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3/5) 시민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보기관 감청통제에 대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정부안 원안 거의 그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총선과 코로나 사태로 국회가 혼란한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정보기관의 감청을 올바로 통제해야 한다는 국민의 오래된 염원을 외면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깊이 실망하고 규탄한다.
2. 우리 시민사회는 2005년 안기부X파일 사태 이후로 정보기관 감청에 대해 올바른 통제제도를 마련할 것을 줄곧 촉구해 왔다. 이번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으로 인터넷 회선감청(패킷감청) 제도에 대해 다소간의 변화가 오게 된 것은 사실이다. 수사기관이 인터넷 회선을 감청하여 취득한 자료에 대해서 집행 종료 후 범죄수사나 소추 등에 필요한 자료를 선별하여 법원으로부터 보관 승인을 받고 승인 받지 못한 자료는 폐기하도록 하였다. 이는 인터넷 패킷감청에 대한 헌법소원을 비롯해 감청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오래 노력한 결과이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국민을 놀라게 한 정보기관의 여러 도감청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정부에서도 정보기관 감청을 제대로 통제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번 정부안과 법사위대안 역시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 우리는 매우 유감스럽다.
3. 정부안과 법사위대안은 인터넷 회선감청(패킷감청) 헌법불합치 후속 입법임에도 패킷감청 요건 그 자체에 대하여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또 감청 통제 제도를 신설하면서도 정보수사기관의 감청 일반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인터넷회선 감청으로만 그 대상을 제한하고 감청 자료를 법원이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 자체적으로 보관하도록 하였다. 이는 정보수사기관의 전기통신감청 집행 일반에 대해 객관적으로 통제하는 절차가 부재하다고 지적하며 법원이 감청 집행을 통제하는 해외 사례 참조를 권고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어긋난 것이다.
특히 정부안과 법사위대안은 헌법재판소가 감청 남용조항으로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정보기관의 일상적인 동향 파악이나 정보 수집”을 우려한 제12조를 전혀 개선하지 않았을 뿐더러 한술더떠 감청 자료를 범죄수사를 위해 사용할 때 뿐 아니라 장래 미지의 “사용을 위하여” 보관하도록 허용하였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지적사항을 거슬러 오히려 감청 남용폭을 확대한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안과 법사위대안은 헌법재판소가 소개한 독일, 일본의 경우처럼 감청 당사자가 감청 자료를 열람하고 감청의 적법성에 대한 문제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 당사자가 불복할 수 없는 제도는 감청 통제의 형식만을 빌어온 것일 뿐, 헌법재판소가 요구한 대로 감청 집행에 대한 객관적인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 심지어 정부안과 법사위대안은 정보수사기관이 신설된 조항들을 위반하였을 경우에도 아무런 처벌 조항을 두지 않았다.
4. 이번에 여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운영하는 방식에도 큰 문제가 있었다. 여당 간사 송기헌 의원은 자신이 발의한 정부안 중심으로만 안건을 병합하고 정보기관의 올바른 감청통제를 위하여 추혜선 의원이 긴급 발의한 대안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꼼수를 썼다. 정보기관 감청을 올바르게 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선 기회마저 봉쇄해 버린 것이다.
5.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기지국수사, 실시간위치추적, 그리고 인터넷 패킷감청 등 국민이 목도해온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의 계속된 통신비밀 침해에 대하여 2018년 헌법재판소는 연달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시민사회는 이번 기회에 통신사실확인자료 제도 전반은 물론 정보기관 감청이 제대로 통제될 수 있기를 염원하였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부터 이루어진 통신비밀보호법 후속 개정에 있어 정부와 여당은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의 편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축소하거나 심지어 위배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에 정부안을 일방적으로 지지한 국회의원들은 올바른 제도개선보다 정보수사기관의 위치추적과 감청 편의를 우선시하고 조직적이거나 개인적인 감청자료 오남용을 계속 방치한 이번 개정의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우리 시민사회는 국민의 통신비밀을 오히려 방치하고 있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이 올바르게 개선될 때까지 계속하여 함께 노력할 것이다.
2020년 3월 5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단법인 정보인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