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기고글 : 진보네트워크센터 오병일 대표
넷플릭스의 국내 트래픽이 급증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해외 콘텐츠제공자(Content Provider, 이하 CP)들이 막대한 수익은 챙기면서 정당한 망사용료는 내지 않는다는 여론이 높았습니다. 얼핏듣기에는 정말 화가납니다. 그러나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통신사에 매달 요금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속도에 따라 요금은 다르지만, 한번 인터넷에 접속하면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하지요. 이를 ‘접속료’라고 합니다. 이용자나 CP는 접속을 제공하는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 통신3사 등)에만 접속료를 냅니다. 한 국가의 콘텐츠 트래픽이 전 세계 각 국의 망을 통해 흐를 수 있지만, 어떠한 망에 트래픽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그 망에 사용료를 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해외 CP의 콘텐츠에 대한 국내 이용자의 접속이 많아진다면 트래픽이 증가할 것이며, 특히 동영상과 같은 고용량 콘텐츠의 경우 망의 부하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지역의 ISP에 캐시 서버를 설치하는 것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법원은 넷플릭스가 비용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지만, 그것은 캐시서버 ‘연결에 관한 대가’이지 전송에 대한 대가는 아닙니다. 캐시서버의 연결에 대한 대가는 망에 대한 접속료와도 다르며, 통상 사업자간 자율적인 협상에 의해 정해집니다. 넷플릭스와 SKB의 분쟁은 이 협상에서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샅바싸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망의 공공성과 이용자의 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왜 인터넷에서 접속은 유료, 전송은 무료라고 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용어조차 혼용되어 더욱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망 사용료’ 논쟁의 전체적인 맥락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넷플릭스-SK브로드밴드 채무부존재확인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0민사부(재판장 김형석 · 박상인 · 김태진), 2020가합533643
소위 ‘망사용료’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이 논란은 2020년 4월, 넷플릭스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이하 SKB)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SKB는 넷플릭스에 망사용료 지급을 요구한 반면, 넷플릭스는 망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넷플릭스의 국내 트래픽이 급증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해외 콘텐츠 제공자(Content Provider, 이하 CP)들이 막대한 수익은 챙기면서 정당한 망사용료는 내지 않으려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거대 CP들에게 망 이용계약 체결을 의무화하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소위 ‘망 무임승차방지법’을 발의했다. 최근에는 이 논란에 구글이 가세하면서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구글은 이 법안들이 “콘텐츠 기업들에게 이중 부담을 지우는 것을 허용”하고 이러한 추가 비용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업, 그리고 그러한 기업들과 생계를 같이 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에게 불이익을 주게 될 것”이며, 유튜브는 “한국에서의 사업 운영 방식을 변경해야 하는 어려운 결정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비판했고, 국회의원들은 구글이 크리에이터를 앞서워 자사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동시에 국회에서도 법안 논의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확산되고 있다. 과연 넷플릭스와 구글은 정당한 망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럼 SKB는 사용료도 내지 않는 CP에게 왜 계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일까? 차별을 받고 있다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CP들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잠잠할까?
논란의 발단이 된 넷플릭스-SKB의 1심 판결은 2021년 6월에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넷플릭스의 청구를 각하 혹은 기각하였다. 대다수 언론은 법원이 SKB의 편을 들어주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판결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법원의 판결을 들여다보기 전에, 우선 인터넷의 작동 방식과 관련된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의 작동방식과 주요 개념에 대한 이해
개인이든 콘텐츠 제공자(이하 CP)든 인터넷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정한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로부터 접속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유선방송사업자 등 중소 ISP도 있지만, KT, SKB, LGU+ 등 3대 통신사가 ISP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통신사에 매달 요금을 납부하고 있다. 100M인지, 1G인지 속도에 따라 요금은 다르지만, 한번 인터넷에 접속하면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를 ‘접속료’라고 할 수 있다. CP 역시 국내 ISP를 통해 인터넷에 연결되면 전 세계 누구든 국내 CP의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 이용자나 CP는 접속을 제공하는 ISP에만 접속료를 내지만 이용자가 CP의 콘텐츠에 접근할 때에 실제로는 여러 개의 망을 경유하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ISP인 Verizon 가입자 A가 한국의 SKB에 연결된 B라는 CP에 접속할 경우, Verizon과 SKB 사이의 여러 ISP를 거쳐 B의 서버에 접속할 것이다. 그러나 해당 가입자는 Verizon에, B는 SKB에만 접속료를 내면 될 뿐, B의 트래픽이 Verizon의 망을 흐른다고 하더라도 B가 별도의 비용을 Verizon에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의 ISP를 통해 접속해도 전 세계적인 연결이 가능한 것은 ISP들 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 주로 동등한 규모의 ISP끼리 상호 비용 정산 없이 연결되는 것을 직접접속(혹은 피어링, peering)이라 하고, 작은 ISP가 전체 인터넷에 연결되기 위해 큰 ISP에 연결되는 것을 중계접속(혹은 트랜싯, transit)이라고 한다. 이때는 작은 ISP가 큰 ISP에 중계접속 비용(transit fee)을 내게 된다. 망의 규모에 따라 계위(tier)를 구분하는데, 한국에서는 1계위 ISP가 바로 KT, SKB, LGU+이며, 드림라인, 세종텔레콤 등이 2계위, 유선방송사업자들이 3계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통신사들이 1계위(Tier 1 Network)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의 NTT와 홍콩의 PCCW만이 포함되어 있다. KT와 SKB는 세계적으로는 2계위 네트워크이다. 따라서 세계의 모든 지역과 연결되기 위하여 한국의 통신사들은 1계위 네트워크에 비용을 지불하고 중계접속을 해야 한다.
