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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불온통신 개념은 위헌”… 저항의 시작

By 2016/02/28 4월 13th, 2018 No Comments

[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편집자주 : 한때 인터넷에서는 무한하게 자유로울 것이라 기대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저절로 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이용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국가, 기업 등 권력자를 상대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고도화할수록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을 누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인터넷 도입 전후로부터 시작된 디지털 검열과 감시의 역사, 그리고 시민의 저항 속에 변화해온 제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제보와 잘못된 정보는 이메일 della 골뱅이 jinbo.net 로 알려 주십시오.

◈ 저항의 시작

사실 CUG 공간 폐쇄가 처음 벌어진 사건은 아니었다. 1995년 하이텔에 있던 한국통신 노동조합 CUG가 폐쇄되었다. 하이텔은 한국통신에서 출자한 한국PC통신에서 운영하던 PC통신 서비스였다. 한국PC통신은 한국통신 노동조합이 이용약관을 위반했다며 CUG를 폐쇄하였다. 농성 등 회사와 투쟁을 이어갈 때 “타인비방, 욕설, 허위사실, 선동” 글을 게시했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은 CUG 폐쇄에 대해 한국PC통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대법원은 “대체로 타인을 비방하고 중상 모략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며 불법적인 노조활동을 선동하거나 교사하는 등 사회질서를 해하는 내용과 건전한 미풍양속을 해할 염려가 많은 상스럽고 저질스러운 표현을 담고 있는, 노조활동과 관련된 컴퓨터통신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그 전용게시판 서비스를 일시중지시킨 컴퓨터통신 사업자의 행위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대법원 1998. 2. 13. 선고 97다37210 판결>”고 보았다.

공권력과 자본의 힘으로 통신공간에서 게시물 삭제, 아이디 중지, 전용방 폐쇄, 심지어 이용자 구속, 유죄 판결이 이어지자 이용자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통신품위법'(컴퓨터 통신망에서 외설정보 전송 금지)에 맞선 행동이 한창이었다. 1996년 2월 8일 미국 정보인권단체 EFF의 사이버운동가 존 페리 바를로가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A Cyberspace Indepencence Declaration)>을 발표하여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 우리는 인종, 경제력, 군사력, 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이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비록 혼자일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그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너희가 생각하는 재산, 표현, 정체성, 운동, 맥락에 관한 법적인 개념들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물질에 기반하는 데 사이버스페이스에는 아무런 물질이 없다.우리의 정체는 너희와 달리 육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적 강제력으로 질서를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윤리와 개명된 자기 이해, 그리고 공공복지에서 우리의 정치가 나타나리라 믿는다. 우리의 정체는 너희의 관할권을 건너 퍼질 수 있다. 우리의 선거인 문화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법률은 황금률이다. 우리는 이 근거에서 우리의 특수한 해결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너희가 부과하려는 해결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 –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

‘사이버스페이스’의 독립을 지지하는 컴퓨터통신 이용자들은 이 새로운 매체에서 표현의 자유를 열렬하게 요구했다. 마치 이백 여년 전,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며 사상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외친 근대 시민 혁명가들과 같았다. 사이버스페이스의 권리를 보장한 것은 현실 세계의 법원이었다. ‘통신품위법’은 필라델피아 연방법원에서 위헌결정을 받았고 연방대법원에서도 최종위헌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 누리꾼들도 디지털 국가 검열에 반대하는 행동을 시작하였다. 1996년 4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시기를 앞두고 다수의 이용자가 구속되고 기소되자 <통신자유를 위한 모임>이 구성되어 사례를 수집하고 구명운동을 펼쳤다. 8월 한총련 CUG가 폐쇄되자 이에 반대하는 릴레이 이메일 서명과 [검열반대] 말머리 달기가 조직되고, 검열반대 메일링리스트가 구축되어 토론을 촉진했다.

6월에는 PC통신에서 진보적인 사회운동을 주제로 모인 동호회들과 한국과학기술청년회 등 사회단체 23곳이 모여 ‘통신검열 철폐를 위한 시민연대’를 함께 결성하고 11월 <정보통신 검열 백서>를 펴 냈다. 시민연대는 사이버 공간의 검열 사례를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백서를 발간하면서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 만의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과거 마치 민주의 척도인 것처럼 주장되었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결코 언론사 만의 것으로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언론장사로 재벌이 되어버리거나 혹은 재벌의 언론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신문사, 방송사에만 그 자유가 국한된다면 그것은 결국 힘있는 자의 자유, 가진 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 이상은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유는 이제 모든 국민의 자유로 환원되어야 한다.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란 국민 개개인의 말할 권리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 <’96 정보통신 검열 백서>

언론 및 출판과 같은 표현 수단에 일반시민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대중매체 시절부터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문제이다. 1976년 유네스코는 일반시민의 미디어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실질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일반 대중의 문화생활에 대한 참여 및 기여에 관한 권고>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컴퓨터통신은 일반 시민들에게 접근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 큰 미덕이었다.

