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창작하는 시대, 새로운 저작권 제도를 상상하라
– 생성형 인공지능 고도화할수록 저작권 갈등 심화… 산업 육성이나 법률 해석에 국한되지 않은 문화 생산·유통 방식 변화에 관심 기울여야
– 글 기고 :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2022년 8월, 미국 콜로라도주 박람회 미술전 디지털아트 부문을 수상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인 미드저니(Midjourney)로 만들었다. 아무 설명 없이 그림을 봤다면, 대다수는 어떤 재능 있는 화가가 그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022년 11월 출시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준 챗지피티(ChatGPT)가 생성한 문장 역시 마찬가지다. 글만 보면 사람과 인공지능 중 누가 작성했는지 구분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성능이 고도화할수록 저작권을 둘러싼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내가 그린 만화를 학습한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해 누군가 내 그림체의 만화를 출판하는 것은 정당한가? 내가 출연했던 영화를 학습해 이제 나 대신에 내 스타일을 모방한 가상배우가 캐스팅된다면? 챗지피티를 통해 만든 보고서를 조금 수정해 자신이 쓴 것처럼 제출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인공지능이 훈련하는 데 쓴 데이터 저작권 문제
생성형 인공지능의 기술적 기반이 되는 거대언어모델(LLM)의 훈련을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인터넷상에 공개된 데이터를 수집해 사용하기도 한다. 이 데이터에는 텍스트·이미지·음성·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저작물이 포함되는데, 권리자의 사전 허락을 받지 않고 사용한 의혹으로 저작권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2022년 11월, 마이크로소프트가 깃허브의 오픈소스 코드를 사용해 ‘깃허브 코파일럿’이라는 소스코드 생성 인공지능을 출시한 것에 이용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2023년 1월 미국의 예술가들이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인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데비안트아트(DeviantArt) 등을 상대로 미국 연방법원에 저작권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2023년 2월에는 이미지 판매 업체인 게티이미지(Getty Images) 역시 스테이블 디퓨전 개발사에 소송을 제기했다. 챗지피티 개발사인 오픈에이아이(OpenAI) 역시 소송을 피할 수 없었다. 2023년 7월과 9월 유명 작가들과 미국작가조합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인공지능에 대한 저작권자의 소송이 제기되지 않았지만, 2023년 12월28일 한국신문협회는 네이버가 언론사의 뉴스 콘텐츠를 ‘하이퍼클로바X’ 개발에 사용하면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또 여러 언론사에서 자사 뉴스를 인공지능 훈련 데이터로 쓸 경우 사전에 합의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약관을 두고 있다.
인공지능 개발사들은 인공지능 훈련을 위해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은 저작물 데이터의 유형을 인식하는 것으로, 인간이 그림이나 소설을 향유하는 것과 다르고, 이에 따라 권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인공지능 훈련에 사용되는 방대한 저작물에 대해 일일이 이용 허락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는 인공지능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에 공개한 수많은 지적 노력의 성과를 무상으로 이용하면서 그 이익은 사적으로 전유하는 것이 공정한지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초거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능력이 막대한 자본을 보유한 소수의 빅테크에 집중됐음을 고려하면 말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함께 만든 다양한 스펙트럼 저작물
그러나 저작권 보호의 이익이 반드시 실제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테이블 디퓨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게티이미지가 오히려 누구보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관심 있을 수 있다. 자사가 보유한 방대한 이미지를 활용해 생성형 인공지능을 개발한다면, 더는 창작자에게 비용을 지급하면서 사진 이미지를 사지 않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2023년 할리우드의 작가·배우·감독이 장기간 파업에 돌입했을 때 인공지능 사용 문제도 하나의 의제가 됐는데, 이들의 협상 파트너는 인공지능 개발사가 아닌 영화·텔레비전제작자연합(AMPTP)이었다. 인공지능 훈련에 활용되는 저작물의 저작권 보호 문제가 단지 빅테크와 미디어자본 중 누구 손을 들어줄 것인가의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저작권 제도를 둘러싼 환경 전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또 하나의 저작권 이슈는 인공지능 생성물이 저작권 보호가 필요한 창작물인지, 만일 그렇다면 저작권을 누구에게 부여해야 할지의 문제다. 전세계적으로 인공지능 생성물은 창작물이 아니고 이에 따라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는 듯하다. 저작권법상 창작 주체는 인간으로 국한하기 때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확률적 앵무새’라는 비유는, 인공지능 생성물이 진정한 창작이라기보다는 훈련 과정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률적으로 높은 것을 재구성해서 보여줄 뿐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공지능 생성물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지만, 인간의 창작성이 가미된 부분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다. 인공지능으로 만든 만화인 <여명의 자리야>(Zarya of the Dawn)에 대해 미국 저작권청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글과 이미지의 배치에 대해서는 이를 만든 크리스 카슈타노바의 저작권을 인정했다.
프롬프트를 입력한 이용자가 인공지능 생성물을 바탕으로 약간의 수정을 하는 경우 어디까지 이용자가 창작한 것인지 경계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창작이나 업무를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거의 인공지능에 의해서만 생성된 것부터 일정하게 이용자의 추가 작업을 거친 저작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저작물이 쏟아질 것이다. 수용자 처지에서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부분과 인간이 창작한 부분을 구별하기도 힘들뿐더러, 구분하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진정한’ 창작은 인간만이 가능할지 몰라도, 훨씬 방대한 자료로 훈련받은 인공지능이 인간 창작자에게 많은 영감을 줄 수도 있다.
인공지능 시대, 저작권 의미 달라질까
인공지능과 인간이 협업 혹은 융합하는 시대에 기존 저작권 제도가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인쇄술 발명과 함께 저작권 제도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오히려 복제가 축복해야 할 행위였듯이, 인공지능 등장으로 ‘창작으로 보이는’ 저작물의 생성이 보편화하는 시기에는 또 다른 제도가 필요하다. 현재 생성형 인공지능을 둘러싼 저작권 분쟁에서 단지 저작권법 전문가들의 해석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지식과 문화가 생산·유통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아직 국내에서는 인공지능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의 폭과 깊이가 넓지 않다. 2023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를 발간해, 사업자·저작권자·이용자 입장에서의 고려사항과 국내외 현황을 간단하게 다뤘다. 그러나 인공지능 저작권 논쟁이 단지 인공지능 산업 육성이나 저작권 보호 담론이나 법률적 해석에 한정돼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