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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또 하나의 진실’{/}UN 주도의 인터넷관리 논의 시작

By 2004/10/2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심층연재

박윤정

목차
1부. 국제 인터넷의 정치적 상황
-인터넷의 정치적 이슈들이란?
-인터넷 관리의 변천사
-UN 주도의 인터넷관리 논의 시작
2부. 국내 인터넷의 정치적 이슈

국제사회의 방관과 침묵속에 ICANN이 탄생된 지 벌써 6년째다. 제1차 UN 정보화 정상회의에서(2003. 12) 세계 정상들이 결의한 유일한 실질적 합의사항이 ICANN을 염두에 둔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였다. 그 합의는 크게 3가지 쟁점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 인터넷 거버넌스의 정의, 둘째 인터넷 거버넌스와 연관된 공공정책의 범위 및 영향평가, 셋째 정부, 기업, 시민사회, 기존 국제기구 혹은 정부간국제기구들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도모하는 것. 이 세 가지 쟁점들에 대한 보고서가 2005년 제2차 튀니스 정상회의에 보고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미 의회 청문회 의원 질의에만 보고를 해오던 ICANN이 국제사회에 화려한 신고식을 하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왜 미국과 적대국인 리비아에게 국가코드도메인이 승인됐느냐’는 미 의회 청문회 추궁은 ‘왜 ICANN이 자의적으로 국가코드를 몇몇 특정국가에게 배분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으로 변질될까?

자율규제의 그림자; Globalizatio.. Colonization..

얼마 전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ICANN회의가(2004. 7) 개최됐다. 로마회의(2004. 3)에 연이어 ICANN은 이번 회의에서도 세계정보화정상회의(WSIS) 워크샵을 개최했다. 두 번에 걸친 WSIS 워크샵은 ICANN지지자들로 단상이 채워졌다. 단상은 왜 ICANN이 기존의 UN시스템 즉, 정부중심의 의사결정시스템보다 전문가 중심의 민간차원의 인터넷 주소자원결정 프로세스가 우월한지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메아리쳤다. 그런데 국제무대에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ICANN이 전면에 내세우는 허울좋은 민간전문가에 의한 의사결정은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개도국들에게는 의사결정의 참여를 가로막는 합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반박에 ICANN은 ‘기술적 결정만 할 뿐 정치적 의사결정은 하지 않는다’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변명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자율규제를 지향하는 ICANN은 누구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ICANN은 열려있습니다. 인터넷 이용자라면 누구나 인터넷주소자원결정과 관련 의사개진을 할 수 있으며, 그 의견들은 상향식 의사수렴과정을 통하여 민주적 절차에 의거 반영될 것입니다. 국경이 없는 인터넷상의 정책은 규제가(regulation 혹은 governance) 아닌 상호조율을(coordination) 근간으로 해야 합니다. 상호조율은 ICANN규정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이 기술 전문가그룹(IETF)의 조언을 받아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합리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인 의사결정에 좌우되는 정부들의 개입은 효율적으로 운영돼 왔던 기존의 민간운영에 위협을 가하게 됩니다.”

WSIS 1차 워크샵에서(2004. 3. 로마) 비영리법인의(시민사회) 대표 자격으로 ICANN이 실질적인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지속적으로 외면한다면, WSIS를 통한 UN개입은 바람직하다고 ICANN에 직격탄을 날렸던 발표자는(Milton Mueller, Syracuse University) 2차 워크샵에서 아예 제외됐다. 민간운영이 소인배정치로 전락하는 ICANN식의 전형적인 의사결정의 예였다.

