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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인권을 논하는 이유

By 2004/11/15 10월 25th, 2016 No Comments

독자기고

윤현식

올 초 경찰은 장기미아를 찾기 위한 조치들을 진행하면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미아 부모들의 애절한 고통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한 부모를 잃고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버린 아동들을 위해서 필요하다고도 한다. 미아 부모와 미아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논의가 불거져 나왔고, 급기야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들이 입법발의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검찰 역시 연쇄살인범 유영철 검거 이후 ‘범죄자 유전자은행’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재범율이 높은 범죄, 특히 성폭행 범죄와 같은 강력범죄가 벌어졌을 경우 피의자를 신속하게 색출하여 처벌함으로써, 범죄 피해자의 인권보호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유전자정보,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돼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검경의 이러한 행동은 칭찬할만한 것이고, 많은 격려를 해주어야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지난 시기 인권침해의 첨병역할을 하던 검경의 놀랄만한 인권감수성을 발견하게 되는 현재, 우리는 감동과 기대보다는 불신과 우려를 표명하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예측할 수 있는 정보체계로 각광을 받고 있는 유전자는 그 성격상 검경의 수사과정에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즉, 다른 모든 조치를 다 취했음에도 유전자 분석과 활용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해결을 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되어야하는 것이 유전자정보이다. 어쩔 수 없이 유전자정보은행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선행되는 전제조건으로서 검경이 국민으로 하여금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놀랄만한 인권감수성을 자랑하는 검경은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국민의 신뢰를 받을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뜬금없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경찰은 그동안 미아관련 사건에 대해 무관심에 가까운 수동적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던 경찰이 올 초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초동수사 강화와 전담반 가동, 일제단속 등을 병행했다. 그 결과 올 상반기 동안에는 장기미아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미아가 된 후 48시간 이상이 지나면 ‘장기미아’로 분류되는데,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동안에는 48시간 이상 행방을 알 수 없는 아동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잘’하는 경찰이 왜 그동안 수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찾아 10년, 20년씩 헤매는 일이 발생하도록 했는가? 만일 지난 세월동안 경찰이 올해 상반기처럼만 활동했으면 장기미아가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는가?

검찰의 유전자은행 주장은 더욱 어이가 없다. 유영철은 검찰이 ‘과학수사’를 동원하여 검거한 범인이 아니다. 검찰이 ‘과학수사’를 위해 유전자은행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실상 연쇄살인범이 스무 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을 참혹하게 죽이고 있는 동안, 검찰은 ‘과학수사’할 단서조차 하나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유영철은 검경이 아닌 피해자를 고용하고 있던 업소의 주인들이 잡은 사례이다. 그것도 격투 끝에. 유전자은행이 있었으면 유영철을 진작에 잡을 수 있었다는 논리적 연관고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유전자은행을 만들겠다는 주장의 근거가 왜 그 연쇄살인범 사건이 되어야 했는가?

관리감독권을 놓고 벌이는 검경의 밥그릇 싸움

60년대와 70년대를 통해 검경은 단일한 사안에 대해 하나의 합의와 하나의 분쟁을 겪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문날인제도였다. 검경은 60년대 내내 한목소리로 전 국민 지문날인제도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 이유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불순분자 색출, 범죄 피의자 검거, 일반신원확인. 항상 티격태격하는 검경은 전 국민 지문날인제도의 도입을 강조할 때만은 유난히 협동정신을 발휘했다.

그런데 ‘지문정보를 누가 관리·감독할 것이냐’를 두고서 검경은 60∼70년대 내내 다툼을 그치지 않았다. 시간만 나면 ‘우리가 관리하는 것이 목적에 부합한다’는 내용을 자체기관지에 실었다. 결국 경찰이 관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지금까지 그 체계가 유지돼 오고 있으나, 검경이 이처럼 ‘관리감독권을 누가 행사할 것이냐’를 두고 싸운 이유는 그 권한 자체가 바로 해당조직의 밥그릇이었기 때문이다. 예산과 인력이 배치되는 새로운 조직이 하나 생겨나게 되면 해당 기관의 덩치는 커지게 되고, 또 다른 종류의 발언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검경이 기를 쓰고 달려드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지문정보를 둘러싸고 이루어졌던 논의들이 이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사이에 두고 다시 재현되고 있다. 상황은 똑같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유전자 정보를 수록해야한다는 점에서는 한 목소리를, 관리감독권을 놓고는 치열한 쟁탈전을 검경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인권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지문날인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보았듯이, 검경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논의가 종국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도록 진전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유전자정보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왔던 미국, 영국 등 다른 국가들의 경우에도, 정보수집과 활용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전자 정보를 활용하여 수사를 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정보활용과 데이터베이스를 동일시한 것으로 혼동하도록 만드는 착시현상의 동원은 부당하다. 더구나 그러한 착시를 일으키기 위한 장치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있는 미아의 부모들을 이용하는 것, 범죄에 대한 공포를 가진 대중심리를 이용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 인권은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불순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권이라는 것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기관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보장하여야 한다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그러한 조직들이 본말이 전도된 상황에서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인권을 이용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200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