그들의 주장을 전세계에 보냈다. 파이낸셜 타임즈, 리버풀 데일리 포스트, 에코 등의 신문은 이들의 파업을 취급하여 처음에는 동정적인 기사를 실었으나 몇 일이 지나자 그들의 관심은 시들었다. 비록 언론에서는 작게 취급했지만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리버풀의 부두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투쟁사실을 상세하게 전세계로 보냈다. 이에 접한 일본과 미국의 부두노동자들은 100여개 항구에서 연대투쟁을 일으켰다.(주9)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노동계급은 자본과 국가의 잔인성과 부당함을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 투쟁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컴퓨터네트워크는 보스니아, 중국, 루마니아, 아마존강 유역의 산림, 미국의 원주민 지역, 팔레스타인, 하이티, 티벳 등에서의 인권유린과 부당성을 기록하고 전달하는데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 피스넷에는 ‘아프리카 워치(Africa Watch)’와 ‘티벳을 위한 변호사위원회’ 등 수십 개 단체가 참여해 인권침해 사례를 폭로하고 또한 보고서도 배포하고 있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및 이와 유사한 성격의 기구들은 인터넷의 뉴스그룹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한 뉴스그룹(soc.rights.human)에는 티모르, 말라위, 중국, 아이티, 르완다 등에서 수집한 사례를 고발하는 게시물이 가득하다. 자본과 국가의 잔인성과 부당성의 폭로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략도 폭로함으로써 투쟁에 불길을 지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멕시코)정부는 국가의 안전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외국 자본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사빠띠스따를 소탕할 필요가 있다"는 리오단 로에트(Riordan Roett)의 메모를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 올리자 전세계가 분노하였다.(주10) 더불어 치아빠스 농민반란에서 사빠띠스따를 동조하는 사람들은 거대 농장주에 의해 고용된 사병에 의해 그리고 경찰과 군대에 의해 발생한 고문, 즉결심판, 폭력 등의 정보나 사진을 인터넷에 실어 전세계에 알렸다.(주11) 이 사실로 이 국가 저 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잠재적 적대감을 폭발시켰다.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노동계급이 단순히 수세적인 입장이 아니라 자본에 대해 보다 공세적인 입장도 취한다.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노동계급은 자본과 국가가 무엇을 하는지 감시하며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의회가 심의중인 법안과 의원 개인의 발언들이 즉각 전자텍스트로 공개하여 국민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게 했다. 일례로 오지가 많은 알래스카에서는 주 의회의 의정활동이나 법안 등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의 행위는 하나 하나 감시되고 감독 받는다. 정보를 공개하라는 시민과 민간 단체들의 압박이 가중되고 있어 그 시기가 문제일 뿐 전세계적으로 공개의 추세는 거대한 흐름이다. 지난 1993년 미국 의회에서 정부문서인쇄소(GPO)의 정보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이러한 밑으로부터의 압박에 따른 것이다.

노동계급은 컴퓨터네트워크를 통해 노동계급의 투쟁을 외부에 알리고 자본과 국가의 부당성과 잔인성을 외부에 알림으로써 노동계급의 언론매체로 이용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투쟁에 대한 뉴스는 기업이나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되는 대중언론기관의 뉴스의 가치성 기준을 통과하기가 어렵다. 비록 그들이 노동계급의 투쟁을 취급한다고 할지라도 이들 언론기관들은 노동계급의 투쟁이 야기한 문제점에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컴퓨터네트워크의 발전과 노동계급이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이전의 언론기관들이 주지 않았던 각종 정보를 받아보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으로 이제는 문자뿐만 아니라 그림까지 전송하고 받을 수 있다. 노동계급은 현장에 있는 목격자로서 그들이 보고들은 바를 자본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지역적 정치적 경계를 넘어서 전세계 통신망을 타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도한다. 기존의 대중매체를 대신한 매체로서 노동자들이 그들 자신과 다른 지역의 동료들의 투쟁에 대해 더 많고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정보에 접근하게 됨에 따라, 즉 사건의 자본이나 국가의 공식적인 견해에 대신하는 노동자 자신의 견해로 다른 사람에게 도달하는 것이 가능함에 따라 노동계급의 정치적인 힘은 증대된다.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노동계급은 새로운 투쟁방법도 개발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이버공간에서의 점거 농성이다. 관청 등 특정 장소를 점거하며 벌어지던 농성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온라인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미국 뉴욕의 ‘전자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운동가’들은 멕시코 정부 웹사이트 점령한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목표는 멕시코의 농민반군 사빠띠스따 국가해방전선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탄압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사이버공간에서의 시위이다. 1999년 5월 10일에 이루어진 사이버 연좌농성의 대표적인 무기는 ‘플러드 넷(Flood Net)’이란 컴퓨터 소프트웨어이다. 이 프로그램은 특정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리로드(Reload, 재접속)’버튼을 7초에 한번씩 자동 클릭하는 프로그램이다. 플러드 넷은 추적을 피해 예정된 시간에 한시적으로 인터넷에 뜨게 하여 수 천명이 플러드 넷을 통해 한꺼번에 리로드를 눌러대면 해당 사이트는 작동이 마비된다. 4월 10일 시험작전에서는 전세계에서 8141명이 집결하여 세디요 멕시코 대통령의 웹사이트를 점거했다.(주12) 또한 전자메일을 이용해서 웹사이트를 마비시키는 ‘전자메일폭탄’은 많은 편지로 한곳의 시스템을 고장내는 방법이다. 자동으로 한곳에 똑 같은 메일을 보내 열람해야만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만든다든지 아니면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한곳에 항의하는 방법들이 사용된다.

