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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또 하나의 진실’{/}인터넷 주소관리의 변천사

By 2004/07/0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심층연재

박윤정

1부. 국제 인터넷의 정치적 상황
– 인터넷의 정치적 이슈들이란?
– 인터넷 관리의 변천사
– UN 주도의 인터넷관리 논의 시작
2부. 국내 인터넷의 정치적 이슈

감시되는 자유공간, 통제되는 자율공간

네트워커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정부에게 혹은 기업에게 어느 정도의 자기의사 결정권, 자기 정보권 등에 대한 통제력과 감시력을 위임해야 하는 지는 NEIS를 통해 부분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나, 아직도 모든 당사자의 상호합의는 요원해 보인다. 이런 유사한 상황이 국제사회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즉 각 국가가, 전 세계 네트워커들이 어느 정도 미국정부와 다국적 기업에게 자기의?결정권과 자기정보권 등에 대한 통제력과 감시력을 위임해야 하는 지에 대한 논쟁이다. 인터넷이 미 정부에 의해 탄생됐다는 역사적 이유, 초기 인터넷 인프라 구축비용 부담을 미 정부가 했다는 경제적 이유, 미국이 냉전 종식 후 절대권력국가로서 인식되고 있다는 정치적 이유로 미국 상무부의 관할 하에 1998년 설립한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 인터넷 인프라를 관리하고 있다.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를 사이버공간의 중요한 인프라로 인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이용하는 국가, 회사, 자신의 도메인이 할당기관으로부터 자신의 의사와 반해 삭제되거나, 사용 IP주소가 할당기관으로부터 박탈당하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국가, 회사, 자신의 존재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거될 수 있다. 지난달에 예를 든 북한을 위시한 미 정부와 불편한 외교관계를 경험한 몇몇 나라들이 이에 해당한다. 북한의 국가코드는 국가코드의 근거인 ISO 리스트로서는 존재하지만 아직 북한이라는 나라가(.KP) 사이버공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기구는 IP주소를 통해, 도메인 WHOIS정보를 통해 NEIS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도메인등록자의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이름 등 꽤 많은 개인신상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현재 ICANN에서는 전통적으로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고 있는 개인신상정보를 누구에게, 어느 만큼 공개해야 하는지를 놓고 4년에 걸친 정책논의를 해오고 있다.

우리는 전자정부 및 NEIS 논의를 통해서 사이버공간에서 의도적으로 수집되는 정보를 관리하는 행정기구에 대한 정보제공자들의 견제장치 없는 시스템의 위험성을 확인한 바 있다. 전 세계 도메인 및 IP주소 등록정보관리가 다른 정부들 혹은 국제기구의 실질적인 견제를 결여한 시스템에서 미 정부의 행정기구로 인식되는 ICANN에게 전 세계 도메인 등록정보에 대한 특권적 접근권을 승인하는 것은 현 국제정세로 보아서도 참으로 아찔한 상황이다.

현재 .com, .net, .org등 대부분의 일반최상위도메인은 관례에 의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웹사이트로 알려져 있는 ‘주패(Jupae.com)’는 어떤 이유에선지 WHOIS정보가 공개되고 있지 않다. .com은 사이버 보안회사로 유명한 베리사인이라는 회사가(버지니아주 소재) 미 정부, ICANN과 3자 계약관계에 근거해 도메인 등록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코드의 WHOIS정보는 현재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정책에 의해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현 ICANN국가코드계약선례에 의해 국가코드계약을 하는 시나리오가 성립될 경우, 미 정부가 ICANN의 관리자로서 자동 계약당사자가 됨으로서 우리의 도메인 등록정보가 미 행정부에 의해 수집, 관리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이 팩스 아메리카를 글로벌사이버공간까지 확장하는 과정이며, 국제사회의 정부 및 시민단체들도 당면한 사안들을 이유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미국제국 확장에 소극적으로 동참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제 시대별로 구분하여 미국의 사이버팍스아메리카 구축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엔지니어들의, 엔지니어들에 의한, 엔지니어들을 위한 인터넷(1970 – 1995)