나는 전 세계 이용자와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지만 내가 접속한 ISP 외의 다른 ISP에는 별도의 요금을 내지 않는다. CP 역시 마찬가지다. 한 국가 CP가 발신한 콘텐츠 트래픽이 전 세계 각 국의 망을 통해 흐를 수 있지만, 어떠한 망에 트래픽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트래픽의 발신자(즉, CP)가 그 망에 사용료(망 사용료 혹은 망 이용대가)를 내지는 않는다. 만일 망을 통해 트래픽이 흐른다는 이유로 (접속료가 아닌) 망 사용료를 내게 한다면, 그래서 한 국가의 CP가 전 세계 각국의 통신사에게 사용료를 납부해야만 한다면, 인터넷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접속은 유료, 전송은 무료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용자는 자신에게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KT와 같은 ISP에 접속료를 내고 KT는 더 높은 계위의 ISP에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인터넷 운영 비용의 정산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쨌든 직접 접속을 하지도 않는 이용자나 CP에게 망 사용료를 부담하도록 하는 경우는 없으며, 이러한 의미의 망 사용료를 걷는다면 이는 통행세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해외 CP의 콘텐츠에 대한 국내 이용자의 접속이 많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해외 CP가 연결되어 있는 해외의 ISP로부터 국내 ISP로의 트래픽이 증가할 것이며, 이에 따라 국내 ISP들이 더 높은 계위의 해외 ISP에 내야하는 중계접속 비용이 높아질 것이다. 해외 CP 입장에서도 서버가 해외에 있어서 여러 단계의 망을 거쳐야 한국의 이용자에게 전달된다면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동영상과 같은 고용량 콘텐츠의 경우 망의 부하를 야기할 수 있다. 이 때 지역의 ISP에 캐시 서버를 설치하는 것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콘텐츠 중 한국의 이용자가 많이 사용하는 콘텐츠를 캐시 서버(원래의 서버와 같은 콘텐츠를 저장하고 있는 임시 서버)에 저장하고, KT와 같은 국내 ISP에 직접 연결하는 것이다. 그럼 KT 입장에서는 해외 ISP를 통해 콘텐츠를 가져올 필요가 없으니 중계접속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해외 CP는 한국 이용자와 가까운 곳에 자신의 서버를 두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트래픽이 여러 망을 경유하지 않아도 되므로 망의 효율성 면에서도 좋다. 캐시 서버는 넷플릭스나 구글과 같은 CP가 직접 운영할 수도 있고, 전문 캐시서버(이를 콘텐츠전송네트워크, CDN 이라고 한다)를 임대할 수도 있다. 이때 캐시 서버를 국내 ISP에 접속할 때 소요되는 비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문제가 된다. 이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윈-윈이 되는 해법이지만, 여하간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누군가 (함께) 부담을 해야 한다. 이 비용은 통상적으로는 사업자간 자율적인 협상에 의해 정해지며, 요구가 큰 사업자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넷플릭스와 SKB의 분쟁은 이 협상에서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샅바싸움으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SKB 소송의 판결 내용
넷플릭스와 SKB는 일본 도쿄와 홍콩에서 넷플릭스의 캐시 서버(OCA)를 두고 상호접속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트래픽이 증가하자 SKB는 넷플릭스에 국제망 증설 비용 등에 대한 비용 분담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자 SKB는 2019년 11월에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의 망 이용료 협상에 대한 재정 신청을 하였다. 넷플릭스로 하여금 협상에 성실하게 응하도록 해달라는 취지이다. 이에 2020년 4월, 넷플릭스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SKB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제기되면 방송통신위원회의 재정 절차가 중지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청구 사항은 자사 서비스로 인해 유발되는 트래픽과 관련하여, SKB의 국내 및 국제망을 통한 전송, 이러한 망의 운영, 증설, 또는 이용에 대하여 협상하거나 그 대가를 지급할 채무가 존재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2021년 6월, 1심 판결에서 법원은 협상 의무 부존재 확인청구 부분은 각하, 대가를 지급할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기각하였다. (협상 의무 부존재 확인청구 부분을 각하한 이유는 원고와 피고는 계속 협상 중이고 원고의 궁극적 목적은 대가 지급 채무의 존재 여부이므로 협상 의무 부존재 확인청구는 원고의 지위 불안을 해소하는 유효한 수단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법원은 넷플릭스의 캐시 서버인 OCA가 일본과 홍콩에서 SKB의 전용 회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터넷 망에 대한 연결 및 그 연결 상태의 유지라는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는 것에 대한 대가(‘연결에 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국제선 망에는 원고들(넷플릭스)의 트래픽만이 소통한다는 점에서 원고들은 피고(SKB)로부터 일반적인 CP와는 구별되는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어 “자신의 고객들에게 보다 양질의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전송할 수 있는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본 이유는 ‘망에 대한 연결’을 제공하기 때문이지, 단지 트래픽이 SKB의 망을 통해 흐르기 때문이 아니다. 