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주민등록증 도입에 관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의견서
행정안전부는 지난 2010년 9월 20일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주민등록법 일부개정안(의안번호 1809418)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 개정안이 그 모호성과 예측불가능성으로 인해 국민의 인권과 안전, 국가와 민간의 재정에 불합리한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법안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힙니다.
1. 이 법안은 개인정보처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목적 명확화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1.1. 개인정보 보호에 있어 가장 최소한이자 기본적인 원칙들을 담고 있는 OECD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개인정보의 국제유통에 관한 가이드라인(이하 OECD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에서는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목적명확화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는 그 목적이 명확해야 하며 이용에 있어서도 수집 목적과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나라에서도 현재 본회의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안 제3조 제1항에서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을 명확하게 하여야 하고 그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적법하고 정당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안 제3조 2항에서는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적합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여야 하며, 그 목적 외의 용도로 활용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행정안전부가 제출한 법안을 여러 의원들의 법안과 절충하여 만들어진 안입니다. 그러나 같은 행정안전부에서 제출된 현재의 주민등록법 개정안은 어떤 조항에서도 주민등록증을 전자화하는 목적을 표현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공청회 등을 통해 위변조 방지가 전자주민등록증의 주된 도입 이유라고 밝히고 있을 뿐입니다.
1.2. 그러나 주민등록증의 전자화가 위변조 방지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도 불명확합니다. 이 개정안 제24조 제2항 제12호에서는 주민등록 수록 정보로 ‘혈액형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중 주민의 수록신청이 있는 것’이라는 포괄적 규정을 신설하였습니다. 이는 전자주민등록증을 단순히 위변조 방지 이외에도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불필요한 조항입니다.
이에 많은 인권단체들은 전자주민등록증이 행정안전부의 발표와는 달리 실제로는 민간 신용카드와 결합되는 등 다목적 카드로 활용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2. 이 법안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핵심인 정보주체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2.1. OECD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은 "개인데이터와 관련된 개발, 실시, 정책에 대하여는 일반적인 공개정책을 취하여야 한다. 개인데이터의 존재, 성질 및 그 주요 이용 목적과 함께 데이터관리자의 식별, 주소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수단은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여 공개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나라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안 제3조 제5항에서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 처리방침 등 개인정보의 처리에 관한 사항을 공개하여야 하며, 열람청구권 등 정보주체의 권리를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4조 제1호에서는 "개인정보의 처리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정보주체의 권리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민등록법 개정안 제24조 제4항에서는 "제2항 및 제3항에 따라 주민등록증에 수록되거나 표시되는 정보는 전자적으로 수록할 수 있다. 이 경우 전자적 수록의 방법, 전자적으로 수록된 정보의 타인에 대한 제공 또는 열람 방법, 보안조치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하여 이후 이 정보가 어떤 형태로 보관되거나 처리, 사용될지에 관한 모든 사항을 포괄적으로 하위 법령에 위임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개의 원칙에 위반되며 정보주체의 알 권리에 대한 침해입니다. 더 나아가 정보주체로서의 국민들을 대신하여 국가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해 동의권을 행사해야 할 국회의원들의 권한을 무시하고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개인정보의 처리 방식을 결정하겠다는 월권적 발상이기고 합니다.
2.2. 이같은 비판에 대해 행정안전부에서는 판독기를 통해 읽은 정보를 저장할 수 없도록 규정한 수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정안에도 판독기 자체가 이렇게 제작되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며 오히려 수집 저장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이 신설되었습니다. 문제를 사전예방할 국가의 의무에는 소홀한 반면 처벌을 능사로 여기는 것입니다.
3. 전자주민등록증의 사회적 비용이 5천억에 달합니다.
공청회 등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전자주민증 도입에 소요되는 비용은 행정안전부 추산으로도 4천8백억에 달합니다. 그 중 2천9백억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4백억은 산업계, 1천5백억은 일반 국민에게 전가됩니다. 과연 주민등록증 위변조로 인한 그간의 사회적 비용이 5천억에 달했던 것인지, 주민등록증 위변조 방지만을 위해 이 정도의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입니다.
또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부담 2천9백억 중에서도 정부의 부담은 1천2백억 내외이며 나머지 1천7백억은 지방자치단체들의 부담으로 전가됩니다. 과연 현재의 재정적자 상황에서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들에게 이같은 비용 부담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끝>
2011-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