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경찰-국세청 보유 43억건 중 9억건 폐기기한 넘은 것”이라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개인정보 오남용과 유출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보도가 있을 때마다 매번 충격적이다. 그러나 언론 보도가 늘 사건을 뒤쫓기에만 바쁘다는 점은 무척 아쉽다. 문제가 불거질 때만 그 충격의 강도를 감안한 의례적인 보도가 이루어질 뿐 문제의 해법에는 관심이 없으니 선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나 현재 국회에서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한 주요 법안이 두 개나 논의되고 있음에도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문제의식의 일관성도 없어 보인다.
현재 국회는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전자주민증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 법들은 향후 이 나라의 개인정보보호 관련 제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두 개 법이 만들어지면 일어날 일들을 예로 들어 보겠다.
행정안전부는 이동통신사를 비롯해 민간 일반에 전자주민증을 도입할 계획이다. 현행 법률 어디서도 휴대전화 실명 개통을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전자주민증이 도입되면, 앞으로 국민들은 휴대전화를 개통할 때마다 ‘삑’하고 이동통신사의 리더기에 전자주민증을 확인받아야 할 것이다. 그 리더기는 중앙정부에 연동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전자주민증이 통째로 위변조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하여서는 현재 ARS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위변조 확인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이 전자주민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을 해주고 그 질의응답이 이루어진 사실을 기록할 것이다. 즉 언제, 누가, 어디서, 휴대전화를 개통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관리하게 된다는 말이다. 전자주민증이 도입되면 이동통신사 뿐 아니라, 앞으로 리더기를 도입하는 어느 민간인이나 이런 정보를 중앙정부와 주고받게 된다.
정보인권단체는 중앙정부에 전자주민증이 연결되는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중앙정부에 집적된 이 정보가 여러 정부기관 간에 자유롭게 이용되면서 거대전자감시정부가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심증 많은 이의 호들갑처럼 보이는가? 어떠한 현행 법률도 공공기관 간에, 특히 국가안보와 범죄수사 관련 부처들에 개인정보가 이용되거나 제공되는 실태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 특히 행정안전부가 지금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안은 재앙 수준이다. 가장 중요한 직책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상임위원이며 위원장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였다. 15인의 위원 중 다수가 공무원이나 여당과 정부에서 임명한 자들로 구성된다. 이러한 인적 구성으로 향후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을 제대로 견제하거나 감독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되려 허울 좋은 정당성을 부여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이 법안들의 내용과 진행상황에 관한 기사를 언론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간간히 이루어지는 보도들은, 관련 업계에서 수지타산을 따지고 주가 등락을 셈하는 내용들 뿐이다. 답답한 노릇이다.
언론이 매번 똑같은 개인정보 유출 관련된 기사를 쏟아내는 와중에 유일한 신규성은 그 유출의 규모 정도이다. 자기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해도 정작 국민들은 둔감해져 간다는 말이다. 이제는 미래에 발생할 일에도 관심을 둘 때이다. 그 미래가 암울할 때 경고음을 울리는 것 또한 언론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2011년 2월 23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1-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