우리 나라 진보네트워크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MS사에 전자메일을 보내어 MS사의 인터넷 웹사이트에 혼란을 주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또 다른 투쟁방법으로 사이버청원을 들 수 있다. 1994년 봄 ‘사회적 책임을 위한 컴퓨터전문가협회(Computer Professionals for Social Responsibility: CPSR)’는 정보요원이 개인적으로 암호화한 내용을 해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도청법안(Clipper chip)에 관한 법령에 반대하기 위해서 이 법령에 찬성한 정치인들의 이름을 공개하여 이들에게 전자메일을 보내어 압력을 가하는 네트워크를 통한 청원운동을 전개하였다. 4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하였다.(주13)

컴퓨터네트워크로 노동계급은 사이버시위(피케팅)라는 투쟁방법도 개발했다. 우리 나라에서 1997년 12월 말 30초에 한 개꼴로 PC통신망 플라자란을 가득 채웠던 총파업 지지 글들은 개인적인 행동이 정치적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더 좋은 예는 온라인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네티즌들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내건 블루리본이다. 푸른색은 1995년 6월 미국 의회에서 저속한 내용을 처벌할 수 있게 한 엑슨 수정안의 ‘정보통신 품위조항’이 통과되면서 등장한 가상공간에 사용한 상징물이다. 1996년 2월 클린턴 대통령이 새로운 통신법에 서명하자 몇몇 네티즌들은 이 법에 반대하는 표시로 푸른색을 리본모양으로 만들어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렸다. 블루리본은 네티즌의 분노와 함께 인터넷을 타고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인터넷에 폭력과 음란물이 판을 치는 것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명목 아래 벌어지는 ‘사이버 검열’이 오히려 이용자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전자민주주의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주장이다. 국경을 건너뛰어 전세계 네티즌들이 동참하였으며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블랙의 물결’도 여기에 가세하였다. 새 통신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검게 만드는 온라인시위를 벌이면서 시작되었다. 이 블랙 온라인시위는 유권자통신감시단(VIW)이 주도하였는데 야후, 라이코스 등 유명 인터넷 검색엔진들도 1996년 2월 9일부터 48시간 홈페이지 화면을 까맣게 바꾸면서 여기에 동참하였다.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노동계급 개개인은 누구나 사설 BBS를 만들고 인터넷에 개인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의 사상, 취미, 관심사, 의견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구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노동계급은 자신의 노동력을 고가에 팔기 위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단지 자본에 지배받지 않는 자신의 개인적 역량을 키우게 되었다. 노동계급이 됨을 거부하고 자신이 완전한 주체임을 선언하는 공간을 형성하였다.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과 행위는 자본주의적 일상을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이것은 자본이 지배할 수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으며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공간이 되었다. 또한 컴퓨터네트워크로 개인이 적극적인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컴퓨터네트워크에 의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하지 않고도 개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인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불특정 다수에게 신속히 전파할 수 있다. 개인이나 소집단은 그 덕분에 커뮤니케이션의 측면에서 큰 조직이나 정부만이 누렸던 권한을 만끽하고 있다. 기숙사의 대학생, 지하 셋방에 거주하는 외로운 정치적 반대자도 전문성과 권위를 가진 빛나는 문서를 생산하고 전파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씨앗이었던 ‘외로운 전단 제작자’의 전자적 부활이라고 하겠다. 누구의 지시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가 평가하여 부당한 것이라면 이를 투쟁으로 연결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네티즌이 한 뉴스그룹(ca.driving)에 캘리포니아의 특정 주유소들이 판매하는 가솔린 가격을 일목요연하게 게시해 석유회사들의 담합과 사기성 할인 조치를 경고했다. 프랑스의 몇몇 대학생들은 미니텔 시스템을 이용해 정부의 등록금 인상 조치에 항의하는 투쟁을 조직적으로 이끌었다. 모든 사람들이 시민군이 될 수 있으며 투쟁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주체성이 커짐에 따라 오늘날 노동계급의 투쟁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정치적인 모임에서, 교회에서, 운동경기장에서, 문화행사에서, 상담기관에서,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집단에서,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벌어지는 것들로부터 시작한다. 거창한 구호를 무시하고 소외의 경험과 도덕적 비판, 생활양식과 삶의 질 그리고 생존에 대한 물음이 전면에 대두된다.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1997년 영국에서 벌어진 ‘사회정의를 위한 시민의 행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행진에서 대부분의 시위대오는 각종 정치 캠페인의 기치나 축제적인 구호("그들은 싸움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춤을 원한다"와 같은) 주변에 결집하거나 아무 깃발도 없는 곳에 무리 지어 모였다. 이들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화이트 홀(영국의 중앙관청가)’ ‘투어리스트-랜드’를 카니발 축제장으로 바꾸어 버렸다.(주14) 이들은 국가 지향적인 당과 압력단체의 확립된 조직구조를 도전하여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의사결정, 분권화된 구조, 관료적인 처리과정에 대한 반대 등을 추구한다. 그래서 오늘날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적인 민주주의의 기본목표, 구조, 조직의 스타일 등에 근본적으로 도전한다. 이들은 직접참여에 기초한 정치행위로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한 스타일로 행한다. 이들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국가의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통합되고, 훈련을 받고, 군대와 당과 같은 조직을 거부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지도자나 중심 프로그램이 없이 자발적이고, 비공식적이고, 특별하고, 불연속적이고, 평등적이다. 이들은 자율적인, 탈중심적인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적인 조직원리를 강조한다.