ICANN, 자율규제의 허와 실

민간의 자율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면서도 다음과 같은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안들은 한 번도 정식으로 ICANN의 아젠더가 된 적도 없다. 인터넷이 미국에서 연유했다는 역사적 특수상황을 이유로 민감한 개인정보의 보고처인 모든 대형 등록기관은(com, .net, .org, .biz, 등) 현재 미국에 집중돼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등록기관 국제화 요구는 아직도 허공에 떠도는 얘기일 뿐이다. 미국에만 한정돼 등록이 보장되는 특수 일반 최상위 도메인(.edu, .gov, .mil) 또한 국제사회의 빈축을 사고 있다. 공공도메인으로 전 세계에 개방되던지, 미국도 다른 국가들처럼 국가코드에 별도로 운영하자는(예로 한국은 ac.kr, go.kr을 쓰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제안은 사석에서의 얘기일 뿐 회의의 공식 어젠더가 되지 못한다. 전 세계 하나의 언어인 영어가 도메인으로 사용되듯이 한국어를 포함한 모든 언어가 인터넷의 관문인 모든 도메인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주장은 그나마 어렵사리 정치적 갈등을 안으며, ICANN이 어젠더로 수용한 지 4년이 됐으나 실질적인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자율을 진정 실천한 주체는 인터넷 관리 시스템에서 각각의 관리자들이 아닐까? 그렇다고 무작정 자율규제를 부정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부정의 뒤에는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에 있어서 진정한 자율규제의 대안을 생각해내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 듯 싶다. 우선, 세계의 인터넷 이용자들이, 기업들이, 정부들이 ‘각각 상호조율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라는 아주 순진한 제안을 해 볼 수 있겠다. 그것이 바로 ICANN이 전면에 내놓았던 제안이지 않았던가. 그 자율의 환상은 전문가 집단의 의사결정구조라는 이름 하에 미국과 유럽의 엔지니어들과 ICANN설립 후, 미국과 유럽의 정치가들로 채워지지 않았던가. 자율규제라는 순진한 제안이 인터넷은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신흥종교 교주의 목소리로 힘없는 자들에게 전파돼, 소수의 권력으로 전락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지 않았던가.

과연 전 세계 10억의 인터넷 이용자들이 자율적으로,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대안적 틀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 했던가? 그러면 그 차선책이 정부간 협상으로 진행되는 기존의 국제기구 의사결정과정이 아니라, 가장 민주적인 정치적 의사 결정구조를 자랑한다는 미국정부의 그늘아래 온 세계 인터넷 이용자, 기업, 정부대표들이 옹기종기 한 자리에 모여 자율적, 민주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 들어서면서부터 소위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 참여한 사람들간에 현격한 의견차이가 조정되는 부분이다. 차선책에서 조명되는 미국의 역할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때,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하나의 원동력으로써 기능할 것이라는 낙관론과 ICANN이라는 현재의 기형적인 국제의사결정기구는 미국이 슈퍼파워임을 전제로 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의 극치이자, 본격적인 사이버 식민주의를 고착화한다는 비관론으로 나뉘어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정보통신분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1999년 ICANN 출범 초 비영리법인에게 실질적인 국제기구의 의사결정권을 주는 ICANN의 비영리법인 단체설립에 적극적 지지를 한 바 있으며, 2004년 현재까지 ICANN에서 미국 비영리법인단체들과 더불어 수적인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6년이 지난 지금 ICANN의 비영리법인 단체에 이름을 걸고 있는 한국 정보통신 시민사회단체들이 한 번쯤 ICANN의 정체성과 향후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에 대한 토론을 개최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현 ICANN이 행사하는 인터넷 관리의 논리적 정당성은 미국 정부의 절대권력에 근거하지 않는다. 전 세계의 인터넷 주소자원관리를 좌지우지하는 ICANN의 정당성은 민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민주, 자율의 의사결정기구라는 모양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ICANN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모든 ICANN 활동의 불참여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현재보다 더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보이며, ICANN III 혹은 제2의 기구창립 시 더 큰 기여를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ICANN에 대한 개도국들의 반란

세계 정보화사회 정상회의의(WSIS) 두 번째 준비회의가 2003년 2월 제네바에서 개최됐다. WSIS는 정부와 더불어 시민사회, 기업이 함께 의견조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진행됐다. 물론 이런 다자참여구조(Multi-stakeholder approach)는 각 지역별로 각 나라별로 준비되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현격한 문화적 차이를 드러냈다. 역시 대부분의 아시아정부들은 시민사회나 기업과 같은 다른 이해당사자들을 수용하는데 거부감을 강하게 표시했으며, 서부유럽과 아프리카는 격의가 없는 다자참여구조의 정치적 합의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배경들을 뒤로하고, 각 지역별 회의를 통해서 취합된 정보화사회에 대한 비전 제시 및 중간합의를 토대로 국제적 합의를 도출하는 서장이 열렸다. 회의는 2주에 걸쳐서 열렸으며, 첫째 주는 선정된 발제자들간 라운드테이블로 진행되고, 본격적인 협상은 둘째 주부터 개시됐다. 시민사회를 비롯 소위 국제회의의 참관자로 돼있던 이해당사자들에게 각각 30여분 간의 의사발언기회가 배정됐다.