미 국방부의 관할 하에 군사망으로 태동한 인터넷이 국가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의 관리 하에 교육망으로, 상무부 관할의 상업망으로 진화하면서, 인터넷 프로젝트는 미 정부와의 계약관계에 의해 지속됐다. 그러나 네트워크 실무관리는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존 포스텔이 관장했다. IETF(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를 통한 인터넷 프로토콜 표준제정, IANA(Internet Assigned Numbers Authority)를 통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 ISOC(Internet Society)을 통한 개도국 인터넷 확산 등은 존 포스텔을 포함한 엔지니어들에 의해 주도됐고 실행됐다.

1980년대 중반 인터넷에 DNS주소 체계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국가코드도메인(.kr, .cn, .uk 등)과 일반최상위도메인(.com, .net, .org 등)이 만들어진다. 존 포스텔은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자신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통하여 각 나라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대학 혹은 연구기관의 엔지니어, 교수들에게 국가코드도메인을 할당했다. 이는 향후 많은 나라에서 해당정부와 존 포스텔에게 위임받은 해당국가코드 도메인 위탁관리자 사이에 많은 긴장관계를 조성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국가코드라는 용어가 상징하듯 정부는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국가코드도메인에 대한 전통적인 권리를 소유한다고 인식하는 한편, 관습적으로 5- 10여 년 간 민간에 의해 관리된 자원을 정부에게 이양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한다는 논리가 팽팽히 맞서게 된다.

엔지니어들의 사이버공간상 전문지식에 기초한 기술결정권이 힘의 진공상태에서 독주를 하게 되면서 정치적 의사결정권으로 연장되는 순간이다. A測耉諍?스스로 네트워커들을 대변한다는 위험한 엘리트 의식이 싹트게 된다. 인터넷 프로토콜 표준화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은 의도적으로 정부대표간의 의사결정체인 ITU의 참여에 특수지위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엔지니어들의 기술우위를 통한 힘의 우위를 확인하려 한다.

미 정부 고립작전(1995 – 1998)

인터넷 주소자원관리의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엔지니어들과 정부간의 갈등과 긴장은 미 정부가 전권적으로 엔지니어들에게 위임했던 자율적 의사결정권을 회수하려는 과정에서 시작됐으며, 미정부가 엔지니어 커뮤니티의 대표로 인식되었던 존 포스텔과의 동의 하에 1998년 11월 ICANN을 선정함으로써 갈등은 형식적으로 종료됐다. 이와 유사한 엔지니어와 정부간의 갈등과 긴장은 각 나라가 국가코드도메인 관리의 주체문제를 가지고 시간차로 경험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2000년을 계기로 유사한 갈등을 경험하는데, 이는 2부에서 다루어질 예정이다.

엔지니어 커뮤니티는 ISOC을 중심으로 ITU, WIPO, IAB등과 연대를 하는 한편 미국 정보통신정책기구(FNC)도 초대, IAHC(Internet International Ad-Hoc Committee)를 구성하여 인터넷주소자원관리 의사결정기구를 설립하려 했다. 이 당시 미국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한 엔지니어 커뮤니티가 미 정부와 대응하는데 있어 연대세력으로 EU와 ITU를 수용한 것은 전형적인 국제정치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엔지니어 커뮤니티는 정체 성면에서 EU, ITU, WIPO등과 달랐지만, 두 그룹 모두 인터넷에 대한 미 정부의 독점관할을 억제하자는 공동의 이해를 공유했다.

이는 ISOC, IAB, WIPO, ITU등이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구체화되는 듯했으나, 결국 1998년 미 정부를 인터넷 주소관리의 최종책임자로 규정한 미 정부의 백서가 발표되면서, 미 정부 고립작전은 역사의 이야기 거리로 남게 됐다. 다음 호에 기술될 UN 주도로 전개되는 세계정보화사회정상회의(WSIS)를 통한 개도국들의 미 정부 고립작전 또한 자칫 미 정부 주도권 확인 2라운드가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확인해보자.

