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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정보인권’의 발명(2)

By 2016/10/30 3월 28th, 2018 No Comments

편집자주 : 한때 인터넷에서는 무한하게 자유로울 것이라 기대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저절로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이용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국가, 기업 등 권력자를 상대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할수록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을 누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인터넷 도입 전후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검열과 감시의 역사, 그리고 시민의 저항 속에 변화해온 제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제보와 잘못된 정보는 이메일 della 골뱅이 jinbo.net 로 알려 주십시오.

◈ ‘정보인권’의 발명(2)_정보문화 향유권

‘정보문화향유권’은 지적재산권 체제에 대한 비판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저작권, 특허 등 지적재산권은 근대 이후 유럽에서 등장한 체제이고, 한국 역시 해방 이후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1986년 한미투자협정의 체결과 1994년 세계무역 기구(WTO) 가입 등을 통해 미국 등 선진국은 국내 지적재산권 체제의 강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당시부터 ‘정보의 상품화 반대와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표방하였고, 90년대 말부터 지적재산권 이슈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하였다.

지적재산권 체제는 그 자체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배타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저작권의 경우에는 공정 이용(국내 법률상 저작재산권의 제한과 예외), 특허의 경우에는 강제실시가 그것이다. 물론 보호 기간도 일정하게 제한된다. 원론적으로 지적재산권 체제는 배타적 권리와 지식의 확산 및 공공의 이익과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공공의 이익 부분은 배타적 권리에 대한 ‘제한이나 예외’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이용자 혹은 시민의 적극적인 권리, 즉 ‘정보문화향유권’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 및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5조에서도 창작자, 발명가의 권리뿐만 아니라 누구나 문화, 과학적 지식을 향유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가인권위원회 <정보인권 보고서>에도 반영되었다. ‘정보문화향유권’ 운동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판 운동을 넘어 적극적인 ‘정보공유’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개념이다. 2011년 통신사들이 무선인터넷전화(mVoIP) 서비스를 차단한 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때 진보네트워크센터와 경실련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한 것에 대하여 SK텔레콤과 KT를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에 고발 조치하였다. 이후 정부는 <망중립성 가이드라인>과 <트래픽 관리 지침>을 만들었지만, 실제 이에 근거한 규제 권한은 행사하지 않았다.

85_우리는-인터넷에서-자유를-발견했다_02망중립성은 인터넷접속서비스 사업자가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트래픽을 그 내용, 유형, 송수신자, 이용기기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콘텐츠나 서비스 사업자 입장에서는 통신사가 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불공정 경쟁을 한 것이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기기로, 자유롭게 콘텐츠나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망중립성은 인터넷에 대한 접근권 및 표현의 자유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망중립성을 포함한 정보접근권을 정보인권의 한 유형으로 보았다(정보인권보고서). 정보접근권은 헌법재판소가 알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한 이후 (헌법재판소 1991. 5. 13, 90헌 마133) 1996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제도화되었다.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권리도 정보접근권으로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2001년 1 월 16일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 제 정). 국가인권위원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국제규범에서 보편적 인터넷 접속의 권리와 망중립성을 주요한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유엔은 인터넷으로의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 모든 국가의 우선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A/ HRC/17/27). EU 의회는 2009년 <전자 커뮤니케이션 공통규제 프레임워크 디렉티브>를 개정하여 인터넷 접속권을 표현의 자유와 동등한 기본권으로 규정하였고, 인터넷에 대한 개방성과 망중립성을 보장하도록 하였다.

인터넷은 세계적인 네트워크이고, 그 위에서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상호 작용한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의 이용자이자 소비자이다. 우리가 미국 국가안보국 (NSA)의 사찰 대상이 되었을 수 있는 것처럼, 인권 침해 역시 세계적인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인권 침해 이슈와 유사한 문제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정보화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세계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는 모두의 고민이지만, 우리는 또한 국내 법률과 규범의 규제를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규범의 영향을 받지만(특히 지적재산권), 또 한편으로는 한국만의 고유한 역사와 맥락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다수의 나라들이 국민식별번호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처럼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광범하게 이용되는 나라는 없다. 인터넷 실명제나 공인인증서와 같이 고유한 규제 체제가 형성되어 오기도 했다. 한국의 정보인권 개념은 한 편으로는 국제적인 인권 운동과 연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적인 인권 침해와 제도에 맞서 투쟁하면서 형성, 발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