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정보공유

[접근권/자료] 정보불평등과 공공접근권에 관한 몇가지 질문

By 1998/12/31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1998년 작성
작자 미상.

정보불평등과 공공접근권에 관한 몇가지 질문

질문 1. 정보 사회에서 불평등을 늘어나는가, 줄어드는가?

최근 수년 사이에 ‘정보화’는 한국사회의 지배담론이 되었다. ‘정보화’라는 용어는 ‘정보사회’로, 다시 ‘정보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정보혁명’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가져올 희망적 미래를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 격변에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선진국이 되고 복지국가가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많은 골치아픈 사회문제들이 ‘정보혁명’을 통해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비단 정보통신과 관련한 관료나 기업가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IMF의 극복도, 수출증대도, 뭣도 뭣도, 문제라 생각되는 것이면 무엇이라로 정보화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마치 비효율적인 것이면 무엇이든 민영화, 규제완화해야 한다는 논리만큼이나 자동적인 반응이다. 거기엔 어떠한 반성이나 성찰도 없다. 정보사회에 대한 이같은 낙관적 전망은 앞서 1장에서도 보았듯이 1970년대 다니엘 벨 (Daniel Bell)을 비롯한 일군의 미래학자등이 주창한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론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다니엘 벨 : 탈산업사회와 계급갈등의 약화
대표주자격인 벨은 앞으로 사회는 자본과 노동이 중심인 산업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이 중심인 탈산업사회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변화의 경향 가운데 사회계급·계층의 변화에 대한 언급만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생활의 중심이 물질적 생산에서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서비스생산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 결과 재화생산을 하던 육체노동자층은 감소하고, 전문직, 관리직, 사무직 등 정신노동자층이 증가할 것이다. 이는 산업사회에서의 정치적 권력과 사회계급의 토대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즉, 상하간의 위계구조를 골간으로 하는 관료제적 조직형태는 쇠퇴하고, 대신에 조직내의 전문적 정보지식 생산자들이 수평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조직형태가 주류를 이룰 것이다. 조직내 권력구조의 수평화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벨은 탈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종래 산업사회를 특징짓던 계급갈등은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식의 전망은 토플러 등을 포함하는 ‘정보화사회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정보화사회론 비판 : 정보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러나 벨의 낙관론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정보화의 진전은 벨의 주장처럼 기존의 자본주의 사회체제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보화가 기존에 권력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들에게는 배타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소외된 계층에게는 더욱 불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판적 언론학자인 허버트 쉴러(Herbert Schiller)는 정보화를 거치면서 사회는 ‘정보를 가진 자/정보부자'(info-rich)와 ‘정보를 가지지 못한 자/정보빈자'(info-poor)로 나누어짐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기는 커녕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들은 ‘페이퍼뷰'(pay-for-view)사회라는 말처럼 정보의 이용이 점차 이용자의 지불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

어쨌든, 최근 정보화가 급속하게 현실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정보화사회에서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각국의 정보화가 시장과 기업의 압도적 영향력 하에서 이루어지면서 과거 ‘공공의 재산’으로 여겨져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던 많은 정보들이 이제는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상품으로 변모하고 있다. 또한, 새로이 창출되는 정보에는 어김없이 요금표가 붙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선전된 인터넷에서도 ‘정보의 상품화’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들고 있다. 따라서 지불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가치있는 정보에 접근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보다 가치가 낮은 정보에만 접근하거나 아예 이용조차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나라마다 탈규제와 자유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이 노골화되면서 정보의 상품화에 맞서서 공공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질문 2. ‘정보불평등’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정보를 이용하거나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보의 소유, 이용정도를 둘러싼 ‘정보격차(information gap)’나 ‘지식격차(knowledge gap)’는 존재했다. 산업사회에서도 정보나 지식의 격차는 존재했고, 한 개인이 어떤 계급이나 계층적 지위를 갖느냐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즉, 정보불평등 현상이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생산을 포함한 사회 전과정에서 정보의 중요성이 증가되면서, 정보격차나 정보불평등은 불평등을 낳는 중요한 요소로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미래사회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가진 벨, 토플러 등의 정보화사회론자들은 여전히 ‘미래사회는 정보와 지식을 가진 자들의 세계’라는 식의 말만 하고 있다. 무엇이 정보를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나누고, 그 차이가 사회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답을 숨기고 있다. 정보와 지식이 미래사회의 권력을 결정하는 요소라는 그들의 주장과 그것이 널리 이용되어서 산업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할 것이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사회구성원들중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정보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은 소위 ‘미래사회의 새로운 권력층’으로 불리는 이들이 사실은 산업사회의 육체노동자 못지 않은 착취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보화는 결국 이들의 노동까지도 탈숙련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정보화사회론자들은 권력의 원천으로서의 지식과 정보라는 사실 너머에 있는 또 하나의 사실, 즉, 바로 그 사실때문에 지식과 정보의 독점과 불평등은 심화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보불평등이 형성되는 과정은 지극히 ‘악순환’적이다. 즉, 현재의 정보격차가 앞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차츰 구조화되면서 하나의 불평등 현상으로 자리잡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히려 비교적 직선에 가까운 출발선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적 불평등의 단면을 따라 또다시 정보불평등이 발생하고, 이는 다시 기존의 불평등 구조를 강화시키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즉, 이미 경제적, 문화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보다 우월한 정보와 네트웍에 접근할 수 있는데 비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더 심각한 사회적 격차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미 뒤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이제 그들 앞에만 유독 나타나는 더 많은 장애물과 싸우면서 나아가야 할 부담을 짊어지게 된 셈이다.

