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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이마리오, 2002) 다시 보기

By 2014/04/07 10월 25th, 2016 No Comments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평을 쓰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정보인권 활동가로서 이 영화와 영화를 만든 감독에 대한 진한 추억 몇 조각을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한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남쪽으로 튀어> 주인공 최해갑은 많은 이들에게 이마리오 감독을 떠올리게 했다. 경찰서에서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일화에, 극중 직업도 영화감독일 뿐 아니라 이 감독의 영화가 동명으로 거명되기 때문이다. 연금을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일본 원작을 임 감독이 한국땅에서 영화화하면서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설정을 보탠 이유가 궁금했다. 이 제도에 대한 극중 인물과 관객들의 태도에서 ‘국가’에 대한 한국적 인식이 드러날 것을 기대했을까. 나 역시 박정희로부터 멀리는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문날인과 주민등록증 제도가 이 나라 시민들이 지극히 한국적인 국가관을 갖게 된 출발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남쪽>이 솔직히 좀 섭섭했다. 지극히 자유롭고자 하는 주인공의 가부장적인 태도도 모순적이라고 느꼈지만, 무엇보다 불복종하는 시민이 희극적으로 묘사되는 것이 불편했다. 이야기 구조에서 코믹 코드를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경직된 인간은 아닌데, 나 자신이 지문날인 거부자이기에 웃어넘길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민 불복종은 ‘똘기 충만한’ 개인의 거부 행위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실천으로만 끝나면 세간의 눈총거리나 웃음거리 이상이 되기 어렵고, 한때 낭만에 그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개인적 실천이 여럿의 실천으로 나아갈 때 사회운동이 시작된다. 그리고 거부자들은 막연한 손가락질 외에 구체적인 문제와 씨름하게 된다. 등본과 인감을 떼어 내라는 곳은 많은데 등본과 인감 발급을 위한 국가 데이터베이스는 지문을 요구한다. 발급을 거절당하기라도 하면 동사무소에서 때아닌 농성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 http://blog.jinbo.net/antiropy/520 생계를 위해 국비지원 학원에 등록했다가 지문날인을 이용한 출석체크나 지문날인된 주민등록증만 신분증으로 인정하는 행정에서 좌절을 겪기도 할 것이다. 출국하다가 공항 검색대에서 "주민등록증 아직도 없으세요?"라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싸움을 하는 이들이 흐름을 형성했을 때 마침내 세상이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종교와 사회운동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가 최해갑과 실제 지문날인 거부자들이 다른 점이다.
 
이마리오 감독의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는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개인의 실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모임을 갖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좋아한다(십삼년 전 앳된 내 얼굴이 나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래, 2001년 어느날인가 사람들과 함께 지문날인 반대연대를 만들었었지. http://finger.jinbo.net/ 모임 소개를 기억해 본다. "서울영상집단, 존재미증명자들의은신처, 주민등록법개정을위한행동연대, 지문날인거부자모임, 지문날인반대프리챌모임,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네티즌·사회단체들이 모여 지문날인된 주민등록증을 반대하는 지문날인 반대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박정희가 시작한 지문날인 제도를 철폐하기 위해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인의 사회 실천이 어떠해야 하는지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민등록증> 영화의 감독이 스크린을 넘어 매주 함께 회의하고 시위하던 동지였다는 사실을 행복하게 기억한다. 그때 같이 싸웠던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문날인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래도 그이들을 떠올릴 때면 늘 가슴 한 부분이 따뜻해진다. 개인이 국가와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강요되고 지문날인된 주민등록증을 기준으로 삼는 한국식 국가행정 때문에 종내 지문날인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어째서 이들 탓이랴. 지난주에도 인감 증명 떼다가 농성했다는 한 거부자의 푸념이 들려왔는 걸. 계속 이렇게 살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각설하고, 정보인권 활동가로서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영화가 "개인정보 참가권"을 행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내 개인정보를 반환, 즉 삭제해 달라거나 보여달라는 요구는 OECD가 1980년부터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해 온 개인정보 참가권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말해 내 개인정보를 내게 보여주고 내가 요구하면 정정하거나 삭제해 달라는 것인데, 아마도 영화 제작 당시에는 얼토당토한 요구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감독은 묻는다. "아니, 내 정보를 내가 보겠다는데 그게 왜 이상한가"
 