정부 외 이해당사자들의 발언이 끝나자, WSIS 협상은 정부대표들간의 정부간 회의로 환원돼 전개됐다. 단연 눈에 띄는 발언들은 시리아를 비롯한 아랍국가들, 브라질,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 등이 ICANN을 겨냥하여 향후 진정한 의미의 국제관리 필요성을 제기한 부분들이었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반응이 분분했다. 우선, 시민사회 대 정부라는 이분적 틀에서 사고해 온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있을 수 없는 제안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대부분의 시민단체나 사람들은 앞에서 설명한 낙관론의 ICANN 지지자이거나, ICANN의 정체성과 실체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기 일쑤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3년 2월 ICANN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시민사회단체들은 거의 없었다. 다만, 기존의 양자구도에서 민간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ICANN이 정부보다는 시민사회의 협상대상으로 적절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UN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후진국들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펀딩을 제공하는 선진국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을 그 동안의 신뢰에 기초해 무조건적으로 따르거나, 인터넷 연결이 우선 과제인 대부분의 후진국 단체들은 이 논의에 참여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WSIS의 협상은 크게 두 축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그 하나는 WSIS 회의 및 협상 참가여부 및 이해당사자로서의 정당성 인정부분을 둘러싸고 정부 대 시민사회의 실랑이가 한 축이며, 다른 하나는 개도국 정부와 선진국 정부간 입장정리를 둔 마찰 및 대립이다. 이 대목에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왜 우리는 WSIS에서 개도국 시민사회단체와 선진국 시민사회단체들간의 마찰과 반목을 보기 힘든 것일까? 시민사회단체간에서는 어용 시민사회단체 대 진정한 시민사회 단체간의 구별만 강조될 뿐 개도국 및 선진국간의 갈등구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결국 선진국의 시민단체입장이 자연스럽게 후진국의 입장으로 전달되는데, 과연 선진국의 시민사회단체에서 보는 시각이 언제나 절대선일 수 있을까? 일반 인터넷 이용자 입장에서는 ICANN과 같은 미국정부의 그늘체제도, WSIS에서 대두되는 일방적인 정부위주의 인터넷 관리체제도 환영할만한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일방적으로 정부체제를 중심으로 한 대안을 거부하면서 기존의 ICANN을 옹호, 지지하는 방향 또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ICANN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WSIS 시민사회는 선진국들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내놓는 입장을 수용했다.

이런 시민사회의 정부와의 대결구도에서 유래한 콤플렉스 때문에 미 정부에 대한 반란은 개도국 정부들의 몫으로 돌아갔으며, 그들이 현재 역사 다시 쓰기를 만들어내는 주역이 되었다. 시민사회는 WSIS 합의가 완결되는 2003년 12월 초까지도 ICANN과 관련된 부분은 WSIS에서 거론돼서는 안 된다는 논쟁으로 뜨거웠고 결국 개도국 정부들이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전면적 재 논의를 합의로 이끄는 개가를 올렸다. WSIS가 ICANN 개혁의 고삐를 당겼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하나, 그 고삐가 시민사회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에 의해서 진행됐다는 것은 향후 인터넷 거버넌스에서 시민사회의 위상정립에 있어 치명적인 오류로 남지 않을까? 시민사회의 선언서는(2.4.7) WTO, WIPO, UNCITL, OECD, NFTA, ICANN, the Hague Conference on International Private Law, the of Europe, the 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nd Wassenaar Arrangement에 대한 공적 감시 및 해당기구의 관련활동 분석의 필요성을 제안함으로써 ICANN을 다른 국제기구와 함께 승인하고 있다.

모두가 주인 될 수 있는 인터넷

현재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논의구조는 다층적이어서 이해당사자간 입장을 정리하기가 수월치 않다. 인류는 부족사회에서 도시국가로, 도시국가에서 민족국가로, 발전해왔으며 이제 민족국가에서 국제사회로 이전되는 과정에 있다. 이런 역사적 변환기의 초창기에 대두되고 있는 인터넷 거버넌스의 패러다임 논의는 향후 국제사회 전반의 거버넌스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 참가하는 각 이해당사자들은 각각의 개인적 경험과 교육 혹은 세뇌의 정도에 따라 다른 입장을 보이게 된다. 개인차가 나는 국가관, 정부관, 사회관은 현재 미국 그늘체제의 ICANN이 필수불가결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산물로서 해석되기도 하고 혹은 식민적인 유산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전자의 입장에서는 인류역사 전개상 수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며, 후자의 입장에서는 처단해야 할 과거청산의 과제인 셈이다. 전자의 길에서건 후자의 길에서건 이론상으로는 인터넷 이용자들이 진정한 인터넷의 주인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전자의 틀에서도 후자의 틀에서도 인터넷 이용자들은 또 한 번 형식적 주인으로 전락되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주인노릇을 할 수 있는 인터넷 거버넌스의 패러다임이 자리잡을 수 있으려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네트워커들에게 묻고 싶다.

 

 

200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