컴퓨터네트워크를 통해 서로간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개인들은 서로 연결하여 연대하였으며, 그 결과 컴퓨터네트워크는 정보의 공유의 장으로, 나눔의 터로 자리잡게 되었다. 개인의 자유로운 공간이 서로 연결되면서 노동계급의 집단적인 자유로운 공간은 그 이상으로 커져갔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우리들만의 집단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촉진시켰다. 공통의 가치관이나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이데올로기에 상관하지 않고, 지역과 직업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회적 자원을 공유하는 노동계급의 자기발전의 장을 열었다. 네트워크를 통해 노동계급은 자본에 지배받지 않는 집단공간을 형성하며, 개인들간의 유대감을 증대시키고, 집단의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관계와는 무관한 우리들의 대안적인 사회를 형성하는 기틀이 된다. 전지구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네트워크에 연결되면서 이들 사이에 연대투쟁으로 승화시켰다. 컴퓨터네트워크를 통해서 사람들간에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고 토의하는 가운데 전지구적으로 도움을 주고받게 되었다. 직접적으로는 알지 못하고 투쟁에 직접 참여는 할 수 없으나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들은 서로 서로가 전략, 좋은 아이디어, 정보를 제공하고, 투쟁의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며, 여러 가지 출판물에도 글도 쓰고, 기금모음에도 참여하며, 대규모 시위에도 참여함으로써 서로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제는 하나의 사회나 대화가 지리적인 장소에 제한 받지 않는다. 전세계에 걸쳐 무수한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관심을 갖게되는 세계적인 규모로 생각하며 지역적으로 행동하는 새로운 노동계급이 창출되었다. 핵무기, 불균형한 자원의 약탈, 기아와 빈곤, 열대 산림지역의 황폐화, 지구 온난화 현상 등의 문제는 규모가 너무나 커서 어떤 한 지역에서 해결점을 찾기란 매우 어렵게 되었다. 네트워크는 국경을 초월하여 전세계 모든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한다. 이로써 각 국의 다양한 노동계급 단체 사이에 의사소통을 촉진했다. 이들 간의 의사소통으로 전지구적으로 연대함으로써 시민들의 개인적인, 심지어 국가적인 이기심을 넘어서 전지구적 문제들에 관해 인류 모두를 위한 해결책을 추구한다. 이 같은 전지구적 민중운동은 사회적으로 착취적인 그리고 환경적으로 파괴적인 지구화의 장려자인 세계무역기구(WTO), 아태경제협력체(APEC),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EU)과 같은 무역협약들에 대해 분명히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세력으로 행동하고 있다.

전지구적 다양한 노동계급간의 연대는 노동계급의 집단적인 힘을 증대시키는 것 이외에도 네트워크를 통한 전세계적인 규모의 투쟁에서 우리는 우의, 형제애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개인들은 집단적이고 공유되며, 또한 개성이 존중되는 공동체를 형성한다. 자본이 이제까지 개인들간의 차이를 차별로 전환하여 끊임없이 노동계급을 분리시켜서 힘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네트워크를 통한 투쟁을 통해서 노동계급은 제 집단들 간의 차이에 대한 존중과 대화는 우리들에게 정치적 힘을 주고 있다. 오늘날 노동계급의 투쟁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질적인 것에 반대한다. 오히려 ‘탈물질주의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리고 세속화되고 다원적으로 분산된 문화의 터전 안에서 ‘특수한 것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며 다방면에서 문화적인 삶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오늘날 투쟁의 참신성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들의 다양성을 표출하는 것이다.(주15)

컴퓨터네트워크를 둘러싼 계급투쟁

노동계급이 컴퓨터네트워크를 계급투쟁에 광범위하게 그리고 위력적으로 사용하게 됨에 따라 자본과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느끼고 노동계급이 컴퓨터네트워크를 투쟁에 사용하는 것을 막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자본전략가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RAND에 근무하는 두 자본의 전략가는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붕괴시키는데 컴퓨터네트워크의 강력한 힘을 인식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할 것을 주장했다.(주16) 컴퓨터네트워크를 노동계급이 투쟁에 사용하는 것을 막는 방어적인 생각을 뛰어 넘어 이를 통제와 이윤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본전략가도 점차 많아지게 되었다.

