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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자유/칼럼] 서해교전과 불온통신

By 2002/08/25 2월 27th, 2020 No Comments
진보네트워크센터

서해교전과 불온통신

장여경 (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국장 | della@jinbo.net )

지난 6월 29일, 한국에서의 마지막 월드컵 경기가 열리던 날, 서해교전이 발발하였다. 삼년 만에 다시 일어난 교전으로 또다시 남북의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고, 우리는 차갑게 엄존하는 분단 현실을 확인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전을 둘러싼 논쟁은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교전의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여러가지’ 해석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사건 초기 군의 발표나 수구언론의 확전불사 부추김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돌릴수 없다는 주장들이 속속 나타났다. 더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에야말로 남북 해상 경계선 문제를 북한과 협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며 북한 경비정이 남하했을 당시 서해에서 한-미 해군이 연합훈련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특히 ‘연평 총각’이란 아이디를 쓰는 현지 어민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월선 조업 책임론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어부 책임론, 남쪽 책임론 등 갖가지 이적논리를 개발해 유포한 자들을 색출해 엄벌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막말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적논리’들은 끊임없이 등장했고 그중 일부는 언론이 취재하고 군이 인정하면서 상당히 근거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논쟁 양상은 확실히 지난 99년에 발발했던 서해교전 때와는 다른 것이다.
1999년 6월 15일, PC통신 ‘나우누리’의 한 동호회 게시판에 당시 발발한 서해교전에 대한 글이 하나 올라왔다. "어설프다 김대중"이라는 이 글은, 당시 한일어업협정·집시법 개악·의료보험 통합·옷로비 사건·조폐창 파업유도 등으로 수세에 몰린 김대중 정부와 언론이 ‘한물 건너간 북풍공작’으로 서해교전을 이용한다며 민중 생존권 투쟁이 후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글은 올라간지 일주일도 못돼 삭제되었다. 정보통신부 장관이 친히 ‘불온’하다며 삭제하고 해당 이용자의 이용권을 1개월간 박탈할 것을 나우누리 측에 ‘명령’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해교전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가 글이 삭제되고 이용권을 박탈당한 이용자는 그밖에도 여럿 있었다.
그렇게, 인터넷이 검열되어 왔다. 인터넷의 불온한 글이나 사이트들은 정보통신부 장관이 삭제해 왔고 ‘불온통신’을 단속하기 위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라는 검열기관이 활동해 왔다. 그간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불온하다며 폐쇄했던 사이트들에는 음란사이트도 포함되어 있지만, 자살 사이트, 폭탄 사이트, 자퇴 청소년 사이트, 동성애 사이트, 군대반대 사이트 그리고 북한과 관련한 사이트들이 무수히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인터넷을 검열해 왔다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누가 무슨 기준으로 이 사이트들을 불온하다고 정했는가? 음란이란 무엇인가 – 중학교 미술교사가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누드 작품을 게재하면 음란인가? 자살에 대해 토론한 것은 범죄인가 – 아니, 청소년은 정말로 자살 사이트 때문에 자살했는가? 자퇴 청소년 사이트는 왜 금지되어야 하는가? 동성애 사이트는 어째서 청소년에게 유해한가? … 최근 몇 년간 계속된 인터넷 국가검열 반대운동은 바로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설프다 김대중"이라는 글을 작성한 사람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사회단체에서는 그해 8월 불온통신 조항, 즉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와 관련 시행령에 대하여 위헌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삼년 만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발표되었다.
서해교전 논쟁에 적용된 불온통신 조항은 위헌. 그리고 또다른 서해교전이 그 이틀 후에 발발했다. 전보다 더 소란했던 올해 논란에 불온통신이라는 ‘태클’이 걸리지 않았던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는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을 금하고 이러한 전기통신에 대하여 정보통신부장관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그 취급을 거부, 정지 또는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와 시행령 제16조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불온통신의 개념은 너무나 불명확하고 애매"하다며 "어떠한 표현행위가 과연 ‘공공의 안녕질서’나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고 … 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정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성(性), 혼인, 가족제도에 관한 표현들(예컨대 혼전동거, 동성애 등에 관한 표현)이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으로 규제되고, 예민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관한 표현들(예컨대 징집반대, 양심상의 집총거부, 통일문제 등에 관한 표현)이 ‘공공의 안녕질서’를 해하는 것으로 규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즉, 국가가 ‘불온하다’는 기준으로 인터넷을 규제하는 것은 국가 검열이며, 국가가 공익을 위해 피치못한 이유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자의적이지 않은 명확한 기준에 따라 최소한으로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정신인 것이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이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이 왜 이토록 오래 걸렸을까.

