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네트워커정보문화향유권

정보혁명과 현대자본주의

By 2004/03/04 10월 29th, 2016 No Comments

심층연재

강남훈

금융의 마술-IMF 외환위기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지만, 1997년 가을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를 겪었다. 이전에 1달러당 700원 가까이 떨어졌던 환율이 12월이 되면서 1달러당 2,000원을 넘어서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고, 거리에는 노숙인들이 넘쳤으며, 집 값이 폭락하고 이자율이 급등하면서 평생 모은 재산을 다 날려버린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외국인 투자가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다음과 같은 방법은 실제로 많이 사용된 방법이다.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쳐서 환율이 치솟을 것이 확실하다고 가정해 보자. 월스트리트의 한 펀드매니저가 한국에 있는 은행으로부터 100억 원 원화로 빌린다. 이 때 환율은 1달러에 700원이었다. 이 돈으로 달러를 사면 약 1,400만 달러를 가질 수 있다. 다음 달이 되자 환율이 1,400원으로 되었다. 이 때 다시 한국에 있는 은행으로부터 100억 원을 또 빌린다. 이 돈으로 달러를 사면 이제는 약 700만 달러를 가질 수 있다. 다음 달이 되니까 환율이 다시 2,100원으로 올랐다. 이제 가지고 있는 2,100만 달러 중에서 950만 달러 정도를 팔면 200억 원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빌린 돈을 갚고 남는 1,150만 달러를 가지고 뉴욕으로 되돌아가면 된다.(이자는 계산하지 말자) 평생을 먹고살아도 남을만한 돈을 버는 데 밑천 한 푼 들지 않았다.

금융자본-이자낳는자본
금융은 좁은 의미에서는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말한다.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에는 남의 돈을 빌리는 방법과 사업에 투자할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이 있다.
돈을 빌릴 때에는 은행에 대출계약서를 써 주든지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에게 약속증서(채권)를 써 준다. 돈을 빌려주는 자본들은 이자를 받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자본을 ‘이자낳는자본’이라고 부른다. 이자낳는자본은 스스로 잉여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다른 자본이 잉여를 생산하는 것을 도와주고, 다른 자본이 생산한 잉여의 일부를 가져간다.

사업에 투자할 사람들을 모으는 경우에는 투자가들에게 주식을 판매하는 것이 보통이다. 주식을 사면 기업이 만든 잉여의 일부를 배당금으로 받을 수 있다. 이 때 주식자본은 기업이 생산한 잉여의 일부를 가져간다는 점에서 이자낳는자본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보통은 배당금을 받을 목적이 아니라 싸게 사서 비싸게 팔 목적으로 주식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한 자본이 주식을 비싸게 팔 수 있으려면 다른 자본이 그것을 비싸게 사 주어야 한다.

따라서 금융자본은 이자낳는자본이든 주식자본이든 스스로 잉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생산한 잉여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비유를 써서 표현하자면, 남의 생산을 도와주기 때문에 공생적인 측면이 있지만, 남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가져가니까 기생적인 측면도 있다.

금융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금융주도 측면이다. 금융이 주도한다는 것은 금융자본의 활동이 경제의 중심이 되고 금융시장이 가장 중요한 시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상당한 규제를 함으로써 금융자본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아왔는데 1980년대를 거치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금융자본의 규모는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나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1년 동안 생산하는 소득은(GNP) 대략 30조 달러쯤 되고, 1년 동안의 무역량은 10조 달러쯤 된다. 그런데 하루 동안에 거래되는 외환거래량이 2조 달러쯤 될 것이다. 대략 3일-5일의 외환거래분만이 무역을 위해서 필요한 거래이고 나머지는 투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금융자본 중에서 만기가 될 때마다 이득의 합과 손실의 합을 일치시켜주는 파생상품이라는 것이 있는데(이 파생상품이 233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영국 베어링스 은행이 1995년 파산하게 된 원인이다), 이 파생상품의 발행 잔고가 이미 오래 전에 100조 달러를 넘어섰다.

쉽게 말하자면, 전 세계 사람이 1년 동안 버는 돈의 3배가 넘는 판돈이 매일 밤 도박판에 깔려 있는 것이다.(물론 파생상품은 위험을 줄여주는 기능도 있어서 완전한 도박과는 다르다)