자본과 국가는 컴퓨터네트워크가 노동계급의 투쟁의 수단이 되는 것을 막고 동시에 자본과 국가의 이윤과 통제의 도구로 전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 첫째가 컴퓨터네트워크를 계급투쟁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색출하여 처벌하는 방법이다. 경찰력을 동원하여 네트워크를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공격하는데 사용하는 사람들을 색출하여 범죄나 테러행위로 기소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예는 1991년 AT&T 전화국의 전화불통 사건이다. 이 사건의 발생 원인을 해커들의 행위라고 무조건 간주한(아직까지 누구에 의해서 일으켜 졌는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FBI는 ‘선데블작전(Operation Sun Devil)’으로 알려진 작전을 통해 해커와 그들의 장비를 몰수 체포하였다. 1984년에 제정된 ‘범죄소탕법’에 의해 추진된 이 작전의 주된 목적은, 해커들이 운영하는 사설전자게시판(BBS)에서 벌어지는 정보공유 행위에 대한 제재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영됐던 ‘피스넷’, 사이버펑크족의 천국 ‘웰(Well)’, 애리조나주의 ‘억만장자 아이들(Billionaire Boys Club computer bulletin board)’ 등의 전자게시판들은 이 작전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주17)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컴퓨터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집단이나 사람들을 알 경우에는 이들을 구속 기소할 수 있으나, 네트워크는 너무나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을 모두 감시할 수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문제가 되는 곳을 아예 차단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중국의 인권상황에 관한 웹사이트나 뉴욕타임즈와 같은 서구의 대중매체 웹사이트를 포함해 100여 개의 웹사이트와 접속하는 것을 막아 놓았다.(주18) 영국 경찰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회사에게 형사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고 위협하여 자발적(?)으로 133개의 뉴스그룹에 대한 접근을 막도록 하였다.(주19)

컴퓨터네트워크를 노동계급의 투쟁 수단이 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법이외에도 자본과 국가는 국가의 법을 이용하여 네트워크에 대해 검열하고 규제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음란물과 폭력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한다는 미국의 ‘통신품위법’의 많은 부분이 어린이 보호와 관계없이 사실은 모든 통신업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공공정책이 아닌 시장이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Highway)’와 통신체제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 법을 통해 어린이 보호라는 구실로 인터넷상에서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것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인터넷을 규제하여 통제적이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법이다.(주20) 성 표현물에 대한 억압을 구실로 네트워크를 규제하려는 국가와 성 표현물을 독점하여 이윤의 대상으로 하려는 자본의 공동 음모이다. 중국에서는 아예 외국과의 인터넷 링크를 국가가 관리한다. 인터넷 사용자는 우편통신부에 등록을 하도록 중국 정부는 요구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들이 중국 외부에 있는 반정부세력과 정치적인 유대를 막기 위한 이유에서다.(주21)

컴퓨터네트워크에서 노동계급이 무엇을 하는지를 완전히 파악하려는 국가의 여러 가지 시도가 있어왔다. 대표적인 예는 1992년 미 법무성과 FBI에 의해 제안된 도청법안(Digital Telephony)이다. 이 법은 통신 서비스업체는 정부의 관리가 통신내용을 도청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법이다. 이 법으로 전화회사들은 새로운 통신네트워크에 FBI가 운영하는 ‘도청장치(Clipper Chip)’를 허용하였다.(주22) 1996년 10월 8일 일본 법무성은 ‘조직적 범죄대책법’을 입법하기로 결정했다. 이 법에 의해 도청은 합법화된다. 이것은 일본 내에서 경찰에 의한 도청을 합법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이다.(주23) 영국의 국가범죄첩보부는 1997년 경찰로 하여금 전자메일을 감시하고 중간에 가로챌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법안의 입법을 요청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현행법의 구멍으로 인해 영국 경찰은 그들이 영장만 가지고 있다면 당장이라도 온라인 메시지들을 도청할 수 있다고 말한다.(주24) 인터넷과 전자메일을 검열하려는 이러한 시도들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현재 검열을 가능케 하는 기술적 변화들이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에 단지 섹스(sex)라는 단어가 들어간 사이트를 봉쇄하라고 지시하기만 하면 어린 꼬마들은 플레이보이 웹사이트에 접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똑 같은 기술이 국가에 의해서도 사용된다면, ‘노동’이나 ‘자유’와 같은 낱말들도 걸러낼 수 있다.

