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

사이버문학이란?

By 2004/03/17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심층연재

이용욱

‘사이버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 패러다임이 한국 문학사에 등장한지 8년이 지났다. 비록 지나간 시간에 비하면 문학적 성과물은 미흡하지만, 문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사이버문학’이란 용어를 낯설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낯설지 않다는 것’이 ‘익숙하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문학을 불편해 하거나 어려워하고 있다. 낯설지는 않지만 선뜻 다가가기는 어려운, 문학이라는 거대한 성(城) 안에서 사이버문학은 노틀담의 꼽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문학, 문학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사이버문학을 불편하거나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견지하고 있는 시선은 사이버문학이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알고 가상 공간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만의 문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와 가상 공간에 대한 친밀도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사이버문학은 이방인들의 문학일 수밖에 없다. 물론 사이버문학이 컴퓨터를 계열 축으로, 가상 공간을 계기 축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계기 축과 계열 축은 문학을 감싸 안고 있는 상상력의 발화 지점을 지시하는 것이며, 사이버문학만의 독특한 존재론적 기반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사이버문학의 리얼리티가 특정 공간에서만 확보되고 이해되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 그어져야 하며, 각각의 공간에서 정체성을 획득하고 있는 구성원들 역시 개별적인 존재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가상공간은 현실공간의 거울이거나 그 뒷면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또 하나의 일상(日常)이지 결코 분리된 세계가 아니다. 또 하나의 일상에서 발현되고 있는 문학에 대해 기존의 문학과 태생이 다르다고 해서 ‘사이비(似而非)’ 문학으로 폄하 하거나, 그 문학성 자체에 대해 회의한다면 그것은 문학이 근본적으로 상상력의 예술이라는 지점에 대한 폄하나 회의와 다를 게 없다.

이런 공간에 대한 편견 말고도 사이버문학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오독은 사이버문학의 유력한 장르가 기존의 문학에서는 주변부나 하위 장르로 치부되고 있는 에스에프(SF)나 환타지, 무협, 추리 등의 하위 장르들이라는 인식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 사람과 사이버문학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면, 이런 인식이 얼마나 고착화되어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인터넷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이라는 전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보다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과장하고 비틀어 보여준 한 단면만을 보고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사이버문학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여우가 자신의 손에 미치지 않는 포도송이를 올려다보면서 ‘저건 분명 신포도일거야’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는 것처럼 스스로 사이버문학과 선을 긋고 마는 것이다.

사이버문학의 장르 스팩트럼은 기존의 문학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또 실제로 다양한 작품들이 가상 공간 안에서 창작되고 올려지고 읽혀지고 있다. 더구나 SF나 환타지소설이 문학의 신포도는 아니다.

2000년대 들어 독자들의 문학적 기호나 독서 취향이 분명 변화하고 있으며, 가상 공간에서 그것이 실시간으로 그리고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 뿐이다.

사이버문학이 아닌 인터넷 문학
이제 구체적으로 사이버문학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사이버문학 Cyber Literature’이란 용어에서 ‘사이버Cyber’라는 단어는 영한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다만 ‘가상’ 또는 ‘인공’이라는 의미로 막연하게 사용되는 추상명사일 뿐이다.

우리가 ‘문학’이라는 단어 앞에 접두사를 붙여 조어를 만들 때는, 앞에 붙은 명사의 의미가 뒤에 오는 문학 전체를 수식해준다. ‘민중문학’이라 했을 때는 민중들의 삶을 전형적으로 구현해주는 문학이며, ‘참여문학’은 사회 변혁의 실천적 행위 속으로 문학이 뛰어듬을 일컫는다. ‘순수문학’은 이데올로기의 자장권 밖에 있음을 의미하며, ‘통속문학’은 주제나 소재에 있어 통속적인 제재를 취사하는 문학을 가리킨다. 이처럼 앞에 붙은 명사가 뒤에 오는 ‘문학’의 개괄적인 성격을 은유하고 지시해주는데 비해, 사이버문학은 그 지시 대상이 모호하다.

추상적인 의미 그대로 ‘인공문학’이나 ‘가상문학’으로 해석한다면 SF나 환타지문학과 혼동될 위험이 있고, 따라서 사이버문학(Cyber Literature)이란 용어가 그 맥락상 본격문학보다는 SF쪽에 더 가깝게 이해될 수 있는 소재편향적인 용어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Cyber’라는 용어가 맨 처음 사용된 Cybernetics(인공두뇌학)이라는 SF적인 단어의 뉘앙스에 너무 연연한 때문일 것이다.

