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온 기쁜 소식
– 글리벡 강제실시로 가는 실마리
김동숙 ( 민중의료연합 공공의약센터 | rmdal76@hanmail.net)
글리벡 가격논의 무산
9월 6일 글리벡 약값을 결정하기 위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글리벡 가격논의는 또 한번 무산되었다. 글리벡이 문제가 된지 벌써 1년이지만, 이제까지 진행되어온 글리벡 약값결정과정은 환자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곤 조금도 조성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정부가 제시하는 가격이든 노바티스가 제시하는 가격 모두 오히려 환자들을 막막하게 할 뿐이다. 반쪽짜리 의료보험제도로 검사비, 입원비 등을 부담해야 하면서도 치료에만 전념하느라 생계를 전혀 해결치 못하는 환자들에겐 정부가 제시하는 17,862원이든 노바티스가 제시하는 23,045원이든 어느 것도 여전히 먹을 수 없는 가격이다.
5일간의 인도방문
이런 상황에서 글리벡 공대위의 인도방문결과는 다소 희망적이다. 8월 30일 글리벡 생산과 관련하여 인도를 방문했던 글리벡 공대위 방문팀이 돌아왔다. 비록 세세한 협상결과들은 당분간 비밀에 부쳐질 예정이지만, 인도방문의 성과들은 글리벡 강제실시의 가능성은 가시적이다. 현재 인도에 있는 3~4개의 제약회사는 글리벡 카피약(복제약)을 인도 내에서 시판하기 위한 승인절차를 밟고 있으며, 1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한국판매가격을 제시한 곳도 있었다. 공대위는 인도방문을 통해 글리벡 카피약의 개발과정과 생산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배가 넘는 글리벡 약값, 그것은 독점가격
인도 제약회사가 글리벡 카피약에 대해 제시하는 가격은 놀라운 수준이다. 1캅셀당 1달러이다. 3월 노바티스가 재신청한 24,050원의 20분의 1, 즉 5%도 안된다. 1달러를 제시한 인도 제약회사의 경우 1달러 미만으로 판매하더라도 이윤이 남는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글리벡의 경우 개발도 오레곤 암센터에서 주로 이루어진데다 임상실험의 50%를 세금감면혜택을 받았지만, 노바티스는 이제껏 약값이 비싼 것은 연구개발비에 대한 보상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20배의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약값을 뻥튀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특허라는, 거대권력 때문이다. 노바티스는 글리벡에 대한 특허출원과 동시에 95%만큼의 어마어마한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실제 약을 먹을 수 있는 환자들의 수준이 아니라, 이윤의 크기에 따라 가격을 마음대로 정하고 있으며, 누가 살고 누가 줄어야할지조차 자신들이 결정짓고 있다.
정부의 책임성
초국적 제약자본의 특허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시해오면서, 글리벡 공대위는 1월 강제실시를 청구했지만, 이에 대해 정부는 조금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공대위의 글리벡 강제실시에 대한 노바티스의 의견서 제출이 2번이나 연기되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바티스를 옹호해왔다. 사실 외국에서는 자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자 정부가 강제실시를 발동해왔다. 공대위와 환자들이 강제실시를 실시하려고 노력하는 데 반해 정부가 강제실시를 저지하려 하는 현 구도는 도대체 정부는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남한에서는 마땅히 글리벡 강제실시를 책임질 공공 제약회사도 없기에, 공대위와 환자들이 직접 나서서 인도제약회사와 접촉하는 등 정부에게 강제실시의 가능성과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모든 강제실시를 정부가 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사유재산을 둘러싼 독점방지의 강제실시와 달리, 생명이 걸린 의약품에 대해 특허권 남용으로 환자들이 약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을 특허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강제실시를 묵살해서는 안 된다. 환자의 건강권, 생명권을 보호하고자 청구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강제실시’는 반드시 정부가 허용하고 실시하는 주체가 되어야만 한다.
이후 과제
지금까지의 건정심의 진행과정과 이번 글리벡 약값 논의 무산은 환자들을 더욱 절망시키고 있다.
정부는 노바티스에게 끌려다니며 이제껏 아무런 대책도 마련치 못하고 수수방관해왔다. 오히려 환자들이 스스로 자기들이 살 수 있는 자구책을 찾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인도방문은 공대위와 환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지만, 글리벡 카피약의 생산 가능성은 여러모로 많은 숙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정부는 강제실시를 발동하고 글리벡 카피약의 수입을 허가해야 한다. 인도제약회사에서 생산하는 글리벡 카피약이 조만간 인도에서 시판된다면, 환자들은 이를 먹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둘째 노동자 민중은 이제 강제실시 시행을 위한 대정부 투쟁을 진행시켜야 한다. 강제실시가 단순히 약품 카피가 아니고 초국적 제약자본의 헤게모니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며 건강이라는 공적 영역들을 지켜내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강제실시 투쟁은 민중들의 국제적인 연대를 필요로 한다. 남한에서의 강제실시는 단순히 남한이 아닌, 국제적으로 건강을 지켜내고자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을 진행시키는 숱한 민중들의 투쟁을 상승시키는 기폭제로 자리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