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한때 인터넷에서는 무한하게 자유로울 것이라 기대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저절로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이용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국가, 기업 등 권력자를 상대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할수록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을 누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인터넷 도입 전후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검열과 감시의 역사, 그리고 시민의 저항 속에 변화해온 제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제보와 잘못된 정보는 이메일 della 골뱅이 jinbo.net 로 알려 주십시오.
2-2. 제로 레이팅(zero-rating)
미국 및 유럽 등에서 트래픽에 대한 차단, 차별을 금지하는 망중립성 규제가 도입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망중립성과 관련된 국제적인 핫 이슈 중 하나는 ‘제로 레이팅(zero-rating)’의 문제이다. 제로 레이팅이란 통신사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이용을 위한 데이터를 무료로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이 자사 가입자들에게 11번가 쇼핑몰을 이용할 때 드는 데이터를 가입자의 데이터 한도액에서 차감하지 않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제로 레이팅은 특정한 트래픽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거나 차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망중립성 옹호론자들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에 기반하여, 통신사가 이용자의 접근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망중립성 위반으로 보고 있다. 특히, 통신사가 자사 혹은 계열사의 콘텐츠나 애플이케이션만을 무료로 해주거나, 혹은 콘텐츠 사업자에게 돈을 받고 그 콘텐츠 이용에 필요한 데이터를 무료로 해주는 경우, 공정 경쟁을 위협하고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래픽의 차단, 차별과 유사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제로 레이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는 기업의 가격 차별화의 하나의 형태일 뿐이며, 한정된 주파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장의 작동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페이스북의 ‘프리 베이직(Free Basic)’ 서비스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통신사가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가입자에게 페이스북 등 일부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인데, 페이스북은 이를 개발도상국의 인터넷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망중립성 옹호론자들은 프리 베이직 서비스에 포함되지 않는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은 차단된다는 점에서 이 역시 망중립성 위반이며, 신규 이용자들을 페이스북과 같은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가둬놓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용자의 인터넷 접근권 확대는 전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른 공공 정책을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로 레이팅은 그 형태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공공적 지식의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위키피디어의 경우에도 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위키피디어 제로’라는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통신사에게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포함한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제로 레이팅 구현 형태의 다양성, 각 국의 통신 시장 환경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현재 상황에서는 보다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망중립성 규제로 해결해야 할 지, 공정경쟁 규제로 해결해야 할 지도 관건이다. 다만, 제로 레이팅이 망에 대한 소유권에 기반하여 통신사가 공정 경쟁을 위협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