>> 통신 공간은 다른 기술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훨씬 저렴하며, 배우기 쉽고 분산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여타 첨단기술에서 시작조차 어려웠던 기술의 인간적인 이용에 있어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신공간이 점점 시민들의 생활공간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 <’96 정보통신 검열 백서>

컴퓨터 통신 이용자들은 공중파 방송에 적용되어 온 엄격한 윤리적 심의 기준을 반대하였다. 통신 기술의 특성을 들어 사이버 공간이 쌍방향적으로 소통이 오가며 반론 가능한 토론 공간임을 강조하였다. 시민연대는 보편적 서비스,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를 ‘정보기본권’으로 꼽으며 우리 사회가 앞으로 전자민주주의를 보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특히 공개된 게시물에 대해서 인쇄물에 준하는 폭넓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나는 아나키스트다’제목으로 올린 글은 「러시아 아나키스트 1917」이란 제목으로 발행된 서적의 저자 머리말과 도입부를 첨삭 없이 그대로 옮긴 것으로, 글을 올릴 때 글머리에 ‘나는 아나키즘에 동의하므로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니며 아나키즘에 관한 연구가 미흡하고 또한 사라져버린 조류에 대한 토론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올린다’는 요지의 글도 함께 써, 자신의 입장과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위의 서적은 당시 시중 서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던 것이고 또한 그 서적이 국가보안법 관련 제재를 받은 적은 아직 없었다 (…) 서적 등 다른 매체의 경우 하등 문제되지 않는 것이었으나 유독 통신망에 올려졌다는 이유로 문제가 된 경우이다.- <’96 정보통신 검열 백서>”

이용자들은 비공개된 게시물에 대해서는 전화에 보장되는 통신의 비밀을 요구하였다. 한총련 CUG 폐쇄 사건의 당사자인 한총련은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자리잡은 통신망에 대한 접근 자체를 압수영장으로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이는 전화를 범죄에 사용했다는 이유로 전화선을 끊는 것과 같다<준항고장>”고 항의하였다.

◈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다

역설적이게도 영화와 음반 검열은 이 무렵 사라졌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인 1975년 설립된 공연윤리위원회는 사전심의기관으로 연극 대본·영화 각본·음반의 가사 및 악보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 대하여 전방위적으로 검열해 왔다. 영화의 경우 심의기관인 공연윤리위원회가 영화의 상영에 앞서 그 내용을 심사하여 심의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영화에 대하여는 상영을 금지할 수 있고, 심의를 받지 않고 영화를 상영할 경우에는 형사처벌이 가능했다. 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는 <닫힌 교문을 열며>, <오! 꿈의 나라>라는 두 영화에 대한 사전심의 제도에 대하여 위헌을 선언하였다.<93헌가13, 91헌바10(병합)> 10월 31일에는 정태춘씨의 ‘아, 대한민국…’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도에 대해 위헌결정이 내려졌다.<94헌가6>

문민정부 들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온 정부의 검열 제도가 사라진 것을 목격한 컴퓨터 통신 이용자들은 고무되었다. 영화와 음반 검열이 폐지된 것과 거꾸로 컴퓨터 통신 공간에서 수사기관과 행정기관의 검열과 감시가 횡행하고 있다며 반발하였다.

201602_우리는-인터넷에서-자유를-발견했다_01저항이 계속되는 가운데 1999년 가장 강력한 이의제기가 이루어졌다. 서해교전 사건에서 대통령이 어설프다고 비판했다가 아이디가 중지된 항공대 PC통신 이용자 ‘이의제기’가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8월 11일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이의제기는 “컴퓨터통신도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보호받는다”고 주장했다. ‘불온통신의 단속’ 조항이 표현행위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로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이라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기준만을 제시함으로써 행정부의 자의적인 개입을 인정한 것이 헌법상 권리에 대한 침해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삼년이 지난 2002년 6월 27일,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온통신의 개념이 위헌이라고 선언하였다.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이라는 불온통신의 개념을 토대로 표현 규제를 하는 것이 모호성, 추상성, 포괄성의 문제가 있고,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규제되지 않아야 할 표현까지 다함께 규제하게 되므로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인터넷은 공중파 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선언했다는 사실이 큰 울림을 주었다. 이 때문인지 ‘불온통신의 단속’ 위헌 결정은 헌법재판소 설립 25주년을 맞아 선정된 “주요 결정 10선”에 꼽히기도 하였다.

>> 불온통신 규제의 주된 대상이 되는 매체의 하나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공중파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공중파방송은 전파자원의 희소성, 방송의 침투성, 정보수용자측의 통제능력의 결여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공적 책임과 공익성이 강조되어, 인쇄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규제조치가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위와 같은 방송의 특성이 없으며,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표현매체에 관한 기술의 발달은 표현의 자유의 장을 넓히고 질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계속 변화하는 이 분야에서 규제의 수단 또한 헌법의 틀 내에서 다채롭고 새롭게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 <2002. 6. 27. 99헌마480 전원재판부>

인터넷 표현의 자유는 모든 누리꾼과 모든 시민들이 당사자인 문제였다. 공권력이 모든 이들의 미디어를 검열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기술 발전과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욕망이라 비판받았다. 하지만 2002년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로도 인터넷의 게시물을 규제하려는 공권력의 욕망은 멈추지 않았고, 행정검열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