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인터넷거버넌스

인터넷 가버넌스에 대하여{/}소위 정보통신선진국의 침묵

By 2005/04/0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칼럼

전응휘

2003년도 제1차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에 이어 다시 금년 11월 제2차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가 열린다. 금년말 마무리 짓게 되는 이번 정상회의의 최대숙제는 개발도상국 정보통신기술지원을 위한 재원조달방안과 2003년 뜨거운 논쟁 주제였던 인터넷 가버넌스(Internet Governance)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다.

애초에는 인터넷 가버넌스 문제는 미국주도의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와 개발도상국들이 이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 대치하자는 쟁점으로 불거졌다. 그런데 코피아난 유엔사무총장 산하에 구성한 인터넷가버넌스 워킹그룹(WGIG)이 구성되면서 오히려 논의 폭은 훨씬 확대되었다. 단순히 도메인, IP주소할당, 루트서버와 같은 문제뿐만 아니라 스팸, 프라이버시, 유해컨텐츠, 인터넷상호접속, 지적재산권 문제, 다국어문제 등과 같은 이슈까지도 세계적인 차원의 의사결정구조가 필요하다는 논의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 폭의 확대요구는 선진국들이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의 주장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인터넷 가버넌스 문제가 이렇게 끝도 모를 범위로 확장되어가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미 제기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개별 국가의 차원에서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 점차로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뚜렷한 해법이 나와 있지 않다. 논의구조부터가 상당히 여러 기구에 걸쳐 있으며, 그나마 있는 논의와 협력의 틀조차 미국·선진국 중심의 논의구조라는 개발도상국들의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 농산물 시장개방 협상에서 선진국들의 보조금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던 개발도상국 연대인 중국, 인도, 브라질, 시리아 등과 같은 국가들이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에서도 동일한 연대구조를 유지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인터넷 가버넌스의 대립구조는 다음과 같다. 선진국들은 주로 민간주도,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민주적 개방성과 투명성을 요구한다. 이에 반해, 개발도상국들은 정부주도, 범세계적 차원에서의 공공정책과 개별 국가의 정책 관할 영역에 대한 구분, 범세계적 협력의 틀로 유엔기구를 활용할 것을 주장한다. 개발도상국들 입장에서야 세계무역기구, 전기통신연합,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 세계지적재산권기구, 경제협력개발기구 등 여러 기구로 나뉘어져 있는 현재의 세계 가버넌스 구조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는 여력도 없고, 참여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자신들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을 만큼의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이해당사자라고 해봐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업체도 변변치 않은 데다 이제부터 정부가 나서서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판이니 민간주도로 이끌어 가는 현재와 같은 인터넷과 관련된 가버넌스 구조가 전혀 수긍할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선진국들은 시장의 수요에 부응해야 한다, 국가간의 협의구조에서 시간낭비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인터넷에 대한 규제는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하여 최소한의 합의를 이루는 것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개발도상국들의 처지도 이해하면서 선진국들이 느끼는 가버넌스의 필요성도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에 모처럼 국제사회에서 능동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으련만 개발도상국의 국가규제 요구 속에서 오히려 관료적 개입의 근거와 정당성을 발견하는 공무원들의 발상법 앞에서는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국제사회에서 역시 대한민국은 옵저버(Observer)일 뿐이다.

 

 

200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