노동계급이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하여 국제적인 노동계급의 연대투쟁을 원만히 수행하고 자본에 큰 타격을 입히자 이를 막기 위해 많은 국가들은 국제적인 공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인터넷은 자율적이고 전적으로 무작위적인 연결(국가의 입장에서는)로 자생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어떤 한 국가가 이를 규제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각국은 서로 도와 노동계급의 공격을 차단 억압하려 한다. 1995년 12월 독일 정부는 미국 오하이오에 기반을 둔 ‘컴퓨서브’에게 전세계적인 200개의 성(sex)과 관련된 뉴스 포럼에 접속되는 것을 차단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주25) 전지구적인 협동이 없이는 노동계급이 투쟁을 위해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것을 규제하기란 사실상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많은 상거래가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이를 위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싱가포르의 조지 예오 정보예술장관은 1997년 10월 파리에서 열린 전자 상거래 국제회의에서 인터넷 등을 통한 ‘전자범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단속할 ‘국제네트워크정부’를 구축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제2 통산장관도 겸하고 있는 그는 "전자 상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부문의 법과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상거래를 도리어 제한할 수 있는 과도한 규제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주26)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민영화 처방을 바로 컴퓨터네트워크에도 적용한다. 인터넷은 공공적이고 비상업적인 목적에 기여할 의도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점차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자 자본은 이를 이윤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자본은 인터넷을 완전히 상업적인 통로로 허용되도록 끊임없이 압력을 가해 왔다. 그 동안 금지됐던 인터넷의 상업적 이용이 1990년부터 허용되면서 상업적 이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더구나 1995년 5월 미국의 ‘국가과학재단(NSF)’은 인터넷 중추망(Back Bone)까지 스프린트, 아메리택, 퍼시픽 벨 등의 거대 통신회사에 넘겼다. 인터넷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사이버 비즈니스의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사기업이 다양한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기준을 만들게 되었고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이를 보고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Highway)’가 ‘정보유료도로(Information Fairway)’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탄하는 이들도 있다.(주27) 컴퓨터 네트워크의 민영화는 자본에 이윤의 토대를 제공할 뿐 아니라 자본에 통제의 권한도 준다. 상업 네트워크인 컴퓨서브는 자신의 네트워크 내에 속한 약 200개의 뉴스그룹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현재로서는 주로 음란물 뉴스그룹에 한정하지만 동성애 인권과 에이즈에 관한 것도 포함되었다. 정부가 가지고 있었던 이 같은 결정은 이제 기업 스스로가 할 수 있게 된다.

원래 노동계급이 나눔의 터로, 인간발전을 위한 도구로, 투쟁의 수단으로 주로 사용하였던 컴퓨터네트워크를 자본과 국가는 이윤과 통제의 영역으로 이용하려고 노력함에 따라 노동계급은 이를 원래의 영역으로 유지하는데 주력을 다해 왔다. 네트워크를 자본과 국가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동계급의 노력의 예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선데블작전’ 이후 미국에서의 투쟁이다. 전화국의 전화망 고장 원인이 소프트웨어 결함이었다는 사실이 전자게시판을 통해 퍼지면서 전화국 사고의 책임을 해커에게 전가한 검찰에 대해 비난의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더욱이 수평적 관계의 커뮤니케이션 문화에 입맛을 들인 네티즌들은 컴퓨터의 기본원리가 개방과 공유에 있다며, 정부의 해커 단속을 정보공유사회에 대한 억제정책이라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결국 미국 사회를 충격 속에 빠뜨렸던 선데블작전은 해커를 비롯한 컴퓨터 전문가들에게 컴퓨터네트워크를 자본과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컴퓨터네트워크에서 네티즌의 확고한 인권을 주장하는 보다 강력한 사이버공간의 행동주의자들은 1990년에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미치 카포와 존 페리 바를로는 ‘범죄와 당황(Crime and Puzzlement)’이라는 성명문을 작성, 일반인들에게 배포했다. 정보공간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정치적 단체를 구성하겠다는 것이 성명문의 요지였다. 이 성명은 1996년 초 전자게시물의 검열반대운동을 주도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전자프론티어재단(EFF: 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의 출범을 촉발시켰다. CPSR도 이 무렵 탄생했다.

특히 1996년 초 미국에서 제정한 통신품위법을 반대하기 위해 벌인 정보자유 캠페인은 디지털 세대의 연대를 가져왔다. 각종 온라인 서비스에 게재되는 내용은 일정한 품위를 지녀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검열정책에 해커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이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각종 시민단체와 과학기술자들도 ‘무자비한 가위질’이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행위라며 즉각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미국시민자유연합(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EFF, 민주주의와 과학기술 센터(Center for Democracy and Technology), CPSR 등의 시민단체와 연구단체들은 통신품위법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법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통신품위법이 미국 수정헌법 제1조(표현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위반했다는 주장이었다. 필라델피아 연방법원은 1996년 2월 15일 이 법이 인터넷상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여 법 시행을 임시 정지시켰다. 그리고 르노 미 법무장관도 2월 23일 통신품위법 위반자에 대한 수사금지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은 여론 형성을 위해 즉각 온라인 시위를 벌였다. 인터넷상에 대자보를 써 붙이고 정보민주화운동 명망가들이 온라인 연설을 벌였으며, 백악관에 미국헌법 복사판을 대량으로 보냈다.

