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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통신사업법 휴대폰 번호안내서비스 의무화의 문제점{/}휴대폰 번호안내서비스, 당신은 원하는가?

By 2005/09/12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정책제언

유승희

"안녕하십니까? 휴대폰 번호안내서비스입니다”, “여의도동 아무개씨 휴대폰 번호 부탁 합니다”, “문의하신 번호는 010-XXX-XXXX입니다”

이런 통화가 내년 4월1일부터 실제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2003년 12월에 통과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은 “전기통신사업자는 이용자의 전기통신번호를 이용자의 동의를 얻어 일반에게 음성ㆍ책자ㆍ인터넷 등으로 안내하는 서비스(이하 ‘번호안내서비스’라 한다)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초 번호안내서비스를 의무화한 이 조항이 신설된 이유는 “이동전화의 경우에는 그 전화번호에 대한 안내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있고 유선전화의 경우에도 인터넷 등을 이용하여 전화번호를 안내받고자 하는 새로운 서비스 수요를 부응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전화번호 안내서비스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번호제공 이용자를 보호하고 서비스의 질 향상을 통해 국민의 편의를 증진하려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개정안의 시행으로 인해 기존의 유선전화 음성안내 114서비스와 전화번호 책자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동전화 사업자들도 번호안내서비스 의무를 지게 됨에 따라 3,800만 휴대폰 가입자 중 번호안내서비스에 ‘동의’한 사람들의 휴대폰 번호는 일반에게 공개되게 된다.

휴대폰 번호안내서비스가 내년부터 시행될 것이라는 정보도 일반에게는 사실 최근에 알려졌다. 16대 국회 막바지였던 2003년 12월 29일에 통과되었던 당시에도 그리고 2004년 17대 국회가 시작된 첫해에도 이 개정안에 대한 문제제기는 별로 없었다. 나는 올해 5월 전기통신사업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 신설조항이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 조항(제38조의6)에 대한 재개정 가능성을 검토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7월 한달 동안 휴대폰 번호안내서비스를 둘러싸고 언론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해당조항을 전면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있었으나, 그렇게 할 경우 기존 유선전화사업자가 제공하는 번호안내서비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개정취지도 있었기 때문에 조항을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지난 7월 29일 재개정안을 제출하였다. 주요내용은 모든 전기통신사업자에게 번호안내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는 것을 “제공할 수 있다”로 바꾸고, “정보통신부장관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이러한 서비스의 제공을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그렇다면 과연 번호안내서비스를 의무화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첫째 개인정보 침해 문제, 둘째 법적 실효성이 불확실한 정책으로 막대한 예상낭비와 이로 인한 부당한 소비자 부담이 문제가 될 것이다.

유선전화와 달리 이동전화를 비롯한 차세대 전화서비스의 경우 전화번호가 개인정보 및 개인위치정보와 밀착되어 있다. 따라서 관련 자료가 유출될 경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번호안내 서비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의성을 감안하더라도,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번호안내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즉 기존 번호안내서비스의 법적 근거는 마련하되 휴대폰 등 개인정보와 밀접한 경우 번호안내서비스의 제공을 제한하는 개정안이 필요한 것이다.

아직 개정 법률이 시행되지도 않았고, 정보통신부에서 시행령(안)을 마련 중인 시점에서, 국회에서 다른 개정안을 발의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안대로 법을 시행할 경우 예상되는 비용-편익을 분석해 볼 때, 지금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방향으로 법이 시행되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휴대폰 번호안내 서비스 의무화와 관련해서 정보통신부의 7월 13일자 해명자료에 따르면, 이동통신사업자들이 가입자 동의에 대해 본인 동의를 확보한 이후에만 번호안내를 하고, 본인이 동의를 철회한 경우에는 즉시 안내를 중지토록 할 예정이며, 본인 동의방법으로 문자메세지나 이메일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가입자들의 번호안내 서비스에 대한 불안감은 해소되기는커녕 점점 더 증폭되고 있다. 책자로 발행할 경우 동의를 철회한 개인이 생길 때마다 책자를 새로 발행할 것인가? 그럴 때마다 배포된 책자는 수거해서 폐기할 것인가? 인터넷으로 번호안내 서비스를 할 경우 DB의 해킹가능성은 어떻게 없앨 것인가?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과연 내년 2월에 얼마나 많은 가입자들이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데 동의할 것인가? 정보통신부 장관이나 이동통신사 대표들은 자신들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할 것인가? 나의 경우를 묻는다면, 나는 결단코 아니라고 답하겠다. 왜냐하면 나는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번호이동 마케팅 대상이 되고 싶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올 음란전화나 광고전화를 받고 싶지 않으며,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법행위 – 예컨대 휴대폰결제나 위치정보 파악 등 – 에 남용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휴대폰 가입자들이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번호안내 서비스가 시행된다면, 이동통신사들이 부담할 준비비용만 수백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고스란히 가입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혹여 휴대폰 번호안내서비스로 누군가 이득을 취한다고 할지라도,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감당하면서 이 제도를 시행할 이유는 없다. X파일 사태를 통해 사회전반에 만연하게 된 도청불안감만큼이나 휴대폰 번호안내서비스로 인해 불안감을 느낀다면 지나친 엄살일까?

여담을 덧붙인다면, 재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후, 다양한 사업자의 얘기를 들어보지 않았다는 볼멘소리도 들었다. 여기서 다양한 사업자라 함은 번호안내서비스 의무화가 되었을 때 이득을 보는 측을 말할 것이다. 언뜻 생각해봐도 휴대폰 번호안내 서비스가 의무화되면, 휴대폰 고객 데이터베이스의 통합관리가 필요할 것이고, 휴대폰 전화번호부 책자를 만들 경우 관련 사업자들에게는 사업기회가 생길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휴대폰안내서비스에 드는 수백억원의 돈은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보편적서비스’ 차원에서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의무라는 것이다. 휴대폰 번호안내서비스가 ‘보편적서비스’인지도 의문스럽지만 그 비용을 이동통신사업자가 지출할 때 과연 소비자 주머니에서는 한푼도 안나갈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동의’한 자에 한해서 번호가 공개되므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번호안내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라는 의무와 ‘이용자의 동의를 얻어’라는 조건은 근본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논리이고 모순인 듯싶다.

 

 

2005-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