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집회 및 시위현장에서 경찰의 채증 관련 제도개선 권고” 결정

국가인권위원회(이하, ‘국가인권위’)가 2014. 4. 3. “집회 및 시위현장에서 경찰의 채증관련 제도개선 권고” 결정을 했을 때, 살짝 기대했습니다. 드디어! 경찰들의 정신 나간 채증을 공격할 자료가 생기나 싶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실망이었습니다. 1999년, 그러니까 무려 15년 전 대법원판례(99도2317)와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가인권위 결정의 주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집회 및 시위 참가자의 불법행위가 행하여지고 있거나 행하여진 직후, 증거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채증활동을 하도록 할 것, 2. 채증요원의 채증활동 및 채증장비사용과 관련하여 인권침해적 요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할 것, 3. 채증자료의 수집·사용·보관·폐기와 관련하여 절차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채증자료 관리 절차를 마련할 것을 권고한다.
주문을 거칠게 요약하면 “대법원 판례를 따르시오. 경찰 내부에서 관리 절차를 만드시오.” 입니다. 대법원 판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집회시위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채증 카메라를 치켜 들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여기에 같은 내용의 결정문을 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채증에 관한 이번 국가인권위 결정은 거의 무의미합니다.
무분별한 경찰 채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집회시위 현장에 있는 시민들을 자극하여 불필요한 충돌을 야기하다는 것입니다. 채증자료 처리에 관한 권고를 하였다는 점은 의미가 있으나,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15년 전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답습한 점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경찰들은 국회의원과 변호사들이 밀양 송전탑 농성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경찰 지휘관과 대화하는 모습조차 채증했습니다.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행진을 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찰이 말도 되지 않는 이유를 대면서 행진 행렬을 포위해 버리자 참가자들이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 항의했고 , 경찰은 채증으로 대응했습니다. 신고된 행진이었습니다. 경찰의 집회방해와 채증행위에 대한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당장 법원에 소송을 하더라도 국가인권위 결정과 같은 수준의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의 역할이 사법부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국가인권위는 몇 발 더 앞서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