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여러 가지 물리적, 시간적 장벽으로 막혀있는 우리 삶의 공간을 네트워크 기술을 통해 연결시킴으로써 정보가 자유롭게 쌍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소통과 정보공유가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물리적 장벽을 넘어 사회경제적, 정치적 장벽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게 된다. 오늘날 경제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인터넷 무관세조치와 교역시장의 개방을 통해 이러한 변화가 꾸준히 진전되고 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며 전제적인 정치체제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다양한 제한조치가 존재하고 있지만, 최근 중동의 정치변화에서 잘 나타나듯이 인터넷은 그러한 갖가지 검열과 차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민주적 변혁의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구현해 가고 있는 인터넷에서도 상업화 초기부터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우려와 경계는 그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지적재산권의 보호제도는 창작물의 복제와 유통을 엄격히 규제하는 것인데 컨텐츠의 디지털화와 디지털 컨텐츠의 네트워크를 통한 유통을 통해 이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규제를 회피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야 불법적인 복제와 유통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되는데 컨텐츠를 디지털화해서 인터넷을 통해 유통하는 데에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전통적인 규제수단은 속수무책이 된 것이다.
미국이 클린턴 행정부당시 인터넷을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라고 명명하며 국가적 차원에서 보급을 추진할 때부터 인터넷에서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최우선순위 숙제였으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1998년 디지털저작권법(DMCA, Digital Millenium Copyright Act)에서 “공지에 따른 제거”(Notice & Takedown)라는 처리절차 규칙으로 제시되었다. 이 해결책의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정보의 바다에서 어디에 어떤 불법적인 저작권 침해물이 있는지 가려내는 방법도 없고, 있다해도 효과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려내려는 작업자체가 일종의 검열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사전적인 규제는 포기하고 사후적인 규제를 선택하되 그 절차 및 절차에 따르는 권리, 의무를 엄격하게 규정해서 관리하자는 것이다.
“공지에 따른 제거” 원칙에 따르면 먼저 저작물(디지털 컨텐츠)에 대한 권리를 보유한 자가 인터넷에서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한 컨텐츠를 발견하면 일정한 요건에 따라 그러한 컨텐츠가 올려져 있는 서비스나 사이트, 서버에 관련된 중개자(Intermediary Service Provider)에게 알려 해당 컨텐츠를 제거할 것을 요청하도록 하고, 관련 중개자가 이에 따르면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않도록 면책권을 부여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컨텐츠 게시자가 저작권리자의 주장에 맞서서 자신의 컨텐츠가 적법한 것이라고 주장할 경우 중개자와 권리자는 일정한 절차에 따라 해당 컨텐츠를 유지하되 권리자는 소송에 들어가게 된다.
이같은 DMCA의 “공지에 따른 제거”원칙은 법원이 해당 컨텐츠의 불법성을 판정하고, 해당 컨텐츠의 제거를 명할 때까지 걸리는 긴 시간동안 그대로 인터넷을 통해 컨텐츠가 유통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권리자들에게 보다 신속한 제거수단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원칙은 인터넷 중개자들에게도 안정적인 사업환경을 보장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만약 이들이 자신이 관리하는 서버나 사이트, 게시판에 불법적인 컨텐츠가 올라왔을 경우 이에 대한 법적 책임(방조책임)을 져야 한다면 평소에 이용자가 유통시키는 표현이나 컨텐츠를 늘 점검해서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고,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지에 따른 제거”원칙은 저작권리자와 인터넷서비스 중개자를 공존하게 하는 가장 현명한 원칙이 되었고 이러한 점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는 온라인 저작권보호 제도의 가장 공통적인 원칙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저작권보호원칙이 수립된 이후에도 인터넷의 개방성, 인터넷은 국경을 초월하지만 재판관할권은 국가단위로 한정된다는 문제, 네트워크의 분산기술에 따른 규제적용의 비효율성의 문제와 같은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여전히 인터넷에서의 지적재산권보호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들을 안고 있다. 최근 미국 상하원에서 인터넷에서의 저작권 규제의 새로운 틀로서 제기한 PROTECT IP Act(PIPA)와 The Stop Online Piracy Act(SOPA) 두 개의 법안은 이같은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의 새로운 제안인 셈인데 이들 법안이 제시한 규제의 틀과 철학은 결국 인터넷의 안정성과 혁신성, 정보유통의 자유라는 원리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것이라는 강력한 반론에 부딪쳐 현재로서는 교착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미국의회가 인터넷에서의 저작권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 앞서 기술한 “공지에 따른 제거”원리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본 것은 근본적으로 재판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다른 나라에 있는 인터넷서비스 중개자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제재수단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처럼 미국밖에 존재하는 서버나 사이트를 통하여 저작물이 불법적으로 유통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저작물이 있는 위치에 관한 경로정보를 미국의 검색서비스가 알려주고, 심지어 그러한 저작물의 불법적인 유통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사업자에 대해서 미국의 금융기관이 대금결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미국의 광고업체들도 광고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SOPA 법안의 제안자들은 단순히 정보의 중개자 뿐만 금전을 수수하는데 관계하는 중개자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제재수단을 마련하였다.
