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법이 합헌이라고!? (2011헌마28) 후속

그제 어떤 분의 연락을 받았다. 파업 과정에서 사측과의 충돌로 처벌을 받았던 분이다. 검찰에서 DNA채취해야 하니까 동의하면 출석하라는 동의서를 보냈다고 한다. 검찰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그 동안 DNA법 헌법소원 때문에 DNA채취를 미루고 있었다. 합헌이라고 결정이 나왔으니 이제 다시 채취를 시작한다.”고 한다. 부동의 의견서 양식을 다듬어서 보내드렸다. 검찰에서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의 상황을 감안하여 DNA를 채취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생존권 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들의 DNA 채취를 가능케 만든 헌법재판소 결정문(2011헌마28 등)은 길지 않다. 51페이지에서 이것저것 빼고 나면 30페이지 남짓하다. 글자크기는 12, 줄 간격은 240%다. 결정문은 크게 일곱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⑤본안에 관한 판단과 ⑦반대의견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적법요건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DNA법 자체와는 큰 관련이 없다.
DNA법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이다. ①채취대상에 죄질이 경미한 범죄가 포함되었다. ②재범률을 행위자별로 판단해야 하는데, DNA법은 범죄별로 일반화시켜 판단한다. ③사망해야만 수록된 DNA정보를 지워준다. ④DNA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합헌이라 주장한 다수의 재판관들은 위의 4가지가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중대한 범죄도 포함되었으니까 괜찮다. 채취대상 범죄들의 재범률이 조금 높으니까 괜찮다. DNA정보를 수록한다고 기본권 침해가 크지 않으니, 사망할 때 지워줘도 되고, 법 제정 이전의 범죄자들한테 적용해도 문제될 것 없다.”고 보았다. 이곳이 헌법재판소인지 검찰청인지 헷갈린다. 지면이 아까워서 더 살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반대의견은 직접 읽어보자. ①, ②에 대한 재판관 4명의 반대의견이다. “채취조항들의 대상 범죄 중 흉기휴대 상해범, 강간등 상해범, 강간치상범의 재범률이 일반 범죄에 비하여 높긴 하지만 그 차이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고, 주거침입, 재물손괴 등으로 인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죄질이 경미하고 재범의 위험성도 높다고 보기 어려우며, 재범의 위험성은 대상자의 직업과 환경, 당해 범행 이전의 행적, 그 범행의 동기, 수단, 범행 후의 정황, 개전의 정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행위자별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특정 범죄전력만 가지고 도식적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박수 쳐드리자.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고 위헌이라고 했다!
③과 ④에 대한 재판관 1명의 반대의견이다. “죄질이 비교적 경미하고 재범 위험성이 크지 않은 대상 범죄로 집행유예판결을 선고받은 자의 경우에도 대상 범죄를 범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사망 시까지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가 보관되는 가혹한 결과가 발생한다. …… 대상 범죄의 경중 및 그에 따른 재범의 위험성에 따라 관리기간을 세분화하는 등 충분히 가능하고 덜 침해적인 수단을 채택하지 아니하였다는 측면에서도 침해최소성 원칙에 반한다. …… 무분별한 소급적용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권 및 법적 안정성의 존중이라는 기본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할 것이어서, 나로서는 이와 같은 형사적 제재의 빈번한 소급입법을 비롯한 과도한 형사사법만능주의의 풍조를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두고자 한다.” 이 재판관님은 이 결정문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하게 빛난 분이다.
죽을 때까지 DNA정보를 삭제하지 않는 조항이 합헌이라고 하셨던 재판관 4명이 보충의견을 붙였다. 요지는 “죽어야지만 DNA정보를 삭제하더라도 합헌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 정당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죽기 전에도 DNA정보를 삭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면 좋겠다.” 이다. 합헌이라 하더니 왜 DNA법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정중하게 조언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제대로 하면 헌법재판소까지 들고 가지도 않았다. 합헌이면 합헌이고 위헌이면 위헌이지, 합헌인데 입법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 도대체 무엇이냐.
반대의견을 꼼꼼히 설시해주신 재판관들 덕분에 다음 논의를 이어갈 여력이 조금이나마 생겼지만, DNA법을 합헌이라 하였던 다수의 재판관들 덕분에 검경이 거리낌 없이 DNA채취를 요구할 것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