사이버(Cyber)라는 접두사와 문학(Literature)을 합성하여 사이버문학(Cyber Literature)이라 명명할 때, 사이버(Cyber)는 그것의 모어(母語)격인 ‘Cybernetics’과는 전혀 다른 인문학적 층위에서 뒤에 오는 단어를 구속해주는 지시어로써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Cyber’는 접두사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써 뒤에 오는 단어를 구속하는 기능만을 수행한다. 사이버(cyber)라는 단어에는, 하이테크함, 진보적, 가상적, 인공적이라는 이미지들이 함축되어 있으며, 이 세계가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을 담아내는 문학의 명칭 또한 이미지로 현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사이버문학을 가상 공간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재로 선택하는 문학이나, 가상 공간 내에서 소통되는 문학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인터넷문학’을 ‘사이버문학’으로 잘못 오독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작가와 다수의 독자
인터넷 소설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소통 공간의 특수성에 국한하여 있다. 기존의 문학은 작가에서 독자라는 일방적인 소통 구조와 소수의 작가와 다수의 독자라는 피라미드 문단 구조하에서 그 문학행위가 이루어졌다. 작가의 작품에 대해 독자들은 대부분 비평가의 평문에 그 해석을 의지하였고, 독자수용이론에서 얘기하는 읽는 사람에 의한 텍스트의 새로운 의미 창출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직접적인 작가와의 소통 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음으로 해서, 개인적인 차원의 감상에 그칠 뿐이었다. 독자 투고라는 소통 방식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직접적인 소통이라기에는 시간적 제약과 작가의 답장에 대한 믿음이 결여된 원시적인 소통방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터넷 소설’은 텍스트를 매개로 한 작가와 독자의 소통 구조를 ‘쌍방향 영향 관계’와 ‘실시간적’이라는 혁명적인 방식으로 변화시켜 놓았다. 다수의 작가와 다수의 독자들이 만들어내는 사각형의 문단 구조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가장 진보된 사회 형태에 문학이라는 가장 고전적인 예술 행위를 접목시켜주는 훌륭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인터넷에서 작가들은 독자들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은 비단 기성작가뿐만 아니라 가상 공간 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독자들은 작가들에게 직접 메일(mail)을 보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고, 게시판 상의 격렬한 논쟁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조회수를 빌미로 작가를 억압하기도 한다. 조회수야말로 가장 상징적인 독자들의 간섭이며, 작가들이 조회수에 연연할 수밖에 없음은 그만큼 작가와 독자 사이의 소통 구조가 변화하였음을 의미한다.

‘독자추수주의’라고도 명명할 수 있는 이런 변화는 긍정적인 면 만큼이나 ‘선정성 논란’과 ‘소재주의’라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광범위한 작가군의 형성과 함께 ‘인터넷 소설’이 갖고 있는 두 가지 미덕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광범위한 작가군의 형성 또한 소통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자신의 글을 올릴 수 있고, 그 글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통신공간은 소수의 기성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창작의 기회를 일반인들에게 제공해줌으로써 ‘작가 -> 텍스트 -> 독자’라는 단선적인 소통구조를 ‘작가(독자) <-> 텍스트 <-> 독자(작가)’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가상 공간 내에서는 누구나 다 작가이면서 동시에 독자가 된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 소설’이 작가와 독자 사이의 소통 공간의 특수성에 집중되어 있다면, ‘사이버문학’은 미적 특수성을 보장해 주는 ‘문학적 장치’의 문제로 한 걸음 나아간다.

기존 문학관의 구속과 억압에서 탈피해야
편리한 글쓰기 환경의 제공과 수정, 삽입, 삭제가 용이한 전자언어가 ‘인터넷 소설’의 언어적 기반을 이루어 내었다면, 그것이 가져다주는 의식의 가역성은 창작방법론의 도식성이나 획일화되고 고정적인 세계관을 부정하는 작가들의 의식 층위로 연결됨으로써 ‘사이버문학’ 이념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것이다.

‘사이버문학’은 기존문학의 어떠한 구속력과 억압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으며, 그것은 등단 제도나 학맥 위주의 보수적인 문단 제도뿐만 아니라 현실(본질)을 반영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문학관까지도 거부하여야 한다.

