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기술은 흩어져 있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모아서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 수도 있겠죠. 문제는 빅데이터가 사람을 타겟으로 할 때입니다. 누군가를 목표로 삼아 그 사람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나아가 그에 대한 의사결정을 기계적으로 하게 될때 정보인권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라며 빅데이터 산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나섰을 때 불안한 조짐이 보였습니다. 결국 이 정부는 빅데이터 시대 개인정보보호를 포기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장 먼저 총대를 멨습니다.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빅데이터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습니다. 취지는 ‘비식별화’라는 개념을 창설하겠다는 겁니다. ‘비식별화’된 개인정보에는 앞으로 개인정보보호법들의 예외를 인정하여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기업들이 수집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답니다. 이는 결국 정부가 나서 개인정보보호 규범을 우회하겠다는 것으로서,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개인정보보호규범에 대한 ‘창조’적 파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다른 정부부처들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월 3일 금융위원회는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 신용정보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비식별화를 통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우회하겠다고 합니다.
이럴 때 국회는 정부를 견제하여 국민의 정보인권을 보호해야 하겠죠. 그런데 한술 더떠 현재 행정규칙에 불과한 방통위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입법하겠다고 나선 국회의원들이 있습니다. 진보넷은 경실련과 함께 강은희 의원, 강길부 의원, 부좌현 의원이 발의한 비식별화 관련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국회에 전달하였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빅데이터 산업이 개인정보보호에 미칠 영향을 둘러싼 논의가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빅데이터도 개인정보를 처리할 때는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특히 계속된 개인정보 유출사고로 개인정보 보호 토대가 취약해진 우리나라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입법이 아닙니다. 정부와 국회는 빅데이터 시대 예상되는 기업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처리로부터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 마련에 우선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by 바리
사이버감청 강화 vs 사이버사찰 금지
지난 6월 1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사이버 감청을 강화하는 법을 발의하였습니다. 인터넷, SNS, 이동통신을 비롯해 정부가 지정하는 통신사업자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을 위한 감청 장비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입니다. SNS 감청 의무화는 세계 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청장비 구비 의무화는 인권침해 논란이 큰 정책입니다. 지난해 7월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통신비밀에 대한 특별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기업들에게 ‘감청 준비’ 상태로 장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들이 “싹슬이 감시 조치를 촉진하는 환경을 낳기 때문에” 우려스럽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또 이 법안은 암호화 서비스를 무력화할 우려가 있는데, 일부 국가들의 이런 경향에 대해서 최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들에서 유엔 총회는 각국 정부에 “통신 감시, 도청, 개인정보 수집에 관련된 자국 절차, 관행, 법률을 재검토할 것”을 권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논란 많은 나쁜 정책을 입법하면서 한술 더떠 모든 SNS에 감청장비 구비를 의무화하다니, 나빠도 이렇게 나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정보·수사기관의 통신수사권 오남용과 싹슬이 정보제공이 이미 큰 사회적 논란을 빚어 왔습니다. 정진우씨 사건에서는 1명의 반일치 카카오톡을 압수수색하는 것만으로 같은 카카오톡 방에 있었던 2,368명의 정보가 싹슬이로 제공되었습니다. 국민들은 자신의 통신비밀을 지키고자 한다는 것을 사이버 망명으로 보여주었구요.
사이버감청 강화법은 현재 휴대전화와 SNS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현행 통비법이 휴대전화와 SNS 감청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휴대전화 감청은 지난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당시 불법감청 사실이 드러나 국민 여론이 악화된 후 중단되었습니다. SNS 감청 역시 지난해 카카오톡의 편법 감청 사실이 드러난 후부터 갑작스럽게 중단된 것입니다. 결국 정보 수사기관의 무리한 감청이 휴대전화와 SNS 감청 중단을 자초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법이 바뀌지 않으면 감청이 불가능하다니요. 사실 이 법의 핵심은 국내 모든 통신 서비스에 국정원을 위한 감청 장비를 의무적으로 부착케 하는 데 있습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감청의 95%는 국정원이 집행하고 있는데 이 기관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선거개입과 국내정치개입의 악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정원을 위하여 우리는 통신 비밀을 포기해야 할까요?
이런 우려로 인하여 같은 내용의 법안이 17대와 18대 국회에도 상정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국정원을 믿지 못하는 거지요. 특히 17대 때는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 뿐 아니라 야당 한나라당에서도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었고, 심지어 조선일보도 데스크시론을 통해 이 정책을 비판했었습니다.
지금 필요한 법은 국정원을 위한 사이버감청 강화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디지털시대 악화되고 있는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의 통신비밀 침해를 근절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사이버사찰금지법입니다.
by 바리
지문날인제도, 또다시 합헌 결정
우울한 소식입니다. 지난 5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지문날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6:3으로 합헌결정을 내렸습니다. 지난 2005년 지문날인 사건에 대한 6:3 합헌결정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헌재가 국민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국가의 침해행위를 정당화해준 것입니다.
이 사건은 지난 2011년 11월 21일 지문날인과 주민등록증 발급을 거부한 청소년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이었습니다. 주민등록증발급신청서에 좌우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어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을 하도록 한 주민등록법시행령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였지요.
1962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제정된 주민등록법과 주민등록제도는 50여 년 간 견고하게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만17세에 도달한 전 국민에 의무적으로 국가신분증을 발급하면서 강제적으로 지문을 날인하도록 한 주민등록증 제도는 끊임없는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 왔습니다. 청구인들은 “주민등록증 지문날인은 위헌이다”라고 믿고 주민등록증 발급연령에 도달한 만17세부터 현재까지 지문날인을 거부해 왔으나, 일상생활의 신분증명에 있어 많은 불이익을 받아 왔습니다.
특히 디지털시대 개인에게 고유한 생체정보의 보호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때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의 지문날인 강제가 위헌이라고 믿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3인 재판관의 반대의견으로도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진보넷은 앞으로도 국가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지문날인 제도가 사라질 때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