컴퓨터네트워크를 자본과 국가의 사용으로부터 보호하고 나눔의 터로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노력은 전세계적이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에 들어 새로운 집단이 등장하여 정부의 정보화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등 사이버 공간의 사회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서울대 정보동아리인 정보연대 싱이나 청년과학기술자협회, 참세상BBS 등이 이때 나타난 대표적인 단체들이다. 40여 개의 시민단체가 ‘정보통신 검열철폐를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하여 한총련 CUG 폐쇄반대운동으로부터 최근에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개악 반대투쟁을 이끌어 정보통신부로 하여금 결국 철회를 이끌어 내는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 나라에선 최초 인권적 차원에서 정보화의 문제를 조명한 {96 정보통신검열백서}를 펴냈다. 정보화와 관련하여 가상공간의 국가보안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53조 2항에 대한 철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통신검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정보통신위원회,’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전국 민주노동조합 총연맹,’ ‘진보 통신단체 연대모임’은 비인간적인 사회적 모순을 깨고 보다 인간적인 정보화 사회를 맞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하나의 작업으로 1998년 ‘정보통신 검열철폐를 위한 시민연대’가 발간하였던 {1996년 정보통신검열백서}의 뒤를 이어 {1997년 정보통신검열백서}를 발간하였다.

정보의 자유롭고 평등한 흐름을 위해 국제적으로 서로 연대를 강화하며 국제적인 기구를 설립하게 이르게 된다. 전세계를 연결하여 국제적인 전자정보교환 시스템을 건설하여, 정보를 공유하여 전세계 시민들 사이의 정보보유 격차 그리고 국가와 국가간의 정보보유 격차를 줄어들게 하고, 컴퓨터네트워크를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1990년 ‘APC(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tions)’가 태동하였다.

컴퓨터네트워크를 둘러싼 계급투쟁에서 승리가 긴급한 이유

이상에서 오늘날 계급투쟁에서 컴퓨터네트워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고 이를 둘러싼 계급투쟁이 치열함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를 둘러싼 계급투쟁은 정보통신기술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더 격렬해 질 것으로 전망한다. 컴퓨터네트워크의 빠른 보급과 발전으로 자본과 국가는 이를 이윤과 통제의 수단으로 더 많이 사용할 것이고 또한 노동계급도 투쟁에 그리고 새로운 사회의 구축에 더 많이 이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크를 둘러싼 투쟁은 점차 심화되리라고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사이버 세계는 최근까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아무리 강력하게 언론 통제를 행하고 있는 정부라고 할지라도 인터넷과 같은 사이버 세계에는 그 손길이 미치기가 어려웠다. 라디오나 TV 같은 기존의 통신기술은 중앙집중적인 정부의 통제아래 있지만, 위성통신 수신기나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 같은 장비들은 정부의 통제, 감시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노동계급이 네트워크를 투쟁에 이용한 것에 대한 국가의 공격은 경찰력의 이용이나 통신검열 등 상당히 조잡했으며, 정보의 흐름에 큰 변동을 줄 수 없고, 전세계적인 규모의 노동계급의 동원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정책조언자들이 의견을 제시했듯이 국가는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을 개발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컴퓨터네트워크를 둘러싼 투쟁에서 우리의 승리가 긴급한 이유이다.

네트워크를 둘러싼 투쟁은 이제 막 시작한 상태이기에 처음부터 투쟁에 이길 필요가 있다. 네트워크에 대한 자본과 국가의 전용은 시초적 자본축적기간 동안 농민을 토지로부터 축출하여 노동계급을 형성했던 것과 대동소이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주28) 시초적 자본축적에서 자본은 여러 가지 정부의 정책이나 법령을 이용하여 생산수단인 토지로부터 농민들을 축출하였다. 농민들은 토지의 엔크로저에 대항하여 자본에 투쟁을 했으나 농민들이 이 투쟁에 실패한 후 그들은 살아가기 위해 그들의 삶을 노동력으로 팔아야만 했다. 오늘날 만약 우리가 네트워크를 둘러싼 계급투쟁에서 실패한다면 우리들은 네트워크에 흐르는 우리들의 지식과 창의성 심지어 우리들의 영혼까지 팔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 어떠한 자유를 잃는다면 우리들이 이를 회복하는데는 많은 시간과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지금 실패를 한다면 인터넷을 통한 진보적인 사회로의 변화를 이루기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1934년 미국의 통신법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1920년대 라디오 방송이 시작했을 때 라디오 방송의 선구자들이 비이윤의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1920년대 말 자본은 네트워크 운영과 상업광고를 하면 라디오 방송은 상당한 이윤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워싱턴 정치권에 그들의 막강한 힘을 사용하여 상업방송을 하려는 사람들은 연방라디오위원회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얼마 되지 않는 공중파를 공공이나 의회의 토론도 거의 없이 그들에게 할당되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야 미국의 방송에 비이윤과 비상업적인 사용을 요구하는 방송개혁운동이 있었다."(주29) 마찬가지로 우리는 1950년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메스 미디어인 TV의 출현으로 많은 지식인들과 언론종사자들은 이를 민주적인 교육의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라 환영하였다. 그러나 TV가 자본에 의해 사용되자 이윤가능성이 많은 프로그램을 육성하여 공공의 이익에 이용할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다. 케이블 설비에 시민사회가 접근하여 약간의 공공의 공간을 만드는 것도 상당히 투쟁을 해서 얻은 것이다.(주30) 이는 노동계급이 라디오나 TV를 초기에 선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 투쟁으로 이를 역전시키기에 너무나 어려웠던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네트워크를 둘러싼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안

