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다운로드를 하니 인기 영화배우와 가수, 무림고수가 나오는 만화, 영화가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의 양심도 사라집니다"라는 공익(?) 광고가 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와 공익광고협의회가 제작한 광고이다. 저작권자의 ‘사익’을 보호하기 위한 광고가 ‘공익’ 광고로 포장되어 나오고, 음반협회나 영화협회가 아니라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제작한 것을 보면, 이미 ‘(권리자의 허락없는) 다운로드는 불법’이라는 고정 관념은 상당히 보편화된 듯 하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매우 다른 저작권자들의 ‘이데올로기’ 유포에 불과하다.
우선 어떤 저작물을 업로드하는 것과 다운로드하는 것은 법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저작물을 게시판, 웹하드 등에 업로드하는 것은 ‘공중의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저작물등을 이용에 제공하는 것’이며, 이를 전송이라고 한다. 반면, 다운로드는 자신의 컴퓨터에 ‘복제’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정부의 저작권 규제는 인터넷에서 저작권자의 허락이 없는 전송, 즉 전송권 침해를 막는 것에 중점을 두어왔다. 포털이나 웹하드, P2P 업체를 단속하는 것도 그렇고, 이용자에 대한 고소, 고발도 업로드 행위에 대한 것이었다.
불법 다운로드는 없다
저작권자의 허락이 없는 복제 역시 경우에 따라 저작권 침해가 될 수도 있으나, 사적인 다운로드의 경우에는 국내 저작권법에서도 공정이용으로 인정을 하고 있다. 국내 저작권법 제30조는 아래와 같이 소위 ‘사적복제’를 인정하고 있다.
저작권법 제30조(사적이용을 위한 복제)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 다만, 공중의 사용에 제공하기 위하여 설치된 복사기기에 의한 복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예를 들어, 8시에 하는 드라마를 퇴근 후 10시에 보기 위해서 녹화를 해두거나, 두꺼운 교재의 일부를 복사해서 가지고 다니거나, CD에 담긴 음악을 MP3로 변환하여 MP3 플레이어로 듣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자신이 감상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영화를 다운로드 받는 것 역시 ‘사적복제’이다. 이와 같은 사적복제 조항을 둔 것은 비영리적이고 한정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저작권자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고, 개인적 이용을 위해서까지 권리자의 허락을 맡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거래비용이 더욱 커지게 되어 저작물의 이용을 위축시킬 수 있으며, 이용자의 개인적인 이용행위를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법 다운로드’는 없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지난 2008년 논란이 될만한 판결이 나왔다. 2008년 8월 5일, 서울중앙지법은 복제한 파일이 불법 파일인 경우에는 사적복제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2008. 8. 5. 선고 2008카합968 【저작권침해금지등가처분】) 그러나 이 판결은 1심 판결에 불과할 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법에 이를 불법화할만한 명문의 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복제된 저작물의 불법성 여부에 따라 사적복제의 취지가 달라진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아예 ‘불법 다운로드’를 명문화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지난 2010년 2월 19일, 문화관광부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는데, 이 개정안은 ‘저작권을 침해한 복제물임을 알면서 복제하는 경우’ 사적복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제한적이나마 인정되고 있던 공정이용의 영역을 더욱 위축시킨다는 문제와 함께, 과연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즉, 이 조항은 규제할 수 없으므로 실효성이 없거나, 혹은 향후에 개인의 사적 공간까지 감시하겠다는 의도이거나 둘 중 하나인데, 어느 쪽이든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용자의 범죄자화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저작권, 창작의 무덤
정리하자면,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더라도, 저작권자의 허락없는 업로드는 불법이지만, 다운로드는 합법이다. 그러나 이는 업로드를 불법화하는 현행 저작권법이 문제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복제, 배포, 이용을 제한함으로써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상호 소통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2차적인 창작을 저해함으로써 오히려 문화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앞서 ‘업로드’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예컨데 영화 <해운대> 파일을 웹하드에 업로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난 2009년 6월, 딸 아이가 손담비의 ‘미쳤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가, 저작권 침해로 삭제를 요구당한 사례가 큰 이슈가 된 바 있다. 다행히 1심 법원은 이를 공정이용으로 인정했고, 피고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현재 항소한 상태이다. 그러나, 게시물 삭제에 대해 용감하게(?) 소송을 제기한 이 블로거와 달리, 권리자단체의 묻지마 삭제 요구에 울며겨자먹기로 삭제당한 글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황당한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5년에는 KBS의 인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팬 카페에 올려진 동영상이나 사진에 대해 KBS가 삭제 요구를 한 바 있다. 올해 3월부터는 SBS의 방송프로그램 캡쳐화면이 포함된 블로그 포스팅이 블라인드(차단) 처리됨으로써, 인터넷에서 SBS 관련 포스팅이 사라지고 있다. 이용자들의 드라마 팬카페나 블로그 포스팅이 방송 프로그램의 홍보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을 생각하면 방송사들의 이러한 행태는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상호 소통의 권리가 제약된 것이나 다름없다. 온라인 팬카페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친구들과 인기 드라마에 대해 수다를 떠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사회에 공개된 저작물은 시민들간의 문화적인 소통에 매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문화적 소통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할까?