질문 3. 정보불평등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1) 법과 정치권력에 의한 접근 제한
산업사회 이전에도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것은 지배집단의 중요한 통치전략이었다. 실제로 인류역사에 길이 남을 발명이라 하는 인쇄술도 한때는 불순한 사상을 유포시킨다는 이유로 그 이용이 금지되거나 특권층에게만 허용되었다. 권력의 명시적인 명령에 의한 접근제한은 멀리 서양으로 가지 않더라도 우리사회에서도 쉽게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서적에 대한 출판이나 배포를 금지하거나, 영화에 대한 검열을 한다는 것이 바로 특정 정보나 지식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는 예이기 때문이다. 다만, 근대사회 이전의 경우 이것이 신의 뜻을 빙자한 왕의 명령과 같이 인격적 수단에 따라 이루어졌다면,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는 법과 같은 비인격적 수단을 통해 그 정당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몇 해전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열풍이 불자, 중국을 비롯한 일부 나라의 정부가 체제유지에 해가 되는 정보가 유입되는 것을 우려해서 네트웍 자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한 경우가 있었다. 또한, 최근 한국정부도 국제적인 인터넷 사이트인 지오시티스(Geocities)에 있는 일부 북한관련 사이트를 문제삼아 각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에 접속차단을 요청한 적이 있다. 이와 더불어,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일부러 공개하지 않는 행위도 접근권을 제한하는 경우에 포함된다. 국가가 활동중에 생긴 정보를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공개하지 않는다든지, 노동자나 소비자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기업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인 ‘알권리(right to know)’에 대한 침해이며, 정보에 대한 부당한 접근제한이라고 할 수 있다.(검열에 대해서는 다음 장을 참조)
그러나, 이러한 법이나 정치권력에 의한 접근의 제한이 그에 맞서는 시민과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투쟁의 결과, 상당부분 없어지거나, 완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최근에 들면서 명시적인 제한 대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제한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논리, 시장논리에 의한 접근제한이 바로 그것이다.

(2) 정보불평등의 경제적 요인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 덕택에 예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고도의 다양한 서비스가 일반에게 제공되고 있지만, 이를 향유하는데 필요한 비용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컴퓨터통신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의사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를 위해 특별한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컴퓨터와 모뎀이 있어야 하고, 전화사용료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하며, 상용통신망을 사용한다면 매달 일정액의 사용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평소 소득이 이 정도를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사회적으로 고도의 정보통신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그 발전으로부터 혜택으로부터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도 비교적 소득수준이 높은 행정·전문직 종사자의 경우 가정의 20%이상이 최소한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농업·축산업·수산업 관련 종사자의 경우는 겨우 0.8%만이 이를 보유하고 있어서 기본적인 정보통신서비스에 대한 접근의 격차가 상당한 정도이다. 이는 정보통신서비스의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경우도 별 다를 바 없다. 1993년 미국 연방통계청의 통계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백인들은 37.5%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비해, 소득수준이 낮은 흑인들은 그 수가 25%에 불과했다. 이를 소득수준에 따라 나누어 보면, 10,000달러 미만의 가정은 6.8%만이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는데 비해, 75,000달러 이상의 고소득층의 경우 모두 61.7%가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었다. 더우기 정보와 네트웍의 이용도가 높아짐에 따라 이러한 차이가 점차 좁혀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최근의 정보통신산업의 민영화와 경쟁체계의 도입은 정보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다수가 경쟁하는 시장에 새로이 진입한 기업은 낮은 투자비용에 비해 고이윤이 보장되는 장거리전화나 도시지역 서비스에 집중투자를 한다. 이를 ‘단물빼기'(cream-skimming)이라고 한다. 그 결과 그 외의 나머지 부문에는 투자를 소홀히 하거나 서비스를 포기하게 되서, 자연스럽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상승할 것이다. 물론 경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경쟁과 민영화의 확대가 독점시장의 경직된 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서비스 질의 향상, 다양화, 그리고 가격인하까지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과당경쟁에 의한 가격인하는 일시적이며, 곧 담합 등에 의해 가격이 재인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설사 가격인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단순히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과연 경쟁을 통한 효용의 증가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분배되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가격인하의 혜택이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돌아간다면, 이는 노동자를 비롯한 소외계층을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래 통계에 따르면, 소득수준에 따른 네트웍 이용률의 차이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정보통신시장의 경쟁체제 도입과 민영화가 정보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종철 GVU 통계>
이렇듯 소득수준이 낮은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정보통신서비스로부터 소외되어 ‘주변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기존의 사회적 계급/계층구조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나 탈산업사회로의 이행과는 오히려 ‘관계없이’ 재생산되며, 사회적 약자들은 이제 기본적인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부터도 배제당함으로써 그러한 재생산구조는 더욱 고착된다.

(3) 정보불평등의 사회·문화적 요인
어떤 이들은 정보불평등은 결코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실제로 부유하더라도 ‘정보활용능력'(information competence)가 없으면 정보사회에서 뒤쳐질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정보사회에서 이러한 능력만 있으면 더 나은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가 숨어 있다. 물론, 정보불평등은 단순히 경제적 구조에 의해서만 생기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많은 사회, 문화적 요소들이 정보불평등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교육수준, 성별의 차이 등은 이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결코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이런 사회·문화적인 요인들은 상당부분 앞서 지적한 경제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가르치지 않고 잘하길 기대하지 말라
아래 미국의 통계는 교육수준에 따라 네트웍과 월드와이드웹(WWW)의 이용 정도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더욱 증가되고 있다.

1998-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