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7-08-16일자
[세상읽기] 아이의 ‘민증’과 20개의 지문 / 조효제
귀국 후 우편물을 정리하다 주민등록증 발급통지서를 발견했다. 드디어 ‘민증’을 받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동사무소에 갔다. 지문을 찍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손가락 하나씩 해서 지문 열 개, 그리고 양손의 손가락을 한꺼번에 한번씩 각각 해서 지문 스무 개를 찍었다. 왜 이렇게 많이 찍느냐고 묻는 내게 직원은 웃으면서 ‘우리 때보다 늘었지요’라고 동문서답을 한다. 열손가락에 묻은 시커먼 잉크를 닦고 있는 아이를 보니 화가 치밀었다. 성인이 되려면 무조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도대체 이런 무도한 법이 어디 있는가? 이런 식의 지문채취는 외국에선 경찰 기록에 사용될 뿐이다. 뉴욕·토론토·런던의 경찰에서 사용하는 중범죄자 지문채취 양식과 똑 같다. 온국민의 지문을 스무번이나 묻지마 식으로 강탈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
왜 이런 문제가 심각한 사회의제가 되지 않는가? 한번 찍고 넘어가므로 일종의 통과의례 같이 가볍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기록이 영구히 보존되든 말든, 무슨 용도로 사용되든, 누가 통제하든, 어떤 위험이 있든 아무 관심도 없다. 정부는 지문을 찍어야 신원을 확인하고 범죄 피의자를 색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불성설이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나라의 범죄 해결률이 국제적으로 제일 높아야 한다. 또한 지문채취를 하지 않는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신원 확인도 못하고 범죄 용의자도 찾아낼 수 없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국민의 67퍼센트가 지문날인에 찬성한다는 사실이다. 오랜 관행에 젖고 선전에 속아 넘어가 이제는 비정상성이 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의식이 문드러진 것일까?
나는 개인의 자유를 신장함과 동시에 복지 증대를 위한 국가의 연성적 역할을 확충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개인자유의 원초적 침해, 국가를 정점으로 전반적인 감시사회의 확산, 복지국가의 지체로 귀결되어 있다.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고 있는 것이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난달 국회에서 주민등록증 발급 때 지문날인을 폐지하자는 법개정안이 발의되었다. “국가에 의한 과도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및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려는 취지에서다. 어수선한 대선정국에서 이런 문제에까지 신경을 쓴 ‘기특한’ 의원들을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임종인·강기갑·강창일·권영길·김태홍·노회찬·단병호·문병호·심상정·이영순·정청래·천영세·최순영·현애자. 그런데 평소에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던 그 많던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왜 이런 고전적인 자유주의 이슈에 대해선 침묵하는가?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는 우리의 이런 현실을 이미 반세기 전에 예견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좌파 입장은 고사하고 자유주의적 입장마저 전투적으로 방어하지 않았다. 이들은 시민적 자유를 누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자유를 지킬 시간을 내지 못했다. 시민적 자유를 즐기는 것이 그것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수정당의 대선후보들에게 줄을 서서 지지선언을 하는 소위 지식인들의 명단을 보고 있자니 쓴웃음만 나온다. 자유의 수호투쟁에는 일점일획의 관심도 없이 권력에만 눈이 먼 이런 기회주의자들이 있는 한 이 땅의 자유주의는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지문날인반대연대는 내년이면 박정희의 공화당이 주민등록 지문날인법을 국회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킨 지 40년이 되는 해라고 상기시킨다. 40년이면 족하다. 이젠 제발 정상 국가로 돌아가자. 지금이라도 강제로 빼앗아간 지문을 반환하고 지문날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07-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