인터넷을 검열하는 이유

인터넷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무척 커졌다. 제발 좀 인터넷을 쓰라며 정부와 언론이 호들갑을 떨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막상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쓰게 되자 이제 인터넷은 매우 위험한 물건이 되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는 ‘누구나’, ‘아무 말이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표현의 자유’의 본래 의미가 아니던가. 인류 역사 속에서 표현의 자유가 천부인권으로 선언되고 300년이 흘렀지만 그동안 누구나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표현을 할 수 있는 물적 수단을 언론과 출판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독점적인 거대 언론·출판 기업이 오히려 표현을 왜곡하고 정보를 독점하기에 이르자,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민중의 열망은 커져만 갔다. 그 열망이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등장과 더불어 비로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 정부와 언론이 위험하다고 지목하는 것은, 기실 인터넷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쇄도하는 민중들의 표현이다. 서해교전을 둘러싼 논쟁에서 보았듯이,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아니라 국방부 발표조차 흔들며 올라오는 다양한 주장들이다. 그래서 정부는 인터넷이 등장도 하기 이전에 ‘불온통신의 단속’이라는 법부터 만들어 놓고 인터넷을 철저하게 통제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아닌가.
정부는 결코 인터넷을 검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위헌소송이 진행되는 삼년 동안 불온통신 조항이 너무나 막강한 위력을 발휘해 왔다. 가장 큰 위력은 사람들의 마음에 발휘되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세계 유래없는 인터넷 국가검열 기구이지만, 이 기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많은 학부모들이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다. 자퇴 청소년 사이트를 폐쇄하지 않으면 청소년들이 모두 자퇴를 할 것처럼. 그 두려움을 배경으로 하여, 정보통신부는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대한 정보통신부 장관의 권한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존속시키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인터넷내용등급제는 최근 공공장소와 PC방에 차단소프트웨어들이 배포되면서 점점 더 그 고삐를 죄어오고 있다. 거기다 이땅의 가장 악독한 검열법인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버티고 있지 않은가. 불온하다는 딱지는 서해교전 논쟁을 막지 못했지만 인터넷 게시판에 서해교전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힌 회사원 김강필씨는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이중삼중으로 인터넷을 검열해 왔고, 검열해 갈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인터넷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데서 나는 힘을 얻는다. 정부의 시도가 의도대로 먹히는 것도 아니다. 할 말을 할 수 있는 기쁨을 알게 된 민중들이 점점더 많이 그 권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최근 우리 사회의 역사적 사건들에서 인터넷에 대한 거론은 빠지지 않는다. 제도 언론이 오늘 있었던 집회 소식을 다루어주지 않아도 인터넷에 기사가 오르고 사진이 오르고 동영상이 오른다. ‘통제된 정보’와 ‘통제된 논쟁’의 시대는 가버린 것 같다. 아니, 가버려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가치가 혼재하는 우리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심지어 청소년의 자살, 청소년의 성과 같은 민감한 문제도 폐쇄와 삭제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이 민주주의이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는 우리가 반드시 쟁취해야 할 우리의 권리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힘은, 그 자체로 우리의 희망인 것이다.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그리고 이땅의 민주주의와 민중의 승리를 위해 인터넷에 대한 국가의 검열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2002-08-24