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게시판 논쟁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By 2004/07/08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사이버 페미니즘

조지혜

최근 한 친구가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논쟁을 벌였다. 논쟁 상대는 같은 학과 남자 동기. 여성주의자들이 여자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심지어 신입생과의 만남을 막으려고까지 했었다는 그는, 진작부터 내 친구에게 ‘마초‘로 찍혀 있었다. 특유의 발랄하면서도 냉소적인 친구의 글과, 여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그 남자의 글(짐짓 상대의 공적을 인정하는 척 격려까지 하는 그는 소위 ‘오빠주의자’의 전형이었다)을 읽다가, 인터넷 공간에서, 특히 게시판에서의 싸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몇 년 전 예비역과 군대문화를 비판하는 글로 큰 홍역을 치렀던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의 가루님이 한 토론회에서 “게시판에서의 싸움은 ‘보이는’ 싸움이기 때문에 싸움의 모양새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웹진이나 미니홈피에선 단 두 사람이 싸우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둘만의 논쟁이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이 존재하고 그들의 판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침묵하거나 훈수를 두는 그 눈들 속에서, 내가 논쟁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어떻게 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서로 알고 지내온 사람과의 논쟁은 더욱 그렇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논쟁을 벌이는 이들이 어떤 관계의 역사를 가져왔는가를 당사자들만큼 알지 못한다. 당사자들은 예전에 벌어졌던 사건을 들춰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다행히 내 친구의 경우처럼, 사건 전말을 지켜봤던 다른 이들의 조심스런 지지가 있거나 증거 게시물이 남아있거나 하면 상황이 훨씬 낫지만, 자칫 잘못 하다가는 예전 일들을 들춰내는 것이 서로 구정물을 튀기며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으로 보일 지도 모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서로를 잘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간을 옮기고 매개체를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취사선택되고 생략된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한정된 통로를 통해 한정된 정보를 얻는다면, 온라인 공간에선 같은 사실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하는 여러 정보(혹은 주장)를 한 눈에 접하게 되는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정보들이 모두 같은 비중의 권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많이 접한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이때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보여지기’ 힘든 마이너리티는 그 앞에서 무력해진다.

상황을 더 좋지 않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웹페이지 내에도 하이퍼링크라는 수많은 선택지점들이 있다. 클릭 한번으로 지금 내가 처해있는 싸움이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다. 암울한 전쟁의 공포와 자극적인 오락의 재미가 단 1초의 사이를 두고 공존하는 상황. 오프라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손쉬워진 상황 전환 속에서 일시적인 탈출구가 늘어났지만 그만큼 우리의 정신분열도 가속화될지 모른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 아쉽지만 단 하나 믿을만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뿐인지도 모른다.

 

 

200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