미 정부 주도권 확인: ICANN I(1998 – 2002)

엔지니어 커뮤니티와 한판 승부를 끝낸 미 정부의 공개초대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 정부는 국제사회를 대신하여 인터넷을 관리하는 형식적인 관리위탁자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모든 결정을 공란으로 비워 두었다. 그 결정들은 회의에 자발적으로 참석한 국제사회의 이해당사자들에 의해 구체화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특이할 것은 미 정부의 조건은 전통적인 정부간 국제의사 결정기구가 아니라 비 정부간 국제의사 결정기구여야 한다는 점이다. 미 정부의 표면적 이유는 인터넷은 세계 네트워커들에 의해서 자율규제 돼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미 정부의 속내는 OPEC이 석유자원을 독점관리 하듯 자국의 인프라로 인식하는 인터넷에 관한 정치적 결정권을 다른 정부와 공유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미 정부는 향후 민주적 방식에 의해 ICANN 이사진의 반수가 네트워커들의 대표들로 구성될 것을 기약하며, 초기 ICANN이사진을 선정하는 작업에 관여한다.

국가코드 도메인 관리와 관련된 사람들, 정부대표들, 1996 -1997년 엔지니어 커뮤니티가 일반인들을 상대로 공론화한 일반최상위도메인의 신설 및 당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던 네트워크 솔루션의 도메인 등록사업의 경쟁도입방안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 도메인 분쟁건으로 기업들로부터 의뢰를 받고 있던 변호사들, 정부는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되고 일반인들에게 국제의사결정권을 준다는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갖게된 일부 시민사회와 학자들 등이 한데 모여 국제 인터넷주소자원 관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서로 다른 초안을 준비하여 회의에 온 이해당사자간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하는 원초적 힘의 겨룸, 고함소리, 야유, 비난, 의사결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전투가 회의장에서 이메일 리스트에서 시작됐다. 상향식 직접민주정을 지향한다는 미 정부의 제안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은 여기저기 세워놓은 마이크에 줄을 서서 자기 의견을 쏟아내고, 주제별로 생성된 이메일 리스트에서 서로가 서로를 물었다. 그 혼란을 여유 있게 관찰하는 미 정부 관리들. 결국 ICANN은 2002년 개혁을 선언하며 상향식 직접민주정이라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기술, 재정, 정치적인 이유로 일반 네트워커들의 직접투표에 의한 네트워커들의 대표선출은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린다. 국제사회가 혼란속에서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 미 정부는 자신의 국제연대를 형성, 무사히 ICANN의 존속을 기약하게 된다.

미 정부의 국제연대 형성: ICANN II(2002 – 현재)

미 정부는 ICANN 개혁과정에서 호주정부, 일본정부, 영국정부, EU등으로부터 미국이 관장하는 인터넷 주소자원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확인하게 된다. 미 정부 입장에서 개혁의 성과물은 1998년 아슬아슬한 곡예로 시작했던 외줄타기 외교에서 우방의 지원을 획득한 것이 가장 크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은 여기서 그 장난을 멈추지 않으려는 듯 보인다. 세계정보화사회정상회의 준비회의가 2003년 초에 개최될 때만 하더라도 ICANN은 여전히 역사의 아이러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런데 2003년 12월 제1차 세계정보화사회정상회의가 중국, 브라질, 아랍권 등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개도국들과 미국의 인터넷 독점경영에 제어의지를 보인 국제기구들의 로비의 결과, 인터넷 거버넌스 워킹그룹을 만들어 국제적 논의를 전개시켜 결론을 내겠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ICANN과 미 정부는 이제 다시 힘의 쟁탈전에 직면하게 됐다. 과연 운명과 역사의 여신은 어느 편에서 미소 지을 것인가? 다음 달에는 세계정보화사회정상회의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200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