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리틀 브라더’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 2015년
언론이나 시민단체를 찾아 이를 고발하는 것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조금 순진한 사람일지 모른다. 이 시나리오가 해피엔딩이 되려면 미디어와 정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난한 투쟁과정에서 갖은 협박과 회유로 많은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러니 상상력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디지털 감시의 시대, 빅브라더에 맞서기 위해 ‘리틀 브라더’가 되어보는 상상 말이다.
‘리틀 브라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샌프란시스코에 테러가 발생하고, 테러 혐의로 몇 개월간 억울하게 억류된 열일곱 살 고등학생 마커스가 정보기관의 부당한 감시체제에 맞서 (사이버상에서) 싸운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 단순한 줄거리에 “국가안보주의의 탈을 쓴 새로운 파시즘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았다.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주제를 ‘열일곱 살 고등학생의 목소리로’ 거부감없이 생생하게 들려준다.
(또다른 작은 권력인 학교에서) 주인공이 교장과 나눈 대화는 소설의 주제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교장은 감시시스템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부가 우리를 약간 불행하게 하거나 우리의 자유를 약간 빼앗아가려고 할 때가 있”는데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거라면 괜찮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커스는 이렇게 되묻는다. “기본권을 막으면서 자유를 보호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죠?” “포괄적인 감시체제가 테러보다 더 위험한 것 아닌가요?”
주인공은 콘솔게임기에 ‘패러노이드 리눅스’ 운영체제를 설치하고, 독립된 네트워크를 만들어 사람들을 연결하고 모이게 한다. 그리고 빼앗긴 자유를 ‘되찾기’ 위해 플래시몹과 같은 유쾌한 방식의 저항을 펼친다.
불통의 권력은 시민들이 모이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모여서 권력에 비판적인 얘기를 나누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모이지 못하게 감시하고, 모일만한 공간을 없애려 한다. 공권력을 투입해 시민들이 모이는 것을 방해하고,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막는 것. ‘국가의 권위는 국민의 동의로부터 나온다’는데, 그 힘을 국민을 감시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사실 이 소설은 판타지에 가깝다. 힘없는 개인이, 그것도 한 명의 고등학생이 정보기관에 맞서 싸우고, 결국 이긴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파리 테러를 일으킨 IS세력이 소설에 언급된 기술로 정보기관의 감청을 피해, 조직원을 모으고 테러를 모의했다는 뉴스(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을 네트워크로 다크웹을 구성하고, ‘슈어스팟’ ‘텔레그램’과 같은 암호화된 메신저를 사용했다는 내용, 상당부분 루머로 드러났지만). 한 보수언론은 “휴대전화, CCTV, 카드 ‘빅데이터’정보… 이것만 활용해도 테러 막을 수 있는데…”라는 제목으로 휴대전화 감청의 필요성을 노골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이 책엔 ‘이메일을 암호화 하는 법’ ‘공개키를 사용하는 법’ 등 알아두면 좋을 보안기술들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도둑없는 마을의 낮은 담’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에, 디지털감시의 시대 자기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일정수준의 보안기술을 익힐 필요는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 모두가 마커스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부당한 감시를 할 수 없게끔)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권력을 역감시하는 일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된 엠마 골드만의 구호처럼, 밝고 경쾌하게 춤추듯 걸어갈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