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액트온표현의자유

표현의 자유,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By 2011/06/07 10월 25th, 2016 No Comments
 
지금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 표현의 자유가 도마에 올랐다. 현지 시각으로 3일 10시, 프랭크 라뤼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이 한국 보고서를 공식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에는 특별보고관이 지난해 방한하여 한국 표현의 자유 실태를 조사한 결과가 담겨 있는데, 결론은 이렇다. "대한민국에서의 표현의 자유 영역은 최근 몇 년 간, 특히 2008년의 촛불 시위 이후로 줄어들고 있다". 참으로 명쾌하면서도 착잡한 말이다. PD수첩, 박원순, 선거법, 촛불시위, 용산사태, 국가보안법, 불온서적, 교사 시국선언, KBS와 YTN, 미디어법,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가 거론한 이 사건들을 일별만 하더라도 2008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농락당해 왔는지 명약관화할 수 밖에 없다. 
* 보고서(NGO 번역본) 보기 : http://act.jinbo.net/drupal/node/6393
 
특별보고관의 특별한 관심은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쏟아졌다. 우선 한국 보고서에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별보고관은 미네르바 구속기소,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구속기소, 최병성 목사 쓰레기시멘트 게시물 삭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들며 대한민국 인터넷 표현의 자유 실태가 걱정스러운 수준이라고 판단하였다. 먼저, 특별보고관은 어떤 표현이 ‘허위’라는 이유로 처벌받는 데 반대하며 헌법재판소의 ‘허위의 통신’ 위헌 결정을 환영하였다. 위헌 결정이 나자마자 재빨리 대체 입법 방침을 밝힌 법무부와 검찰은 물론, 똑같은 내용으로 법안을 4개나 발의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귀기울여 들어야 할 얘기다. 
 
또한 특별보고관은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물론이고 포털 등 인터넷 중개업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온라인 콘텐츠 규제에 깊은 우려를 드러내었다. 특별보고관은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 콘텐츠를 규제할 수 있도록 한 법률상 ‘불법정보’의 유형이 모호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부에 비판적인 정보를 삭제하는 사실상의 사후 검열 기구로서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권한과 기능을 독립적 자율규제기구로 이양할 것을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환영하며, 특별보고관 역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기능을 독립 기구에 이양할 것을 권고하였다. 한국 정부는 이와 같은 권고를 반드시 이행하는 것은 물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트위터 계정 @2MB18noma에 대하여 최근 내린 접속차단 결정 역시 즉각 철회토록 해야 할 것이다. 정말 나라망신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특별보고관은 포털 등 인터넷 사업자들이 임시조치제도를 남용하지 않도록 관련 법률을 손볼 것을 권고하였고, 인터넷 실명제 대신 다른 신원확인수단을 모색할 것 역시 권고하였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면서 악플이 줄기는 커녕 유엔에서 개선 권고를 받는 상황이 되다니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쏟아지는 관심
 
사실 이번 한국보고서는 특별보고관이 발표하는 본보고서의 ‘부록’이다. 특별보고관은 올해의 연례보고서를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할당하였다(보고서 원문은 http://ap.ohchr.org/documents/dpage_e.aspx?m=85에서 볼 수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이렇게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문제에 집중해서 보고서를 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그만큼 표현의 자유에서 인터넷 매체가 가진 비중이 커진 것이다. 인터넷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무엇보다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 민주화 시위에서 인터넷의 역할이 여러 사람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도 구체화되고 있다. 콘텐츠에 대한 자의적인 차단이나 필터링, 정당한 표현의 불법화, 인터넷 사업자와 같은 중개인에 법적 책임 부과, 지적재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인한 이용해지, 사이버 공격, 부실한 프라이버시 보호 등이 핵심적인 문제이다. 정당한 표현을 제재하기 위하여 형사법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축 효과’를 야기할 뿐 아니라 구금 등 당사자에 대한 인권 침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다. 
 
선거시기, 사회적 격동기 등 주요한 정치적 순간에 이용자들이 정보에 접근하거나 전달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방해하는 일이 세계 각국에서 곧잘 발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별보고관은 기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 차단이나 필터링이 투명하고도 엄격한 조건 하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또 명예훼손이나 국가안보 보호라는 이유로, 사실은 정부나 권력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콘텐츠를 검열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특히 특별보고관은 명예훼손을 형사벌화해서 안되며 평화적인 의견 제시가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정부정책에 대한 토론이나 정치 논쟁, 선거 캠페인, 소수 종교나 사상에 대한 의견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지적은 조경감 사건 등 경찰이나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규제해온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선거시기에 정당과 정치인 비판을 금지하는 이상한 선거법으로 많은 네티즌들이 형사처벌을 받으면서 정치적 발언의 입지가 상당히 축소되어 오지 않았던가.
 
최근에는 인터넷 사업자와 같은 중개인의 역할이 커지면서 그에 대한 통제를 통해 국가와 사적 권력의 입맛대로 인터넷 콘텐츠가 검열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특별보고관은 중개인이 콘텐츠에 개입할 때에는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조치는 사법부의 개입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고, 조치에 대해 이용자에게 투명하게 알리는 한편, 조치를 취하기 전에 이용자의 의견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사후 이의제기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지적재산권 침해와 표현의 자유 문제를 결부시킨 것이다. 특별보고관은 이용자들이 지적재산권법을 위반 했을 때 인터넷 접속을 차단시키는 제도들에 대해 경악했다. 최근 지적재산권 강화추세와 더불어 삼진아웃제, 즉 세번 위반했을 경우 인터넷 이용해지 법안을 도입한 몇몇 나라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해당된다. 특별보고관은 지적재산권 관련 법으로 인터넷 이용자들의 이용권한을 박탈하는 제도를 폐지하거나 수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특별보고관은 인권기구나 반체제 인사들이 DDos 공격의 목표가 되는 현상도 걱정스럽게 보았다. 또한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를 이용하여 인권운동가나 반체제 인사들을 사찰하는 것 또한 문제로 보았다. 무엇보다 익명 토론을 제약하는 것은 인터넷 이용자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고 인터넷상에서 정보와 생각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는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 없이 자의적으로 인터넷 이용자의 신원을 제공받는 용도로 남용되고 있으며 2010년에만 700만 건 넘는 정보 제공이 이루어졌다. 
 
한국 정부는 특별보고관의 권고를 이행해야
 
이처럼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조건들은 다양하다. 특별보고관의 권고 또한 그만큼 다방면에 걸쳐져 있다. 지적된 문제 대부분에 한국이 해당된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이다. 인터넷 접속률이 좀 높다는 이유로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화자찬해 왔던 일이 부끄럽다. 
 
우리는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들에 길들여져 있었다. 진정한 인터넷 강국은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영광이 아닐까. 인터넷 실명제처럼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제도라도 그 인권침해성이 명백해진 이상,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권고들에 대하여 이행할 책임이 있다. 부디 화답하길 바란다. 이것이 인권의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책임을 회피하려 하면 할수록 국제 사회에서 인터넷 표현의 자유 침해 국가라는 오명은 더욱 깊어져갈 것이다.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이 글은 2011.6.5일자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1-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