이제는 많은 이들이 같은 의문을 갖는다. 올초 전국을 뒤흔든 국민카드, 롯데카드, 농협카드 유출의 피해자라면 더욱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양반들이 내 개인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가져와서 어디다 어떻게 쓴 걸까? 내 개인정보인데 왜 나는 그걸 알 수 없을까? 왜 자기들끼리만 돌려 보고 두루두루 쓰는가? 내 개인정보인데 내 의사에 따라 삭제할 수는 없을까? 이런 의문들로부터 세계 정보인권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면서 "개인정보 자기열람권"이 대폭 확대되었다. 물론 영화가 제작되던 무렵에도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열람권이 보장되어 있긴 했다. 그러나 세상 만사에 법문 상의 권리가 저절로 보장되는 일이란 없는 모양이다. 그때도 자기정보 열람하는 것이 지독히도 힘들어서 영화 한 편이 나올 정도의 스토리가 쌓이지 않았는가. 지금도 카드사 가서 내 정보 보여달라고 해본들, 순순히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가 KBS에 방영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울영상집단과 진보넷이 함께 KBS의 퍼블릭액세스 채널인 <열린채널>에 방영을 요청했는데 거부된 것이다. 주요 이유는 두 가지. 박정희 생가 장면을 삭제해라. 제목 중 ‘~찢어라’를 다른 언어로 순화해라. 나는 아직도 이 요구들을 이해할 수 없다. 지문날인 제도의 기원이 박정희인 것이 사실인데 퍼블릭액세스 채널이 왜 생가 장면에 대해 가타부타하는지 말이다. 너무나 신성해서? 사실 1차 의결 때는 더 가관이었다. △한국과 같은 형태의 지문제도가 외국에는
없다는 것을 증명할 것 △주민등록제도가 파시즘적 제도라는 과격한 용어를 삼갈 것 △비속어를 순화할 것 △공무원의 얼굴, 이름 및 직함을 비공개하고 취재를 거부하는 장면도 비공개할 것 △박정희 생가씬을 삭제하고 다른 화면으로 대체할 것 등 꼼꼼하게도 검열을 했다. 공중파 방송임을 감안한 감독이 비속어와 공무원 익명처리 요구를 수용하고 외국의 지문날인 제도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출했는데도 결국 편성불가결정을 받았다. 결국 법원으로 달려갔고 오랜 싸움 끝에 2004년 6월 마침내 방영되었다. 소송은 졌다. KBS에서 받은 방영료는 패소 비용 280만원으로 거의 다 소요되었다.
 
소송에 대해서는 아픈 기억만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해 지문날인 반대운동이 2005년 경부터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인한 타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결정문의 내용이 매우 흉악해서 이후 경찰은 별도의 법적 근거 없이도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법원의 판단으로 2012년 경찰의 범죄정보관리시스템에 대한 공익소송도 패소하는 등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오랫동안 멘붕이 왔다. 모임은 흩어졌다. 그 이후 전반적으로 사회운동이 잘 되는 편도 아니었다. 그래도 몇년이 흐르자 조금씩 힘이 충전되었다. 2011년 네이트 3천5백만 개인정보 유출 사고 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민등록번호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던 시민들이 이제는 번호 제도에 대한 원성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민등록제도에 대해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2011년 지문날인 헌법소원을 다시 제기하였다. 이제는 될때까지 해볼 생각이다. http://act.jinbo.net/drupal/node/6661
 
그것은 결국 <주민등록증을 찢어라>가 당시 신선하게 제기했던 문제의식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이 될 것이다. 영화를 마치는 마지막 멘트처럼. "법원의 결정이 나에게 유리하게 내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과정을 통해 지금도 내 몸 구석구석에 흐르고 있는 파시즘의 흔적들을 지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2014. 4. 3.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 [ACT!] 88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actmediact.tistory.com/m/161

2014-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