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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링크하고 마음껏 퍼나르자

By 2004/11/1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인터넷트렌드

최현용

대체로 어떤 단어에 ‘-질’이라는 접미사가 붙으면 나쁜 뜻으로 사용된다. ‘펌질’이라는 이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이 단어의 사용 이면에는 “‘펌’보다는 링크를 활용하는 것, 원론적이기는 하지만 늘 한결같은 결론”이라는 ‘펌’보다는 ‘링크’가 우선이라는 선호도를 반영한다. 펌보다 링크를 선호하는 측은 대개 전통적인 블로거들이다.(http://readme.or.kr/blog/ archives/000265.html) 네이버를 비롯한 몇몇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펌’기능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세태가 특히 이들에게 비판받는다. 원문에 대한 링크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원문에서 추가된 내용이나 수정사항은 결코 펌 문서에서는 반영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기술로 트랙백과 고유링크(permanent link)가 전통적인 블로깅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링크만으로 구성되는 ‘링크’ 블로그가 유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그런가하는 의문이 든다.

저작권을 잣대로 비판하는 것은 자가당착

펌은 소유욕이다. 그래서 펌을 펌질이라 비난하는 이들은 펌이 ‘기본적으로 저작권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http://www.help119.co.kr/blog/archives/000543.html) 하지만 이런 류의 비판은 인터넷과 웹이라는 테크놀러지를 구성하는 기본 정신이 ‘공유’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비판이다. 물론 저작권 침해행위라는 지적은 당연하게도 맞는 말이다. 현행 저작권법상 영리 또는 비영리를 막론하고 저자의 명시적인 허락없는 저작물의 사용은 불법이다. 그러나 웹에 무엇인가를 게재하는 행위 자체가 웹의 특성상 이미 상당 부분 저작물의 사용을 허락하는 행위이다. 브라우저는 웹 상의 모든 물질적 구성물들을 사용자의 피시로 이동시킨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아무리 펌을 막기 위해 ‘마우스 오른쪽 클릭’을 막아도, 이미 사용자의 피시로 이미지와 텍스트가 이동된 이상 기술적으로는 절대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런 사실은 TCP/IP 프로토콜이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사실 저작권 위반이라 말할 근거도 없다.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것은 이미 TCP/IP 프로토콜 규약과 그 결과물까지도 승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저작권을 잣대로 펌을 비판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되는 셈이다.

독자가 읽는 순간 그것은 독자의 것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소유욕이다. 펌을 하는 순간,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되어버린다. 더이상 원저자와는 무관하게 ‘퍼간 자’의 의지에 의해 텍스트는 특정한, 그리고 어쩌면 전혀 별개의 의미로 고정된다. 책으로 발행된 글들은 그 책이 존재하는 한 저자가 의도한 일정한 맥락 하에 존재한다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이것은 원저자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텍스트도 그것이 사고가 아니라 유형의 어떤 것에 매개되어 공개되어 버린 그 순간, 자신의 것일 수 없다. 독자가 그것을 읽는 순간부터 그것은 독자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펌들이 하나의 목록을 이루면 그 자체로서 특정한 맥락을 드러낸다. 애초부터 문화란, 그리고 그것을 대상으로 하는 저작권이란 그런 점에서 순전히 자본주의적인 단견일 뿐인 것이다. 애초 의도한 바와 다른 형태로 사용되는 것이 두렵다면 아예 공개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펌, 특정인의 소유물이자 공유물

도서관이 장서고로서의 역할을 하는 이유도 또한 소유욕이다. 누군가가 소유한 책이 어느 순간까지 보존될 수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공유될 수 있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소유에 대한 갈망을 낳는다. 펌의 소유욕도 이와 같다. 정보의 바다에서 하나의 동일한 정보가 수없이 많이 복제되어 검색엔진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두려운 일일까? 아니면 소중한 글타래를 링크를 찾아 쫓아 가다가 결국은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404 Error’를 만나는 일이 더 두려운 일일까? 물론 ‘원문 웹페이지가 사라지는 경우, 그것은 해당 웹문서가 그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타당하다. 그렇다면 단 한번의 힛트도 기록하지 못하는 웹문서는 어떨까? 그건 가치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 뿐만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더 많은 웹상의 정보들이 자본의 울타리에 갇혀 ‘유료화’의 미명을 쓰고 있다. 원본은 사라지고 사본만이 유료화의 장벽 너머에 있다. 대표적으로 해피캠퍼스(http://www.happy campus.com/)의 수많은 리포트 목록들을 보라. 그러나 펌은 웹상에서 공개된 채로 남아 있는 한, 특정인의 소유물이지만 또한 여전히 공유물이다.

경계가 없는 펌, 자본에 대한 반역

그러므로 문제는 소유욕으로써의 펌이 아니다. 문제는 펌의 결과로서 그 글의 맥락적 의미가 변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펌을 불법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의도와 효과에 대한 논의만이 유일한 해결방안이다. 더욱 큰 문제는 펌을 불법화하는 자본의 굴레이다. 네이버의 ‘인용기능’은 그런 대표적인 예가 된다. 네이버 외부로 퍼가는 것이 불법이라는 논리는 결국 네이버 외부에 아무 것도 두지 않겠다는 발상이므로. 그러므로 강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경계가 없는 펌은 자본에 대한 반역이다. 마음껏 링크하고 마음껏 퍼나르자.

마지막으로 링크는 합법일까? 몇 가지 판례는 링크마저도 합법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원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지 않은 링크는 상업적 이용 여부를 막론하고 일단은 불법이다. 예를 들면 뉴스 제목을 인용하고 링크를 걸어두는 것조차 저작권 침해사례로 인정된다.(http://agent.itfind.or.kr/Data2003 /IITA/IITA-0337/IITA-0337.htm) 합법인 것은 링크의 대상이 되는 URL뿐이다.

200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