오늘날 계급투쟁에서 컴퓨터네트워크를 둘러싼 투쟁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에 대한 노동계급의 인식이 크다고 할 수 없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노동계급에게 부각시키고 인식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상거래, 마케팅, 정보수집, 생산과정에서의 이용 등에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많은 책과 논문이 발행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컴퓨터네트워크를 노동계급이 이용하는 방안에 관한 책이나 논문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에 사회과학자들이나 사회활동가들은 네트워크의 계급적 의미를 지적하고, 자본과 국가가 네트워크를 어떻게 독점하며, 이것이 노동계급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노동계급에 알려야 한다. 영화제작 종사자, 작가, 가수 등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자본의 네트워크 독점의 위험성과 네트워크를 노동계급이 얼마나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줄 수 있다. 현재까지의 이들 작품은 주로 컴퓨터네트워크가 완전히 자본의 통제하에 있는 것처럼 어두운 면만 묘사하였다. 노동계급은 자본과 국가의 이윤과 통제를 위한 네트워크 사용에 있어 단지 그 희생자로만 표현되고 있다. ‘브래이드 런너(Blade Runner)’와 같은 공상영화, ‘뉴로맨서(Neuromancer)’와 같은 소설, 최근 영화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Enemy of the State)’ 등은 우리들에게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용한 자본과 국가의 횡포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는 하나 이를 노동계급의 투쟁에 사용하는 적극적인 방안을 찾는데는 아직은 부족하다.(주31) 소수 전문가들의 이 같은 노력도 중요하지만 네트워크의 보호에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야 할 것이다. 노동계급은 이에 관해 자신들의 의견이나 전략을 각종 포럼이나 토론에 참여해 교환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나 전략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우리들은 자본의 전략보다 더 강력한 전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적인 노동계급의 단체들의 각각의 주된 투쟁목표가 무엇이던 간에 각 단체의 두 번째 투쟁목표는 자본과 국가의 이윤이나 통제를 위한 네트워크 사용으로부터 네트워크의 보호에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사회활동가들의 집단은 역시 그들의 홈페이지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설명해야만 한다. 네트워크에 대한 보호 없이는 노동계급의 다른 투쟁도 심각히 침해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1990년대 초부터 EFF, CPSR, ACLU 등의 단체들이 통신네트워크 특히 인터넷의 사유화와 규제조치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였다.(주32) 이들 단체사이에 아직까지 많은 문제에 대해서 완전하게 의견일치는 보지 못했으나 이들 단체들은 컴퓨터네트워크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누구든지 네트워크에서 차단되는 것을 막고, 정보의 부자와 정보의 빈자 사이의 격차를 크게 할 지도 모르는 보편적인 접근을 방해하는 것에 대항하는데는 의견을 같이 한다. 각 진보단체들은 이들 단체와 긴밀히 연결하여 지금 진행중인 여러 가지 컴퓨터네트워크에 대한 투쟁을 인식하고 지원하는 것이 자신들이 투쟁하는 부문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자본과 국가가 컴퓨터네트워크를 이윤과 통제의 수단으로 전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노동계급의 네트워크 이용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기 위해, 우리들은 우리들의 필요성에 따라 컴퓨터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의 정책이나 법령을 만들도록 국가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국가의 보호나 도움이 없이는 자본이 네트워크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에 압력을 가하는 것 이외에 우리는 자본과 국가가 네트워크를 이윤과 통제를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 지를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동태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힘의 약화를 가져오듯이 자본과 국가의 행위를 노출시키는 것이 노동계급에 큰 힘이 된다.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우리들이 미리 알면 네트워크를 둘러싼 투쟁에서 승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역시 UN, UNESCO, WTO와 같은 국제적인 조직에게도 압력을 가해야 한다. 현재는 자본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국제적인 조직이지만 이를 우리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들 국제적인 조직들에 대한 압력과 투쟁은 시장을 통해 계급간과 국가간의 확대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고 네트워크의 노동계급의 사용을 증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전세계의 모든 노동계급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자본의 네트워크의 이용에 대한 투쟁은 어떤 특정 국가나 집단에 한정된 전쟁이 아니라 모든 나라 모든 노동자들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컴퓨터네트워크를 둘러싼 투쟁에서 승리할 때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여러 투쟁에서 승리하기가 보다 쉬울 것이다.

<미주>

1) Harry Cleaver, "Competition? or Cooperation?" Common Sense, April 1990, pp. 20-22.

2) Robert Ovetz, "Students Struggles and the Global Entrepreneurialization of the Universities," Capital and Class, Vol. 58, Spring 1996.