우리는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여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렇다면 현실의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는 가상현실의 세계는 어떤 식으로 텍스트 안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때의 가상현실은 인터넷 같은 가상공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행위뿐만 아니라, 실재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공간 내에서 이미지로 부유하고 있는 시뮬라크르들까지도 포함한다.

이제 우리 주위의 모든 사물은 그 자체의 본질로 이해되기보다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의 후광으로 덧씌워져 있다. 아이스크림 ‘메로나’는 실제 멜론을 먹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멜론 맛이구나’하는 시뮬라크르한 의식을 경험하게 해 주며, 이영애는 그녀가 어떠한 정체성을 갖고있던 간에 화장품 CF, 전자제품 CF, 신용카드 CF 등에서 보여지는 각양각색의 이미지들로 우리에게 읽혀진다. 이영애는 한 사람이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이영애는 수도 없이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술복제시대 아우라의 상실을 얘기했던 벤야민의 논지를 역으로 얘기하자면, 이제 우리 앞에는 동일한 사물이나 현상이지만 각양각색의 무수한 아우라가 기표처럼 떠다니고 있는 것이며, 현실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노력하였던 기존문학의 이념태로는 이 새로운 시대의 리얼리티를 도저히 반영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버문학’은 그 가상현실을 미적으로 가공하여 보여주는 문학이어야 한다. 소재적인 측면에서는 가상공간을 현실공간으로 상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단면을 날카롭게 묘파해 내는 동시에 그동안 주변부 문학으로 인식되어 왔던 SF와 추리소설 등의 하위 장르를 끌어안아야 한다.

SF와 추리소설 등의 주변부 문학에 대한 ‘사이버문학’의 개방성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들에 미적 가치를 부여해 줌으로써 기존문단의 ‘순문학지상주의’라는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또는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 주장하는 ‘무기로써의 문학’도 가능할 수 있다. 정보가 소수의 사람이나 특정 집단에 독점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소외’현상이나 ‘비인간화’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문학적 감수성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사이버문학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문학의 본령을 이루고 있는 상상력의 부분에서는, 실체를 형성하고 있는 본질과 비본질이라는 이중 코드를 시뮬라크르를 통해 형상화해 내야하며, 정보화사회라는 획일화된 집단 메카니즘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우리들의 불안 의식 그리고 이기주의와 개인화가 점차 심화돼감으로써 상호관계 틀 내에서 서로 어긋나고 불일치하는 시선과 분열적인 인간의 욕망을 형상화내어야 한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하는 문학’
사이버문학은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이라는 공간적 경계와는 무관하게 작가가 실제 현실뿐만 아니라 의사 현실까지도 포함하는 정보화 시대의 리얼리티를 담아내려는 확고한 작가 의식 하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주제적 소재적 세계를 구축한 문학을 일컫는다.

창작면에서는 전자글쓰기를 기반으로 하여 일관되고 도식적인 세계관과 창작방법론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실험 정신과 금기에 대한 도전이 옹호되고 또 이루어지는 문학이 사이버문학이며, 소통 면에서는 독자와의 자유로운 상호 교류를 통해 작가와 독자 사이의 영역이 합쳐지게 되고, 이것이 다시 ‘이어쓰기’와 ‘고쳐쓰기’의 버전업 창작으로 이어진다.

이제 문학은 ‘읽는 문학’에서 ‘참여하는 문학’으로 나아가고 있으면, 사이버문학의 소통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작가와 독자의 쌍방향소통에 의한 ‘함께하는 문학’이다.

사이버문학은 후기산업사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의식적 소재적 상상력에 열려있으며, 작가의 우월적 권위를 무시하며, 단선적인 소통체계를 거부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학인 것이다.

사이버문학의 미래에 대해 정작 창작 주체들조차 불신하고 회의하는 작금의 현실은 오히려 더욱 더 사이버문학일 수밖에 없음을 강변해 준다. ‘불신’과 ‘회의’가 다가올 미래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심리적 방어 기제라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변화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일일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안더스는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것의 최대치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초라한 정도로 작은) 것의 최대치 사이에 놓인 격차를 ‘프로메테우스적인 격차’라 표현하였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는 일, 그리하여 그 격차를 좁히는 일, 이것이 프로메테우스가 해야 할 일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 역할을 떠맡아야 할 것이다.

 


이용욱씨는 <사이버문학의 도전>(토마토, 1996)을 출간한 이후, 여러 지면을 통해 사이버문학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문학 계간지 <버전업>의 편집주간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웹진 <사이버리즘>(http://www.cyberism.co.kr)을 운영하고 있다.

 

200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