금융자본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를 지적할 수 있지만, 불안정성이 증가한다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들어야 할 것이다. 잘 될 때는 너무 잘 되고 안 될 때는 너무 안 되는 경향이 있다. 다음으로 빈부격차가 커지고, 노동자들에게 불리해지는 효과를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근본적으로 보면, 생산을 하는 자본보다 남이 생산한 것을 나누어 가지려는 자본이 많아지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인즈와 뉴튼
금융자본의 불안정성과 관련하여 케인즈의 세 가지 비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 재미있다. 하나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을 알아맞히는 미인투표 비유이다. 미인투표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투표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에게 투표하게 된다. 주식시장에서 미인으로 뽑히기 위해서는 미모보다 인기가 우선이다. 다음은 진정한 가치가 20파운드에 불과하더라도 앞으로 얼마동안 30파운드에 거래될 전망이라면 25파운드를 주고서라도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비유이다. 진정한 가치보다는 30파운드에 사려는 사람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마지막 비유는 음악이 끝나면 누군가 한 사람은 앉을 의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음악의자놀이(수건돌리기와 비슷한 것 같다)의 비유이다. 거품이 꺼지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겠지만, 거품이 붕괴하기 전까지는 주식시장에 참여해서 즐길 수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뉴튼에게도 쓰라린 경험이 있다. 당시 뜬소문에 의해서 사우스 씨(South See)라는 회사의 주가가 한참 뛰고 있었다. 뉴튼은 주가가 뛰기 시작했을 때 약간의 돈을 투자해서 일찍 팔고 나와서 적지 않은 이익을 보았다.(똑똑하면 뭐든 잘 하겠지!) 그런데 뉴튼이 주식을 팔고 나서도 주가가 계속 뛰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달 두 달 계속해서 주가가 뛰자 뉴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액을 들고 다시 시장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뉴튼이 주식을 사고 나니까 갑자기 거품이 꺼지면서 주가가 휴지조각처럼 떨어져버렸다. 그는 “사물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미친 사람들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보혁명과 금융
이러한 금융주도 자본주의는 정보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단 정보혁명은 이러한 금융자본들이 지구 전체를 누비면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을 제공해 주었다. 뉴욕 외환시장에서 런던 외환시장의 정보를 알아내거나 자금을 이동시키는 데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든다면 금융자본의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될 것이다. 인터넷은 이러한 작업들을 0에 가까운 비용으로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처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의 발달이 없었다면 적정한 가격을 손으로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파생상품과 같은 복잡한 금융상품이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혁명이 금융자본의 주도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금융거래의 핵심이 바로 정보의 교환에 있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빌리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주식 거래를 위해서는 그 기업에 관한 정보가 중요하다. 외환거래를 위해서는 그 나라의 정치나 경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정보일수록 더 좋을 것이다. 1997년 가을, 한국 정부에서는 다르게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30억불 정도에 불과하다는 정보를 입수한 사람들은 앞에서 예로 든 방법을 사용해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금융 자체가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정보혁명은 바로 금융혁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금융혁명은 정보혁명을 촉진하는 측면도 있다. 그 자체로서 상품으로 팔린 최초의 정보는 바로 금융정보였다. 단말기를 통하여 금융정보를 제공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 최초의 회사인 블룸버그 통신사를 예로 들 수 있다.(블룸버그 통신사는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칠 것이 확실하다는 정보를 최초로 보도했던 회사이다. 한국에서는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야 이 통신사로부터 금융정보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케이블 텔레비전의 경우에도 증권방송은 수익성이 있는 방송에 속한다.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세계화’
현대자본주의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는 세계화이다. 무역, 직접투자, 주식투자 등의 형태로 국경을 넘나드는 상품과 자본이 증대하고, 노동과 자본의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지며, 기업과 시장의 규모가 전 세계적인 규모로 증가하고 있다. 세계적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적 기구와 조약이 증가하면서 사람과 물건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개별 국가의 힘은 점점 약해져가고 있다.

현대자본주의의 이러한 세계화 경향은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하여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상호 개방을 하면서 촉발되었다. 그러나 생산자본도 그에 못지않게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다. 정보혁명은 생산의 세계화를 위한 기술적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정보혁명은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을 줄임과 동시에 기업을 관리하는 비용도 줄인다. 따라서 기업의 필요에 따라서 시장에서의 거래나 기업의 조직이 세계적으로 확대되더라도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수요가 변하면 즉각 대만에서 설계를 한 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핵심노동자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인력회사를 통하여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하거나 값싼 외국 노동자들을 활용하더라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잉여가치와 관련된 문제이다. 정보혁명이 진행되면서 잉여가치의 주도적인 형태가 지적재산이나 지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지적재산권이나 지대 같은 것은 궁극적으로 잉여가치 생산의 부담을 다른 자본에게 전가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잉여가치 생산의 부담을 과거보다 더 많이 안게 된 자본은 비용을 절약하는 수밖에 없으므로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해외로 나가게 된다. 잉여가치를 실현(상품을 판매)하는 문제도 세계화를 필요로 한다. 자국의 노동자들을 추방하고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자국의 수요만으로는 상품을 다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해외시장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 이런 사정은 모든 나라에 다 마찬가지이므로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은 한층 격화될 수밖에 없다.

지식기반경제
주류 경제학에서는 현대자본주의를 지식기반경제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지식과 정보의 창출, 확산, 활용이 모든 경제활동에 핵심이 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부가가치 창출과 기업과 개인의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식기반경제가 된다고 모든 사람이 다 지식인이 되어 잘살게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정보혁명으로 인하여 지식이 매우 중요해지고 풍부해진 것은 사실이다. 지식은 언제나 더 많은, 혹은 더 좋은 사용가치를, 더 싸게 만들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지식이 항상 더 많은 잉여가치, 즉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에게 다 알려진 지식으로는 돈을 벌 수가 없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지식을 숨겨야 한다. 지식을 숨길 수 없는 경우에는 그것을 지적재산권을 이용해서 독점을 하면 된다. 이와 같이 정보혁명으로 인해서 한편으로는 지식이 풍부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형태로 지식을 독점하려는 시도도 증가하는 것이다. 미국이 WTO 협정을 통해서 지적재산권 제도를 세계적으로 강제한 것이라든지 지적재산권보호가 불충분한 나라에 대해서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지식기반경제는 미래학자들이 꿈꾸는 바와 같은 이상적인 경제가 결코 아니다. 지식기반경제가 되면 자본주의의 모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지식기반경제란 지적 재산이 많은 나라가 지적 재산이 없는 나라에게 잉여 이전을 요구하고, 지식이 많은 노동자와 지식이 없는 노동자 사이에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경제를 말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뚜렷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에서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20대 80의 사회, 수퍼스타 경제(수퍼스타 혼자서만 돈을 번다), 승자독식(싹슬이처럼 이긴 자가 다 가진다)이라는 험한 말들이 생겨났겠는가?

지식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인데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말하면, 점점 사회화되어 가는 생산력(지식)을 사적으로 이용(이윤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을 함께 나누고 독점을 막으려는 정보민주화 운동은 단순하게 정보분야에 한정된 운동이 아니라,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매우 중요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200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