법원은 이 사안이 ‘전송의 유상성‘에 관한 논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보았다. 즉, 법원은 접속료를 인정한 것이지 전송료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또한, 법원은 넷플릭스가 망 연결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는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단정하지 않았다. 넷플릭스와 SKB는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 대가의 지급 방식, 규모, 기준, 시기 등을 협상하는 과정”에 여전히 있다고 보았으며, 대가의 지급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회선용량 단위의 접속료 명목의 금전 지급만이 아니라 넷플릭스의 캐시 서버(OCA)를 설치하여 SKB의 트래픽을 경감시키거나 각종 공사비용과 설비 업그레이드 비용 등을 상호 분담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앞서 필자가 언급했듯이, 캐시 서버 접속의 비용은 CP와 ISP가 협상하기 나름이라는 점을 법원 역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연결에 관한 대가’가 국내 CP들이 국내 ISP에게 지불하는 접속료와 동등한 것처럼 표현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국내 CP들이 국내 ISP에 연결하는 것은 국내 이용자 뿐만 아니라 전체 인터넷에 대한 연결성을 얻기 위해서지만, 넷플릭스와 같은 해외 CP의 캐시 서버의 경우 국내 이용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전체 인터넷에 대한 연결성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인 넷플릭스가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으로 피고(SKB)를 통해 전세계 각 종단으로 트래픽을 송신하지 않고 있을 뿐이므로” SKB가 전 세계적 연결성이 보장된 접속을 넷플릭스에 제공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넷플릭스의 캐시 서버와 연결됨으로써 SKB 역시 해외 ISP에의 중계접속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데, 이는 국내 ISP와의 연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측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황에 따라 CP가 아니라 망 사업자가 대가를 지급하며 캐시 서버의 설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콘텐츠에 대한 양질의 제공이 ISP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연결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CP에게만 있는 것처럼 법원이 인식한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의 캐시 서버가 SKB에 연결된 것은 ‘접속’이 아니라 ‘전송’이고 따라서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넷플릭스 측의 주장에도 동의하기는 힘들다. 넷플릭스가 미국에 위치한 원래의 서버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나 캐시 서버를 SKB 네트워크에 직접 연결하여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모두 ‘전송’으로서 마찬가지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캐시 서버를 운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이 ‘연결에 대한 대가’ 의무를 인정한 것은 타당하다. 다만, 국내 CP의 접속료와 캐시 서버의 ‘연결에 대한 대가’(이를 상호접속 비용, peering fee 라고도 할 수 있다)의 차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발전적 논의를 위한 단상
법원의 판결에 비추어볼 때, SKB 등 통신사나 국회의원들이 여론 몰이를 하는 것처럼 넷플릭스가 망에 ‘무임승차’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표현이다. 캐시 서버의 연결은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방식이며 이에 수반되는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는 결국 협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사안을 해외 CP에 대한 국내 CP의 역차별로 보는 시각도 적절하지 않다. 국내 CP가 전 세계적 연결성을 얻기 위해 ISP에 접속하는 것과 해외 CP의 캐시 서버가 국내 ISP와 상호 접속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부 언론은 국내 CP는 수백억대의 망사용료를 내는데 해외 CP는 내지 않는다는 식의 관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국내 CP들은 오히려 ‘망 무임승차방지법’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법안이 오히려 (국내외를 막론하고) CP에 대한 망 사업자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구글이 법안에 반대하면서 창작자의 이익을 내세우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구글은 최근 부당한 인앱결제 정책 시행으로 창작자 집단인 대한출판문화협회로부터 소송을 당하지 않았나.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는 구글이 일정하게 망 비용을 부담한다고 이를 창작자에게 전가한다는 것도 그다지 현실적인 것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사업 운영 방식을 변경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언급은 사실상의 협박으로 느껴진다. 창작자에게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는 구글의 협박이나 CP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개인 이용자가 망 비용을 더 부담할 수 있다는 통신사의 협박이나 도긴개긴이다. 이들이 이용자의 이익 저해 행위를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독점이 문제다.