3) 매시모 드 안젤리스, [경제의 자율성과 세계화],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편역 (한울 1998), 101~135쪽.

4) Steven E. Miller, Civilizing Cyberspace: Policy, Power, and the Information Superhighway(New York: ACM Press, 1996), p. 9.

5) Ramin Ramtin, Capitalism and Automation: Revolution in Technology and Capitalist Breakdown(London: Pluto Press, 1991).

6) 거대한 독점자본이 소규모 형태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소규모 형태의 기업은 거대 독점자본에 비해 노동계급에 덜 독재적일 것이라 하여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서 1960년대 이태리에서 유행한 소규모 형태의 기업으로의 전환은 단지 노동계급의 투쟁에 대응하기 위한 자본의 대응전략으로 이해한 마태라는 소규모 형태로의 전환이라고 해서 자본의 권력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통제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작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Small is not beautiful)’라고 주장한다. Phil Mattera, "Small is not Beautiful: Decentralized Production and the Underground Economy in Italy," Radical America, Vol. 14, No. 5, Sept.-Oct. 1980.

7) 보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라. 이상락, {정보시대의 노동전략: 슘페터 추종자들의 자본전략을 넘어서}, (갈무리 출판사, 1999).

8) 해리 클리버, {사빠띠스따: 신자유주의, 치아빠스 봉기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 이원영, 서창현 옮김, (갈무리출판사, 1999).

9) Greg Dropkin, "Sending a Strike Message in a Bottle," in the web site of (http://www.december.com/cmc/mag/1996/nov/dropkin.html).

10) Jason Wehling, "Netwars and Activists Power on the Internet," in the web site of (http://www.teleport.com/~jwehling/Netwars.html).

11) Harry Cleaver, "The Zapatistas and the Electronic Fabric of Struggle," in the web site of (http://www.eco.utexas.edu:80/Homepages/Faculty/Cleaver/index.html).

12) 조선일보, 1998년 5월 3일.

13) Miller (1996), p. 308.

14) 인간성을 옹호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운동(fHUMAN: for Humanity and Against Neoliberalism) 런던 위원회, [‘유연화-착취’와 노동자의 저항: 영국의 경우],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편역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한울, 1998), 235~274쪽.

15) Alberto Melucci, "A Strange Kind of Newness: What’s "New" in New Social Movements?" Enrique Larana et al (ed.), New Social Movements: From Ideology to Identity(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1994), pp. 101-30.

16) 미국의 무기개발과 연관된 강력한 연구조사 기관인 RAND의 두 연구자, 아퀼라와 론팰드는 "미래의 분쟁은 계급의 계층에서 보다 네트워크에 의해서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John Arquilla and David Ronfeldt, "Cyberwar is Coming!" in the web site (http://gopher.well.sf.ca.us:70/0/Military/cyberwar).

17) Bruce Sterling, The Hacker Crackdown(New York: Bantam, 1992).

18) New York Times, February 5, 1996

19) Financial Times, October 5, 1996.

20) Wired News, March 12, 24, 1998.

21) New York Times, February 5, 1996.

22) John Barlow, "Jackboots and Infobahn," Wired, April 1994, p. 40.

23) 오구라도시마루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라. (http://www.jca.ax.apc.org/~toshi/).

24) CNET News, November 14, 1997.

25) New York Times, January 15, 1996.

26) 한겨례 신문, 1997년 11월 10일.

27) Brian Winston and Paul Walton, "Virtually Free," Index on Censorship, January 1996, pp. 78-83.

28) 시초적 자본축적에서 설명한 토지의 엔크로저와 가상공간에서의 엔크로저 사이의 차이점과 유사점에 대한 분석은 다음을 참조하라. Harry Cleaver, "The "Space" of Cyberspace: Body Politics, Frontiers and Enclosures," in the web site of (http://www.eco.utexas.edu:80/Homepages/Faculty/Cleaver/chiapas95.html).

29) John Stevenson, "The Silencing of a Democratic Medium: Early Public Policy on Radio and the Regulation of the Internet," The Annual Meeting of the Internet Society, 25-28 June 1996, The Internet: Transforming Our Society Now (CD)(Montreal, Canada, 1996).

30) Mark Surman, "Wired Words: Utopian, Revolution, and the History of Electronic Highways," The Annual Meeting of The Internet Society, 25-28 June 1996, The Internet: Transforming Our Society Now (CD)(Montreal Canada, 1996).

31) 이제까지 내가 본 것 중에 노동계급이 컴퓨터 통신네트워크를 투쟁에 사용할 가능성에 철저히 분석 검토한 작품은 노동계급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무성의 연구가들 예를 들면 RAND의 연구 결과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Roger C. Molander, Andrew S. Riddle, and Peter A. Wilson, Strategic Information Warfare: A New Face of War(National Defense Research Institute, 1996).

32) Suzanne Iacono and Rob Kling, "Computerization Movements and Tales of Technological Utopianism," Rob Kling(ed.), Computerization and Controversy: Value Conflicts and Social Choices(San Diego: Academy Press, 1996), pp. 100-101.

2000-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