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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과 야만의 시대

By 2004/10/2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디지털칼럼

전응휘

우리에게는 “코드(CODE)”라는 저서로 잘 알려진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은 오늘의 디지털 환경에서 지적재산권의 미래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지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는 미국의 대표적 학자 중 하나다. 그는 얼마 전 저작권 전문가들이 모였던 한 모임에서, 지난 8년 동안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 각자가 생각해 왔던 것들을 나누었을 때 나온 이야기들을 짤막하게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해서 그의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마치 경구처럼 명료하게 정리된 이 단상들은 저작권의 미래가 정말 어떠한 것이 될 것인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첫째, 저작권은 일차적으로 형사법적인 제도다(도대체 지적재산권이 민법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둘째, 저작권 침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통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셋째, 네 가지 종류의 CD(음반 CD, DVD, 소프트웨어 CD, 비디오게임 CD)의 시장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이윤흐름을 지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넷째, 지적재산권 세계기구(WIPO)에서 만들어지거나 미국의회 만큼이나 자주 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 만들어진다.
다섯째, 사실상 저작권은 한물 갔다.

요즘 우리에게도 이처럼 저작권을 사수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점점 가까이 파고들고 있다. 이미 MP3 음원을 무료로 다운로드하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하던 곳들이 차례차례 유료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MP3 파일을 담아서 쓸 수 있었던 MP3 플레이어까지 DRM(Digital Rights Management)을 표준화하자는 논의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MP3 폰을 둘러싼 논란이 일 때 우리에게 익숙해진 말이지만, DRM이란 음악, 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에 암호를 걸고 돈을 낸 고객에게만 풀어주는 장치를 말한다. 이것을 디지털 기기에 내장하게 되면 사실상 개인적으로 MP3 파일을 만들어서 사용하거나 간단히 복제하는 일 자체를 못하게 된다. 즉, 저작권에서조차 허용하는 공정이용(fair use)의 한 유형인 사적 복제(private copy)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MP3 폰에 대한 논란이 한창일 때 많은 이들이 기존 MP3 플레이어도 허용하고 있는 사적 복제를 왜 유독 이동통신 단말기에서만 제한하려 하느냐 그 자체가 불공정하며 사실상 이동통신사의 독과점상황을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MP3 플레이어를 제조하는 업체들의 모임에서도 DRM 표준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놀랍게도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는 권리와 자유, 테크놀로지가 부여하는 권리와 자유의 확대가능성을 끊임없이 옥죄려 드는 이러한 시도는 벌건 대낮에 공공연히 합법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정말 우리는 야만의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200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