건설적인 토론을 위해서는 관련 개념부터 합의될 필요가 있다. 망사용료를 둘러싼 여러 논자들(전문가, 이해관계자, 언론, 국회의원 등)이 명확한 구분없이 접속료, 망 사용료(망 이용료), 망 이용대가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언론 기사는 국내 통신사를 통해 흐르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트래픽 점유율이 높지만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내 CP 처럼 접속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인지, 국내 통신사와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까지 의미하는지, 아니면 직접 연결되어 있으면 캐시 서버일지라도 일정한 비용을 CP가 지불해야 한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통신사는 의도적으로 국내 CP가 내는 접속료와 해외 CP의 캐시서버의 상호 접속 비용을 구분하여 얘기하지 않고 ‘망 사용료’ 혹은 ‘망 이용대가’라는 말로 뭉뚱그린다. 해외 CP는 캐시 서버가 국내 ISP와 연결되어 있고 상호접속 비용에 대해서는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고, 전송에 대해 망 사용료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통행세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만을 하고 있다. 법원 역시 ‘망 연결에 대한 대가’임을 명확히 하면서도 판결문 곳곳에 망 이용대가, 망 사용료 개념을 혼용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는 현재의 인터넷 구조에서 단지 망에 어떤 CP의 트래픽이 흐른다는 이유로 전송료를 내도록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내 CP가 전 세계 인터넷에 연결되기 위해 내는 접속료와 캐시 서버 연결을 위한 상호접속 비용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망 사용료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현재 발의되어있는 법안의 표현 역시 명확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윤영찬 의원이 대표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안번호 17317)의 경우 “정보통신망의 이용 또는 제공 등에 관하여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 또는 제한을 부당하게 부과하는 행위”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서 망의 이용 또는 제공이 접속료를 의미하는 것인지, 상호접속 비용을 포함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도 모호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 이해관계자들의 불안한 상상력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SKB 분쟁은 결국 사업자간 협상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다만 공공정책적 차원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업자간에는 협상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배적 사업자의 횡포를 방지하고 공정한 협상을 위한 조건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마도 SKB는 넷플릭스와 구글에 비해 우리가 협상력이 부족하니 빅테크의 망사용료 의무화 법안을 통해 협상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들이 국내 CP, 특히 중소 CP에 대해서는 협상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부당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이해관계자의 주장이 얼마나 정당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좀 더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협상이 비밀로 취급되어 서로의 주장밖에 남는게 없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법을 제정한다면 이러한 투명성을 확대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할 필요가 있다.
유일하게 한국만이 시행하고 있는 정책인 종량제 방식의 상호접속 비용 정산 방식이 인터넷 생태계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어떻게 보완되어야 하는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국제적인 상호접속 비용 정산 방식과도 연계되어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차원의 정책과도 연계해서 고민해야 한다.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넷플릭스-SKB의 분쟁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공정하고 공공적인 인터넷 망의 연결과 비용 정산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중심에 삼아야 할 가치는 이용자가 부당한 제한 없이 자유롭게, 안정적으로, 저렴하게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