몇 가지 사례들을 제시했지만, 이는 저작권이 ‘남용’되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사실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제 이용자들은 문화의 ‘소비자’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생산자가 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비영리 라디오 방송, 사회 단체들의 뉴스 아카이브 서비스, 재기발랄한 네티즌들의 패러디 동영상, 전문가 뺨치는 문화 비평 블로거들 등. 그러나 이러한 이들이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 때, 일일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맡아야 하거나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이와 같은 비영리적 문화창작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국내 저작권법 제1조는 저작권법의 목적이 ‘문화의 향상 발전’이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현재 저작권은 ‘창작의 무덤’이 되고 있다. (지난 10월 17일에는 이용자가 주체가 되어 인터넷 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인터넷 주인찾기> 모임의 두번째 컨퍼런스가 열렸는데, 제목이 ‘저작권, 창작의 무덤’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http://ournet.kr 을 참고.)
문화적 측면에서 저작권 체제는 생산자/소비자의 이분법적 구도를 형성한다. 소비자는 문화 창작자들이 생산한 저작물을 소비해주는 객체일 뿐이다. 특히, 거대 영화사, 음반사 등의 미디어 기업들은 어떠한 저작물을 생산할지, 유통할지를 통제한다. 예컨데, 시장에서 팔릴 가능성이 없는 문화 생산물을 더이상 유통되기 힘들다. 그들에게 시민들은 자기들의 저작물을 구매해주는 ‘소비자’와 그렇지 않은 ‘해적들’로 구분될 뿐이다. 그러나 저작물의 자유로운 접근과 이용이 허용되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다르다. 소비자(수용자)는 더이상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지 않으며, 기존의 창작물은 수용자들의 참여 속에서 또 다른 창작물의 재료로 이용된다. 비록 시장성이 없는 저작물일지라도 소수의 누군가에게는 의미있는 저작물일 수 있으며, 더 대중적인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다. 그것을 통제하는 것은 음반사와 같은 중간 매개자가 아니라, 수용자’들’에 의해서이다.
대안적인 수익구조
물론 저작권 체제는 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생산 시스템과 함께 존재한다. 즉, 저작권 체제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문화산업의 노동자와 전업 창작자들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저작권 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는 해답이 될 수 없으며, (전업) 창작자들을 위한 대안적인 수익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하나의 답이 있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사업 모델이 이미 실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음원은 자유롭게 배포하고 이를 통해 높아진 인지도를 바탕으로 공연을 통해 수입을 얻는 것은 전통적인 수익구조의 하나이다. 혹은 저작물의 자유로운 이용과 다양한 방식의 자발적인 후원구조를 연결시키는 사업 모델도 등장하고 있다. 전업 창작자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공적지원 역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전반의 복지 인프라의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 또한, 출판, 음반, 영화 등 각 매체의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공공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안적 수익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현행 저작권 체제가 지나치게 (사실상 거대 문화자본이 주류인) 권리자의 배타적 권리에 치우쳐있기 때문에, 이용자의 권리와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저작권 체제의 개혁이 필요하다. 저작물의 비영리적 이용에 대한 허용, 저작권 보호기간의 단축 등이 그러한 개혁의 주요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해적이다
지난 10월 17일, 스웨덴 해적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인 아멜리아가 한국을 방문했다. (방문 행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pirateparty.kr 참고) 스웨덴 해적당은 2006년 1월 1일 설립되어, 2009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7.13%를 득표하여 유럽의회 의석 두 자리를 차지한 바 있다. 스웨덴 해적당 설립 이후 전 세계에 해적당 바람이 불고 이쓴데, 현재 16개국에서 정당으로 모습을 갖췄으며, 32개국에서 준비 모임이 구성되었거나 논의 중이다. 스웨덴 해적당이 설립된 것은 ‘다운로드’를 불법화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부터인데, 세계 최대의 비트토런트(P2P 방식으로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전송 규약, 혹은 소프트웨어) 검색 사이트인 파이럿베이(The Pirate Bay, http://thepiratebay.org/)가 경찰에 의해 침탈 당하면서 해적당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급증하였다. 스웨덴 젊은층들에게 파일 공유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다. 파일 공유의 불법화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부정하는 것, 그들의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단지 경제적 이기심의 표출이 아니었다. 해적당은 이를 정보에 대한 접근과 자유로운 유통이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것, 정보 민주주의를 무력화하고 전체주의 사회로 가는 과정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들은 ‘해적당’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해적’은 권리자 단체들이 ‘복제를 범죄화’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현행 저작권은 대부분의 시민들을 해적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해적당은 그러한 시민 대다수의 권리를 옹호하는 정당이 아닌가?
* 이 글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0-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