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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렵게 인정된 통신자료 제공 관행의 인권 침해성

By 2014/02/10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논평] 
 

참 어렵게 인정된 통신자료 제공 관행의 인권 침해성

– 국가인권위 전원위원회 결정에 부쳐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늘(2/10) 개최된 전원위원회에서 가입자정보와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관련 규정에 대해 개선을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단체는 진통 끝에 나온 이번 결정을 환영하며 같은 사건에 대해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도 빠른 시일내 그 위헌성에 대한 결론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통신사에 이용자의 이름, 주민번호, 아이디 등의 가입자정보를 요청할 때에 영장 등 적법 절차가 필요치 않다. 이로 인하여 그 오남용 정도가 매우 심각하여 연간 정보수사기관에 제공되는 통신자료 건수가 8백 만 건에 육박하고,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4,827,616 건의 자료가 제공되었다. 오늘 인권위는 통신자료에 대하여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확인자료와 함께 법원의 허가를 받게끔 법률을 개정할 것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권고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렇다고 통신사실확인자료의 법원 통제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정보수사기관이 법원에 허가를 구할 때 수사상 필요하다는 점만 주장하면 된다. 그래서 통신비밀을 보호한다는 입법 취지가 수사편의에 의해 몰각되어 왔다. 대표적인 침해 사례가 기지국 수사와 실시간 위치추적이다. 기지국 수사는 수사대상자 주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지국에서 신호가 잡히는 만여 명의 휴대전화번호를 한꺼번에 제공받는 수사기법으로 2012년에만 2천5백만 건의 휴대전화번호가 기지국 수사 차원에서 수사기관에 제공되었다. 최근에는 기지국 수사가 특히 집회 참석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오늘 인권위에는 취재차 정당 집회에 참여했다가 기지국 수사 피해를 입은 참세상 김용욱 기자가 참석하여 취재원 노출과 사생활 침해 사실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결국 인권위는 수사기관이 기지국 수사를 비롯한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받으려면 대상자의 범죄 관련성을 법원에 입증하도록 법률 개정을 권고하기로 결정하였다.
 
한편 실시간 위치추적은 수사기관이 통신사에 대상자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미리 요청해 두고, 몇분 단위씩 문자메시지 등으로 제공받는 수사기법이다. 일종의 전자미행으로, 누군가에게 혐의를 두고 장래의 정보를 장기간 제공받는다는 점에서 감청에 준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수사기관은 수사상 필요하다는 점만 주장하면 위치추적을 할 수 있기에 일평균 53건에 이를 정도로 남용해 왔다(2009년 변재일 의원 국정감사). 오늘 인권위에는 희망버스 기획단으로 참여하였다가 장기간 실시간 위치추적 피해를 입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가 참석하여 위치추적으로 사회활동과 일상생활에서 위축된 사실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그리고 인권위는 실시간 위치추적의 허가 요건을 감청에 준하는 정도로 강화하도록 법률 개정을 권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바일 유비쿼터스 사회에서는 통신자료가 곧 그 사람의 일상생활과 사회관계를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통화했는지 뿐 아니라 기지국을 통해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강력범죄 수사에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다분히 수사편의적으로 이 정보를 제공받아 왔기에 결국 민간인 사찰이나 집회참석자 감시 등에 남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인권위의 결정이 이런 관행을 개선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인권위가 이번 결정을 내리기까지 진통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며, 국가인권기구가 현재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우려스러운 소회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안건에 대하여 지난해 12월부터 무려 3차례의 결정 무산, 재상정을 거쳐야만 했으며, 피해자, 경찰, 통신사, 전문가까지 여러 진술인이 여느 재판 못지 않은 대대적인 발걸음을 한 뒤에야 6:5로 간신히 인권침해를 인정하였다. 특히 그 과정에서 홍진표, 김영혜 상임위원은 인권위원으로서 가히 자격을 의심케 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는 통계가 의안에 누락되어 있다며 의결을 반대하거나 통계가 없으니 인권침해를 가늠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김영혜), 희망버스 등 피해가 일부 사례라거나, 위치정보가 인권침해인지 잘 모르겠다(홍진표)는 이유로 권고 필요성을 줄곧 부인하였다. 
 
두 의원 뿐 아니라 여러 다른 의원들도 인권위원회 의사결정을 국회나 법원의 의사결정과 혼동하는 모습을 보여 실망을 자아냈다. 국회에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는데 인권위가 굳이 결정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거나, 인권위 결정에 재판 선고에 준하는 엄밀함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국가인권위원이라면 오늘 진술인으로 참석한 오동석 교수(아주대)의 지적대로, 국가인권기구가 어째서 이들 기구와 독립적으로 설립되었는지 그 취지부터 이해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같은 안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지난 1월 13일 전원위원회의 속기록을 인권위가 끝내 비공개한 것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한다(첨부). 우리 단체가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방청까지 허용되었던 공개 회의에 대하여 인권위는 뒤늦게 위원들의 발언을 가리는 처분을 하였다. 합당한 이유를 찾아볼 수 없는 치졸한 행정일 뿐 아니라 현행 정보공개법을 위반한 행위라는 점을 엄중 경고하며, 우리 단체는 즉시 이의신청을 제기하였다는 사실을 밝힌다.
 
2014년 2월 10일
진보네트워크센터
 

2014-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