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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정보인권] 보안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 칼럼{/}파리테러 이후… 국가 감시권한 강화에 대한 우려

By 2016/01/12 4월 13th, 2018 No Comments

편집자 주 : 파리에서 발생한 끔찍한 테러 이후, 보안 정책과 관련된 세계적인 흐름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 이후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정보, 수사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갖가지 정책이 도입되었다면,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대량 감청을 폭로한 이후에는 이로 인한 인권 침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런데 파리 테러 이후에 다시 정보, 수사기관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파리 테러를 빌미로,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을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암호학자이자 보안전문가인 브루스 슈나이어가 로페어(LAWFARE) 블로그에 쓴 이 칼럼은 실제적인 위협과 무관하게 테러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정보, 수사기관의 감시 권한이 커는 경향을 지적하며, 이러한 권한 강화를 견제하는 감독 시스템이 도입되어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의 국정원에 대해서는 이 컬럼에서 언급하고 있는 투명성이나 감독 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지요.

번역 오류는 antiropy 골뱅이 jinbo.net 으로 알려주세요.

제목 : 파리 테러 공격의 정책적인 파장
원문 : Policy Repercussions of the Paris Terrorist Attacks
작성 : 2015년 11월 23일, 브루스 슈나이어(Bruce Schneier)

스노든 폭로 초기인 2013년에 하버드 법대교수이자 법무부 보좌관인 잭 골드스미스는 911 이후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시 증가를 되돌아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지난 십여년 동안의 중요한 교훈 두 가지는 (1) 정부는 국가안보위협에 충분히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권한을 증대시킬 것이며(왜냐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리고 (2) 증대된 권한은 새로운 평가 및 투명성 시스템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것들은 집행부서에게는 거추장스럽고 전통적인 국가안보 임무에 적대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확대된 권한을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골드스미스는 옳았다. 그리고 나는 “파리 공격 이후 감시에 관한 정치적 풍향계가 변화하고 있다.”와 같은 헤드라인의, 감시 정책에 대한 새로운 기사를 읽으며 이 인용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감시의 정치는 공포의 정치다. 사람들이 테러를 두려워하는 한, 그러한 공포가 얼마나 현실적인지에 무관하게, 그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이것이 필요하다거나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그러한 권한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그러한 권한을 그들에게 부여할 것이다. 이것이 골드스미스가 지적한 첫번째 지점이다.

오늘날 끔찍하고 파괴적인 파리 테러 공격을 뒤이어, 우리는 전환점에 서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미 서구 정부들은 보다 침해적인 감시 권한을 허가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미국은 백도어 암호화 제품을 원하고 있는데, 이는 나쁜 사람들이 1) 자신들 내의 소통을 위해 더 안전한 제품 대신 이 제품을 사용할 만큼 안이하거나 2) 우리들을 공격하기 위해 백도어를 사용할 만큼 똑똑하지는 않기를 바라는 헛된 바램에 기반한 것이다. 영국은 정보기관인 GCHQ가 이미 자국 내의 시민들에 대해서 하고 있던 모든 감시 행위를 합법화하기 위한 법안의 통과를 서두르려 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제막 경찰에서 다수의 새로운 권한을 부여했다. 대량 감시가 테러를 방지하는 효과적인 도구가 아니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겁에 질린 대중들은 안심시켜주기를 원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안심시키고 싶어한다. 위협을 과장하는 것은 영리한 정치이다. 무언가를 하는 것은 영리한 정치다. 그 무언가가 위협을 완화하는데 효과가 없더라도 말이다. 감시 장치는 정치인의 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 있는 주요 도구는 더 많은 감시이다. 그러한 생각들을 뒤로 물릴 수 있는 정치적인 의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는. 파리 공격에 대한 우리 나라의 대응에 대해 쓰면서, 톰 엥겔하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 감시 국가의 관료들은 두드러진 테러리스트 ‘위협’에 자신의 모든 것을 의존해왔는데, 그러한 위협이 관료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은폐해주는 편안한 비밀의 장막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방식, 직업적 기회, 점증하는 권한, 그리고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자유를 지속시키기 위해, 이슬람 국가나 그와 같은 다른 조직에 불가사의하게 의존하도록 했다는 점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골드스미스의 두번째 지점은 좀 더 미묘하다 : 이러한 권한 증대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때, 그들은 관료제를 통해 정당화된다. 이와 함께, 겁에 질린 대중들과 그들의 선출된 관료들은 확대된 국가 안보와 법 집행 기관의 권한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테러는 실제의 위협보다 훨씬 더 과도한 방식으로 우리의 공포 버튼을 누르도록 특이하게 설계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테러를 두려워하는 한, 그들은 자신들의 정부에게 모든 종류의 감시, 체포, 구금 등의 새로운 권한을 줄 것이다. 그러한 권한이 실제 위협에 맞설지 여부와 무관하게 말이다. 이는 그러한 권한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는 테러 공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테러를 볼 때 그것이 자신들에게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애국법’이 대체적으로 9/11 테러 공격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 도입과 통과를 위한 정치적인 환경이 갖춰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 최근에는 :

정보기관 그룹의 최고 변호사인 로버트 리트(Robert S. Litt)는, 더포스트(the Post)가 입수한, 8월에 동료들에게 쓴 이메일에서 , “오늘날 법적 환경이 매우 적대적”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암호화가 법집행에 방해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테러 공격이나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그러한 환경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파리 공격은 그러한 사건에 매우 가깝다.

나는 오바마 행정부가 이미 국가안보국에게 미국 내의 감시를 증가시키라고 비밀리에 말하지 않았을지 매우 걱정스럽다. 또한, 그러한 감시를 정당화하고, 법 집행기관에 침해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새로운 법률들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골드스미스가 얘기한대로, 그러한 권한은 새로운 평가 및 투명성 시스템과 결부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시스템이 지난 몇 십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권한의 남용을 제한하는데 효과적일 지 별로 믿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