재판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미국 밖에서 운영되는 서버나 사이트에 대해서 미국이 어떠한 법집행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 두가지 법안들은 공통적으로 일종의 사이버제재수단을 제안하고 있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모든 소통행위는 소통상대자의 고유주소가 있을 때 가능한데 이 고유주소를 인터넷에서 없애버리면 문제의 불법 컨텐츠에 접근이 어려워진다. 우리가 쉽게 인지하는 인터넷에서의 주소는 도메인이름(domainname)인데 이 도메인이름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계층적 주소할당체계(Domain Name System)에 의해서 유지 관리되고 있으며, 피라밋 계층구조의 최정점인 루트서버에 대한 궁극적인 관리권한은 미국 상무부에 있다. 이들 법안은 이러한 세계 인터넷가버넌스 구조를 배경으로 주소할당체계에 속하는 사업자들(일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최상위도메인등록업체들이 미국업체들이다)에게 법원의 명령으로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으로 간주되는 해외소재 사이트의 인터넷주소(도메인이름)를 인터넷에서 사라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이버제재수단 외에도 SOPA에서는 이들 문제사이트에 대한 다양한 제재수단들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이한 것은 저작권리자가 단지 특정 사이트가 “권리침해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라고 “충분히 믿을 만한”("good faith belief") 몇가지 사실들만을 적시하여 고지하는 것만으로 해당 사이트에 관계하는 금융결제기관들이 7일 이내에 대금결제를 중단하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법원의 판결만 있으면 해당 사이트에 광고를 게재하는 사업자가 광고를 중단하게 할 수 있으며, 행정명령에 의해 이러한 사이트에 대한 링크를 미국의 검색서비스사업자의 검색결과에서 제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 나아가 SOPA에서는 인터넷 중개사업자들이 권리자측에서의 요구가 없더라도 자발적으로 알아서 이러한 문제 사이트들을 찾아내어 관련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에 중개사업자들이 법적인 책임을 면하도록 하였다. 또한 처음으로 저작컨텐츠를 불법적으로 스트리밍으로 제공하는 경우에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중벌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PIPA와 SOPA의 이러한 다양한 새로운 제안에 대하여, 이러한 제재수단들이 근본적으로 인터넷의 정보유통의 원리와 표현의 자유, 인터넷의 안전과 안정에 커다란 위험을 초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향후 서비스의 혁신까지도 가로막을 수 있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이들 법안은 인터넷서비스사업자와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이러한 비판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의 하나는 이들 법안이 제시하고 있는 다양한 제재수단들이 모두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 요구하는 것으로서 당사자의 항변을 들을 수 있는 절차를 배제하는 일방적인 절차 – 권리자에게 치우친 일방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이것은 설령 인터넷에 게시된 컨텐츠가 불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당사자의 항변을 듣는 절차를 보장하고 법원에서 불법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는 어떠한 제재조치를 취하는 것도 위헌으로 보는 미국 수정헌법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들 새로운 제재수단의 대상은 정작 문제가 되는 컨텐츠가 게시된 사이트나 서버의 관리운영주체가 아니라 그러한 관리운영주체와 거래관계에 있는 제3자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사실 문제의 컨텐츠를 제공하는 쪽이 미국의 재판관할권 밖에 있기 때문에 불가피했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일방적인 조치는 결국 이제까지 전제적 독재국가들이 써오던 일방적 차단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한 문제사이트에 대한 링크를 검색서비스업체가 차단하도록 하는 제재조치에 대해서 인터넷의 초창기 개발선구자인 빈 서프(Vint Cerf)는 “웹에 대한 사상유례없는 검열에 전세계가 경쟁적으로 나서게 하는(arms race) 끔찍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따끔한 지적을 서슴치 않았다. 인터넷주소인 도메인이름을 제거하도록 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인터넷주소체계관련 기술표준을 마련해온 전문가들은 일제히 이러한 조치는 현재 인터넷주소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인터넷주소체계 안전시스템”(DNSSEC)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으로서 결국 인터넷의 유일무이한 주소체계를 유지해온 신뢰의 권위체계를 붕괴시키고 복수의 대체루트서버를 등장하게 하여 결국 인터넷세계의 안전과 안정이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터넷주소체계를 유지하는 시스템들은 네트워크의 안전을 위협하는 해커들이 취하는 인터넷주소에 대한 왜곡행위와 법원의 특정도메인이름 제거명령을 구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근본적으로 네트워크는 소통(communication)을 위한 것이고 소통은 차단(block)을 거부한다. 따라서 아무리 권리의 침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차단을 본질로 하고 있다면 네트워크에서는 결국 소통을 제한하는 것이 되고 만다. 소통을 막지 않으면서 권리를 실현하는 방법은 소통을 통한 것일 수 밖에 없다. 권리실현의 새로운 모델추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 월간 <신문과 방송>(http://http://mkjr.tistory.com/)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2012-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