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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인터넷등급제로 촉발된 ‘표현의 자유’ 논란

By 2016/04/30 4월 11th, 2018 No Comments

[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편집자주 : 한때 인터넷에서는 무한하게 자유로울 것이라 기대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저절로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이용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국가, 기업 등 권력자를 상대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할수록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을 누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인터넷 도입 전후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검열과 감시의 역사, 그리고 시민의 저항 속에 변화해온 제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제보와 잘못된 정보는 이메일 della 골뱅이 jinbo.net 로 알려 주십시오.

◈ “통신질서를 수립하자”

2000년 7월 20일 정보통신부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건전한 정보통신윤리 확립을 위해 사업자와 이용자의 새로운 의무들을 규정하고 법률 명칭도 「개인정보보호 및 건전한 정보통신질서 확립 등에 관한 법률」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약칭 ‘통신질서확립법안’은 내용규제 면에서 사업자 뿐 아니라 이용자에 대해서도 여러 의무와 처벌 규정을 신설하였다. 불법정보의 제작과 유통을 금지하고 그 신고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 받아 정보통신부 장관이 해당 정보의 취급을 거부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규정을 두었다. 망사업자를 비롯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는 불법정보 모니터링과 처리 책임을 크게 늘렸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불량’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을 제공받아 ‘불량이용자 DB’를 관리하고 이들이 정보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담겨 있었다.

2000년대 전후로 활발해진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활동으로 자유로운 인터넷을 만끽하던 이용자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YMCA 열린정보센터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특히 ‘인터넷 등급제’의 문제점에 주목하였다. 인터넷 등급제는 영리 목적으로 청소년에게 유해한 인터넷 컨텐츠를 제공하는 경우 내용등급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학교 도서관 등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기관이나 시설에서는 특정 등급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소프트웨어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였다. 어떤 등급을 부여할 것인지는 행정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판단한다. 정보통신사업자 등이 자율적으로 부여한 등급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조정하도록 했으며 사업자는 그 조정 결과에 따를 의무가 있었다.

201604_우리는-인터넷에서-자유를-발견했다_03인터넷 등급제 논란은 국가주도의 인터넷 통제에 대해 인터넷 자율 문화가 본격적으로 반격한 사건이었다. 정부의 인터넷 등급제는 PICS라는 기술표준을 이용한 것이었다. 인터넷 HTML 문서 내부에 메타태그를 이용하여 등급표시를 하면 필터링 소프트웨어가 그 등급을 기술적으로 인식해 자동으로 차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인터넷 필터링이 민간에 의해 자율적으로 실시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설치된 행정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의무적으로 실시한다고 하였다. 특히 인터넷방송과 게임에 대해서는 사전 등급제가 실시된다고 하자, 이용자들은 이미 영화와 음반 검열 사건에서 위헌으로 결정된 행정기관의 사전심의제가 인터넷에서 부활하는 것이 웬말이냐며 반발하였다.

◈ 청소년 보호에 반대하다

정부가 인터넷 청소년유해매체물 문제에 적극 나서게 된 배경에는 특히 성표현물 증가에 대처하겠다는 의지가 작용하고 있었다.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1999년 8월, 안방까지 침입한 외국의 포르노사이트를 막기 위해서 “사이버공간에 국경을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업자(ISP)에게 정부가 지정한 외국 포르노사이트의 국내유통을 차단하는 기술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의무지우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인터넷내용등급제는 이러한 발상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1992년 마광수 교수 소설과 1997년 장정일씨 소설 논란에서 보듯이 민주화 이후 성표현물에 대한 대중적 욕구가 커져가고 있었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이용자 수가 증가하면서 성표현물도 증가하였다. 영화나 TV에서처럼 통제되지 않은 성표현물의 등장이라니, 국가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2001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미술교사였던 김인규 교사의 온라인 누드 전시회를 폐쇄한 사건은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물론 국가가 당황한 것은 성표현물에 대해서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자퇴생 커뮤니티인 ‘아이노스쿨’을 폐쇄한 이유는 이 사이트가 “학교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등급제는 이런 국가의 규제 의지가 기술적 검열로 나타난 정책이었다.

201604_우리는-인터넷에서-자유를-발견했다_02인터넷 등급제 반대 운동은 커졌다. 정보통신부 홈페이지 가상연좌시위를 앞두고 정보통신부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소동이 일기도 하였다(이 사건으로 진보네트워크센터는 경찰로부터 7시간 동안 압수수색을 당했으나 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특히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입되는 인터넷 등급제에 대하여 청소년 이용자들이 크게 반대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십대들이 주요 창작자로 참여하는 팬픽이 검열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인기 아이돌 팬클럽 들에서 반대 여론이 높았다. 청소년들은 이 법안의 제정과 시행에 반대하는 온라인 캠페인과 오프라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성소수자들 또한 인터넷 등급제에 반대하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폐지를 주장하는 집회를 열기도 하였다. 인터넷 등급제의 대상이 될 ‘청소년유해매체물’의 법정 기준에 ‘동성애’를 통째로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7조 별표1>.

이용자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확산되자 정부는 여러 차례 법안 수정을 거쳤고 “정보내용등급표시제”를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로 수정한 법안을 같은 해 11월 21일 발의하였다. 이듬해 1월 16일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또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으나 청소년유해매체물과 인터넷 등급제의 주요 골자는 변하지 않았다.

이 법에 의해 인터넷 등급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된 동성애 사이트 엑스존은 2002년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2004년과 2007년 이 사건을 각각 기각하였다<헌재 2004. 1. 29. 2001헌마894 결정, 대판 2007. 6. 14. 2004두619 판결>. 다만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2004년 4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할 때 청소년유해매체물의 기준에서 ‘동성애’를 삭제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터넷 콘텐츠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낙인이 찍히고 국내 인터넷 공간에서 기술적으로 필터링될 위기에 처하자 성소수자 운동이 적극 문제를 제기한 덕분이었다.

2015년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고시에서는 인터넷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해 여전히 PICS 기술표준에 따른 ‘전자적 표시’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고, 2008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업무를 이어받아 출범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행정부 차원에서 인터넷내용등급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http://www.safenet.ne.kr> 그러나 인터넷 내용규제 분야에서 정부 권한에 대한 논란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